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특별한 수확
새로운 힘을 각성해서일까.
― 힘이 샘솟는다 사악!
이무는 지금까지 본 모습 중에 가장 활기차 보였다.
꼬리를 바닥에 탕탕 내리치며 기운을 뽐낸다.
“그렇게 좋아?”
― 물론이다 사악~ 몸도 훌쩍 자란 기분이다!
신이 난 이무를 보니 호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기분 탓이 아니라 실제로 녀석은 많이 달라졌다.
각성으로 인해 외관이 더 훌륭해졌다.
“비늘도 단단해지고. 덩치도 더 커졌네.”
이전보다 듬직해진 이무는 몸길이도 1m가량 길어져 있었다.
“수고했다, 이무야.”
호준은 이무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이무도 칭찬에 춤을 추듯 바닥을 기었다.
그렇게 둘 다 기분 좋은 상태로 농장에 복귀했다.
“끼우~”
“뀨우!”
“꺄아!”
호숫가에서는 한창 요정들이 비치볼을 하며 노는 중이었다.
호준을 발견한 요정들은 공을 내팽개치고 쪼르르 달려왔다.
【다크니스가 조금 달라진 이무를 알아채고 궁금해합니다!】
【아무가 뭔지 모르겠지만 이무가 멋있어졌다고 말합니다!】
【미르는 잘 모르겠지만 축하한다며 꼬리를 흔들며 인사합니다!】
요정들은 귀신같이 이무의 변화를 알아챈 모양이었다.
이것도 감이라면 감일까.
호준은 모두에게 인사를 하고 마을에서 벌어진 일을 차분히 설명했다.
악마의 정원에 다녀올 거라는 사실과, 이무에게 일어난 변화까지 빠짐없이 다 말했다.
요정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그럼 긴 시간 없이 악마의 정원에 바로 갈 수 있겠네요.”
“그래.”
“이무랑 단둘이 가시려구요?”
별이의 물음에 호준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미르, 다크니스를 데리고 갈 생각이야.”
이무는 텔레포트 능력을 위해 꼭 데려가야 할 인력이지만, 다치는 것은 곤란했다.
혹시 모를 전투에서 이무는 후방부에 두는 것이 가장 안전했고, 그런 이무를 호위하기 위해서는 추가 인력이 필요했다.
그 추가인력으로 미르와 다크니스를 호명한 것이었다.
【미르가 얼마든지 갈 수 있다며 날개를 파닥입니다】
【다크니스가 구경을 할 생각에 꼬리를 흔들며 기뻐합니다】
미르와 다크니스는 흔쾌히 같이 떠나자는 제안에 동의해주었다.
별이에게 농장을 잘 관리해줄 것을 당부하고, 인사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텔레포트를 지시했다.
“이무야. 시작하자.”
― 알겠다 사악!
이무가 몸을 꼿꼿이 세우고는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중얼거렸다.
그러자 이무의 몸에서 은광이 파도처럼 일렁이더니 메시지가 떴다.
【이무가 텔레포트를 시전합니다.】
【텔레포트할 인원과, 텔레포트할 위치를 지정하세요!】
【말로 지정할 수 있습니다!】
“나와 다크니스, 미르, 그리고 이무. 이렇게 넷이 악마의 정원으로 간다.”
【설정을 마쳤습니다!】
【총 4명이 악마의 정원으로 이동합니다!】
【알 수 없는 힘이 몸을 휘감습니다!】
설정은 간편하게 끝이 나고, 은빛 장막이 눈앞에 드리웠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요정들이 아니라 보라색 땅바닥이 보였다.
푸석푸석한 흙바닥은 먼지 바람이 일었다.
【악마의 정원에 입장하신 걸 환영합니다!】
악마의 정원임이 확실했다.
‘온통 보라색이네.’
온 세상이 보랏빛이었다.
하늘도, 나무도, 풀도, 그리고 땅도.
보이는 전부가 보랏빛이라서 그럴까.
신비롭기도 하고, 이국적인 느낌이 들었다.
시간이 더 많다면 마음 놓고 둘러보고 싶었지만, 들뜬 마음을 가라앉혔다.
지금은 목표에 집중해야 했다.
‘무한정 시간이 있는 게 아니니까. 장미를 찾는 것에 더 집중하자.’
호준은 차분히 마음을 먹고 숲으로 들어갔다.
떠나기 전, 이미주 PD에게 대략적인 내용을 메시지로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 * *
“악마의 정원이라…!”
이미주 PD는 메시지창을 빤히 들여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과연 악마의 정원으로 가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던 탓에,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능력이 있기는 있어. 텔레포트 불가지역을 휙휙 이동하고.’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앞서, 이미주는 호준의 능력에 새삼 놀랐다.
텔레포트 불가지역을 가는 방법은 딱 한 가지밖에 없었다.
