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 모이 주기
최종 목적지, 그리고 보스 몬스터가 숨어있다고 추정되는 장소.
바로 불의 신전 지하 3층에 도착한 호준은 기분이 무척이나 좋았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여기는 너무 뜨거웠다.
“후. 덥네!”
몸이 타오르는 열기에 호준은 옷깃을 열었다 젖혔다를 반복했다.
눈 앞에 펼쳐진 거대한 용암 호수는, 아득할 정도로 넓었다.
신전 지하가 아니라 지구 밑을 파고들어온 것처럼 끝없이 펼쳐진 용암 호수.
호수는 마치 새빨간 홍시를 녹여 만든 것만 같았다.
시청자들은 용암지대를 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 ㅎㄷㄷ. 경치 끝내주네.
└ 석양을 갈아넣은 듯.
└ 화면으로 보는 것도 아찔한데 실제로 내려다보면 진짜 무서울듯.(오들오들)
└ 용암 속에서 뭐 튀어나오는 거 아냐?
위험천만한 용암이 간헐적으로 위로 튀어오른다.
날개가 없는 이들로서는 포기할 수밖에 없는 극한 지대.
몇몇 시청자들은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 너무 위험할 것 같아요! 재고해 보심이….
└ 헐. 미르 안 다치게 해주세요!
└ 다크니스 다치면 구독취소함 ㅠㅠㅠ
호준은 시청자들을 진정시키고는, 차분한 얼굴로 지형을 살폈다.
‘저기인가.’
그는 검은 산을 응시하며 눈을 빛냈다.
거대한 용암호수, 그 한가운데에 뾰족하게 솟은 검은 산.
희뿌연 안개에 뒤덮여 산꼭대기가 어렴풋하게 보였다.
산의 꼭대기가 싹둑 잘려나가 평평한 형태를 띄었다.
‘조사해봐야겠어.’
그의 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저 산꼭대기에 뭔가 있을 것 같다고.
안개 너머로 무언가가 잠자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움직이기 위해 준비에 들어갔다.
“지금부터 전투에 집중하겠습니다. 즐겁게 감상해 주세요!”
└ 파이팅!
└ 뭐가 됐든 해보는 겁니다요!
└ 다크니스 미르도 파이팅!
└ 용암따윈 하나도 겁 안 남! 가즈아!
그렇게 응원을 받으며 호준은 미르를 타고 산으로 향했다.
휘이잉―
안개는 가까이 갈수록 점점 옅어졌다.
시야가 확보되자 호준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는 감각을 곤두세우고 정신을 집중했고.
뭔가를 감지했다.
‘뭐지. 이 꺼림칙한 기분은.’
기분이 왠지 모르게 꺼림칙했다.
악어의 입 안으로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가는 먹잇감이 된 것 같달까.
“미르야. 위로 올라가자.”
미르가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는 수직으로 날아올랐다.
미르의 장점은 빠른 방향 전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90도로 방향전환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미르 덕분에 빠르게 상공으로 올라올 수 있었다.
호준은 검은 산 꼭대기가 한눈에 보일 정도로, 아주 높은 위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런……!’
꺼림칙함에는 분명한 원인이 있었음을.
그는 거대한 눈동자가 자신을 응시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맙소사.’
조금 전까지 산이라고 착각했던 하나의 생명체.
그 생명체에 붙어있는 그 눈동자는.
인간의 눈동자였다.
* * *
“웁―!”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며 화면을 응시하던 이주영은 커피를 뿜으며 허리를 앞으로 구부렸다.
에이스 길드 사무실, 깔끔하게 잘 닦인 책상 위로 커피가 왈칵 쏟아졌다.
“아이구!”
이주영은 재빨리 수건으로 책상을 닦고는 다시 자리에 앉아 화면을 바라보았다.
“인면조라니.”
눈을 동그랗게 뜬 그녀는 감탄을 감추지 않았다.
인면조, 전설로만 내려오던 몬스터가 왜 갑자기 나타났는지.
참으로 놀랄 노 자였다.
“으~ 진짜 징그럽네.”
봉사활동을 하며 비위가 강해졌음에도 인면조는 징그럽고, 소름끼쳤으며, 꺼림칙했다.
검은색 피부, 그리고 날개 전체에 수천만의 촉수들이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마치 지렁이 수천만 마리를 몸에 붙이고 다니는 괴물 같았다.
게다가 인면조의 머리가 있어야 할 곳에는, 사람의 얼굴이 붙어 있었다.
툭 튀어나온 개구리눈.
눈 바로 아래까지 올라가는 웃는 모양의 입꼬리.
