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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너무 잘함-133화 (133/200)

133. 열쇠

유토피아에서는 길드를 설립하면 길드 전용 건물을 세울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그렇게 세워진 길드 건물은 길드원들의 쉼터가 되었다.

건물 1층에는 주로 선술집이 들어선다.

이곳에서 동료와 이야기하며 정보도 교류하고.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

2층 이후부터는 치료소, 사무소, 숙소 등이 들어서는데.

다친 몸을 치료하거나 쉴 수 있는 공간이다.

이런 구조라서, 1층 선술집은 보통 왁자지껄 시끄럽고.

2층부터는 조용한 분위기였다.

에이스 길드 건물의 1층, 선술집은 오늘도 사람들로 가득했다.

오늘은 왠지 평소보다 더 시끌벅적한 분위기였다.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얼굴이 벌게진 채로 술병을 기울이고 있었다.

“으음~ 술맛 나네!”

“그러게 말이야. 바삭바삭한 게 튀김 같기도 하고. 술이 땡기게 만드는구만!”

“요런 음식을 먹는 게 다 마스터 덕분 아닌가. 하하. 이래서 길드가 좋아!”

다들 입술에 기름이 묻어 번지르르했다.

테이블마다 새빨간 김치전이 접시 위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렇게 먹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김치전은 10개 이상 수북이 쌓여 있었고.

사람들은 전 한 판을 후딱 해치울 정도로 김치전의 맛에 푹 빠져들었다.

“요나스 마을이라고 그랬나? 거기 한번 꼭 가야겠구만.”

그렇게 길드원들이 김치전 삼매경에 빠져있을 때.

삐그덕―

문이 열렸다.

“엇 오셨습니까! 마스터!”

“다녀오셨어요!”

길드 마스터가 귀환했다.

이주영은 피가 흥건한 갑옷을 입은 채로 선술집에 들어왔다.

그녀가 걸은 자리마다 핏빛 발자국이 바닥에 새겨졌다.

부단장 이효재가 재빠르게 다가가 수건을 내밀었다.

“마스터. 닦으시죠.”

“어, 그래. 땡큐!”

이효재가 내미는 수건을 받아든 이주영은 갑옷에 흥건히 묻은 피를 닦아냈다.

대충 얼굴과 머리를 닦아내자 이효재가 수건을 받아들며 말을 잇는다.

“마스터. 미리 연락해둔 대로 목욕물을 데워 뒀습니다. 그나저나 생각보다 빨리 끝났네요. 황금용 사냥이라 오래 걸릴 줄 알았습니다.”

“생각보다 빨리 끝났지. 3시간 지났나?”

“정확히는 2시간 52분 21초입니다. 저는 12시간 정도 걸릴 거라 생각했습니다만. 대단하십니다.”

옆에 따라붙은 효재가 입을 벌리며 감탄했다.

이주영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효재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그녀도 12시간 정도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었으니까.

‘원래 그 정도 걸릴 만큼 까다롭지.’

황금용은 기척을 숨기는 데 달인이었다.

숨 쉬는 것도 조절이 가능해서 1시간 동안 쉬지 않아도 살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황금용을 찾기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었다.

황금용은 사실상 찾는데 9할 정도의 시간이 들어가고, 나머지 1할의 시간 동안 사냥을 하는 것이었다.

‘심하면 며칠이 걸릴 정도로 까다로운 몬스터지. 뭐, 내 경우에는 운이 좋았지만.’

이번 원정에서 운이 아주 좋았다.

아니, 운빨 할아버지가 축복을 내려준 것처럼, 오지게 좋았다고 말해야 되려나.

‘경치를 살피다가 발을 헛디뎌서 낭떠러지로 떨어졌는데, 하필 그 낭떠러지 중간부 나뭇가지를 붙잡았지. 그 나뭇가지를 붙잡고 올라갔더니 웬 동굴이 나왔고. 하필 거기서 황금용을 발견할 줄이야.’

전화위복, 위기가 기회가 되었다.

동굴 안쪽에는 황금용이 있었다.

황금용이 사람으로 폴리모프해 온천욕을 하고 있었다.

황금용이 가장 약한 순간은 바로 폴리모프한 순간이었으니, 그녀에게는 최고의 기회나 다름없었다.

‘바로 해치웠지. 숨 쉴 틈도 없이. 곧바로.’

나체 상태의 용에게 24가지 맹독이 담긴 맹독 주스를 뿌리고.

녀석이 일시적 혼란 상태에 빠졌을 때, 칼침을 놓아줬다.

머리, 가슴, 목, 심장, 배,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래 중요 부위까지 깔끔하게 도려내자, 황금용은 쓰러졌다.

녀석의 슬픈 단말마가 아직도 귓가를 맴돌았다.

