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 씨앗 괴물
노릇노릇한 장판 위.
한 남자가 누워서 핸드폰 화면을 올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가 미소짓는 이유는 하나.
【띠링―!】
【관심뉴스가 업데이트되었습니다!】
【늪괴물 VS 호준, 치열한 전투영상 지금 바로 확인하세요!】
“우리 아들 얼굴이나 한번 볼까.”
아들의 활약을 지켜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했기 때문이었다.
투박한 손가락이 자동으로 링크를 향했다.
링크를 클릭하자 영상이 재생됐다.
― 콰직 콰지직
― 쿠아아!
― 쿠쿵!
용을 타고 날아다니는 아들의 뒷모습은 참으로 늠름해 보였다.
언제 이렇게 듬직하게 자란 것일까.
세월이 참으로 빠르다.
“누구 아들인지 몰라도 멋지네.”
고슴도치 아버지처럼, 그는 자식의 대견한 모습을 보며 흐뭇한 얼굴이 되었다.
풀 HD로 펼쳐지는 다채로운 색감의 영상은 아들의 활약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었다.
‘과연 사람들이 유토피아 유토피아 노래를 부를 만하군.’
유기준은 새삼 피부까지 생생하게 표현되는 기술력에 감탄했다.
‘저녁이 오려면 아직 멀었나.’
시계를 보니 오후 2시를 조금 넘겼다.
하루하루 시간이 빨리 흘러가는 나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따라 참으로 하루가 길게 느껴졌다.
유기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애써 조바심을 달랬다.
“뭐. 호준이가 어디를 가는 것도 아니고. 급할 건 없지.”
그렇게 중얼거리던 그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하도 누워있었더니 허리가 아팠다.
그렇게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다른 영상들을 마저 보려는데.
안방 문이 열리고 아내가 걸어 들어왔다.
마실을 다녀온 아내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스트레스를 시원하게 풀고 온 모양이다.
“여보! 점심은 비빔국수 어때요?”
“좋지. 열무도 넣자고.”
“그래요. 웬일로 기분이 좋아보이네요. 흠. 읍내 김 씨네 놀러 갈라구?”
“아들 얼굴을 보니 좋아서 그렇지.”
“어디. 나도 좀 보여줘 봐요!”
유기준은 영상을 재생해 아내에게도 보여주었다.
영상의 주인공이 아들임을 밝히자, 호준의 어머니 이미자는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어머. 이 주인공이 진짜 우리 아들이라고요?”
“그려. 손깍지하는 버릇도 똑같고. 요즘 이 게임 한다고 그랬거든. 호준이 얼굴이랑 외모도 똑같지 않나. 말하는 버릇도 목소리도 똑같아.”
“어머어머. 우리 아들이 뉴스도 나오고. 이럴 때가 아니지. 나 잠깐 마실 좀 갔다 올 테니까 밥은 조금 이따 먹읍시다.”
외투를 벗으려던 아내가 다시 외투를 걸쳐 입는 것에, 유기준은 피식 웃었다.
아내의 입꼬리가 활짝 올라간 것이, 어느 때보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알아서 먹을 테니 갔다 오라고.”
“갔다와요!”
유기준은 굳이 묻지 않아도 아내가 어디로 갈지 알고 있었다.
‘동네 친구들이 모인 마을회관에 가려는 거겠지.’
추수철이 지나면, 마을 사람들은 마을회관에 모여 고구마를 구워먹느라 모여있다.
오순도순 옥수수, 고구마를 구워먹으며 수다삼매경에 빠지겠지.
기지개를 쭉 켜며 식사라도 할까 하는데.
핸드폰 알림 소리가 들렸다.
【띠링!】
【요정의 쉼터 라이브 방송을 시작합니다!】
【바로 보기!】
“라이부? 라이부라면, 그 생방송 말하는 거던가?”
그는 갸웃하며 바로보기를 클릭했다.
그러자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하며 화면 하단부에 메시지가 떴다.
【당신은 게스트132님으로 요정의 쉼터에 입장했습니다!】
“흠. 게스트 이게 내 이름인 모양인데. 들어가긴 했군!”
그는 화면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싱글거리는 아들의 얼굴은 어릴 적 초등학생 때의 밝은 기운이 느껴졌다.
사회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즐거움이 담긴 얼굴이었다.
“안녕하세요! 게스트132님, 반갑습니다!”
아들의 인사에 유기준은 피식 웃었다.
흠. 말을 걸었으니 답은 해 줘야겠지?
“채팅 채팅창이. 요건가!”
농사일로 굵직해진 손가락으로 유기준은 열심히 타자를 쳤다.
【게스트132】: 반강슴니다
그렇게 부자가 시공간을 뛰어넘어 마주했다.
비록 한쪽 당사자는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지만 말이다.
* * *
【게스트132】: 반강슴니다
호준은 오타투성이인 답변에 피식 웃었다.
