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를 너무 잘함-127화 (127/200)

127. 유명세

인터넷으로 공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첨단 시대.

【시골 마을에서 일어난 기적!】

【레드 게이트 첫 솔로 돌파 성공!】

그런 시대에서 뉴스가 가진 파급력이란 어마어마했다.

인터넷 뉴스도 그러할진대, TV 뉴스는 말해 무엇 하랴.

한국 TV를 강타한 호준이 해외 언론의 주목을 받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요정의 쉼터, 레드 게이트 솔플 영상 최초 공개!】

최초.

수많은 사람들이 관심 가지는 유토피아에서 【최초】라는 영예로운 수식어가 붙었다.

덕분에 호준의 솔플 영상이 미 전역에 송출되었고.

글로벌 넘버 원 뉴스 채널, C□□ 의 간판 앵커.

브래들리는 싱글싱글 웃으며 데스크 앞에 앉아 저녁 뉴스쇼를 진행했다.

“네. 다음 소식입니다. 동양의 게임강국, 한국에서 플레이어 호준이 최초로 레드 게이트 솔플 영상을 촬영해 화제입니다. 플레이어 호준은 이미주 PD에게 발탁되어 화제의 중심이 된 인물인데요. 그는 최초로 레드 게이트 솔플에 성공한 플레이어로 기록될 전망입니다. 그의 영상은 레드 게이트 내부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후발주자에게 큰 의미가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브래들리는 잠시 숨을 고르며 물을 한 잔 마셨고, 그사이 추가 영상이 재생되었다.

그는 손날로 화면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플레이어 호준은 용 2마리와 이무기, 그밖의 작은 동물들을 데리고 다닌다고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한국에 파견 나가 있는 에클레르와 대화 나누며 알아보겠습니다. 에클레르!”

“네, 여기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브래들리!”

“좋아 보이는군요, 에클레르. 뒤에 아주 멋진 건물이 있는데 이름이 뭔가요?”

“네. 저는 한국의 수도 서울에 위치한, 경복궁 앞에 나와 있습니다. 경복궁은 조선을 대표하는 왕궁으로 고풍스러운 스타일을 지녀 외국인에게 인기가 아주 많습니다. 저기 경복궁 맞은편을 보시면, 유토피아 서울 지부가 보입니다.”

“아. 경복궁 바로 옆에 위치해 있군요. 자,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 플레이어 호준에 대해 얘기해 보죠. 그가 서울에 거주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인가요?”

“네. 사실입니다. 아시다시피 유토피아에서는 아이디를 만들 때 자신의 외모를 선택할 수 있는데요. 현실의 외모를 그대로 하거나, 조금 변형시킬 수 있죠. 플레이어 호준은 본인 모습 그대로를 선택했던 모양입니다.”

“아. 그를 알아보는 이들이 곧 나오겠군요.”

“맞습니다. 현재 한국지사뿐 아니라 여러 곳에서 제보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플레이어 호준은 해외영업 일을 하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게임으로 성공한 뒤에도 성실히 직장을 다닌다고 합니다.”

“플레이어 호준은 게임도 현실도 다 놓지 않고 유지하려는 성향을 보이네요. 유토피아에만 올인하는 플레이어와는 조금 다른 부분입니다. 아, 그리고 에클레르, 플레이어 호준은 소속 길드가 없다면서요?”

“맞습니다. 보통 스타 플레이어들은 인지도가 쌓이면 길드에 당연히 들어가기 마련인데요, 길드에 들어가면 여러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플레이어 호준은 조금 다릅니다. 그는 지금까지 한 번도 길드에 들어간 적이 없습니다.”

“길드 관계자들이 뭘 싸 들고 갈지 기대되는군요. 앞으로 더 두고 봐야겠습니다. 자, 그다음 뉴스로….”

화면이 종료되고 다른 뉴스가 나오자, TV 화면이 꺼졌다.

TV 리모컨을 탁자에 내려놓은 남자는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금발 머리에 푸른 눈.

듬직한 체격의 남자는 폭신폭신한 실내화로 대리석 바닥을 짓누르며 뒷짐을 졌다.

값비싼 저택, 고풍스러운 정원, 여우같이 지혜롭고 아름다운 아내.

토끼 같은 자식들을 가졌음에도 그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아직 멀었지.’

로버트 윌리엄.

정치 명가 윌리엄가의 3남이자, 몬스터 길드의 길드마스터.

몬스터 길드는 미국을 대표하는 길드로 자리매김한 지 벌써 오래였다.

강한 플레이어를 가장 많이 보유한 길드로 알려져 있는 길드.

괴물 같은 길드가 되자는 처음 포부 그대로, 그의 길드는 자본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의 플레이어를 흡수했지만.

문제는 최근 들어 발생했다.

‘치고 올라오는 길드들이 너무 많아. 거슬린단 말이지.’

그의 심기가 불편했다.

최근 들어 몬스터 길드의 인재들이 다른 길드로 이적하기 시작했던 탓이었다.

‘비전이 없어요!’

‘매일 기계처럼 싸우는 건 질렸습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라고요!’