사람과 똑 닮은 코.
“기괴하네.”
인면조의 표정은 기괴하고 인위적이며 보는 사람의 심리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눈알이 제각기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것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인형을 보는 것 같았다.
‘가이아 길드 이후로 2번째네.’
인면조는 유토피아 역사상 이번이 2번째 출현이었다.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가이아 길드가 첫 번째로 남대륙에서 출현한 인면조를 해치웠다.
그렇게 가이아 길드는 인면조를 최초로 처치한 길드로 이름을 알렸다.
‘그게 6개월 전이었던가. 그쯤이었지.’
가이아 길드가 인면조를 해치운 뒤로, 인면조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의 관심도 사그라들고 기억에서도 잊혀져 갔는데, 이번에 또 나타난 것이다.
‘위험해.’
이주영은 시간 날 때마다 수많은 정보를 섭렵했고, 그중 인면조에 관한 것도 있었다.
인면조를 실제로 처치한 사람들의 인터뷰도 그 정보에 포함되어 있었다.
인면조와의 전투를 인터뷰한 사람들의 얼굴은 대동소이했다.
공포, 두려움, 오싹함, 후회, 경악.
그들은 하나같이 말하고 있었다.
절대 인면조 사냥을 하지 말라고.
└ 녀석은 날개깃 같은 촉수를 발사하는 괴물입니다. 촉수가 유도미사일마냥 따라다녀서 피할 수가 없어요. 그런 촉수가 수십 수백 개가 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피할 수 없으니 맞는 수밖에요.
└ 절대 가까이 가면 안 됩니다. 가까이 가기보다는, 오랜 시간을 들여서 원거리 공격으로 맥이 빠지게 하는 게 상책입니다. 가까이 가면 즉사예요 즉사!
└ 녀석은 이상한 안개 같은 걸 뿜어내는데, 안개를 들이마시면 전신이 마비가 되어 쓰러집니다. 절대 다가가면 안 돼요. 원거리로 공격하되 눈빛이 흔들리면 바로 도망가고. 긴 시간을 두고 싸우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생존자들은 각자 여러 가지 방법을 제시했지만 하나 공통점이 있었다.
‘인면조에게 절대 가까이 다가가지 말라.’
인면조의 가장 위험한 부분은 바로 촉수 발사였다.
수만, 혹은 수십만 개일지도 모르는 저 촉수들은 언제 발사될지 모르는 시한폭탄이었다.
‘그래도 다행이네. 위로 올라가서.’
호준이 위로 올라간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알고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날개촉수 수백 개에 꽂혀 죽는 것을 면한 것이다.
“흠…… 지금 싸울 분위기는 아닌 건가.”
화면 속 호준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인면조는 위를 보며 눈을 깜박거리기만 했다.
인면조가 잠에서 깬 건지, 잠결에 잠시 눈을 뜬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스르륵―
다행히 인면조는 다시 눈을 꾹 감고 쿨쿨 잠을 자기 시작했다.
호준으로서는 시간을 번 것이었다.
시청자의 입장이 된 이주영은, 숨을 길게 내쉬고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흠. 한숨 돌렸다지만, 앞으로가 문제네. 혼자서 어떻게 해치우려나…?”
난관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호준이 혼자 해치우기에는 인면조는 너무 위험했다.
‘가이아 길드도 엄청나게 고전했지. 1,000명 가까이 죽었으니.’
가이아 길드는 그 당시 무려 1,000여 명의 플레이어들이 전투 중에 사망했다.
도전자 80% 이상이 사망한 것이라 그들 입장으로서도 뼈 아픈 일이었다.
촉수 발사로 대부분이 사망했고. 이상한 안개 때문에 치유 불가 판정을 받고 사망하고.
그밖에도 인면조에게 깔려 죽거나 맞아 죽거나 물려 죽거나 등등등.
가이아 길드는 겨우겨우 습격 8번 만에 처치에 성공했다.
“그때는 인면조가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지.”
길드 차원에서 다 달라붙었는데도 7번 연달아 실패하고서 8번째 공격에서야 인면조 처치에 성공했으니.
얼마나 어려울지는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지금 저 인면조는, 쌩쌩한 녀석이니 더 쉽지 않을 거야.’
갓 깨어난 쌩쌩한 인면조를 해치우는 것은, 결이 완전히 달랐다.
낮잠 푹 자고 일어난 몬스터와 전장에서 죽기 일보 직전의 몬스터. 둘 중 어떤 녀석을 죽이기 쉬운지는 초등학생도 알리라.
게다가 인면조의 종류가 조금 다른 것 같다.
