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를 너무 잘함-123화 (123/200)

123. 레드 게이트

“어허. 이 일을 어찌할꼬.”

윌리엄. 요나스 마을에서 촌장을 도맡은 그의 미간에 짙은 주름이 드리웠다.

그는 아들과 밥을 먹다가,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달려와 레드 게이트 앞에 막 도착했다.

“촌장님 오셨습니까.”

“크흠. 그래. 어서 마을로 돌아가게. 여기는 내가 살펴볼 테니. 주민들에게는 북쪽으로 대피하라고 얘기하게.”

“북쪽이요?”

“그래. 최대한 마을과 멀리 떨어지라고. 그렇게 전하게.”

“예. 그럼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윌리엄의 지시를 받은 주민이 헐레벌떡 마을로 달려갔다.

윌리엄은 홀로 남아 레드 게이트를 응시했다.

‘위치가 마을이랑 너무 가깝군.’

레드 게이트의 위치는 마을의 입구와 고작 50m 떨어져 있었다.

몬스터가 나타난다면 마을로 달려가기 딱 좋은 거리였다.

‘평화로운 마을이라는 수식어도 오늘까지인가.’

윌리엄은 비소를 머금으며 안경을 고쳐 썼다.

그는 예고된 재앙을 읽을 수 있었다.

【촌장 직함으로 인해 일부 정보가 공개됩니다】

【레드 게이트에 진입한 자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1시간 50분 내로 게이트를 클리어하지 못하면, 1차 웨이브가 활성화됩니다】

【1차 웨이브 몬스터 : ?? 1,000마리】

【2차 웨이브 몬스터 : ???? ?? 100마리】

【3차 웨이브 몬스터 : ???? ? 1마리】

1차, 2차, 3차 웨이브가 발생한다면 마을이 쑥대밭이 될 것은 불 보듯 뻔했다.

그나마 주민들을 미리 대피시킬 시간이 있음을 감사해야 할까.

그러나 몬스터가 지나가고 나면 잿더미만 남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동안 고생해서 일으킨 마을을, 맨땅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리라.

눈앞이 캄캄했다.

“후우….”

그가 속상한 마음에 가슴을 주먹으로 내리치는데.

“어, 레드 게이트네?”

누군가의 외침에 윌리엄은 고개를 돌렸다.

남녀 5명이 길을 따라 걸어오고 있는데 그중 한 명이 레드 게이트를 가리키고 있었다.

A자를 새긴 망토를 걸친 남녀.

‘에이스 길드군!’

윌리엄은 이미 에이스 길드에 대해 조금 알고 있었다.

최근 마을 북쪽의 노스 플레이스에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지.

윌리엄은 조심스럽게 맨 앞에 있는 에이스 길드원에게 말을 걸었다.

“아이구, 에이스 길드원님들 아니십니까. 혹시 레드 게이트 깨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사례비라면 톡톡히 드리겠습니다. 큰 금액은 아니겠지만, 여비는 되실 정도로… 드릴 수 있습니다.”

윌리엄은 말을 걸어놓고도 조심스레 눈치를 살폈다.

윌리엄의 말을 잠자코 들은 사내가 짙은 눈썹을 들어 올렸다.

그는 에이스 길드의 인재영업팀 팀장 최진철.

지금은 새로 영입한 신입 길드원들을 길드장에게 인사시키러 가는 길이었다.

최진철은 촌장의 부탁을 정중히 거절했다.

“사정은 딱합니다만, 우린 고작 다섯입니다. 보통 안전성 확보를 위해서 10명은 들어가는데. 보다시피 시간도 없구요.”

“5천 골드를 드릴 생각도 있습니다. 어떻게 안 될까요.”

“10만 골드를 준다 해도 들어갈까 말까 합니다. 여기 들어갔다가 손해를 보게되면 원상복구까지 1달을 까먹는 경우도 있는 걸요.”

“하아….”

최진철이 완강히 거절하자 윌리엄은 기가 팍 죽었다.

그는 더이상 반박하지 못하고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어려운 부탁이라는 것을 누가 모를까.

하지만 윌리엄 입장에서는 고향이 풍비박산 나는 걸 그냥 지켜볼 수 없었다.

그가 서글픈 마음에 고개를 들고는 한숨을 내쉬려는데.

“제가 들어가겠습니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하늘에서는 소리소문없이 나타난 호준이 미르를 탄 채로 내려보고 있었다.

부드럽게 미르가 착지하자 호준이 그 등에서 내려왔다.

그 뒤편에 있던 일행들도 그를 따라 내렸다.

“호준 님! 지, 진짜 들어가신다고요?”

촌장이 주먹을 부르르 떨며 묻자, 호준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십시오. 다들 준비됐지?”

