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를 너무 잘함-130화 (130/200)

130. 고지가 멀지 않았다.

생각보다 큰 액수의 보너스를 확인하면, 입꼬리는 절로 올라가기 마련이다.

지금 호준의 상황도 그러했다.

“와….”

보너스가 제법… 컸다!

【메인 퀘스트 달성률】: 40 → 60퍼센트 (NEW)

그동안은 10퍼센트도 간당간당 올라갔는데.

무려 20퍼센트나?

단 하루 만에 이뤄낸 성과이기에 심장이 쿵쿵 뛰었다.

왜 이렇게 급등했는지는 이어지는 메시지를 통해 알 수 있었다.

【15일 이내로 퀘스트 달성률 50퍼센트에 성공하여 추가 보너스를 지급합니다】

【보너스로 달성률 10퍼센트를 얻었습니다!】

‘이게 보너스를 주기도 하네.’

보너스라는 존재를 알지도 못하다가 만나니, 반가울 따름이다.

어쨌든.

60퍼센트나 달성했으니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퀘스트 보상】

* 본인 소유 영토에 요정국을 건설할 수 있습니다.

* 요정국 내 입법, 사법, 행정권은 요정왕에게 있습니다.

* 요정국 건설 시 군인 요정을 선발할 수 있습니다.

* 모든 요정으로부터 무한한 신뢰를 얻습니다.

* 요정성 도면을 획득합니다.

* 세계수 묘목 1개를 획득합니다.

* ???을 획득합니다.

“계속해나가자.”

멀게 느껴졌던 퀘스트 보상이, 왠지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거리에 다가온 것만 같다.

“호준 님, 콘치즈가 다 떨어져 가요!”

별이의 외침이 귓가에 꽂혔다.

생각은 여기까지 하고.

마저 장사를 마무리해야지.

“오케이!”

호준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요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얼마 뒤, 고소한 옥수수 냄새가 퍼져나가고.

치즈가 듬뿍 담긴 콘치즈를 바라보며, 호준은 환하게 웃었다.

요리도. 퀘스트도. 가게 운영도.

‘왜 이렇게 즐겁지.’

작은 과제들을 차근차근 성취할수록.

만족스러운 하루가 완성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 *

당연한 얘기지만, 장사는 무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요리 재료를 마법으로 만들어 낼 수는 없으니까.

요리 재료가 전부 소진되면 이제 장사를 접어야 했다.

“멀리까지 와주셨는데 죄송합니다. 다음에는 더 넉넉히 준비하겠습니다!”

호준은 줄 선 손님들 한 명 한 명에게 말을 걸어 사정을 말했다.

가게 주인이 직접 와서 말하니 다들 아쉬워하면서도 발걸음을 돌렸다.

“매진이라니. 조금 더 일찍 올걸. 아쉽네요.”

“손님이 워낙 많았으니 어쩔 수 없죠.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그렇게 가게는 파장에 접어들었다.

늦게 찾아온 손님들은 아쉬움을 토로하며 숲으로 사라지고.

가게는 손님들이 빠져나가 바람만 휭휭 불었다.

자그닥 자그닥―

“접시는 이쪽으로, 식기는 여기다가 모으자!”

요정과 직원들이 가게 정리로 분주할 무렵.

로버트와 이주영, 그 둘만은 여전히 테이블을 차지한 채로 호준을 기다리고 있었다.

‘슬슬 말을 걸어볼까.’

‘사람이 보면 볼수록 괜찮네.’

그들은 호준의 모습을 관찰하며 말을 걸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그렇게 고양이처럼 기다리자, 호준이 터벅터벅 가게로 돌아왔다.

호준은 그 시선을 마주하자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어디서 뵌 것 같은데. 어디서… 음….”

호준이 갸웃하며 눈을 굴리자, 로버트가 넉살 좋은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청했다.

“아마 TV나 뉴스에서 보셨을 겁니다. 저는 몬스터 길드 대표, 로버트 윌리엄입니다. 호준 님하고는 초면이죠.”

“아아― 그분이시구나. 뉴스로 봤습니다. 실물이 더 멋지시네요.”

“항상 듣는 말입니다. 하하.”

로버트와의 악수를 마치자 이번에는 이주영이 손을 내밀었다.

이주영은 사람 좋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에이스 길드 대표, 이주영입니다. 레드 게이트를 깨셨다는 소식 들었습니다. 고레벨 유저도 쉽지 않은데, 대단하시네요.”

“반갑습니다. 이주영 님.”

