137. 후원
모든 생명체에게는 극도로 예민한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보자.
고양이는 새끼를 낳은 이후 극도로 예민하다.
그 고양이가 평소에 사람을 따르고 온순한 성격이라 해도.
눈도 못 뜨는 자식을 품은 순간만큼은, 적의를 드러낸다.
이렇게 고양이가 예민할 때는 웬만해서는 건드리면 안 된다.
할큄은 기본이요, 두고두고 원망을 살 수도 있으니까.
그렇다면 인면조에게 있어 가장 예민한 순간은 어느 때일까.
당연히 달콤한 겨울잠을 자는 순간이다.
인면조는 물고기를 배불리 먹어 에너지를 비축해두면 길고 긴 겨울잠에 들어갔다.
보통 겨울잠에 들어가는 기간은 5개월 정도.
그 기간 동안 인면조는 편안하고 안락한 꿈을 꾸며 행복을 만끽한다.
감히 누구도 그녀의 단잠을 방해하는 일은 없었다.
용암 호수에 서식하는 작은 물고기들은 먹잇감에 불과했으니까.
작은 새 등도 감히 인면조에게 대항할 마음조차 먹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늘 그 평화가 지켜져 왔건만.
호준으로 인해 그 평화로운 일상은 깨져버렸다.
푹―
인면조가 받은 첫 공격은 아주 미미해서 공격이라 인식하지 못할 정도였다.
채 보이지도 않는 꼬리 쪽에서 뭔가 스쳐 가는 느낌.
인면조는 아주 미미하고 소소한 이 공격을 무시해도 될만하다 여겼다.
그러나 그 작은 공격이 불러온 효과는 놀라웠다.
파지직―
꼬리를 시작으로 전신이 얼음 속에 갇혀버렸던 것.
‘……!’
인면조는 갑자기 몸이 얼어버리자 1차 충격을 받았다.
최상의 포식자로 군림해온 인면조에게는, 얼음에 갇혔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었다.
1만 년을 넘어선 뒤로 나이를 세는 일은 그만둔 인면조.
그 아득한 세월 동안 인면조는 최상의 포식자였다.
관성의 법칙에 의해 인면조는 위험을 인식할 일조차 전혀 없었고, 그래서 바로 얼음에 갇혔을 때 대처할 수 없었다.
오히려 인면조는 얼음에 갇힌 순간 사고가 멈추었고, 심히 당황했다.
그러나 충격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얼어붙은 인면조의 눈앞에 작은 침입자가 나타났다.
이 공격을 주도한 장본인.
호준을 발견한 인면조는 얼음 속에 갇힌 채로, 그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그러나 침입자는 그 눈빛을 본 듯 만 듯하고는 인면조의 입 안에 뭔가를 마구 던졌다.
뭔가 깨지고 박살나는 소리가 계속 났다.
뭔가를 마구 집어던진 침입자는, 얼음이 박살나기 시작하자 저 멀리 날아가버렸다.
인면조는 그가 무엇을 던졌는지 알 길이 없었고,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여주마.’
어차피 죽여버릴 테니까.
얼음이 부서지고 몸이 자유로워진 인면조는 침입자를 향해 날개를 바로 발사하려다가 멈칫했다.
【당신은 여왕 아라크네의 맹독에 감염되었습니다】
【체력이 급격히 저하됩니다】
【극독 상태에 빠집니다!】
【극독으로 인해 이동 속도가 느려집니다!】
【극독으로 인해 내상을 입었습니다!】
【극독으로 인해 창자가 찢어지는 듯한 복통을…】
……
“꾸에엑!”
난생처음 겪는 고통이 인면조의 뇌를 강타했다.
인면조는 비명을 지르며 메시지를 겨우 읽었다.
맹독, 체력 저하, 극독, 내상, 복통…….
인면조는 분노했다.
이 모든 고통은 침입자 때문이었다.
방금 보았던 그 녀석의 짓임이 분명했다.