“물론이죠!”

“끼루뀨냐메묭아무!”

요정 일동이 꾀꼬리처럼 대답하자, 윌리엄은 환하게 웃으며 그 옆에서 고맙다고 꾸벅꾸벅 인사했다.

“뭐야. 진짜 들어간다고?”

“저 사람… 아 그 호준인가 그 요리사 아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에이스 길드원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호준을 알아보는 이도 몇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놀라야 할 일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쿵―

“으아아! 거대뱀이다!”

“끼야악!”

“사아악―!”

소리없이 다가온 이무가 바닥에 쿵 소리를 내며 기척을 내자.

여자 길드원들이 질겁하며 소리를 질렀다.

이무는 길드원들을 사나운 눈빛으로 제압했다.

“이무. 이리와.”

“사악~”

호준의 부름에 이무는 얌전한 강아지처럼 꼬리를 말고 그 옆에 섰다.

촌장은 흐뭇하게 웃으며 이무를 보며 물었다.

“이 아이도 같이 가는 겐가?”

“그렇습니다.”

“고맙네. 정말. 자네가 살아 돌아온다면. 내 꼭 보여주고 싶은 게 있네. 부디 잘 다녀오게!”

“물론입니다.”

촌장과 호준의 대화는 훈훈한 내용이었지만.

그 광경을 바라보는 에이스 길드원들은 호기심과 시기심을 동시에 느꼈다.

“레드 게이트를 저렇게 막 들어가도 돼?”

“그러게. 고레벨 플레이어들도 나자빠지는데.”

“무슨 안전빵이 있다고 저런데?”

자신들이 단번에 거절했던 레드게이트를 쉽게 수락하는 걸 보니 왠지 자존심이 상했던 것.

그들이 중얼거리거나 말거나, 호준은 윌리엄과 원만하게 대화를 마쳤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가자!”

그는 일행들을 이끌고 게이트 너머로 사라졌다.

‘흠. 저 녀석인가.’

최진철은 호준에 대해 최근 늪괴물을 해치웠다는 정보가 전부였다.

과연 늪괴물과 레드 게이트가 비교가 될까.

‘안 될 말이지.’

레드 게이트는 몬스터 숫자가 최소 500에서 5,000마리.

알려진 것만 이 정도로 더 많을 수도 있었다.

최악의 경우를 상정한다면 절대 들어가지 말아야 할 곳이거늘.

‘무모한 녀석이군.’

최진철은 호준의 성격을 도전정신이 강하지만, 조금 무모한 성격이라고 판단 내렸다.

그러니 싱글싱글 웃으면서 레드게이트에 들어가는 게 말이 되겠지.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는 그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최진철의 곁을 지키는 신입 길드원들도 저마다의 추측을 늘어놓았다.

“음. 내 생각에는 영상 찍으려고 들어가는 모양이야.”

“자기가 죽는 영상 찍으려고? 그러네. 그렇게 생각하니 말 된다!”

“후원받으려고 별짓을 다 하네, 참.”

영상 후원을 받으려고 죽을 자리에 들어갔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그 말을 조용히 듣던 최진철은 곧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동을 시작한다. 그리고 미츠, 너는 남아서 레드 게이트가 터지는 순간 즉시 보고하도록.”

“네. 바로 보고하겠습니다!”

그렇게 미츠를 감시역으로 남겨두고 최진철은 무리를 이끌었다.

마을로 들어서는 최진철의 머릿속에는 호준의 미소를 지은 얼굴이 떠올랐다.

환하게 웃으며 윌리엄이라는 자의 어깨를 두드리던 그 모습.

‘흠. 그게 만약 허세가 아니라면, 실력이 있을지도.’

그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니, 결과가 궁금해졌다.

만약에, 아주 만약에, 호준이 게이트 클리어에 성공한다면.

‘반드시 붙잡자. 그 정도면 일당백이 가능한 녀석일 테니.’

붙잡으리라.

그를 잡는다면, 에이스 길드가 한국대표길드를 넘어서 세계 시장에 우뚝 서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물론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

그는 그리 쉬울 리 없다며 고개를 젓고는 발길을 옮겼다.

* * *

【레드 게이트에 들어오신 걸 환영합니다!】

【설산에 입장하였습니다】

【1시간 내에 백귀 1,000마리를 해치우십시오】

【1시간 내에 백귀를 모두 처치할 경우, 보상과 함께 게이트를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건투를 빕니다!】

레드 게이트 내부는.

“눈이다!”

“끼루루!”

온 세상이 눈으로 가득했다.

눈이 뒤덮이지 않은 곳을 찾기 힘들 정도였다.

설산 꼭대기에는 얼음성이 서 있고, 빙벽이 성을 에워쌌다.

