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선물
말 한마디면 백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다.
빚을 갚을 만큼,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는 이야기겠지.
이처럼 칭찬은 기분이 좋게 하는 마력이 있다.
호준도 칭찬의 마력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유 과장님, 승진 축하드려요!”
“자네, 승진했다며? 주임을 건너뛰다니 대단하군. 일하는 걸 보면 금방 승진할 줄 알았어!”
“유 과장님, 혹시 시간 되시면 사인 하나만 해주실 수 있을까요? 딸 애가 과장님 본 뒤로, 병아리 인형 사달라구 아주 난리예요 난리~ 삐약이 키우고 싶다나 뭐라나~ 과장님 사인이라고 갖다 주면 진짜 좋아할 것 같은데.”
“여가 활동으로 돈 벌기가 쉽지 않은데 대단하군! 저, 혹시 내 나이여도 그 방송을 도전해 봐도 되겠나? 자네는 이미 성공했으니 조금이라도 조언해주면 큰 도움이 되겠네만.”
수많은 사람들이 종일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방문 목적은 업무가 아니라 축하 인사 겸 꿀팁을 듣자는 것.
오전 내내 호준은 정말 많은 사람을 마주해야 했다.
물론, 그는 적당히 운이 좋았다는 식으로 돌려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안면이 없는 사람들도 찾아오는 바람에, 사무실은 북적북적댔다.
그렇게 정신이 하나도 없는 오전 근무가 끝나고서, 그는 결단을 내렸다.
【본 사무실은 업무 외에는 출입이 어렵습니다】
【최근 업무가 과중되고 있어 붙이는 공지이니, 부디 양해 부탁합니다!】
그는 사무실 문에 공지를 붙였다.
공지의 효과는 훌륭했다.
업무가 불가능했던 오전과 달리, 오후에는 조용했다.
아마도 공지를 보고 다시 되돌아간 모양이었다.
그렇게 조용해진 사무실에서 그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중요도에 따라 일을 분류하고, 시급한 일부터 처리한 뒤.
인턴들 관리까지 마치자, 어느새 시간은 빠르게 흘러 오후 6시가 되었다.
차창 너머로 비치는 노을빛이 아름답다.
“다들 퇴근합시다! 먼저 들어갈 테니 내일 봐요!”
호준은 제일 먼저 퇴근 선언을 하며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병아리 인턴들은 활짝 웃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인사를 했다.
“내일 뵙겠습니다, 과장님!”
“과장님 들어가십시오!”
인턴들에게 손을 휘휘 젓고서 그는 문을 빠져나갔다.
가는 길에 부탁받은 사인도 전달해주고.
그렇게 홀가분한 마음으로 회사 건물을 나가 택시를 탔다.
돈을 많이 벌어서 택시를 탄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지하철 타고 가는 게 익숙하기도 하고, 별 불편함을 못 느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얼굴 알아보면 피곤하지.’
연예인 같은 고민이기는 하나, 사실이 그러했다.
어, 누구? 하는 식으로 접근해서 말을 거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게 되면 여간 피곤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탈 수밖에.
‘연예인도 이런 기분이려나.’
피식 웃으며 그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기울어진 전봇대. 반듯한 전봇대. 전선줄이 칭칭 감긴 전봇대.
다양한 전봇대들이 슉슉 지나간다.
그렇게 멍하니 밖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는데.
발랄한 음악이 끝나고, 앵커의 목소리가 들렸다.
택시기사님은 그도 평소에 듣는 유토피아 라디오 방송을 듣고 있었다.
―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의 유토피아, 따끈따끈한 유토피아 소식을 전해드리는 요미요미 귀요미입니다!
실시간으로 정보를 얻기 딱 좋은 방송이기에.
호준은 귀를 쫑긋 세우며 듣는 것에 집중했다.
― 첫번째 소식은 아주 따끈따끈한 소식입니다! 요즘 들어 큰 화제인 요정의 쉼터에 대한 소식인데요. 에이스 길드 대표, 이주영 길드 마스터가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청소년을 위한 시설 건립에 10억 달러를 기부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는데요. 그 자리에서 요정의 쉼터를 극찬했다는 소식입니다.
‘잉…?’
금시초문이었다.
이주영이 기부를 했다는 것도, 그리고 요정의 쉼터를 언급했다는 사실도.
일하느라 딴짓은 1도 하지 않았기에 전혀 몰랐던 것.
호준은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내용에 집중했다.
라디오 앵커는, 기자회견장에 파견 나갔던 기자를 대동해 진행하기 시작했다.
― 현지에 나가있던 이연주 기자와 함께 이야기를 나눠 보겠습니다. 이 기자. 오늘 플레이어 호준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는 얘기가 있던데. 자세히 얘기해 주시죠.
― 네. 최근 이주영 길드 마스터는, 미국 몬스터 길드의 수장, 로버트 길드 마스터와 함께 요정의 쉼터에 방문해 큰 화제가 되었는데요. 그 때문에 이번 기자회견에서는 플레이어 호준과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 많이 나왔습니다.
