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특별한 씨앗
“미주야. 티저 준비됐어! 확인해 봐.”
“오케이. 어디 보자.”
혜정이 완성본을 재생하자 미주는 빤히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12초.
지극히 짧은 영상이지만 담을 만한 내용은 다 담았다.
‘잘 만들었네.’
티저답게 궁금증을 유발하며 마무리되었다.
확인을 마친 미주는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좋았어. 이대로 올려!”
“공지도 올려야지?”
“공지는 내가 올릴게. 그나저나 편집 잘 됐다.”
“내가 누군데. 당근 잘 해야지.”
혜정과 미주는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일에 매진했다.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사무실에 울려퍼졌다.
마침내 티저 및 공지 등록 완료.
【늪괴물 티저 업로드 완료!】
【공지 등록 완료!】
“후우!”
“드디어 올렸네!”
티저를 업로드한 이유는 일종의 홍보였다.
티저로 바람을 잡아 메인 영상에 더 시선이 쏠릴 수 있도록 하는 것.
보통 티저가 올라가면 유입도 안 올리는 것보다 월등히 높아졌다.
이제 티저도 올렸으니, 메인 영상을 멋지게 편집하는 일만 남았다.
“후아!”
미주는 기지개를 쭉 켜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가볍게 어깨 스트레칭을 마치고서 창을 새로고침했다.
【조회수】: 1,576명
조회수도 급상승 중이었다.
의욕도 샘솟는다.
“좋았어. 혜정아. 시작하자!”
그렇게 늪괴물 전투 영상이 재창조되기 시작했다.
* * *
사람들이 선호하는 음식이 다양하듯이.
사람들이 선호하는 영상도 그 종류가 다양했다.
└ 일단 재미있어야지.
재미를 최고로 치기도 하고.
└ 교육적인 것도 나쁘지 않음. 궁금한 게 있어서 보는 거니까.
정보를 얻기 위해, 일목요연한 영상을 원하기도 했다.
└ 화끈하게 싸워야 제맛이지.
화끈한 전투씬과 그를 통한 대리만족을 원하는 경우도 있고.
이렇게 시청자의 요구는 다양하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모든 시청자들이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건 바로.
└ 빨리빨리 올리면 최고!
└ 뭐든 성실하면 최고지!
빨리빨리 양질의 영상을 올리는 것.
더 자주, 좋은 영상을 업로드할수록 마음이 열리는 법이다.
└ 티저 영상 올라왔대!
이미주가 빨리빨리 올린 티저 영상에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반응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 요정의 쉼터 TV 티저 영상 공개!
└ 늪괴물 vs 호준
늪괴물 티저 영상 공개 소식은 SNS를 타고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했다.
└ 오 벌써? 병아리 기사 올린 지도 얼마 안 됐는데ㅋㅋ 개빠르네!
└ 늪괴물 영상?
└ 늪괴물은 발견하기 엄청 어렵지 않나?
└ ㅇㅇ, 요새 보기 힘들지. 진흙에 파묻혀 사는 데다가 트리거가 발동하지 않으면 안 나옴.
└ 트리거?
└ 일종의 장치 같은 건데, 그 장치를 건드려야 나타남. 그러니까 만나기 까다롭지.
늪괴물은 등장하는 비율이 극히 적어서 희귀했고 그래서 더 관심을 끌었다.
└ 혼자 잡기는 엄청 힘들대.
└ 마법사들이 떼거지로 달려든다는데. 혼자 잡을 수도 있나?
└ 덩치가 산처럼 커서 비행 능력 필수임. 못 날면 백퍼 늪에 빨려 들어간대. 혼자 싸우면 저세상 행일 듯.
└ 늪으로 파도 만들어서 그대로 먹혀버림!
목격자들의 말도 이어졌다.
늪괴물은 혼자 사냥하기 까다롭고 그래서 혼자서 상대하기는 매우, 지극히 어렵다고.
그래서 티저 제목을 보고 의구심을 거두지 못하는 이들도 존재했다.
【늪괴물 VS 호준】
└ 제목으로 어그로 끄는 거 아님?
제목은 어그로일 뿐, 실제로 싸우지 않는 것 아니냐고.
실제로 100초 안에 해치우기 같은 어그로성 제목이 난무하는 분위기였기에, 그런 의심도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 헐. 공격하는데?
└ 진짜?
└ 응, 진짜.
그러나 영상을 본 이들은 그런 예상을 뒤엎는 정보를 물어왔다.
실제로 호준이 싸운다는 소식이 바로 그것.
그 소식이 퍼지자 티저 영상의 조회수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콰쾅―
웅장한 클래식 음악, 비장한 분위기 속에서 호준이 늪괴물과 마주했다.
늪괴물과 비교하면 그는 먼지처럼 작았다.
극단적인 크기 차이.
보는 이의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쿠아아― !
늪괴물의 맹렬한 포효도 그를 멈추지는 못했다.