‘특별한 아티팩트를 사용하거나, 혹은 특별한 이동주문서를 쓰거나.’
특별한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는, 구하기가 엄청나게 어렵기 때문이다.
구하기 어렵다는 것은 곧 돈이 많이 든다는 소리였고.
‘돈이 진짜 많긴 많나 보네. 구하기도 힘든 주문서를 휘릭휘릭 쓸 정도면.’
이미주는 속으로 작게 감탄하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화면 속에서 호준은 미르의 등에 올라타 숲을 누비고 있었다.
그렇게 이미주가 빨려들어갈 듯 화면을 바라보는데.
“하암― 졸리다 졸려.”
식사를 마친 혜정이 하품을 하며 다가왔다.
혜정은 고개를 숙여 미주의 컴퓨터 화면을 살피고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어라? 악마의 정원이라니. 여길 간 거야?”
“그래. 퀘스트 때문이라는데. 아마 텔레포트 제한이 없는 주문서를 써서 간 것 같아.”
“이야. 돈이 진짜 많거나. 아니면 득템을 잘하거나. 둘 중 하나겠네. 요즘 주문서 값도 많이 올랐는데. 아 잠깐만. 악마의 정원은 관련 퀘스트가 거의 없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래서 인기도 없잖아. 여기서 뭘 해야 하는 거래?”
“장미를 찾아야 한대.”
“장미라… 왠지 로맨틱한데?”
혜정의 말에 이미주는 피식 웃었다.
실제로 로맨틱과는 상관이 전혀 없지만, 어쨌든 악마의 정원이 인기가 별로 없는 곳이라는 사실은 변치 않았다.
레벨업에 별 도움이 안 되고 퀘스트도 별로 없기 때문이었다.
인기가 없는 지역이 배경이기에, 오히려 이미주는 흥미롭게 보았다.
‘이런 비인기지역은 정보가 제한되어 있어서 영상도 거의 없지. 희귀한 영상이니 수집해둘 가치는 있어.’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면,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법.
임팩트한 영상은 아니라 하더라도, 악마의 정원을 탐방하는 것만으로 의미가 없지는 않았다.
‘뭐. 어떻게든 나오겠지.’
낙천적으로 받아들이며 화면을 보던 이미주는,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그녀는 장미를 찾고 있었다.
‘장미가 꼭 붉은색이란 법도 없지.’
만약 보라색 빛에 파묻혀 보라색 장미가 피어있다면?
하늘을 나는 호준은 자칫 놓칠지도 몰랐다.
비슷한 색상은 쉽게 헷갈리기 마련이니까.
‘어디 있지!’
숨은그림찾기라도 하는 심정으로 화면을 살피자.
“어?”
마침내 그녀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응? 뭔 일이야?”
혜정이 다가오며 건네는 질문에, 이미주는 손가락으로 모니터를 탁 집었다.
“여기 봐. 찾았어!”
“오!! 그러네! 보라색 장미였어!”
“깜박하면 그냥 놓칠뻔했네! 메시지라도 보내줘야겠는데?”
“아니. 그럴 필요 없겠는데? 이 화면, 호준이 공유한 영상이니까. 호준도 이미 본 거 아냐?”
친구의 말에 미주는 다시 화면을 살폈다.
다행히 호준도 마찬가지로 장미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점점 장미가 커다랗게 확대되고 있었다.
“흠…. 텔레포트도 할 줄 알고. 장미도 벌써 찾고. 재주가 좋아.”
“뭐 그래도 장미는 찾기 힘들기도 했···어?”
친구의 말에 넉살 좋게 답하던 이미주는 잠시 말을 잃고 말았다.
이변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호준이 장미에 손을 대기 바로 직전.
갑자기 장미가 위로 치솟아 올랐다.
장미의 저변에는 믿기지 않는 존재가 숨어 있었다.
“뭐 뭐야 저게??”
“맙소사! 끝도 없이 커지는데?”
이미주와 이혜정은 눈을 휘둥그레하게 뜬 채로 화면을 뚫어져라 보았다.
그들이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산이 솟아나다니…! 저 산꼭대기에 장미가 붙어 있는데?”
“잠깐. 저 외관은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진흙이 저렇게 한데 뭉치는 건… 맞다, 늪괴물!”
이미주는 얼마 전 본 영상을 떠올리며 괴물의 정체를 간파해냈다.
핸드폰으로 검색해서 보니, 맞았다.
늪괴물.
늪의 모든 진흙을 원동력으로 삼는 괴물.
“맞아. 저주받은 늪괴물.”
“이거, 크기가 너무 큰데. 산이 움직이는 정도잖아. 저 크기면 체력도 장난 아니겠어.”
“그렇겠지.”
이미주는 친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덩치가 클수록 체력수치가 더 높다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이었다.
뒷산만 한 크기라면, 적어도 단칼에 베어내지는 못하리라.
‘시간 좀 걸리겠는데.’