― 그렇군요.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이주영 길드 마스터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 이주영 길드 마스터는, 초장부터 질문 하나만 골라 받겠다고 했고요. 그래서 모든 질문을 들은 뒤 음식에 대한 소감을 묻는 질문을 택해 답했습니다.
― 아아―! 그렇군요. 과연 어떤 대답이었는지 궁금한데요?
호준은 좌석에 묻었던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집중했다.
― 【평생 잊을 수 없는 음식점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 평생이라. 그 정도로 음식이 맛있다는 의미인 걸까요?
― 추가 질문이 이어졌지만, 기부 건 외에는 다른 질문을 받지 않았습니다. 평소에도 이주영 길드 마스터는 다른 플레이어에 대해 말을 아끼는 스타일이기에 기자들도 불만은 없는 분위기입니다.
― 그렇군요. 그런 칭찬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지요?
― 네. 처음입니다. 그래서 극찬한 사실이 알려지자 실검에 오르는 등, 요정의 쉼터가 또 한 번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플레이어 호준 개인의 역량에 더해, 이미주 PD, 몬스터 길드, 에이스 길드까지. 이렇게 거물들과 커넥션이 유지되면서 요정의 쉼터는 당분간 홍보팀이 필요없을 정도로 승승장구할 것으로 보입니다.
― 맞습니다. 저도 그 발언을 들으니, 얼마나 맛있을지 궁금해지는군요. 아마 이 방송을 듣고 계신 청취자님들도 많이 궁금하실 것 같습니다. 스타 플레이어 탄생에 모두가 주목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청취자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더 유명해지면 먹기 힘들 테니 얼른 요정의 쉼터로 달려가야겠군요. 지금까지 요정의 쉼터에 관한 핫한 소식이었습니다. 다음으로…….
‘역시, 유명인의 한마디는 힘이 대단하네.’
호준은 소리 없이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김치전을 그리 맛있게 먹었다며 고맙다고 인사하던 게 인사치레로 한 말이 아닌 모양이었다.
정말 맛있었구나.
‘고마운 사람이야.’
호준은 고마운 마음에 김치전을 보내주기로 결정했다.
한 20개 정도면 적당하겠지?
그렇게 생각을 하다가 거울을 통해 택시기사님과 눈이 딱 마주쳤다.
기사님은 말을 걸고 싶으셨던 모양인지, 먼저 입을 여셨다.
“허허, 자네도 유토피아인가 머시깽인가 하나?”
“네. 합니다.”
“그렇구만. 매일 방송을 듣는데 참 대단혀. 그 생판 모르는 공간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현실에서보다 훨씬 더 많이 번다지? 나이 들어서 유토피아인지 유토깽인지 잘 모르니. 원. 저 호준이라는 이름은 요즘 들어 계속 듣는데 아주 대단하더구만. 영상 수익으로 대박을 쳤을 거라는 얘기도 들리고. 아들한테도 유토피아 하라고 해야겄어!”
“대단하네요!”
맞장구를 치는 호준의 입꼬리는 부드럽게 휘어 위로 향했다.
‘오늘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날이다.’
승진을 하고.
일을 순탄하게 끝내고.
음식점이 더욱 유명해지고.
좋은 일 투성이라 구름 위를 걷는 듯, 상쾌하다.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자 자동차가 부웅― 출발했다.
그는 문득 생각했다.
인생이라는 긴 도로에서, 초록불 신호가 들어온 것만 같다고.
그는 쾌속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 * *
【유토피아에 접속했습니다!】
유토피아에 접속하면 제일 먼저 요정들이 만든 요리를 확인한다.
“김치전 1,032개, 감자튀김 200여 개, 그 밖에 김치, 주스, 스테이크, 치킨은…….”
별이가 깔끔하게 보고를 마치면, 물건들을 인벤토리에 넣어두고 요정들에게 휴식을 준다.
그리고서 부화기에 넣어둔 계란을 부화시키는 것으로 기본 일정을 마치면.
그다음은 자유 일정인데….
“흐음.”
호준은 고개를 갸웃하며 메신저함을 들여다보았다.
진수 녀석이 재잘재잘 얘기하는 메시지도 들어 있었지만.
또다른 메시지도 있었다.
【친구 이주영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친구 이주영로부터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친구 로버트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친구 로버트로부터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이주영과 로버트가 동시에 메시지, 그리고 선물을 보냈던 것.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똑같은 행동인지라 신기하기도 하다.
지난번 둘이 부탁해서 친구 추가를 한 것이었는데, 바로 메시지가 올 줄이야.
전혀 예상 밖이었다.
먼저, 이주영의 메시지를 열었다.
메시지는 어마어마하게 길었다. 그는 스크롤을 내리며 읽기 시작했다.
【호준 님, 다시 인사드립니다! 일전에 찾아뵈었던 이주영입니다.
오늘 하루 잘 보내셨나요? 저는 아직 김치전 맛이 생생하네요. 그 도톰한 두께나, 바삭함이나, 고소함. 음~ 지금도 침이 고입니다. 나름 미식가라고 자부해 왔는데, 제 환상이 와르르 무너졌어요. 호준 님의 음식에 비하면 이전의 음식은 그냥 집밥 같달까요! 해물전도 해물이 어찌나 많은지…….】
칭찬이 가득한 문단이 3개나 되었다.