“마스터. 그런데 보상도 끝내주겠네요! 혹시 벽에다 걸어놓을 만한 게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효재의 말에, 이주영은 다시 상상을 마치고 현실로 돌아왔다.

벽에 걸어 놓을만한 거라.

그녀는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았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을 따라서 전리품들이 매달려 있었다.

자이언트 앤트의 더듬이 달린 머리.

아르테미스 수사슴의 머리.

보석 악어의 눈알.

메콩 엘리펀트의 상아.

그 밖의 수많은 전리품들이 붙어있다.

“이거면 되려나.”

처컹―

이주영은 자신의 몸을 덮고도 남을 커다란 황금 비늘을 효재에게 내밀었다.

황금빛 비늘은 범상치 않은 아우라를 뽐냈다.

비늘을 품에 안은 효재는 헤벌쭉 웃으며 감탄했다.

“우와! 마스터. 비늘이 이 정도면, 용 크기도 어마어마했겠군요. 역시 대단하십니다!”

“뭐.”

용이 폴리모프한 상태에서 죽였다고 굳이 말하지 않은 이주영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했다.

그렇게 그녀는 2층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자 익숙한 로즈마리향 냄새가 난다.

‘아, 역시 제일 좋단 말이야.’

“마스터,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보고를 해야 할 효재가 쌩하니 달려 가버리자 이주영은 사무실에 홀로 남았다.

그녀는 안락의자에 몸을 맡기고는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 오늘 있던 일들이 필름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어린 황금용을 처치했습니다!】

죽이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죽인 용은 성룡이 아니라 성장 중인 새끼용이었음을.

용이 폴리모프한 상태에서 바로 반격을 못 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변신이 익숙하지 않았던 거지.’

어쨌든, 그녀는 사냥에 성공했고.

동굴을 수색하다 발견했다.

어미 용이 숨겨둔 보물창고를.

‘눈이 부셨지. 압도될 정도로.’

보물창고는 황금으로 가득 찬 거대한 방이었다.

물건들이 내뿜는 황금빛에 압도될 것 같을 정도였다.

어미용의 비늘 등 용의 비늘들과 황금으로 만들어진 진귀한 보물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물론 이주영은 아이템을 싹쓸이했다.

그중 괜찮은 신발을 호준에게 보낸 것이었다.

전설의 대장장이가 제작했다는 골든 부츠.

앞으로 거래를 이어가면서 선물 차 더 보낼 생각이었다.

원래 관계는 시작보다 꾸준하게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려운 법이니.

‘공을 들여야지.’

값싸게 요리를 살 수 있고, 거기다 훌륭하기까지 하니.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은 당연했다.

“휴우― 조금 쉴까.”

안락의자에 몸을 맡기니 잠이 솔솔 왔다.

10분만 눈을 붙일 생각으로 이주영은 몸의 긴장을 풀고 늘어졌다.

푹 젖은 해파리처럼 몸을 늘어뜨리고 의자와 한 몸이 되어 있는데.

똑똑―

“마스터. 접니다.”

효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주영은 길게 숨을 내쉬며 마른세수를 하고는 안락의자에서 반쯤 일어섰다.

보고를 들을 준비를 하는 이주영에게, 효재는 접시 하나를 내밀었다.

“김치전 데워왔는데 조금 드시겠어요? 오븐에 살짝 데웠습니다.”

“말 안 해도 내 맘을 다 아네!”

“우리가 하루 이틀 일 하나요. 척하면 척이죠!”

이주영은 효재가 내미는 그릇을 받아 들며 부드럽게 웃었다.

그릇에 올라가 있는 김치전은 이미 먹기 좋게 잘 잘린 상태였다.

그녀는 한 조각을 포크로 찍어 한입에 넣었다.

바사삭―

창문을 통해 햇빛이 내리쬐고.

그 햇빛을 맞으며 안락의자에 앉아 김치전을 먹으니.

왠지 소소한 즐거움이 있었다.

이주영은 왠지 예감이 들었다.

‘맛 좋네.’

당분간 모닝 김치전의 매력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다는 그런 예감이.

* * *

처걱처걱―

황금빛을 내뿜는 신발은 바닥에 닿을 때마다 찰각찰각 소리를 낸다.

그 소리는 ASMR으로 여겨질 만큼 적당한 크기여서 귀에 거슬리지 않았다.

‘듣기 좋네.’

싱긋 웃으며 호준은 발을 옮겼고.

드디어 동굴 앞에 섰다.

이 동굴은 레드 게이트가 숨겨져 있는 동굴이었다.

동굴은 찌그러진 검은 찰흙이 뭉텅이로 뭉쳐있는 듯했다.

안쪽은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레드 게이트가 이 안에 있다 이거로군.”

호준은 잠시 숨을 돌리며 주위를 살폈다.

빼곡히 가득 찬 붉은 나무들.

‘사람의 흔적은 전혀 없군.’

