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를 너무 잘함-122화 (122/200)

122. 보물단지

시골에서 살던 호준에게 치킨이란, 자주 접하기 힘든 진미였다.

그런 깡촌에서 치킨을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바로 아버지가 읍내에 나가실 일이 있을 때였다.

아버지가 나갈 채비를 하면, 호준은 그 자신이 어디 나가는 것도 아닌데 설렜다.

아버지가 외출하면 치킨을 먹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생겼으니까.

설렘으로 가득 찬 채, 아버지가 돌아오길 기다리다보면.

“호준아. 치킨 먹자!”

아버지는 바스락거리는 치킨 봉다리를 내미시며 술을 한잔 걸치고 들어오셨다.

그렇게 기다림의 시간이 끝나고 기쁨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잘 먹겠습니다!”

우걱우걱―

기다림 끝에 주어진 보상은 최고였다.

종일 기다린 치킨은 정말 맛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먹다가 정신을 차리면.

“천천히 먹어라. 체할라. 누가 안 뺏어 먹어.”

아버지는 웃으며 내려다보기만 하실 뿐, 치킨에는 일절 손 대지 않으셨다.

이렇게 맛있는 치킨을 왜 안 드시는 걸까.

어린 호준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래서 참지 않고 질문했다.

대체 왜 안 드시냐고.

그러자 아버지는 웃으며 대답하셨다.

“네가 먹는 거만 봐도 배부르단다.”

흠. 먹는 걸 보는 것만으로 배가 부르다니.

어릴 적 호준은 그 말을 도통 이해하지 못했다.

너무 어렸기도 했고 어려운 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주 조금,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몇몇 요정들을 불러모아 솜사탕을 내밀었고.

다들 꽃이 핀 것처럼 환한 얼굴로 환호성을 내질렀다.

“와, 솜사탕이다아!”

“끼루끼루!”

“아무!”

어찌나 좋아하는지.

아무와 미르는 입에서 침이 뚝뚝 흘리기까지 한다.

더 흘리지 않게 솜사탕을 입안에 넣어주니 우걱우걱 씹는다.

“냐아아~~”

“묘옹!”

다크니스와 송이가 어서 자기들에게도 달라며 정강이를 베베 감싸고 기어올라올 태세다.

둘의 입 속에도 솜사탕을 쏙 넣어주었다.

“메에!”

“뀨우!”

“뀨뀨!”

물가에서 놀던 메이, 토순이, 핑구도 뒤늦게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다들 헤벌쭉 웃는 것을 보니 솜사탕이 반갑긴 반가운 모양이다.

마지막 타자들에게도 솜사탕을 넘기고.

‘사 오길 잘했네.’

호준은 흐뭇하게 웃으며 솜사탕을 먹느라 행복해하는 요정들을 바라봤다.

다들 몸을 부르르 떨며 기뻐했다.

‘아버지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왜 보기만 해도 배부르다고 하셨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다녀오셨어요!”

별이가 뒤늦게 합류했다.

그녀 뒤로 베티와 샤롯도 손을 흔들며 걸어온다.

호준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다녀왔다.”

드디어 집에 돌아왔다.

* * *

요정의 쉼터 2호점.

2호점 앞으로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는 간단했다.

파격적인 가격인하에 다들 귀가 솔깃했던 것.

― 세일이라고?

― 흠. 한번 둘러나 볼까?

― 어차피 필요한 거 있으면 사야 했으니까. 지금 사서 나쁠 것 없지.

평소에 요리를 사 먹고 싶었지만 지갑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사람들이.

세일 소식을 듣고 지갑을 열기 시작했던 것이다.

1만 원짜리를 5천 원에 살 수 있다고 하면.

누구나 한 번쯤은, 그게 뭐지? 하고 들여다보지 않던가.

파격 세일이라는 홍보 방법은 지갑을 열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더군다나 SNS를 타고 입소문이 퍼지면서 가게는 이미 꽉 차고.

바깥에 줄이 늘어섰다.

“후기 들어보니까 입에서 살살 녹는대. 기대된다!”

“다 매진되면 어쩌지?”

“앞에 들어간 사람들이 나올 생각을 않네.”

“아. 배고프다. 배고파.”

줄을 선 사람들은 기대감에 부풀었다.

사람들은 어느새 모이고 모여 50명이 넘어섰고.

이때가 불과 세일 공지를 올린 지 30분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가게 안은 50명 정도 들어간다지?”

“그럼 100명이 넘게 온 거네. 많이도 모였다.”

즉, 식사를 하는 손님들까지 도합 100명이 넘는 손님들이 몰린 것.

작은 시골 마을이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자, 다음 손님! 반갑습니다! 어여쁜 아가씨. 좋은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어서 들어오세요! 멋진 신사님. 재킷이 세련되시네요?”