설산 중반부에는 마을이 하나 들어서 있고, 마을 얼음집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백귀들을 찾는 게 먼저야.’

미르의 등에 올라탔기에 지형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 시원하니 딱 좋다 사악~ 맛도 좋다 사악!

이무는 눈위를 데굴데굴 구르며 놀더니 눈을 야금야금 먹어댔다.

안 춥냐고 물으니 비늘이 워낙 두꺼워서 하나도 안 춥다나.

“냐아~”

“아무!”

“끼루~”

【다크니스가 눈밭에 내려가고 싶어합니다】

【아무가 눈이 신기한 나머지 뿌리를 부르르 떨며 흥분을 감추지 못합니다】

【미르가 눈을 보고 달이 부서져 만들어진 가루같다고 말합니다!】

다른 요정들도 이무가 노는 것을 보자 아래로 내려가고 싶다고 아우성이었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손을 모은 채로 올려다보니 마음이 흔들린다.

하나도 아니고 여럿이 그러니, 어쩔 수 없지.

“그럼 딱 5분만 눈놀이하고, 그 후에 백귀를 잡으러 간다. 알겠지?”

“냐아!”

“끼루!”

그렇게 요정들을 눈 위에 방목했다.

요정들은 눈 위에서 뒹굴고 눈을 뭉쳐서 던지고.

나무 위에 올라타서 눈 위로 뛰어내리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놀이를 고안해서 놀았다.

깔깔대며 웃는 요정들을 뒤로 한 채로, 호준은 홀로 숲을 거닐었다.

소복 소복―

숲속에는 덤불이 많았는데, 눈이 쌓여서 복슬복슬한 강아지가 웅크린 것 같았다.

조용한 하얀 숲은.

숨이 턱 막힐 만큼 아름다웠다.

새하얀 물감이 뿌려진 세상에, 홀로 유채색을 띄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끝내주네.”

만약 여기가 레드 게이트만 아니었더라면 캠프파이어 해도 참 운치가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경치를 관람하고 있는데.

부스럭―

수 미터 떨어진 덤불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호준은 칼을 챙겨 들고 긴장상태를 유지했다.

덤불 안에서 뭔가 불쑥 튀어 나왔다.

“이히히히히!”

180cm 가까이 정도 되는 키에 눈처럼 하얀 피부.

비쩍 마른 체형.

백발머리를 휘날리며 새빨간 혀를 날름거리는.

“백귀로군.”

“키아앙!”

백귀의 핏빛 안광이 호준에게로 향했다.

백귀의 울음소리와 함께 그 동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키이이이!”

“크아아아!”

다른 덤불에서 3마리가 추가로 튀어나왔다.

총 4마리의 백귀들이 혀를 대롱대롱 흔들더니.

“크아앙!”

네 발로 뛰어오기 시작했다.

녀석들의 위험한 점은 저 유연성있고 단단한 혀였다.

백귀의 혀는 180도로 꺾일 만큼 자유자재로 휘며, 길이가 수 미터나 늘어났다가 줄었다 했다.

더군다나 쇠도 자를 만큼 단단하며 혀 전체에 날카로운 침이 수백 개 박혀 있었다.

‘닿으면 살에 구멍이 뚫리겠지.’

쉬리리릭―

침을 바짝 세운 혀들이 점점 가까워진다.

“키이이이!”

광기에 가까운 백귀들의 웃음소리.

그러나 호준은 차분했다.

그는 손바닥을 백귀에게 향한 채로 외쳤다.

“염력.”

그 순간, 호준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지만.

그의 염력을 받아 두둥실 떠올랐다.

“크아아?”

“크응?”

개처럼 달려들던 백귀들이 염력으로 인해 공중에 둥 떠오른 것.

백귀들은 몸이 완전히 뒤집히는 바람에 혀가 이리저리 흔들렸고.

서걱 서걱―

엉뚱한 나무들이 잘려나갔다.

혼란스러워 하는 백귀들에게 호준은 최후의 일격을 날렸다.

“죽어라.”

푸푹―

타타니홀의 대검이 백귀의 심장을 연달아 꿰뚫었다.

하나, 둘, 셋.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 마리.

“끄르르르― !”

심장들을 차곡차곡 다 꿰뚫은 순간.

“회전!”

그는 손가락을 빙그르르 돌렸다.

검이 360도로 회전하며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순간.

“끼에에엑―”

“꾸으윽!”

“케엑!”

【백귀를 처치했습니다】

【백귀를 처치했습니다】

【백귀를 처치했습니다】

【백귀를 처치했습니다】

【백귀를 한 방에 처치하기 4콤보 달성!】

【100콤보 달성시 특별한 보너스가 주어집니다!】

새하얀 피가, 새하얀 눈밭에 흩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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