호준은 이주영의 손을 맞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가게가 평소보다 시끄러운 느낌이 들더니.

유명인사들이 있어서 그런 모양이었다.

연예 뉴스를 별로 보지 않는 그도, 로버트와 이주영이라면 잘 알고 있었다.

경제 뉴스에서 종종 등장하기도 했고.

여하튼, K그룹 막내딸이라는 위치 때문에, 언론 노출이 잦은 이주영.

그리고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유명한 로버트, 그 둘은 참으로 먼 존재였는데.

‘직접 보다니. 참 기분이… 묘하네.’

아주 멀게 느껴졌던 스타가 눈앞에서 말을 거니, 기분이 이상하지 않을 리 없었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의 눈치가. 왠지.

‘말을 걸어달라는 눈빛이잖아.’

왜 저리 반짝이는 눈으로 보는 것일까.

호준은 그 눈빛을 보며, 세뱃돈 달라고 눈치 보던 어린 조카가 떠올랐다.

가게가 문을 닫았다고 말하자, 로버트와 이주영은 알고 있다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게가 전망이 끝내주네요. 석양이 질 때 스테이크를 썰면서 바라보면 멋지겠어요.”

“조경을 하는 것보다는 지금 이대로 자연스럽게 가는 게 네추럴하고 좋은데. 가게 위치를 아주 잘 잡으셨네요.”

칭찬 릴레이를 이어갔다.

호준은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물가에 가까울수록 설거지하기 편할 것 같아 호수 근처에 지었다는 얘기는 굳이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솔직하게 물어보았다.

“뭔가 하실 말씀이 있으신 것 같은데. 편하게 해주시죠.”

호준의 말에, 로버트는 기침을 한번 하고는 본론을 말했다.

“저희가 너무 시간을 끌었네요. 사실은 이주영하고는 오래 아는 사이인데, 이번에 내기를 해서요.”

“내기 말입니까?”

“네. 저희 둘 다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라. 호준 님께서 선택해주십시오. 몬스터 길드와 에이스 길드. 이 두 길드 중에 어디가 더 낫다고 보십니까? 편하게 말해주시면 됩니다.”

“맞습니다. 편하게 에.이.스. 길드라고 얘기해주셔도 돼요!”

로버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주영도 주먹을 움켜쥐며 말했다.

광선이 나올 것처럼 번뜩이는 두 쌍의 눈을 마주하니.

‘흐음.’

두 길드를 굳이 비교하자면.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규모, 재정, 인지도 면에서는 몬스터 길드가 더 낫지. 미국이 시장규모가 크니 당연한 일이고.’

미국을 기반으로 한 몬스터 길드는, 한국에 비해 인재풀이 넓을 수밖에 없었다.

인구수가 몇 배인가.

게다가 미국은 실업률 0%를 기록하는 등, 경제가 호황이었다.

그 덕분에 미국기업은 사람들을 구하지 못해 안달하며, 월급을 많이 주기 일쑤였고.

직장인들은 늘어난 월급으로 게임에 돈을 썼다.

이런 배경이 있기에 몬스터 길드는, 에이스 길드보다 보유한 플레이어 숫자가 훨씬 많고.

거기에 윌리엄 가문의 투자 덕분에, 재정적인 면도 우수.

하지만 몬스터 길드가 모든 면에서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이미지가 영 별로지. 마약길드라는 오명이 있으니.’

몬스터 길드의 어두운 이면에는 마약 문제가 있었다.

‘몬스터 길드 플레이어들 중에 마약 때문에 걸려 들어간 사람이 몇이지. 너무 많아서 이제 식상할 정도였나.’

몬스터 길드 플레이어들은 마약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들은 마약으로 뉴스에 이름을 올리고, 마약 때문에 길드에서 잘려나갔다.

그나마 길드 수장인 로버트가 마약 문제에 칼같이 대처해서, 문제가 커지지는 않았지만.

너무 자주 몬스터 길드 이름이 오르내려서 마약쟁이들만 가는 길드라는 오명도 얻었다.

반면 에이스 길드는 어떤가.

그나마 에이스 길드는 마약 청정 국가인 대한민국을 기반으로 하기에, 마약문제에서 자유로웠다.

유럽, 미국 등이 마약문제로 골치를 썩을 때.

그나마 한국은 그 불길한 문제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 수 있었다.

정말 다행히도 미국에서는 랜덤채팅으로 2시간 만에 마약을 구매할 수 있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았다.

