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를 너무 잘함-131화 (131/200)

131. 승진

“읏 뜨거.”

핸드폰을 볼에 대 보니, 뜨끈뜨끈하니 손난로가 따로 없었다.

물에 빠진 이후로 영 상태가 별로였는데 괜찮으려나.

다행히도 뜨거운 것을 제외하고는 작동엔 문제가 없었다.

‘흠…!’

호준은 메시지함에 쌓인 메시지를 보고,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미주 PD와 함께 찍은 영상들이 TV에 올라가고서, 그 영상으로 얼굴을 확인한 이들이 연락해온 것이었다.

‘하긴. 얼굴을 변형하지 않아서 그대로였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초등학교 동창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많이도 연락이 왔다.

동창뿐만이 아니었다.

유토피아 한다고 퇴사한 옛 동료들 연락도 있었는데, 그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어떻게 이미주 PD와 연락이 되었는지, 어떤 방식으로 플레이했는지 알려달라는 것.

“농사하고. 요리하고. 방송하고. 별거 있나.”

지금은 시간이 얼마 없었기에, 다른 메시지도 쭉 훑었다.

화면을 쭉쭉 내리며 메시지를 확인하던 그는, 의외의 메시지를 발견하고 눈썹을 들어 올렸다.

“이건 또 뭐야.”

21살, 첫 연애를 했던 전 여친도 메시지를 보냈다.

그녀와는 CC, 캠퍼스 커플이었는데 갑자기 3달 동안 연락두절되더니.

복학했을 때 소식이 들려왔다.

새 핸드폰과 새 남친을 구해 타 학교로 편입했다는 소식이 말이다.

여친 본인도 아니고 여친 친구가 보다못해 전화로 사정을 얘기했던 것.

그때 호준은 정이 뚝 떨어졌었다.

안하무인인 여친의 행동을 보고 학을 뗐으니까.

“웃기네.”

한번 끊어진 인연의 실은 붙일 수 없다.

상대방의 최악을 보았기에, 붙일 건덕지도 남아있지 않고.

그렇기에 호준은 씁쓸히 웃을 수밖에 없었다.

└ 호준아. 잘 지내니? 방송 보고 있는데 많이 변한 것도 같고. 옛날 생각도 난다. 이전 일도 사과하고 싶은데. 우리 같이 커피 한 잔 어때? 기다릴게~ 사실 요즘 유토피아를 시작했는데 심한 적자라서, 조금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이런 철면피 같은 사람들이 하나둘 생겨난다.

돈이 괴물을 만드는 것인지, 괴물이 돈에 집착하는 것인지 알 길은 없지만 말이다.

“정말 미안했다면 직접 사과를 했겠지.”

이런 일에 감정 낭비할 필요는 없었다.

인생은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생각하고 살기에도 너무 짧으니까.

그렇기에 호준은 가차없이 손을 놀렸다.

【ㅇㅇ님을 차단했습니다!】

그렇게 전 여친을 차단하고서 다른 메시지 내용을 대충 훑었다.

메시지 내용은….

진지하게 볼 필요 없는 것도 많았다.

안부를 묻는 척하면서 보험 가입을 권유하거나.

괜찮은 투자상품이 나왔다고 하는 문자 등.

“이건 필요 없지. 삭제. 삭제 삭제…….”

광고성 문자를 삭제하자 곧, 중요한 문자가 나왔다.

바로 부모님이 보내신 문자였다.

【엄마】: 아들~~~ TV에서 네가 나오는데 진짜니?

어머니가 보낸 문자는 이거 하나가 전부였고.

아버지가 보내신 문자가 10개나 있었다.

길게 문자 안 하시던 분이 웬일이래?

호준은 피식 웃으며 메시지를 확인했다.

【아빠】: 아들 병아리 귀엽더구나 엄마랑 같이 봄~~

【아빠】: 존아침~~~

【아빠】: 바뿌냐~~~?

【아빠】: 연락 기달~~~?

병아리도 보셨다면, 다른 영상들도 보셨을 것 같다.

“크흠… 흠.”

목을 가다듬고서 호준은 아버지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땅다당당 땅다당당당당―

경쾌한 연결음이 뚝 끊기고는.

“크흠! 여보세요! 아이구 우리 TV스타가 전화도 해줬네!”

아버지가 흐뭇한 얼굴로 화면에 등장했다.

입꼬리가 스물스물 올라간 채로 웃는 아버지는 하회탈 같았다.

“스타는 무슨요. 그냥… 조금 운이 좋았어요. 많이 놀라셨죠?”

“놀라고 말고. 널 알아보고 동네 어르신들이 난리가 아니다. 새벽잠도 없는지 우루루 몰려와서 네가 맞냐고 물어보더라. 껄껄―!”

아버지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시원하게 웃는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화면이 휙 흔들렸다.

