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 신전 지하 2층
유토피아에서 별명은 의미가 남다르다.
보통 그런 경우는 세 가지 부류가 있다.
먼저 플레이어가 가진 능력이 특출나서 주목을 받거나.
또는 말도 안 되는 튀는 행동을 해서 별종으로 인식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연예인처럼 이미 유명해진 채로 게임을 시작하는 경우.
어쨌든, 별명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출발점 앞에서 시작하게 된다.
별명조차 경쟁력이 되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드디어 호준도 별명을 가지게 되었다.
【미친 요리사】
바로 미친 요리사라는 별명이었다.
미친 재능을 지닌 요리사, 의 줄임말이었다.
다소 거친 어감이 있지만 별명을 붙인 요정의 쉼터 팬들은 만족했다.
└ 레드 게이트에 혼자 들어가는 미친 요리사.
└ 미친 전투능력을 지닌 요리사.
└ 미친 매력을 지닌 동물을 키우는 요리사.
└ 미친 요리를 할 줄 아는 요리사. 딱이네~~
호준의 다양한 특징을 잘 담은 별명이라는 평이었다.
이렇게 별명이 생길 만큼 호준은 유명해져 갔고.
호준이 유명해지면 유명해질수록,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도 늘어갔다.
세상사 다 그렇지 않은가.
사람은 다양한 부류가 있어서 옆에서 잘 되는 사람이 생기면, 그 모습을 좋게 보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
뱁새눈을 뜨고 배 아파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크흠. 다 모인 걸로 알고 시작하겠습니다!”
지금 레드 게이트 앞에 선, 남녀노소 30명이 그러했다.
그들은 나이는 달랐지만 심술이 얼굴에 착 달라붙어 있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호준, 그 녀석보다 우리가 못 할 거는 또 뭡니까. 처음이니까 그렇게 주목받기 어렵지만 우리처럼 30명 정도 모이면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맞는 말입니다. 우리도 레드 게이트만 성공하면, 구독자 70만? 충분히 해낼 수 있습니다!”
그들이 호준을 시샘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호준이야말로 그들이 모이게 된 주원인이었으니까.
“그 녀석처럼, 우리도 레드 게이트를 깨고 방송 구독자도 늘리고. 좋은 게 좋은 거죠!”
“옳소!”
독특한 컨셉의 음식점이 성공하면, 그 뒤를 따르는 후발주자가 있듯이.
그들도 후발주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게이트 가까이에 서 있는 검은 머리의 남자 또한 방송 구독자수를 모으기 위해 이곳에 모였다.
‘절대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돼.’
유차진. 그는 한때 유명한 연예인을 꿈꾸었으나 한순간의 욕망으로 인해 꿈이 산산조각 났다.
‘그년만 아니었어도 이딴 쓰레기 녀석들이랑 상종도 안 할 텐데.’
그는 기획사의 투자자인 사모님을 유혹했고, 주기적으로 만나다가 그 사모님의 남편에게 발각이 되었다.
그 뒤, 업계에서 매장되었다.
어떠한 TV 오디션에서도 발탁되지 못하며 그렇게 허무하게 그의 커리어는 끝났다.
‘반드시 성공한다.’
악에 받친 그는 두려울 것이 없고,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었다.
사채까지 쓰면서 올인 중인 그는 이미 지구를 뚫고 들어갈 정도로 밑바닥에 내려앉았다.
‘기사 한 줄만 나면, 떡상이다.’
지금 레드 게이트 탐사 번개모임에 나선 사람들은 성공을 위해 모인 이들이었다.
각 부문별로 마법사도 모았고, 인원수도 30명 이상.
그리고 레벨도 80 이상으로 인증까지 마쳤다.
레드 게이트 클리어에 성공하는 영상을 호준에 이어 2번째로 찍으면.
그렇게만 되면 기사가 나갈 테고.
‘혹시 알아? 나도 운 좋게 호준인가 뭔가 하는 새끼처럼 대박 날지.’
유차진은 최근 화제가 되는 호준의 영상이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자신도 곧 그리될 것이라 믿었다.
‘못할 것도 없지.’
그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흘리는데, 번개모임을 주관한 갈색머리 남자가 크게 소리쳤다.
“자. 이제 들어갑니다. 다들 단단히 각오하시고. 방송을 하는 건 자유지만, 너무 시끄럽게 하면 안 됩니다. 싸우는 것은 전체가 한 몸처럼 싸웁시다. 그럼 갑시다!”
“가자고!”
“크흠!”
“왠지 오늘 느낌이 좋은데?”
“흠흠. 우리라고 못 할 것도 없지.”
호준의 성공으로 불가능이 아님을 알기에.
그리고 어쩌면 자신들도 유명해질 수 있다는 희망에 부푼 사람들은 자신만만하게 걸음을 내디뎠다.
【레드 게이트에 입장합니다】
【지옥성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던 유차진의 얼굴.
“어…?”
그가 하늘을 보고 입을 크게 벌렸다.
이상하다. 왜 저렇게 하늘이 검게 물들었지.