붉은 숲이라 불리는 이곳은 사람이 남긴 흔적은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주변 10km 근방에 던전, 몬스터, 마을이 없으니 당연하려나.

이런 외딴곳의 정보까지 알 수 있는 로버트의 정보력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괜히 길드 마스터가 아닌 건가. 하긴. 사람이 오죽 많겠어.’

어쨌든 로버트의 정보력에.

이무의 이동 능력을 합하니.

이렇게 단번에 레드 게이트 인근 지역으로 이동했다.

이무는 가을 햇빛을 맞으며 배를 까고 드러누웠다.

― 으음 여긴 햇빛이 따땃해서 좋구나 사악~ 비늘 말리기 좋을 것 같다사악~

“여기서 잘 말리고 있어. 다녀올 테니.”

― 알겠다 다녀와라사악~

이무를 뒤로한 채 호준은 콧노래를 부르며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미르와 다크니스가 뒤따랐다.

저벅저벅―

이주영이 보낸 선물.

【명장 스미스가 만든 황금 신발】은 호준의 발을 단단히 감싸 주었다.

‘볼수록 마음에 드네.’

호준은 흐뭇한 얼굴로 황금 신발을 슬쩍 보았다.

어둑어둑한 동굴 내에서도 황금 신발은 번쩍거렸다.

황금 신발의 스탯은 정말 훌륭했다.

오죽하면 그냥 선물이라고 받기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일까.

호준은 동굴을 걸으며, 황금 신발의 정보창을 떠올렸다.

【명장 스미스가 만든 황금 신발】

【레벨 제한】: 40

【등급】: 특4급

‘방어구 중에 특4급은 처음이지.’

처음으로 얻은 특4급 방어구였다.

이주영의 배포가 남다르긴 남달랐다.

지금 입고 있는 제복도 훌륭한데 그보다 6급이나 더 올라갔다.

게다가 신발은 기능도 훌륭했다.

【기능】: 물리/마법 방어력 +400

‘제복보다 4배 더 올려 주네.’

지금 입고 있는 제복이 물리 방어력 +100을 높여 준다.

그런데 이 황금 신발은 무려 4배나 되는 +400을, 물리와 마법 방어력 둘 다 올려 주었다.

‘특수기능이 없는 점은 좀 아쉽지만. 지금으로도 충분히 훌륭하지.’

아쉽게도 특수기능은 없었지만, 호준은 만족했다.

실제 얼마나 적용되는지 테스트를 해봤기에 더 만족하는 것이었다.

‘10톤짜리 이무한테 깔린 채로 버텨봤지.’

한번 시험해 보았다.

이무에게, 그러니까 10톤에 깔린 채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처음에는 꼬리부터 해서, 천천히 가장 무게가 나가는 두툼한 중간 부분까지 도전해보았다.

그 결과.

‘30분 동안 버텨도 체력이 3분의 1밖에 안 떨어졌다. 이 정도면 훌륭해.’

10톤이 넘는 이무에게 깔려도 살 수 있었다.

오로지 신발 덕분에.

정말 신기한 것은, 신발을 신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깔린 상태로도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체력만 유지하면 깔리든 뭐 하든 살 수는 있는 모양이야.’

여하튼 신발 덕분에 안 먹어도 배부른 기분이 들었다.

흐뭇하게 웃으며 계속 발걸음을 옮긴 끝에.

드디어 레드 게이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위이이잉―

동굴 벽 인근에 붙어있는 레드 게이트, 그 주위로 핏빛 안개가 요동쳤다.

검붉은 안개 위로 메시지가 떴다.

호준은 메시지를 차근차근 읽었다.

‘할 만하겠어.’

그 내용을 머릿속에 빠짐없이 기입하던 그 순간.

메시지가 떴다.

【열쇠가 반응합니다!】

【열쇠가 감응합니다!】

“응…?”

열쇠라면 지난번 레드 게이트에서 얻었던 그것을 말하는 것인가.

호준은 바로 인벤토리에서 플라테논 신전의 열쇠를 꺼냈다.

그의 손바닥에 놓인 열쇠가 부들부들 떨리면서 진동했다.

우우웅―

우우웅―

‘왜 이러지?’

호준은 이상 반응하는 열쇠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의 손바닥에 올라온 열쇠는 저절로 빙글빙글 회전하더니 한 방향을 가리켰다.

그 방향에는 붉은빛을 뿜어내는 레드 게이트가 있었다.

‘저 안으로 들어가라는 건가?’

호준이 갸웃하며 열쇠와 레드 게이트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다시 열쇠를 바라보았다.

그때 눈앞에 메시지가 떴다.

【열쇠가 무언가와 접촉하기를 원합니다】

【열쇠가 무언가의 기운을 느끼고 흥분을 감추지 못합니다】

열쇠는 여전히 게이트를 가리키고 있었다.

‘대체 저 안에 뭐가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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