“어머, 호준이니? 우리 아들! 밥은 먹었어? 엄마도 전화했었는데 왜 아빠만 전화하니? 서운하다!”

이제는 화면에 입술을 볼록 내미는 어머니만이 잡혔다.

핸드폰을 강탈하신 모양이었다.

“아침은 아직이요.”

“아직도 대학생 때처럼 아침을 라면으로 먹는 건 아니지? 라면도 하루 이틀이지 습관 되면 안 좋아. 정 귀찮으면 사과라도 깨물어 먹어!”

어머니는 김치는 있는지 없는지 물으신 뒤에야, 게임에 대해 물으셨다.

“그러니까 간단히 말씀드리자면요.”

설명은 최대한 간략히!

연세가 있으신 세대가 이해할 만큼.

골드의 환전가치에 대한 설명도 당연히 했다.

설명을 듣던 어머니는 눈을 크게 뜨며 되물으셨다.

“지금 네가 가진 골드라는 게, 현금으로 바꾸면 이, 이십억 원이 넘는다 이 말이니? 내가 잘못 들은 거는 아니지?”

호준의 고개가 위아래로 끄덕여지자, 경악한 어머니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턱이 빠지는 건 아닌가 걱정될 정도로 아주 크게.

* * *

부모님은 부모님이었다.

돈이 있다는 걸 함부로 말하지 말고, 함부로 쓰지도 말고.

지금까지처럼 네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된다고.

그렇게 부모님과의 통화를 마치고서 호준은 출근길에 올랐다.

지하철 콩나무 시루에 몸을 맡긴 그는, 마스크를 끼고 있었다.

미세먼지 때문이 아니었다.

“저기, 호준 님… 아니신가요?”

“저기, 어, 맞으시죠?”

“어머!”

가만히 있어도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말을 걸어왔기 때문이었다.

물론, 잠시 대화하는 거야 나쁘지 않지만.

“김치전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가게는 앞으로도 매일 여시는 거죠? 혹시 인증샷 안 될까요?”

“저, 저도요!”

“그다음은 저도!”

인증샷이니. 사인이니.

일일이 다 하다 보면 출근을 못 할 것 같았다.

다행히도 양복주머니에는 이전에 쓰고 남겨둔 미세먼지 마스크가 있었고.

마스크 덕분에 이렇게 조용히 출근할 수 있었다.

취이익―

지하철 문이 열리고 우수수 빠져나가는 사람들.

호준도 그 흐름에 몸을 맡겼다.

저벅저벅―

직장을 향해 걸음걸음 걸어 나갔다.

‘시민들이 이럴 정도면, 회사 사람들은 다 알고도 남겠네.’

자그마치 4년 동안 얼굴을 마주한 동료들이 모를 리가 없겠지.

실상 동료들과 일한 시간이 부모님과 소통한 시간보다도 훨씬 많을 것이다.

드디어 회사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회사는 주차장을 가로지르면 바로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였다.

호준은 깊은 숨을 내쉬며 주차장을 가로질렀다.

주차장에는 자동차 한 대가, 떡하니 놓여있었는데.

시선을 안 줄래야 안 줄 수 없는 차였다.

‘회장님 오셨나?’

늘씬하게 빠진 페라리가 번들번들거리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외국에서 영업을 뛰시는 회장님은 회사에 한 달에 한 번 올까 말까 한데.

회사에 올 때면 이런 외제차를 끌고 오곤 하셨다.

‘뭐.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

부장도 아니고, 과장도 아니고.

입사 4년 차의 주임 말단은 회장님이 오시건 말건 할 일이나 하면 그만이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띠링―

사무실 층에 도착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사무실 문을 열고 눈이 마주친 직원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데.

어째 하나같이 놀란 토끼 같은 표정을 하고 있다.

사무실에는 햇병아리 신입 셋이 먼저 와 있었다.

가장 눈이 먼저 마주친, 햇병아리 1이 입을 열었다.

“주임님. 회, 회장님이 아까 찾으셨어요!”

“지현 씨. 회장님 말입니까?”

“예. 바로 위로 올라오도록 전해달라고 합니, 아니 하셨습니다.”

“그럼.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가방만 책상에 올려놓고, 다시 엘리베이터 문 앞에 섰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잠깐 동안, 안면을 익힌 타 부서 직원들의 인사가 이어졌다.

“주임님, 방송 봤어요~ 벌써 구독수 70만 올랐다면서요?”

“로버트도 방문하고 대박터졌다고 소문이 자자해요! 원래 게임에 재능이 있었나 봐요?”

“유 주임, 아들이 방송을 너무 재밌게 보더라구. 어떻게 사인 하나만 주면 안 될까? 애 생일도 다가오고 해서 말야.”

국내영업팀 부장님은 없던 사인도 만들어달라고 하신다.

사인이야 얼마든지 가능한 부분이다.

“물론이죠. 여유시간에 만들어 두겠습니다.”

“허허. 고맙네.”