내용을 조금 스킵하니 본론이 나왔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호준 님과 계약을 맺고 싶습니다. 3급 이상 요리를 개당 400골드를 지불하고 살 의사가 있습니다. 제 동료에게도 호준 님의 음식을 전파해주고 싶네요. 계약을 원하신다면 첨부된 계약서에 보낼 음식의 숫자를 기입하시고, 사인 부탁합니다. 계약 기간은 1주일 단위로 하고 싶습니다. 물론, 계약 여부는 전적으로 호준 님의 의사에 달려있습니다. 부디 한 번 더 음식을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잘 부탁합니다 호준 님!
추신. 동봉한 선물은 지난번 김치전을 맛있게 먹고 간 손님으로서 드리는 겁니다. 계약 여부와 상관없이, 잘 써 주세요! ―이주영 보냄― 】
‘정리하면 3급 이상 요리를 대량 주문하고 싶다는 거네.’
계약서를 확인해보니 충분히 수용 가능한 조건이었다.
매일 N개씩 요리를 보낼 것, 3급 이상이면 무조건 400골드로 파는 것.
그리고 몇 개의 요리를 보낼지는, 호준 그 자신이 직접 기입하면 되었다.
그는 생각끝에 요리 100개를 보내기로 하고, 서명까지 마쳤다.
서명란에 이름을 휘갈기자 메시지가 떴다.
【계약이 완료되었습니다】
【이주영 님의 메시지 위에 아이템을 드래그 앤 드랍 해주십시오!】
드래그 앤 드랍 시뮬레이션이 재생되었다.
끌어서 놓으라 이거지.
인벤토리에 있던 김치전 100개를 끌어다가 놓으라는 곳에 내려놓았다.
또링―
경쾌한 알림음과 함께.
【김치전 100개를 잃었습니다】
【오늘의 계약 아이템을 전송했습니다!】
【계약의 대가로 80,000 골드를 얻었습니다!】
【내일 계약도 순조롭게 진행해주시기 바랍니다!】
순조롭게 계약 진행 완료!
8만 골드를 벌기가 참으로 쉽고 간단하다.
선물은 한 번에 확인하기로 하고, 그는 마저 로버트의 메시지도 확인했다.
“신기하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둘이 친구라서 그런가?
생각하는 게 비슷한 모양이다.
로버트도 계약을 요구했는데 요리 3급 이상으로 가격은 개당 400골드로 산다는 내용이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해물전처럼 맵지 않은 음식이라는 조건이 붙었다.
아마 외국인이라서 그런 조항을 넣은 거겠지.
해물전도 준비되어 있으니 문제될 것은 없었다.
갯수는 이주영 때와 동일하게 100개로 설정하고, 서명을 완료하고.
계약대로 물건을 보냈다.
【해물전 100개를 잃었습니다】
【오늘의 계약 아이템을 전송했습니다!】
【계약의 대가로 80,000 골드를 얻었습니다!】
【내일 계약도 순조롭게 진행해주시기 바랍니다!】
삽시간에 16만 골드를 벌었다.
‘에이스 길드나 몬스터 길드에서 음식을 먹으면, 홍보 효과도 쏠쏠하겠네.’
흐뭇하게 웃으며, 그는 기지개를 켰다.
16만 골드를 벌어서인가, 마음도 든든하고.
여유가 흘러 넘쳤다.
‘선물이나 확인해 보자.’
해먹에 몸을 맡긴 채로, 그는 로버트와 이주영이 보낸 선물 메시지를 클릭했다.
【선물을 개봉합니다!】
“오?”
놀랍게도 로버트가 보내온 것은, 레드 게이트 정보가 적혀있는 지도였다.
레드 게이트는 지난번처럼 2시간 이내로 터지는, 성격 급한 토끼 같은 것도 있지만.
2달 이후에나 터지는 느려터진 거북이 같은 녀석도 있었다.
‘흠. 절벽, 낭떠러지, 동굴 안쪽. 모두 발견하기 힘든 곳에 있네.’
길드 정도의 정보력이기에 입수 가능한 정보들.
그 정보를 집약하여 지도에 그려둔 것이었다.
이 지도를 보고 레드 게이트를 찾아가 클리어한다면, 레벨업은 순조로울 것이 분명했다.
그는 감사의 마음을 잔뜩 담아 답변을 보냈다.
└ 선물 감사합니다. 잘 활용하겠습니다. 다음에 오시면 해물전 공짜로 드릴게요!
그다음 선물인 이주영의 선물도 개봉했다.
이미 레드 게이트 지도로 인해 두근대던 그의 심장이, 선물을 확인한 순간.
“어…?”
눈이 두 배로 커졌다.
불세출의 장인이 만든 황금 신발이 그의 가슴에 폭 떨어졌다.
황금 신발은 호준의 경악한 얼굴을 그대로 비추었다.
둘 다 부잣집 자제라서 그런지.
아니면 길드 마스터라 그런지는 몰라도.
“화끈하게 제대로 쏘네.”
선물 스케일이 남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