‘종합해 보면 이미지는 에이스길드가, 이미지를 제외한 나머지는 몬스터 길드가 더 낫네.’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이 참 애매했다.

사람마다 기준은 다 다른 법이니까.

호준은 골똘히 생각을 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 생각은….”

두 길드 마스터가, 토끼처럼 눈을 반짝였다.

* * *

“얘기도 못 꺼냈네.”

“그러게.”

숲길을 걸어가는 남녀.

로버트와 이주영은, 서로를 보며 피식 웃었다.

둘은 텔레포트 장치가 있는 요나스 마을로 되돌아가는 중이었다.

이주영은 호준이 말한 내용을 다시 한번 곱씹었다.

― 에이스 길드는 플레이어 양성에 더욱 주력하고, 몬스터 길드는 마약 문제를 해결한다면 더 훌륭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둘 다 막상막하여서 한쪽을 선택하기는 어렵네요. 앞으로도 두 분이 잘 이끌어간다면 훌륭한 길드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죄송하지만 슬슬 로그아웃을 해야 돼서, 이만 가게를 정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시간이 없다고 하니 더 이상 붙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안면은 텄고, 친구 추가도 했기에 둘은 만족스러웠다.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세 번이 되어 계속 만남을 이어가다 보면.

자연스레 관계가 형성될 테니까.

“사람이 가식적이지는 않은 것 같아.”

“가식적이었다면,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겠지. 내 면전에 대고 마약 문제를 해결하라고 하는 사람은 흔치 않거든. 다들 눈치 보느라고 말을 못 하니.”

로버트와 이주영은, 서로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공통점이 많았다.

태어날 때부터 부자의 핏줄이었고, 당연히 주위에 아부를 하는 사람이 넘쳐났다.

귀에 달콤한 말은 독이 된다는 것을, 그들은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부모님께 들어왔다.

그런 환경에서 자랐기에, 둘은 호준의 충고에 담긴 진의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더 번듯한 길드가 되면, 그때 한 번 더 물어보자고.”

“물론이다.”

이주영은 호준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그동안 수많은 계산적인 사람들을 봤기에 호준의 진솔한 태도는, 빛을 발하고 있었다.

다시 만나고 싶네.

그런 생각이 절로 드는 사람이랄까.

둘은 갓 대학에 들어갔을 때처럼, 티격태격하면서 텔레포트 장치에 도착했다.

이주영은 로버트를 보내고 뒤따라 장치에 올라섰다.

“수도. 에클란트로.”

눈앞에 새하얀 빛이 작렬했다.

그녀는 눈을 감으며 문득 생각했다.

‘재미있네.’

동창도 만나고, 맛좋은 음식도 먹고. 그리고 좋은 인연도 만나고.

하루를 알차게 보냈다는 성취감이 그녀의 마음을 채웠다.

* * *

한편.

가게에서 설거지, 테이블 청소를 마친 호준은 모두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그의 앞에는 이무, 병아리들, 닭들, 소들, 돼지들, 요정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와글와글 재잘재잘 소곤소곤.

웃음꽃이 핀 백돼지 로로와 로리의 머리를 쓱 쓰다듬어주고서 호준은 모두에게 손을 흔들었다.

“갔다 올게. 다들 잘 쉬고 있어. 일은 너무 많이 하지 말고 적당히 하고. 알았지?”

“다녀오세요~ 김치전 왕창 만들어 놓겠습니다!”

“뀨우끼루냐앙꾸꾸…….”

합창 같은 인사를 받으며, 그는 접속을 해제했다.

【유토피아 접속을 해제합니다】

취이이익―

캡슐 뚜껑이 자동으로 오픈되고.

호준은 캡슐을 빠져나와 기지개를 켰다.

우둑우둑 어깨가 삐거덕댄다.

캡슐에 접속하는 동안은 수면 상태와 동일하기 때문에, 깊은 잠을 잔 것처럼 몸이 개운했다.

【06:13】

월요일 오전 6시.

7시 반 정도에 집을 나가면 되기에, 시간에 여유가 있다.

잠깐 침대에 누워서 뒹굴거릴까.

타앙―

호준은 침대에 몸을 내던지고 이불속에 콕 틀어박혀 핸드폰 잠금화면을 해제했다.

뉴스나 볼 생각으로 화면을 보는데.

“어…??”

그의 얼굴이 얼음처럼 굳었다.

전화기 어플 위에 말도 안 되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부재중 전화 470통】

어쩐지 전화기가 터질 정도로 뜨끈뜨끈했다.

“이게 대체 뭐야.”

밤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