푸르르륵―
‘감히……!’
분노로 인해 인면조의 얼굴은 울그락불그락해졌다.
깃털은 이미 날카로운 칼날로 형태변화를 마쳤다.
공격을 위한 준비는 모두 마친 상황.
‘뼛가루로 만들어 주마!’
인면조는 일행들과 함께 언덕 뒤로 숨는 호준을 겨냥해 깃털을 발사했다.
퓻퓻퓻퓻퓻
최장 3m에 이르는 거대한 칼날 깃털들 수십만 개가 발사되었다.
그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수십만 개의 깃털은 거대한 로켓처럼 호준이 있는 언덕을 강타했다.
쿠콰콰쾅!
언덕에서 폭탄 터지는 소리가 들리고, 갈색 구름이 언덕을 뒤덮었다.
깃털들은 쉼 없이 투하되었다.
쿠콰쾅! 콰직! 콰지직!
비록 구름 때문에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인면조는 자신만만했다.
그녀는 이미 침입자는 죽었으리라 단정했다.
살아 있을 리가 없었다.
깃털의 무게도 무거운 마당에, 가속도까지 붙었으니.
수많은 깃털들은 언덕을 가루로 만들고도 남았다.
어쩌면 침입자는 잘게 분해되어 형태조차 알 수 없을지도….
‘너무 쉽게 죽여버린 건가.’
뼈째 씹어먹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거늘.
인면조는 입맛을 다시며 먼지구름을 바라보았다.
언덕을 뒤덮은 먼지구름이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마침내 완전히 걷히고 그 결과가 드러나자 인면조의 눈에 의문이 담기기 시작했다.
“꾸에…?”
분명히 형태조차 없을 것 같던 침입자, 그가 살아 있었다.
그는 두터운 얼음벽, 정확히는 수십 개의 얼음벽에 둘러싸인 상태로 서 있었다.
겉의 얼음벽은 부서졌지만, 침입자를 감싼 안쪽 얼음벽은 여전히 튼튼히 버티고 있었다.
‘어떻게…?’
사방에서 그를 감싼 단단한 얼음벽들은 산산조각 난 언덕과 대비되었다.
대체 무슨.
인면조는 당황한 나머지 멍하니 바라보다가, 호준과 눈이 마주쳤다.
씨익―
호준이 미소 짓는 순간, 인면조는 분노나 적개심이 아니라.
‘위험하다.’
불안함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
‘피하자.’
칼날 깃털은 위력이 대단하지만, 약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깃털을 한 번 사용하면 재생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1분만 피하면 돼.’
거대한 전신을 가득 채우는 깃털이 1분 만에 재생된다는 것은, 가히 놀라운 생명력이라 할 수 있지만.
전투에 있어서 1분이라는 시간은 꽤 긴 시간이었다.
홧김에 깃털을 한 방에 날려버린 인면조는, 지금 맨들맨들 뽀얀 살결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즉, 깃털이 재생되는 1분 동안 인면조는 공격에 무방비한 상태였다.
흥분한 나머지 모든 깃털을 한 번에 다 쓴 것이 실수였다.
파스스슥―
깃털이 재생되기 시작했고.
인면조는 재빨리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파다닥―
이를 놓칠 호준이 아니었다.
호준은 미르를 타고 맹렬히 뒤쫓았다.
이제부터 사냥꾼은 인면조가 아니라 호준이었다.
* * *
인면조는 필사적으로 전투에 임했고.
필사적으로 도망갔으며.
필사적으로 살기 위해 발악하며 날았다.
그러나 필사적으로 발악한다고 다 살아남는다면, 세상에 죽는 동물은 없으리라.
약육강식의 법칙은 의지와는 무관한 법.
“끄으으…….”
빙백검이 인면조의 심장을 꿰뚫자, 결국 인면조는 숨을 거두었다.
쿠우우웅―
녀석의 시체가 지면에 내려앉으며 거대한 먼지구름을 일으켰다.