“많이 기다리셨죠?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를 따라와 주시겠어요?”

까마귀 종업원, 까미가 손님들을 일일이 맞이했다.

까미가 문을 열고 나올 때마다, 그를 알아보는 손님들은 속닥거리며 얘기했다.

“그 씨앗에서 나온 까마귀야!”

“은근 귀엽네? 왠지 철두철미한 집사 같은 느낌이랄까.”

“그러게. 까마귀가 말이 유창하니까 신기하네.”

몇몇은 까미의 사진을 찍어서 업로드했다.

가게 건물 근처에 서서 인증사진을 찍는 이들도 있었다.

마치 관광지를 방문한 것처럼, 사람들은 들떴다.

“저, 이 줄은 뭔가요?”

“무슨 행사라도 있어요?”

지나가던 플레이어 한 명이 질문하자, 팔짱 낀 채로 줄을 선 남자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요정의 쉼터 2호점 오픈 행사입니다.”

“무슨 행사길래 이렇게 사람이 많아요?”

“가격을 반값 이하로 판다고 그럽디다.”

“반값이요? 정말요?”

“그렇소. 반값. 그러니 줄을 서는 게지.”

“저도 서야겠네요. 아저씨 뒤에 서면 되는 겁니까?”

시민이 밝게 웃으며 남자의 뒤편에 따라붙자, 남자는 검지를 좌우로 흔들었다.

“노노! 새치기는 안 되지.”

“예? 새치기요? 하지만. 이 뒤에 아무도 없잖아요?”

“아무도 없기는. 이 뒤로 도로라서 줄이 끊긴 겁니다. 저기 반대편 골목 보이죠? 저기 사람들이 쭉 서 있잖아요. 당신을 노려보고 있군그래.”

시민은 남자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서야 보고 말았다.

“이런….”

도로 너머에서 자신을 째려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그들은 반듯이 줄을 서 있었다.

설마 이렇게 많이 줄을 섰을 줄이야.

그의 입이 커다랗게 벌어졌다.

“저쪽 줄 뒤로 가서 서쇼.”

“예예.”

시민은 붉어지는 볼을 손바닥으로 감싼 채로, 도로 저편으로 뛰어갔다.

그는 맨 뒤에 서고 나서야, 눈총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휴우~”

그는 숨을 크게 내쉬고는 앞을 바라보았다.

‘정말 인기 많네.’

과연 이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뒤에도 요리가 남아있으려나.

‘세일이라니 한번 먹어보자.’

자신에게도 식사할 기회가 있기를 바라며, 그는 기대에 찬 눈으로 가게를 바라보았다.

* * *

“호준 님, 가게가 가득 찼어요. 손님들도 계속 물밀 듯이 밀려오구요!”

“마스터! 대박입니다! 손님들 줄이 끊기지를 않아요!”

“그래. 잘됐네.”

호준은 부드럽게 웃으며 메신저 구슬에서 뜨는 전광판 화면을 바라보았다.

유나와 까미는 환한 얼굴로 2호점 개시 성공을 알렸다.

‘공지사항을 올리길 잘했군.’

공지사항의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린 결과.

단시간 내에 사람들이 몰렸다.

이 기세를 몰아, 지금 요리 재료가 떨어지면 다른 요리도 선보일 생각이었다.

“다들 힘내고. 재료를 더 넉넉히 보낼 테니 혹시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 유나 씨도 수고해요!”

“네. 명심하겠습니다. 마스터.”

“열심히 할게요. 호준 님!”

파이팅넘치는 둘과 통신을 해제하고서 호준은 기지개를 켰다.

잠시 동안 나무 그늘 아래에서 휴식 중이었다.

요정들은 호숫가에서, 혹은 농장에서, 혹은 닭과 소와 노느라 뿔뿔이 흩어졌다.

스륵—

조용한 와중에 쌀쌀한 바람이 부니, 가을 정취가 느껴졌다.

“하아. 한숨 잘까?”

종일 돌아다녔으니 조금은 쉬어도 괜찮지 않을까.

호준은 깍지를 끼고 머리를 벤 채로 드러누워,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흘러가는 구름하나, 토끼구름 둘, 멍하니 구름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는데.

쿵―

강한 진동이 그의 심장을 뒤흔들었다.

그 힘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듯했다.

본능적으로 흘러나오는 기운이 강한 것이 느껴졌다.

‘늪괴물보다 더 강한 느낌이야.’

태산만 하던 늪괴물보다 더 소름 돋는 듯한 감각이었다.

그 방향은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이쪽이야.’

호준은 숲길을 날듯이 달려 마을로 갔다.

토끼바위를 지나 북쪽으로 계속 걸어가면 나오는, 마을로 가기 직전의 코너.

웅성웅성―

그곳에 마을 사람들이 10여 명이 모여있었다.

그들은 뭔가를 보며 수군거렸다.