‘더 오래 묵은 녀석이야.’
검은 산이라고 오해할 정도의 거대한 크기는 맨 처음 출현했던 인면조보다 크기가 훨씬 컸다.
캡쳐화면으로 본 적 있기에 이주영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더 크면, 더 강할 수밖에 없다.’
몸이 클수록, 더 오래 산 몬스터고, 더 강하다.
호준으로서는 어려운 조건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이주영은 뭔가 고민하는 듯 공중을 뱅뱅 맴도는 호준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지금 상황에서 리더로서 가장 이성적인 판단은 무엇일까.
‘한발 물러서야지.’
안전한 곳으로 가서, 천천히 작전을 생각하고.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그러면 가능할지도…….’
벌컥―
상념에 잠겨있는데 이효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효재는 어깨 옆에 띄운 창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마스터. 보셨어요? 호준 님이 인면조 공격에 들어갔습니다! 아, 보고 계셨구나.”
이효재가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이자 이주영이 되물었다.
“응? 공격이라고?”
“네. 거기 화면 보시면… 보세요! 지금 움직입니다!”
이주영은 그제서야 이효재가 가리키는 창을 주시했다.
어느새 방송화면은 둘로 분리되었다.
구름 카메라가 쪽 찢어지면 화면 2개 송출이 가능했다.
화면 오른쪽에서 호준은 날개를 달고 미르의 등에서 뛰어내렸다.
반면 왼쪽에서는 미르와 다크니스가 한 팀이 되어 반대 방향으로 날아갔다.
‘뭘 하려는 거지?’
이주영과 이효재는 침을 꿀꺽 삼키며, 화면에 집중했다.
다크니스를 태운 미르가 인면조의 꼬리 쪽으로 접근했다.
미르는 꼬리에 닿기 일보 직전 멈췄고 다크니스가 하얀 검을 인면조의 꼬리 촉수에 꽂았다.
거의 꽂는다기보다는 살짝 대는 수준이었다.
콰직 콰지지지직―
그러나 검을 대는 것만으로 충분히 효과가 있었다.
검이 꽂힌 부위를 시작으로 인면조의 전신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허억!”
“……!”
인면조의 전신이 얼어붙는 데는 불과 1초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거대한 인면조가 거대한 얼음 조각상이 된 광경을 보며, 이주영과 이효재는 입을 크게 벌리며 경악했다.
“맙소사….”
“저 검. 정체가 뭐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안 가본 경매장은 손에 꼽을 정도인데… 전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흠. 경매장이 아니라면 레드 게이트에서 얻은 모양이군.”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대단하네요. 저런 검이 있다니…!”
“하지만 분명 틈이 있을 거다. 아무리 효과가 좋다 해도 영원히 얼지는 않을 거야.”
이주영의 말대로 얼음화는 곧 풀리기 시작했다.
꽈드득―
시간제한이 끝나자 피부를 감싼 얼음들이 까득까득 소리를 내며 깨지기 시작했으니까.
이주영은 깨지는 얼음을 바라보며 입술을 짓이겼다.
대체 어떻게 하려는 거지.
그렇게 화면을 살피던 중, 이주영은 발견했다.
‘……!’
오른쪽 화면을 차지한 호준이 뭔가를 마구 집어 던지고 있음을.
그는 아직 얼어붙은 인면조의 입속에 뭔가를 던지고 있었다.
“대체 뭘까요?”
“글쎄…!”
이주영은 호준의 손에 집히는 물건들을 주목했다.
약병들, 괴상하게 생긴 풀들.
호준은 온갖 물건을 탈탈 털어 넣고는.
마지막으로 화살도 박아넣고 위로 날아올랐다.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미련도 없어 보였다.
시청자들도 궁금해 죽겠다는 반응이었다.
└ 뭔지는 모르겠는데 재밌다 ㅋㅋㅋ
└ 인면조한테 밥 주는 중. 역시 타고난 요리사라니까!
└ 맛난 거 많이 주세요 ㅋㅋㅋㅋ
└ 맛있으려나? 호준 님이 만든 거니까 맛있을 듯.
└ 돌아버릴 정도로 말야 ㅋㅋㅋㅋ
└ 인면조 曰 : 잠자고 일어났는데 누가 먹을 걸 주고 갔어요!
호준이 뭐를 먹여줬는지는 곧, 모두 알 수 있었다.
“꾸에에에에에에에에엑―!”
얼음 마법이 풀린 인면조가 비명을 내질렀으니까.
눈에 실핏줄이 터진 인면조의 입에서는.
푸아아악―
검은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