미르가 날개바람으로 먼지구름을 흐트려 시야가 확보된 뒤, 호준은 인면조의 사체 위에 섰다.
그의 곁에는 다크니스와 미르가 있었다.
얼음벽을 만들어 보조를 해주었던 다크니스, 기동력이 되어준 미르는 흐물흐물 입꼬리를 올리며 사냥의 성공에 만족했다.
다크니스는 발톱을 세워 인면조를 박박 긁으며 냄새를 맡기도 했다.
“기분 좋아 보이네.”
“냐아~”
【다크니스의 사냥 본능이 꿈틀댑니다!】
【다크니스가 사냥 성공에 기뻐 꼬리를 흔듭니다】
다크니스가 손바닥을 핥고 몸을 부비적대며 애교를 피우는 사이.
미르는 인면조 살덩이를 살짝 베어 물었다가 퉤 하고 뱉어냈다.
“맛없어?”
“끼루루!”
【미르가 호준의 음식이 3,000배 더 맛있다고 합니다!】
【미르가 괜히 입맛을 버렸다며 주스로 입을 정화하고 싶어 합니다】
생고기보다 익힌 고기가 맛있는 게 당연하지.
“다들 수고했다.”
호준은 미르와 다크니스에게 넉넉히 주스 3병씩을 주고, 인면조 위에 걸터앉았다.
목말랐는지 꿀꺽꿀꺽 잘도 마신다.
인면조 위에 걸터앉자 주변 경관이 한눈에 보이는 높이였다.
처음에는 경악스럽고 신기해 보였던 용암 호수도 이제는 조금 익숙해졌다.
잠시 멍하니 경관을 보던 그는 방송 채팅창을 열었다.
채팅창 분위기는 후끈했다.
└ ㅎㄷㄷㄷ… 아까 깃털 사방에서 날아올 때 개쫄았어요!
└ 얼음벽을 대체 몇 개나 만든 거임? 거의 철옹성이네.
└ 호준 님 시야에서 보니까 스릴감 대박이었음. 소름…! 영화 뺨치네.
└ 라이브라서 더 박진감 넘치는 듯. 그런데 의외인 건, 1분 만에 심장만 갈라버리는 스케일 보면 호준 님 사냥 센스도 있음.
└ 역시 갓호준…! 아무나 레드 게이트 들어가는 게 아니구나. 인정!
└ 길드에서 탐내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공격을 받는 시점으로 영상을 찍었더니, 반응이 훨씬 좋았다.
채팅창에는 흥분이 가득 담겨 있었다.
【미르미르얍 님이 1,000하트를 후원했습니다!】
【레드게이트킬러 님이 3,000하트를 후원했습니다!】
【이게전투지 님이 5,000하트를 후원했습니다!】
………
【누적 하트】: 421,243 하트 (급상승중++)
후원 하트도 끝도 없이 쌓여갔다.
7만 하트였던 적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그 40만 하트를 넘겼다.
시청자들이 직접 건네는 후원이기에 더 의미가 깊었다.
호준은 감사의 마음을 담아 모두에게 인사했다.
“여러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즐겁게 보셨다니 저도 기분이 좋네요! 오늘은 미르와 다크니스, 이 두 녀석 덕에 잘 해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물론 여러분의 응원도 큰 힘이 되구요!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뿐 아니라 미르와 다크니스의 성장도 앞으로 잘 지켜봐 주세요.”
호준이 미르와 다크니스를 옆에 나란히 세우고, 칭찬하는 의미로 쓰담쓰담해주었다.
미르는 꼬리를 살랑대며 엉덩이를 흔들더니 와락 허리를 끌어안았고.
다크니스는 골골대며 종아리 사이에 몸을 스치며 지나다녔다.
칭얼대는 다크니스를 쓰다듬으려고 무릎을 구부리고 앉자, 다크니스가 콕콕, 볼 뽀뽀를 해주었다.
다크니스는 어쩌면 고양이가 아니라 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 갓미르님 보러 가겠습니다!