사람들을 수군거리게 한 정체가 무엇인지는 곧 알 수 있었다.

붉은색 링의 형태를 띈 게이트.

레드 게이트였다.

‘레드 게이트가 여기도 뜨네?’

마을 사람들은 목소리를 떨며 걱정을 털어놓았다.

“누가 촌장님 빨리 불러와!”

“2시간 안에 없애지 않으면 큰일 난다고!”

“마을이 쑥대밭이 될 거야!”

레드 게이트는 모두가 기피하는 게이트였다.

‘실패 페널티가 커서. 대부분은 들어가길 꺼려하지.’

레드 게이트의 페널티가 어느 정도냐 싶겠지.

심한 경우 10일 동안 경험치의 70%가 감소하는 디버프가 걸렸다.

10일 동안 아무리 레벨업을 하려 해도 헛발질만 해야 하는 것.

더군다나 레벨이 3이상 다운되는 페널티도 레드 게이트에서는 흔했다.

그래서 이런 페널티를 감수하면서까지 도전할 정도로, 레드 게이트가 값어치 있다고 여겨지지는 않았다.

“자네. 몬스터 레벨이 몇인지 보이나?”

“아니. 물음표로만 뜨네.”

“하긴. 당연히 그렇겠지. 레드 게이트니. 죄다 물음표만 뜨니 뭘 알 수가 있나.”

지나가던 플레이어들이 넋두리를 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레드 게이트는 게이트에 관한 정보가 제한되어 있었다.

【레드 게이트】

【몬스터 레벨】: ????

【보상】: ???

【실패 시】: ???

그래서 게이트 내에서 마주치는 몬스터 레벨도 알 수 없다.

‘레벨 60짜리가 나올지, 40짜리가 나올지 알 수 없다는 거지.’

즉, 어떤 몬스터가 나올지는 복불복이었다.

복불복이 성공을 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실패했지. 그래서 최악으로 꼽히고.’

마을 주민들이야 이곳에서 사니까, 게이트가 클리어되기를 바란다.

한 중년의 마을 주민은 지나가던 플레이어의 옷깃을 붙잡고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저기, 많이 강해 보이시는데. 이 레드 게이트 좀 해결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레드 게이트를 클리어해달라는 하소연.

그러나 상대방은 기겁하며 팔을 뿌리쳤다.

“미쳤다고 저길 들어갑니까? 그것도 혼자서?”

“아니. 그렇지만 계속 놔두면 몬스터가 창궐할 테니. 누가 들어가야 하지 않겠소.”

그 말에 플레이어는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한다는 듯 비웃음을 머금었다.

“레드 게이트는 10명 이상이 들어가도 성공할까 말까 한데. 나 혼자 들어가라는 거요? 그리고 뭐가 나올지도 모르는 게이트는, 안 들어가는 게 상책이요.”

“아, 그건….”

플레이어의 말에 마을 사람들은 입만 달싹일 뿐, 반박하지 못했다.

그만큼 위험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참. 별 꼴을 다 보겠군.”

플레이어는 비웃음을 날리고 제 갈길을 갔다.

마을 사람들은 풀이 죽은 채로 뿔뿔이 흩어졌다.

“아내를 데리고 윗마을로 넘어가던가 해야겠어.”

“뒷산 동굴을 타고 넘어가자고. 거기서 30분 뒤에 보세.”

몇몇은 피신 준비를 했고 게이트 앞에는 두서넛의 사람만이 남았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호준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네.’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왜 흐릿하게 보이지?’

게이트 정보창이 블러 처리된 것처럼 뿌옇게 보였다.

너무 피로해서 눈이 이상해진 것일까.

의아한 마음에 눈을 비비적 거리고 다시 뜨는데.

흐릿했던 시야가 밝아지더니, 메시지가 떴다.

【요정왕의 권능으로 게이트 정보를 열람할 수 있습니다】

‘정보라니? 무슨…?’

호준은 눈을 크게 뜨고 깜박이다가 발견했다.

레드 게이트, 그 위로 뜨는 메시지를.

그 메시지는 그가 예상한 것과는 천지차이였다.

【레드 게이트】

【권장 레벨】: 40 ~ 50

【출몰 몬스터】: 백귀 1,000마리

【제한 시간】: 1시간

【보상】

1. 대백귀의 빙백검 1개

2. 칭호 백귀를 다스리는 자

3. 7일간 경험치 300% 버프

4. 플라테논 신전의 열쇠(히든 던전 열쇠)

【실패시】

* 레벨 ― 5 감소.

* 7일간 경험치 ― 50% 디버프 부여

* 7일간 전 스탯이 30% 저하.

정보가 가득 담긴 정보창을 본 순간, 호준은 깨달았다.

‘안 가면 바보네.’

그에게 레드 게이트는, 애물단지가 아니라 보물단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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