음울한 하늘이 그를 옥죌 것처럼 내려다보고 있었다.
* * *
먹물을 뿌린 것처럼 새까만 하늘.
그리고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아오른 지옥성.
“맙소사….”
“저 크기 좀 봐.”
“워, 원래 이 정도 크기인가?”
“크흠. 겁먹지 말게. 아직은 뭐가 뭔지 모르니까…….”
전투경험이 많은 이들도 스산하다 느낄 정도로 지옥성은 음산했고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사람들의 공포심리에 불이라도 지르듯, 소름끼치는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끼야아아아앆!”
“으으 뭐야!”
“끼히히히!”
비명인지 울음인지 구분이 안 가지만, 듣는 순간 소름이 돋을만한 비명소리였다.
“뭐, 뭐야!”
검은 하늘 때문에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사람들은 더욱 공포에 사로잡혔다.
“어이, 엘프. 뭐라도 봐봐! 자네 시력 좋다고 하지 않았나.”
“잠깐만 기다려 보게. 여기가 어두워서 잘…….”
“끼히히히히―”
‘느낌이 안 좋아.’
유차진은 점점 심장이 빨리 뛰고, 누가 목을 조여오는 듯했다.
누가 강제로 눈을 가린 것처럼, 눈앞이 잘 보이지 않는 데다.
계속 들리는 저 기분 나쁜 웃음소리는 또 뭐란 말인가.
가슴에 차오르는 답답함에 숨을 깊이 들이마시는데, 시력이 좋기로 소문난 엘프족 남자가 입을 열었다.
“저… 저게 뭔지 알 것 같습니다!”
“그래. 정체가 뭔가.”
엘프족 남자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다급하게 외쳤다.
“가루입니다.”
“가루?”
“네. 가루요! 저 검은 게 하늘 색이 아니라 다 가루라고요. 새까만 가루! 지금 높이가 더 낮아지고 있는 걸로 봐서, 계속 내려오고 있는 모양입니다!”
“뭐? 미쳤어? 어떻게 하늘 위를 다 가루가 덮을 수 있어? 말이 되나?”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자네 눈이 좋은 거 맞나?”
주위에서 반론을 제기하자, 엘프족 남자가 어딘가를 가리키며 더 크게 외쳤다.
“잘 봐요! 저기 저 부분, 낮아지는 거 안 느껴집니까? 저 봐. 움직이잖아요!!”
엘프족 남자는 거의 경기를 일으킬 듯 방방 뛰며 말했고.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며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았다.
유차진도 고개를 꺾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우중충하고 새까만 하늘은, 진한 회색빛에 가까웠다. 그리고….
스르륵―
“허어!”
“진짜네?”
‘이런 젠장!’
엘프족 남자의 말이 맞았다.
하늘이 부분부분 점점 내려앉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정체 모를 검은색 가루가 가득한 판들이 아래로 내려앉는 것 같았다.
“저게 뭔지는 몰라도 절대 맞으면 안 될 것 같군.”
“맞습니다. 감염되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몰라요.”
지옥성이 어떤 곳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었다.
바로, 맵은 몬스터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진다는 것.
검은 가루는, 침입자에게 좋지 않을 가루일 것이 분명했다.
“저 가루를 날려버립시다. 바람으로 날리자구요!”
“바람 마법사 없나?”
누군가 낸 아이디어에, 사람들은 바람 마법사를 찾았고.
“여기 있습니다.”
“자네가 뭐라도 해보지.”
“음… 일단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유일한 바람 마법사인 푸른 머리칼의 남자가 선두에 섰다.
그는 정체불명의 가루 습격을 해결할 유일한 희망으로 앞에 섰고, 모두가 그의 뒷모습을 주목했다.
푸른 머리의 남자가 지팡이를 높이 들은 채로 스펠을 외쳤다.
“하늘아 내 부름에 답하라!”
스태프를 중심으로 거대한 회오리가 일어났다.
회오리가 휘휘 감겨 팽이처럼 회전하며 위로 올라갔다.
“하아…!”
곧, 회오리를 만든 푸른 머리의 남자, 그리고 사람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회오리는 하늘을 가득 덮는 가루더미에 영향을 주기에는 너무 작았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한탄할 시간조차 없었다.
“끼히히히히히히히!”
비명소리가 더 커지자 사람들은 귀를 틀어막으며 주저앉았다.
바로 귀 옆에서 소리 지르는 것처럼, 비명소리는 그들의 귀에 칼처럼 내리꽂혔으니까.
“우욱! 읍!”
“우에엑!”
뇌가 울리는 것처럼 울렁거리자 몇몇 사람들은 주위 사물을 부여잡고 헛구역질을 했다.
유차진은 다리에 힘이 빠져 그대로 주저앉았다.
겨우겨우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통 안에 갇힌 생쥐 같군.’
어느새 가루는 머리 위, 10m 가까운 곳에 다다라 있었다.
금방이라도 내려앉을 것만 같다.
‘로그아웃도 안 되고.’
레드 게이트에서는 슬프게도 로그아웃조차 할 수 없다.