└ 나만 용없어!
└ 갓다크니스님, 저 냥냥펀치 한대만!
└ 다크니스한테 꾹꾹이 받아보면 좋겠다…!
└ 나만 고양이 없어
└ 아… 볼뽀뽀는 진짜 애정하는 상대에게만 해준다는데!
└ 우리 집 고양이는 저 때리기만 해요 ㅠㅠ
질투 섞인 반응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졌다.
“흠흠.”
방송을 계속하면 좋겠지만, 메시지를 확인해야 했기에 방송을 끝내야 했다.
호준은 부드럽게 웃으며 마무리 멘트를 시작했다.
“오늘도 방송을 찾아주신 시청자분 모두 감사합니다. 이번 영상은 풀 영상과 별개로, 이미주 PD님이 따로 편집해서 올려주실 겁니다. 앞으로도 즐겁고 편안한 방송으로 찾아뵙겠습니다!”
└ 아. 아쉬운데!
└ 다음에는 이무도 나오게 해주세요! 이무보고싶어요!
└ 송이도 ㄱㄱ! 송이 너무 분량이 짜요
└ 별이는 어디 감? 별이가 쨍알거리는 거 완전 귀여워요!
“게시판에 의견 남겨주시면, 참고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마치고 마무리를 하려는데.
“그럼 이만… 어?”
그가 동작을 멈추었다.
동작을 멈춘 이유는, 독보적으로 보이는 한 메시지 때문이었다.
【로버트 님이 10,000하트를 후원했습니다!】
【와우! 오늘 로버트 님은 10만 하트나 후원하셨네요~!】
【로버트 님이 오늘의 후원자 리스트 1위가 되셨습니다!】
【로버트 님이 메시지를 전합니다!】
【몬스터 길드를 대표하여, 구독자 수 100만 축하드립니다!】
로버트가 여기는 무슨 일로?
아니 그것보다 후원 하트가 장난이 아니었다.
오늘 하루만 10만 하트, 즉 1억 원이란다.
로버트는 오늘 가장 후원금을 많이 내 1위까지 달성했다.
‘로버트한테 1억은 돈이 아니려나?’
하긴. 부자들에게 1억은 껌값일지도 모르겠지만.
호준에게는 억 하는 소리가 나올 만큼 놀랄 일이었다.
휴. 일단 놀란 심장부터 가라앉히고.
놀라는 건 차치하고, 일단 감사인사부터 해야지.
호준은 숨을 고르고 화면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10만 하트를 후원해주신 로버트 님 감사합니다! 지난번에 보낸 해물전 맛있게 드셨나 모르겠네요. 다음에도 즐거운 방송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로버트】: 늘 응원합니다 :)
그렇게 로버트와 인사를 마치고 방송을 종료하려는데.
【이주영 님이 100,001하트를 후원했습니다!】
【와우! 이주영 님 화끈하게 10만 1하트를 한방에!】
【이주영 님이 오늘의 후원자 리스트 1위가 되었습니다!】
【이주영 님이 메시지를 전합니다!】
【에이스 길드의 대표이자, 한국인으로서 호준 님의 성공을 늘 응원합니다!】
“……!”
이번에는 이주영이 갑자기 툭 튀어나왔다.
언제부터 본 거지?
이주영은 로버트보다 1하트 많은 액수를 후원하고, 1위 자리를 거머쥐었다.
10만 1하트는, 다분히 로버트를 의식한 액수같이 느껴졌다.
└ ㅎㄷㄷ. 돈 많으니까 후원금도 빵빵하네
└ 후원금 경쟁 오진다 ㅋㅋㅋ
└ 갓호준 님 인기가 진짜 장난 아닌듯!
└ 과연 호준 님의 선택은?
“하하. 이주영 님도 감사합니다!”
그렇게 레드 게이트 라이브 방송은 막을 내렸다.
두 길드 마스터의 경쟁하는 모습이 뉴스화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