아마 타자에 익숙하지 않으시거나 연세가 있으신 분인가보다.
“저도 반갑습니다 게스트132님! 잘 부탁드립니다. 다른 모든 시청자분들께도 인사드립니다. 저는 요정의 쉼터 가게를 운영 중인 호준이라고 합니다. 이미주 PD님과의 협업 이후 처음 인사드립니다.”
호준은 방송구름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방송구름을 좀 더 높이 위치시키자, 그의 뒤편으로 농작물들이 화면에 잡혔다.
양파, 고구마, 옥수수, 황금 쌀 등.
수많은 작물들이 바람이 부는 대로 휘청휘청했다.
“여긴 제 농장이고, 이곳에서 수확한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팔고 있습니다. 오늘은 브이로그를 찍어보려고 하는데요. 제 일상은 어떤지 소개하겠습니다!”
└ 오. 브이로그 좋아요!
└ 궁금한 거 물어봐도 되나요?
└ 저두요 저두요!
└ 미투!
“물론입니다.”
호준이 흔쾌히 수락하자 질문이 빗발쳤다.
많은 종류의 질문이 있었지만, 그중 가장 많은 질문은 악마의 정원에 관한 것이었다.
└ 대체 어떻게 악마의 정원까지 한 번에 갔다 오신 건가요? 거기까지 가는 데는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린다고 알고 있는데요? 어떻게 하루도 안 되어서 갔다 오신 건지 알고 싶습니다!
질문의 요점은, 어떻게 남들과 다르게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냐는 것.
유토피아에서 이동시간을 스킵했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이점으로 작용했다.
그러니 시청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나올 만한 질문이었다.
물론 호준은 답을 생각해 둔 상태였다.
그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부분은 답할 수 없는 점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아시다시피 저를 공격하려는 분들이 아주 많아서요. 제 힘을 다 오픈할 수는 없습니다.”
└ ㅇㅇ. 그건 그렇죠.
└ 호준 님 입장에선 저 말도 맞음. 습격하는 사람들도 한둘이 아니었고.
호준의 발언에 시청자들도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궁금한 것도 궁금한 것이지만, 마을이나 도시 바깥 공간에서는 언제든지 혈투가 벌어질 수 있었으니까.
그러니 자신을 오픈하지 않을 권리도 충분히 있었다.
└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 궁금하긴 했는데. ㅇㅇ. 이해함.
“제게 단시간에 이동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그 정도로 이해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자, 저기 보면 지난번에 태어난 병아리들이 뛰어노는 게 보이네요!”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방송구름이 각도를 틀어 줌인했다.
― 호준이다삐약!
― 이상한 게 떠다닌다삐약!
― 냠냠냠 배고프다삐약!
병아리들이 종종거리며 달려와 품에 안겼다.
녀석들은 품에서 벗어난 뒤에도 주위를 빙글뱅글 맴돌았다.
“배고프지? 황금 쌀가루 먹자.”
― 와 쌀가루다 삐약!
― 나는야 쌀가루 나는야 쌀가루 삐약!
― 호준이 최고다 삐약!
쌀가루를 바닥에 뿌려주자 병아리들이 부리로 콕콕 찍어 먹었다.
신이 났는지 꼬리도 살랑살랑 흔들렸다.
콕콕콕―
잘 먹는 모습이 기특해 쌀가루를 한 움큼 더 뿌려주었다.
콕콕콕거리는 병아리들을 잠시 지켜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충분한 쌀가루를 뿌려준 뒤, 다시 발을 옮겼다.
농장을 한 바퀴 쭉 돌며 요정과 이무를 소개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 진짜 식구 많다.
└ 가족 같아요!
└ 다들 바쁘다 바빠!
“종일 지내다 보니 정이 들었죠. 제 일도 많이 도와주고 있어서 여러모로 고맙답니다.”
호준은 자연스레 진행을 하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악마 씨앗을 심을 장소를 물색하는 것이었다.
‘구석이 좋겠지.’
혹시 몰라서 최대한 구석에 콕 박힌 농지로 향했다.
마침내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자, 그는 씨앗 주머니를 꺼내 들었다.
“자, 그럼 마지막 피날레로 이번에 얻은 씨앗을 한번 심어보겠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씨앗은 심는 법이 아주 간단합니다. 이렇게 씨앗을 꺼내서 농지에 뿌리면 되죠. 이 씨앗은 제가 특별한 경로로 얻은 씨앗이라서. 어떻게 발아하는지 직접 보여드리겠습니다.”
└ 오. 특별한 경로라. 그냥 씨앗이 아닌 듯!
└ 뭐지뭐지!
└ 궁.금.궁.금
호준은 씩 웃고는 주머니에서 꺼낸 씨앗을 심고 흙을 덮어준 뒤에.
바가지에 담긴 물을 끼얹었다.