들어온 자는,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
“으… 괜히 들어왔어.”
“내가 미쳤지!”
사람들은 저마다 공포 혹은 후회로 한탄을 하며 비명을 질렀고.
마침내 가루가 그들을 뒤덮었다.
사람들은 피할 길 없이 그대로 가루를 맞았다.
유차진은 멍한 얼굴로 눈을 깜박이며 메시지를 확인하고는.
“하아….”
깊이 탄식했다.
【저주가루에 노출되어 10분 동안 공포 상태에 빠집니다】
【저주가루에 노출되어 10분 동안 사지가 마비됩니다.】
【저주가루에 노출되어 10분 동안 이동속도가 30% 저하됩니다】
【입이 마비되어 말을 할 수 없습니다】
【팔이 마비되어 팔을 어깨 위로 들어 올릴 수 없습니다】
【마비 상태가 되어 시야가 좌우 30%로 제한됩니다】
………
수많은 저주가루 효과로 인해 몸은 천근만근으로 무거워졌고.
철커덩―
기다렸다는 듯,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옥성의 제1문이 열립니다】
【흡혈마귀 100마리가 공격을 시도합니다】
철커덩―
【지옥성의 제2문이 열립니다】
【백귀 100마리가 공격을 시도합니다】
철커덩―
【지옥성의….】
철커덩―
【지옥성의….】
수없이 많은 문이 열리고, 몬스터들이 파도처럼 쏟아져나왔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사람들은 몸이 마비되어버려 어기적어기적 걸어갔고.
“끼야아아아!”
“꾸히히히!”
“끄륵끄륵!”
몬스터들은 줄행랑치는 사람들을 습격했다.
다가오는 몬스터 떼를 보며 유차진은 깊이 후회했다.
‘XX. 내가 미쳤지. 이딴 데를 들어오다니!!’
선택은 반드시 대가가 따르는 것임에도.
그 당연한 사실을 잊었기에, 이 꼴을 당하는 것이었다.
“크아아!”
바로 뒤에서 들리는 울음소리에 유차진은 고개를 돌렸고, 레드 트롤이 휘두르는 거대한 불방망이가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평소라면 잽싸게 바닥에 엎드려서 피할 수 있었겠지만.
【마비 상태로 인해, 다리를 접니다】
다리를 저는 상태로는 피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팡―
유차진은 야구공처럼 멀리 날아가며, 사람들이 도륙되는 과정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추락해서 죽는 것이, 도륙되는 것보다 낫구나.’
그렇게 호준을 따라 레드 게이트에 도전한 수많은 사람들은, 재가 되어 사라졌다.
* * *
└ ㅎㄷㄷ. 한 줌의 재가 되었네요
└ 재투성이 유데렐라!
└ 싹쓸이 성공!
└ 멋지다!
“네. 깨끗하네요. 청소 끝입니다.”
호준은 팔짱을 낀 채로 옅은 미소를 흘리며 만족했다.
지금 그가 서 있는 곳은 레드 트롤이 있던 신전 1층이 아니었다.
바로 그 밑, 신전 지하 1층.
【고블린 4,000마리 처치 성공!】
【30분 안에 해치우셨네요!】
【보너스로 전 스탯이 10씩 상승합니다!】
화염을 내뿜는 변종 고블린을 다 지워버렸다.
기존과 동일하되 조금 더 속도를 높여 전투를 끝냈다.
마지막으로 미르가 큰 불을 내뿜어 고블린들은 싹 화장되어버렸다.
“몇 마리 해치웠나 질문하시는 분이 있어서 말씀드리자면, 고블린은 4,000마리가 넘었다고 합니다.”
└ ㅎㄷㄷ. 거의 학살자네요.
└ 무섭…. 그냥 고블린이 아니라 갑옷 풀장착 고블린인데.
└ 크기도 사람보다 큰데…?
└ 말이 고블린이지 금갑주 입은 녀석들인데 이렇게 빨리 죽인다고?
└ 사기다 사기…! 멋있어요!!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 층으로 이동할까요?”
호준은 가볍게 말을 주고받고서, 미르의 등에 올라탔다.
미르는 지하 3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향했다.
미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호준은 슬쩍 중요한 메시지를 확인했다.
【레벨업!】
【레벨업!】
【레벨업!】
【레벨업!】
【레벨업!】
【레벨업!】
【현재 레벨 : 50】
레벨도 올랐으며.
【다크니스가 충분한 경험치를 얻어, 새로운 능력치를 부여받습니다!】
【다크니스의 이동 속도가 20% 증가했습니다】
【다크니스의 체력이 20% 증가했습니다】
【다크니스의 탐지 능력의 발동 범위가 50% 확장되었습니다!】
다크니스도 성장했다.
‘좋았어.’
과연 보스는 무엇이 나올까.
심장이 두근두근거렸다.
휘이잉―
미르가 계단 하단부로 몸을 날리자 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간다.
레드 게이트 클리어.
그 클라이맥스를 향해 그는 순조롭게 항해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