거인을 향해 칼을 빼 들고 달려드는 장면이 이어졌다.
그가 늪괴물이 부딪치기 일보 직전.
― To Be Continued―
영상이 뚝 끊겼다.
겨우 12초짜리 영상.
순식간에 흘러가는 영상임에도 불구하고 임팩트가 있었다.
댓글창에는 호평이 쏟아졌다.
└ 오오!
└ 이야! 패기 쩌는데?
└ 와. 영화 예고편인 줄.
└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티저만으로도 충분히 멋진데? 불필요한 자막 넣으면 오히려 몰입 깨질 듯.
└ 남자가 봐도 멋있다.
빠른 업로드를 촉구하는 댓글이 이어졌다.
└ 감질맛 나네요. 얼른 본편 올려주시죠. 추천 구독과 구독은 꾹 눌렀습니다. 충성충성! (추천 3,393, 비추천 13)
└ 미주님, 여기 당근을 드릴테니 얼른 올려주시죠! 기다리다 현기증 나겠음 (추천 1,322, 비추천 21)
└ 미르 이제 본 실력 나오는 건가? (추천 552, 비추천 0)
그렇게 늪괴물을 깨부수는 메인 영상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요정의 쉼터 공식 SNS에는 단문의 글이 올라왔다.
【늪괴물 대격돌 메인 영상, 1시간 뒤 공개!】
└ 역시 뭘 아네! 한국인이야.
└ 빠름 빠름!
└ 며칠 안 끌어서 좋다. 기다릴게요!
└ 역시 일 잘하는 피디님!
티저의 효과는 여러모로 훌륭했다.
* * *
‘반응 좋고!’
댓글 반응을 지켜본 미주의 입꼬리는 활짝 올라갔다.
예상대로 티저는 제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다각 다각 다각 ―
다행히 편집도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혜정과 일을 나눠 하고 있었는데 미주 자신은 자기 몫의 일을 끝낸 상황.
그녀는 커피가 담긴 머그잔을 들고 혜정에게 다가갔다.
“얼마 정도 걸릴 것 같아?”
“3분이면 끝날 것 같아.”
“그래. 천천히 해!”
미주는 혜정의 옆 의자에 앉았다.
초콜릿 부서지는 듯한 키보드 소리가 나른하게 들린다.
‘음. 잠깐만 눈 좀 붙일까.’
잠시 눈을 감고 쉬려는데.
띠링―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눈을 뜨자 혜정이 눈썹을 들어 올리며 웃는 얼굴이다.
“광고 연락이라는 거에 한 표.”
“흠. 어디 보자.”
핸드폰을 확인한 미주는 살짝 입을 벌렸다.
“오…! 맞았어!”
“요즘 감이 좋다니까!”
혜정의 예상대로 광고 계약을 제안하는 연락이었다.
이번에 연락이 온 회사는 인지도가 상당한 곳이었다.
“구땡이네.”
“구땡은 광고 잘 안 주는데. 웬일이래?”
“당장이라도 계약하고 싶대. 시청자들 나이대가 다양해서 딱 좋다나.”
“아시아 쪽에 인지도가 높은 플레이어를 골랐나 보네.”
세계적인 브랜드 구땡의 연락임에도 둘은 차분했다.
당연했다.
광고 계약을 할지 말지는 오로지 호준의 손에 달려 있었으니까.
“대단해. 구땡이라니.”
혜정이 감탄하자 미주도 동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200년 넘는 브랜드 구땡이 제안을 했다는 것은, 호준에게서 성장 가능성을 봤다는 의미였다.
“앞으로 더 성장하겠지.”
같이 일하는 이가 성장하고, 인정받는 것.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미주에게 있어 일의 원동력이 되었다.
일을 하면서 느끼는 자부심, 그런 성취감이 없다면 이 일을 오래 하지 못했겠지.
그런 소소한 뿌듯함을 느끼기에 일을 즐기면서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미주는 기분 좋게 웃으며 남은 커피를 들이마셨다.
달각달각―
“메인 영상 올린다!”
【늪괴물 VS 호준 메인 영상 업로드 완료!】
“수고했어!”
쨍―
둘은 머그잔 건배를 하며 메인 영상의 공개를 축하했다.
그렇게 세상에 공개된 영상 덕분에.
【호준 늪괴물 한방컷 실화?, 시청자 경악】
【저주받은 늪괴물 단번에 격파 성공!】
【예상을 뛰어넘는 힘의 원천은 대체 무엇인가?】
호준의 이력에 늪괴물 한방컷이 추가되었다.
* * *
악마의 정원 비밀공간은 나무 속에 위치한 창고였는데, 그 안에 쌓여있던 비품들은 옷, 카펫, 가구 등 쓸만한 것들이 많았다.
호준은 괜찮은 것을 다 챙기고 잠시 숨을 돌렸다.