몇 시간은 버텨야 할 텐데.
과연 호준이 대처할 수 있을까.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네.’
적어도 늪괴물을 상대로 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라며.
그녀는 화면을 주시했다.
“늪괴물이 움직인다!”
화면 속에서 늪괴물과 호준이 맞붙고 있었다.
“가라!”
둘은 호준의 편에 서서 응원하기 시작했다.
* * *
쑤와아아아―
‘놀랐네 진짜.’
호준은 장미를 얻고자 손을 뻗기 바로 직전,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경험을 했다.
장미에 손을 댔다면 그대로 늪에 휘말려 들어가 삼켜질 뻔했던 것.
다행히 다크니스의 외침 덕분에 뒤로 물러나 안전할 수 있었다.
‘그다음에는 이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지. 살아 움직이는 늪괴물이라니.’
진흙들이 하나로 뭉쳐 산만 한 늪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늪괴물은 귀여운 슬라임 수준의 크기가 아니었다.
‘산만 한 괴물이라!’
둘의 체급차이는 심하게 많이 났다.
산을 상대로 대체 어떻게 싸우라는 건지.
보기에도 답답하지만.
‘방법은 있어.’
호준은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땅에 발이 묶여 있었다면 불가능했겠지만.
그는 달랐다.
미르의 날렵한 몸놀림 덕분에 공중을 날 수 있었고.
미르는 늪괴물의 진흙세례를 피할 수 있었으니까.
“끼루루!”
미르는 늪괴물이 내뿜는 진흙볼을 요리조리 피했다.
소나기 수준에 가까웠지만 미르의 날렵함 덕분에 안전할 수 있었다.
“미르야. 저 보석에 최대한 가깝게 날아가!”
“끼루루!”
늪괴물의 특정부위가 붉게 변하는 것을 간파한 순간, 호준은 미르에게 돌격을 지시했다.
미르는 날아드는 진흙볼을 피하며 늪괴물에 최대한 가까이 접근했다.
‘거의 다 왔다.’
목표물인 붉은 부분에는, 보석이 박혀 있었다.
찐득찐득한 늪괴물에게 어울리지 않는 붉은 보석.
그 보석을 향해 호준은 검을 내리찍었다.
콰직―
보석에 가는 실금이 가더니.
콰지직―
하나의 금이 수십 개로 갈라져 보석을 산산조각냈다.
쿠아아아!!!
늪괴물은 분노의 함성을 내질렀지만, 몸이 흐물흐물해지기 시작했다.
심장을 잃고 삶은 오징어처럼 몸이 축 늘어지는 것이다.
늪괴물에게 멀리 떨어져서 호준은 마지막 모습을 감상했다.
곧이어 메시지가 떴다.
【늪괴물의 심장을 격파했습니다!】
【늪괴물을 처치했습니다!】
【5분 안에 처치했으므로, 10% 경험치 보너스가 주어집니다】
【심장을 격파했으므로, 10% 경험치 보너스가 주어집니다】
【레벨업 성공!】
【레벨업 성공!】
【레벨업 성공!】
【레벨업 성공!】
【현재 레벨 39】
늪괴물을 처치한 결과, 레벨은 많이도 올랐다.
약점을 간파한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고.
【악마의 장미를 획득했습니다!】
【퀘스트를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장미를 직접 전달하십시오!】
악마의 장미가 인벤토리에 자동으로 들어갔다.
주목적을 완전히 달성했으니, 어깨에 짐이 확 줄어들었다.
호준은 그 어느 때보다 개운한 얼굴로, 보랏빛 호수를 둘러보았다.
* * *
“와아아!”
“대박! 저 몬스터 권장레벨이 60 넘어야 한다는데. 대체 못 하는 게 뭐야?”
호준의 전투를 지켜보던 이미주와 이혜정은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왜 저렇게 잘 싸워? 원샷이잖아?”
“그러게. 너무 쉽게 이겨서 좋은데?”
둘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흥분을 만끽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화면 속 호준은 아직 정원을 맴돌고 있었다.
냐아!
【다크니스가 수상한 기운을 감지했습니다!】
그는 나침반과 다름없는 다크니스의 능력 덕분에 거대한 나무를 맴돌고 있었다.
“여기란 말이지!”
보라색 나무는 도보로 30걸음 이상 걸어야 할 만큼 기둥의 굵기가 두꺼웠다.
그 주위를 몇 바퀴 맴돌던 호준은, 잠시 쉴 겸 나무 기둥에 몸을 슬쩍 기댔다.
그의 등이 나무 기둥에 닿자마자.
철컥―
【비밀 창고에 접촉하였습니다!】
비밀스러운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무 기둥에 여닫이문의 손잡이를 잡아당기자, 내부 비밀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던 것.
“다크니스. 네가 최고야!”
“냐아~”
호준은 다크니스를 꼭 껴안은 채로, 발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