‘힐링하면서 그냥 마음 편히 살고 싶어요!’

힐링이라니.

로버트는 피식 웃으며 실소를 머금었다.

길드를 빠져나가는 플레이어들은 하나같이 비전, 꿈, 힐링, 일과 휴식의 조화 등 허황된 말을 늘어놓았다.

윌리엄의 입장에서는 그런 말들은 배불러서 나온 말로 보였다.

‘돈과 명예. 그리고 힘. 그것을 다 쥘 수 있는데 어떻게 쉴 수가 있지.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들의 말을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로버트는 더더욱 많은 돈과 명예, 끝도 없는 욕망을 충족시킬 돈과 명예를 원했으니까.

그렇기에 그들의 충고를 무시하고 지금은 다른 길을 모색했다.

‘호준 같은 녀석이 우리 쪽으로 들어와야 산다.’

스타 플레이어 한 명이 지니는 가치는 압도적이었다.

스타 플레이어는 어딜 가든 주목을 받는다.

그 주목이란 거의 국빈에 걸맞은 주목이었다.

‘사람들은 재미없는 정치보다 재미있는 유토피아에 열광한다.’

실제로 유토피아 스타 플레이어에 관한 뉴스 조회수가, 총리의 기조연설 뉴스 조회수보다 높았다.

스타 플레이어들은 이제 연예인이나 마찬가지로 아이돌로 거듭나고 있는 실정이니까.

‘이미지 개선하는 데도 도움이 되겠어.’

특히 로버트는 호준의 독특함에 점수를 후하게 주었다.

영상 속의 호준은 보통의 스타 플레이어처럼 거만하지 않았다.

강하다고 힘을 남발하지 않으며, 약자를 괴롭히지 않았다.

당연한 것을 지키는 당연한 사람.

룰을 지킬 줄 아는 자.

깨끗하고 따뜻하며 다정한 이미지.

‘이런 사람이 있어야, 우리 길드 이미지도 좋아지지.’

최근 스타 플레이어들이 일으킨 음주운전 사고나 마약 중독사, 마약으로 일으키는 범죄들을 기사화하는 것을 막느라 돈을 얼마나 썼던가.

호준은 나락으로 떨어진 길드 이미지를 업 시키는 최고의 카드였다.

‘문제는 어떻게 들어오도록 만드냐는 건데.’

과연 호준이 매력을 느낄만한 카드가 무엇일까.

한창 그가 입술을 씹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똑똑―

“도련님, 부르셨습니까!”

“들어와.”

정갈한 제복 차림의 남자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남자는 로버트의 직속 비서이자 잡일을 도맡아 해온 윌이었다.

윌이 고개 숙여 인사하자 로버트는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인사는 됐고. 레드 게이트 위치를 수집한다. 요나스 마을 주변 레드 게이트는 빠짐없이 파악하도록.”

“네? 하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습니까. 적당히 돈을 쥐여주면 길드에 들어올 텐데요.”

윌이 고개를 갸웃하며 되묻자 로버트는 고개를 저었다.

“윌, 넌 가끔 순진한 구석이 있더군. 돈으로 되는 사람과 안 되는 사람이 있지. 돈을 마다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점수를 따야 할까?”

“음. 잘 모르겠습니다.”

윌이 조심스럽게 답하자 로버트는 씩 웃으며 검지를 들어올렸다.

“최근 가장 관심을 보이는 것을 갖다 주면 되지. 그러면 상대 쪽에서는 아, 이 사람이 내가 관심 있는 게 뭔지를 아는구나 하면서 다시 보게 되는 거야. 좋은 인상을 주면서 천천히 접근하는 게 순서다. 급하게 나가면 오히려 비호감만 되지.”

“아아! 그렇군요.”

“레드 게이트 조사하고. 그리고 스킬 카드 목록도 정리해서 가져오도록.”

“네! 바로 접속하겠습니다.”

윌이 문을 박차고 나가자 홀로 남은 로버트는 책상에 앉아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다른 길드가 선수 치기 전에, 인사부터 해야 하나.’

로버트는 TV에서 보았던 한국 고궁을 회상하며, 한 여자를 떠올렸다.

‘이주영, 그 녀석도 가만히 안 있겠군.’

이주영, K그룹 회장이 애지중지하는 막내딸.

똑똑하고 당차며 배려심 많아서 하버드 재학시절 인기를 독차지하던 인물이었다.

‘재벌가 딸답지 않게 소소한 것을 좋아하는 괴상한 녀석이었지.’

보통 대학생 때면 비싼 차나 비싼 가방, 비싼 옷에 관심을 둘 만도 한데.

그녀는 매일 청바지에 아무 티셔츠나 걸치고 다녔다.

게다가 행동은 또 어땠던가.

보통 체력이 좋은 남자도 하기 힘들다는 하버드대 부설 요양병원 봉사활동을 무려 4년 동안이나 했다.

오죽하면 코리안 엔젤이라고 불렸을까.

그런 녀석이 한국에 돌아간 뒤 길드를 세웠다고 했을 때, 로버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주관 뚜렷한 그 녀석이라면 길드를 이끌고도 남을 거라고.