부장님이 어깨를 두드리며 감사를 표하는 사이,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최상층으로 올라가자 조용한 적막에 휩싸인다.

생각을 정리하기 딱 좋은 그런 적막.

띠링― 도착했습니다!

적막이 스러지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우두둑 우두둑―

만세를 하며 스트레칭하는 회장님의 뒤태와 마주했다.

* * *

나이 80을 거꾸로 먹은 듯한, 쌩쌩해 보이는 얼굴.

어깨가 떡 벌어진 다부진 체격.

체구에 걸맞은 걸걸하고 호탕한 목소리.

이철구 회장님은 진지한 얼굴로 말을 시작했다.

“자네 방송은 잘 보고 있네. 이렇게 부른 것은, 흠… 자네에게 나쁜 소식이 있네.”

나쁜 소식이라니.

월급 삭감? 아니. 그건 아니겠지.

전체적인 월급 삭감이라면 굳이 이 자리에 불러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 회사 사정을 담은 메일이 날아오고, 회계팀에서 연락이 오고.

차근차근 스텝을 밟아나갔겠지.

그렇다면 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는 것일까.

호준은 침을 꼴깍 삼키고는 되물었다.

“편히 말씀해 주십시오.”

“크흠. 회사 자금 사정으로 인해, 자네가 맡은 프로젝트는 포기해야 할 것 같네.”

“아아… 네.”

“부장 말로는 자네 혼자서 2년 동안 준비했다더군. 사실인가?”

“네. 시장 조사와 업체 발굴, 그리고 현지 조사까지 제가 맡아 했습니다.”

“일을 나눠 맡은 직원들이 퇴사하는 바람에 혼자 도맡아 했다고 들었네. 아쉽겠지만 그 건은, 더 이상 진행할 수가 없네.”

“네…. 어쩔… 수 없죠.”

호준은 씁쓸한 마음을 갖출 수 없었다.

일에 있어서만큼은, 애정을 갖고 해왔고.

오랫동안 공들인 일을 놓아주어야 한다는 것은, 아쉽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자네 부서는 오늘부로 해산이네. 자네 상사인 이 과장이 퇴사한다고 연락이 왔어. 자네가 남아 있는 인원 중에 가장 높은 직급이어서 부른 걸세.”

“……!”

부서가 해체된다니.

아무리 인원 충원이 늦었기로서니, 해체까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씁쓸한 마음으로 회장님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해외영업팀은 한 팀으로 합할 생각이네.”

“1팀과 2팀을 말입니까?”

“그래. 자네가 그 팀의 과장으로 임명될 걸세. 앞으로 1시간 뒤면, 공지사항이 붙을 게야.”

“네??”

씁쓸한 소식 뒤로 이어지는 승진 이야기에, 심장이 쿵쿵 뛰었다.

입사 4년 차에 과장이 되었다는 사례는 듣도 보도 못했다.

대리도 건너뛰고 바로 과장이라니.

평범한 직장인이 가능한 루트가 아니었다.

“승진한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그래. 궁금하겠지. 자네도 알 테지만 나는 아무나 승진시키지 않네.”

이 회장은 검지를 들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첫째는 실력. 그다음은 인성. 마지막은 일하겠다는 의지일세. 앞으로 유토피아 때문에 퇴사할 사람이 몇이라고 생각하나. 솔직히 말해보게.”

“상당수가 퇴사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유토피아에 혹하는 것은 저희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트렌드니까요. 아시겠지만 저희 부서도 자리가 텅텅 비어서 신입들뿐입니다. 옆 부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라고 들었습니다.”

이 회장은 입을 한일자로 굳게 다문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네는 여기 남았지. 나는 그 점이 인상 깊었네.”

“제 의지로 남은 겁니다.”

“나는 자네가 신입일 때부터 봐왔네. 자네 상사에게 물어보니 성과도 우수, 실력도 계속 쌓는 데다 일할 의지가 있지. 그 점에서 과장으로서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네. 외부 스카우트를 해도 자네처럼 성심성의껏 일하기란 쉽지 않을 거야. 오랜 연륜을 무시하지는 말게나.”

이 회장의 눈빛은 진지했다.

절대로 허언을 하는 성격이 아니고 한다면 하는 성격이기에.

신뢰를 담은 올곧은 시선에 호준은, 가슴 한 켠이 따뜻해지는 듯했다.

지난 시간 동안 끙끙대며 살아온 것을 인정받았다는 사실에서.

이리 가슴이 몰랑몰랑거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동안 수고했고 앞으로도 잘 부탁하네. 유 과장.”

이 회장은 어깨를 두어 번 툭툭 두드리고는 듣기 좋은 덕담을 건넸다.

“비서가 말하던데 자네가 로버트와도 안면이 있다고 하더군. 유토피아에서도, 현실에서도 성공가도를 달리는구만 하하!”

그렇게 과장 승진이 확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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