“아, 잠깐만 쉬자. 너무 돌아다녔더니 피곤하네.”
그는 대자로 누워 쉬었다.
종일 돌아다녔으니 안 지치는 게 더 이상했다.
조금 쉬는 건 괜찮겠지.
딱 10분만 쉬자며 드러눕자 다크니스가 배에 올라탔다.
녀석은 배를 제 운동장 삼아 뒹굴거렸다.
“요 녀석!”
녀석은 배를 침대로 사용하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데구르르 한 바퀴 구른 다크니스가 가녀린 목소리로 울었다.
“냐아~”
【다크니스가 고기가 당긴다며 배를 두드립니다!】
어쩐지 다크니스의 배가 홀쭉해 보인다 했더니 배고파서였던 모양이다.
“배고플 때가 되기는 했지. 어디 보자.”
호준은 인벤토리를 켜서 뭘 줄지 고민했다.
치킨을 다 주기는 조금 그렇고. 음.
그가 고민하는 사이 다크니스가 대뜸 가슴팍을 네 발로 짚고, 대뜸 목을 핥기 시작했다.
“하하. 간지러워. 하하―”
호준은 다크니스를 멈추기 위해 아무거나 꺼냈다.
그렇게 꺼낸 것이 바로, 훈제 육포였다.
“자, 여기! 아!”
“츕!”
다크니스는 육포를 덥석 물고는 바닥으로 내려왔다.
제 덩치보다 큰 육포를 가랑이에 끼고 찹찹거린다.
“이빨이 생각보다 강하구나?”
다크니스가 워낙 작다 보니 이빨도 약해 보였는데.
역시 이빨은 이빨인 모양이다.
이빨이 닿자마자 어린아이 몸통만 한 육포가 칼로 썬 것처럼 서겅서겅 잘려나갔다.
고양이도 맹수는 맹수라 이건가.
어쨌든 잘 먹는 모습을 보니 걱정은 없었다.
“많이 먹어!”
“냐아~ 찹찹찹찹”
통통한 엉덩이를 톡톡 토닥이고서 호준은 다시 드러누웠다.
멍하니 위를 바라보고 있자니.
【새로운 메시지 NEW】
메시지함이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확인해보니 미주에게서 온 장문의 메시지가 있었다.
【미주】: 호준 님. 광고 제안이 왔는데, 리스트는 나중에 한꺼번에 보낼까요?
【호준】 : 네. 나중에 정리해서 보내주세요!
답 메시지를 보내자, 미주의 답이 바로 돌아왔다.
【미주】 : 영상도 반응 좋아요! 시간 없으시면 티저만이라도 한번 보시겠어요?
【첨부파일】: 티저 영상 (1), 메인 영상 (1)
벌써 영상도 만들다니.
대체 언제 쉬는 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호준은 티저를 재생해 보았다.
“역시 실력이 좋네!”
짧고 임팩트 있는 영상이었다.
짧지만 감명을 주기에 충분하달까.
【호준】 : 멋집니다! 잘 만들어 주셨네요.
【미주】: 칭찬해주시니 더 열심히 해야겠네요! ㅎㅎ 멋졌습니다!
그렇게 잠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미주는 한 가지 제안을 했는데. 그건 바로.
【미주】 : 호준 님, 많은 분들이 브이로그 방송을 보고 싶다는데. 편하실 때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물론 방송 여부는 호준님 의사에 달려있으니 편하게 결정해주세요!
‘브이로그라.’
브이로그란 일상생활을 담는 영상을 말하는데.
걸어다니면서 오늘은 뭘 하고 어딜 가고 이런 식으로 말하듯이 설명하는, 일종의 생활 밀착형 영상에 가까웠다.
“못 할 것도 없지.”
【호준】 : 조만간 하겠습니다!
【미주】 : 역시 최고입니다! 기대할게요. 파이팅!
미주의 칼답 이후로 뉴스 기사 몇 개를 보내줬다.
호준은 몇 개 보다가 창을 닫았다.
지금은 뉴스보다는 무엇을 소개할지 고민할 때였다.
라이브 방송으로 소개할 만한 것이….
‘뭐가 좋을까… 아!’
고민하던 그의 눈에 딱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이걸 소개하면 되겠네. 딱이다.”
부스럭―
그는 보라색 주머니를 꺼내 들었다.
비밀공간에서 주운 특별한 씨앗 주머니.
그 안의 내용물은.
【악마 씨앗】
【설명】: 저주에 걸린 악마를 담은 씨앗입니다. 씨앗을 심으면 어떤 악마가 태어나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떤 악마가 태어날지는 복불복! 자신의 운에 맡기세요!
【등급】: 특 4급
【특이사항】: 본 씨앗은 특정 지역, 특정 공간에서만 발견되는 한정된 씨앗입니다.
“악마를 담은 씨앗.”
어쩌면 최초의 악마 탄생 방송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