실제로 에이스 길드는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C□□ 뉴스에서도 종종 등장할 정도로.

‘이주영에게 뒤처질 순 없지.’

이주영과는 같은 봉사 동아리에 있을 당시 친분을 쌓은 그였다.

묘한 경쟁심이 로버트의 의욕을 불태웠다.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자.’

윌리엄의 눈이 햇빛을 반사한 호수처럼 반짝였다.

* * *

어떤 일을 하기 전에, 그 결과를 예측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12시까지 공부하면 시험범위 50%는 공부할 테고.

점수가 이 정도는 나오겠지, 이런 결과는 있겠지, 하고 대충 예상은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 예상이 모두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뭐든 예외는 있기 마련이니까.

지금 호준의 상황도 그러했다.

‘이 정도일 줄이야.’

레드 게이트를 클리어했을 때, 그도 물론 마을 사람들이 기뻐해 줄 것이라 생각했다.

기뻐하다 뿐이랴.

뭐 축하도 해주고, 격려와 포옹도 아끼지 않겠지.

여기까지가 호준의 예상이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의 환대는 그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호준 님! 오늘 장사 접구 왔수다! 호준 님이 해주는 음식 배 터지게 먹고 쉴랍니다요!”

“하하, 우리 목장도 다 접어버렸네. 여물은 잔뜩 흩뿌려놨으니 돼지나 소들도 배부르게 먹을 거여!”

가판대 상점을 운영 중인 메콩과 루돌프, 둘은 호탕한 웃음을 흘리며 가게 야외 테이블에 자리 잡았다.

그 둘뿐 아니라 아예 생업을 접고 음식점으로 들이닥친 이들이 무려 70명이 넘었다.

동굴로 피신했던 마을 사람들이 레드 게이트 클리어 소식에 감사하다고 다 찾아왔기 때문이다.

‘마음씨가 착하네.’

호준은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는 마을 사람들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동굴에 숨어있는 동안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요. 탈 없이 해결되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테이블 닦는 거라도 돕고 싶은데 어떻게 안 될까요?”

“괜찮습니다. 편히 앉아 계세요. 음… 저는 메뉴를 빨리 정하고 대접하겠습니다. 잠시만요!”

치맛자락으로 테이블을 닦겠다는 아낙네를 말리고서, 호준은 요정들과 긴급 회의에 들어갔다.

마을 사람들의 호의를 무시할 수는 없는 법이고.

남은 플레이 시간은 2시간 13분 정도.

그 시간 안에 마을 사람들을 대접하고, 장사도 해야 했다.

문제는 재료였다.

여관 오픈으로 인해 재료가 부족했다.

“마스터. 음… 고기는 조금 보충할 수 있지만 그리 양이 많지는 않을 거예요. 여관 세일로 고기가 싹 다 떨어졌거든요.”

“그렇지. 음. 김치는 있지?”

“네. 김치라면 넉넉히 있습니다. 오늘 장사할 만큼은 될 거에요.”

“그럼… 이렇게 하자.”

호준은 고심 끝에 메뉴를 정했다.

【레드 게이트 돌파 기념 파격 세일!】

【이벤트 메뉴!】

【김치전】 ― 100 골드

【해물전】 ― 100 골드

【콘치즈】 ― 100 골드

【복숭아 발효주】 ― 50 골드

【꿀사과 발효주】 ― 50 골드

이전 메뉴판에 비하면 단출한 메뉴였다.

해산물을 이용한 요리와 콘치즈, 김치전.

절임통으로 만든 발효주가 다였다.

하지만 메뉴판을 확인한 마을 주민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100골드라니. 자네 정말 미친 가격이구려. 미치고 파쳐도 되겠어요 크허허허!”

아재개그를 하며 배꼽을 쥐는 루돌프 할아버지를 보며, 호준도 같이 웃었다.

“해물전을 이 가격에 먹을 수 있다니. 내가 요나스 마을에서 살기를 잘했어. 흠흠. 자네는 요나스 마을의 보석일세 보석이야!”

“이웃 마을 김가 녀석도, 요정의 쉼터가 근처에 있다고 하니까 부러워서 죽겠다고 합니다 허허!”

한 명 한 명, 기대감으로 가득 차 눈빛이 반짝인다.

“얼른 먹고 싶어요.”

“아. 진짜 기대된다.”

“저 해물전 처음 먹어봐요! 맛있다는데. 얼마나 맛있으려나~”

눈을 반짝이며 묻는 사람들의 눈빛에는 두근거림이 가득했다.

눈빛만으로 그들이 느끼는 두근거림을 공감할 수 있었다.

누군가 자신의 요리를 기대하고, 기다려 준다는 것.

그리고 호감 가득한 미소로 바라봐준다는 것은, 생각보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경험이다.

‘요리하기를 잘했어.’

누군가를 기쁘게 해줄 수 있다는 소소한 기쁨을 마음에 고이고이 담아둔 채.

“시작하자.”

그는 반죽을 만들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이 그를 반짝이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