“물도 줬으니, 이제 자라나는 것만 기다립시다. 참 쉽죠?”
알아서 식물이 잘 자라면 그때 돼서 소개를….
‘응? 왜 안 자라지?’
뭔가 이상했다.
원래 씨앗은 이쯤 되면 쑥쑥 자라났다.
마치 식물 다큐멘터리에서 본 새싹이 성장하는 영상처럼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런 성장도 보이지 않고.
땅이 들썩이지도 않았다.
호준의 눈썹이 위로 쓱 올라갔다.
└ 잉? 왜 안 자라지? 씨앗이 이상한 거 아닌가요?
└ 하급 씨앗도 바로바로 자라던데? 렉인가?
└ 렉이면 방송도 멈췄겠지. 흠. 상한 씨앗인가요?
농사에 대해 알고 있는 시청자들도 의문을 가졌다.
당연히 적용되는 룰이 당연하지 않게 되니 의문을 가지는 것.
호준도 마찬가지로 의아했다.
“흠. 일단 씨앗을 다시 한번 심어보겠습니다!”
그는 침착하게 씨앗을 덮은 흙을 제거했다.
흙을 제거하자 보라색 씨앗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대로 있네.’
보라색 씨앗은 뾰족한 부분이 위를 향하도록 잘 박혀 있었다.
심었던 상태 그대로였다.
‘일단 다른 데다가 심어보자.’
그가 손을 뻗어 씨앗을 꺼내려는데.
그때 가만히 있던 씨앗에 변화가 일어났다.
└ 어 잠깐만! 저거, 입 같지 않음?
└ 뭐, 입이라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어? 진짜!
└ 있다. 저거 봐 입 벌리잖아!
시청자들은 경악했다.
보라색 씨앗이 반으로 갈라져 악어 입처럼 쫙 벌어지더니.
“촉수…?”
붉은색 촉수 혀 10여 개가 튀어나왔다.
30cm가량의 촉수 혀들은 뭔가를 찾는 듯 흙바닥을 기기 시작했다.
└ 뭐야. 저거 씨앗 맞아?
└ 살아 움직이는데요?
└ 와, 소름…!
└ 씨앗이 살아있어!
└ 징그러워용
└ 호준 님, 저거 뭔가요. 죽입시다! 킬!
그 자리에서 유일하게 호준만은 침착했다.
그는 침착한 얼굴을 한 채로 눈앞의 메시지를 읽었다.
‘아…!’
【악마의 탄생을 위해서는 주인과 종속계약을 맺어야만 합니다】
【신체 일부를 씨앗에게 먹여 종속계약을 맺으세요!】
저 씨앗이 찾는 것은 자신의 주인이 되어줄 존재였다.
그리고 신체 일부를 주라 하는 미션의 경우.
적절한 부위가 있었다.
‘그거야.’
그는 실수인 척 어깨를 으쓱하며 카메라를 슬쩍 가렸다.
카메라가 완전히 가려진 순간, 재빨리 앞머리를 뽑아 씨앗에게 던져 주었다.
츄와압―
촉수는 머리카락을 그대로 씨앗 안으로 빨아들였다.
머리카락은 그대로 씨앗 안에 들어가 형체가 사라졌다.
호준은 다시 어깨를 내리고서 화면으로 씨앗을 잡았다.
쿵― 쿵― 쿵―
└ 오. 심장 소리가 들림!
└ 뭐야!!
씨앗에서 심장박동 소리가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쿵쿵거리던 소리는 북소리처럼 볼륨이 커졌다.
씨앗도 소리에 걸맞게 크게 팽창해 사람이 들어가도 될 정도로 커졌다.
쩌저적―
마침내 씨앗 틈이 갈라지고 거센 돌풍이 불었다.
휘이이잉―
돌풍은 나무들이 휘청거릴 정도로 강렬했다.
호준은 바닥에 납작 엎드려 상황을 차분히 지켜보았다.
씨앗을 뚫고 나온 것은 육안으로 보기엔 검은색 연기였다.
‘그냥 연기가 아니야…!’
돌풍을 따라 돌던 검은 연기는, 하나의 구를 형성하더니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마침내 돌풍이 가라앉고.
호준은 짧게 숨을 내쉬며 앞을 보았다.
“후우!”
【계약이 성사되었습니다】
새까만 존재가 한쪽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하는 자세를 취했다.
녀석의 낮고 굵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마스터!”
【까마귀 악마가 당신에게 충성을 맹세합니다!】
【까마귀 악마는 태초부터 당신에게 충성을 맹세하였기에, 절대로 당신을 배반하지 않습니다!】
까마귀의 머리와 날개.
사람의 팔과 다리를 가진 악마.
└ 으악! 씨앗괴물이다!
└ 뭐야 저 까만 건?
그는 탄생과 동시에, 씨앗 괴물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