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를 너무 잘함-116화 (116/200)

116. 이무기 길들이기

강원도 시골 마을.

논에는 황금파도가 일렁이고, 하늘에는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가을의 청명한 기운이 물씬 느껴지는 광경이었다.

“하아~ 날씨 참 좋네.”

유호준의 아버지, 유기준은 기지개를 쭉 켰다.

집 마루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질리는 법이 없었다.

그는 마루의 안락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커피나 한 잔 마실까.”

믹스커피 한 잔 땡기고 일을 하러 가는 것은, 그의 오래된 습관이었다.

그는 안방을 지나 부엌으로 갔다.

안방에서 TV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아내도 일어난 모양이다.

딸깍―

잠시 뒤, 그는 뜨끈뜨끈한 커피잔을 들고 부엌을 나왔다.

홀짝홀짝―

바깥 풍경을 보며 마시는 커피의 맛은 훌륭했다.

야옹~

고양이 노랑이가 발목에 제 몸을 비벼댄다.

“밥은 조금 있다가 주마. 조금만 기다려요?”

냐앙~

노랑이가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정강이를 껴안았다.

혀를 내밀어 핥기까지 했다.

어서 밥을 달라는 제스처였다.

“커피 마시고 줄 테니까. 기다리렴.”

유기준의 거듭된 거절에, 노랑이는 배를 드러내며 누워버렸다.

골골대는 소리를 내며 자버린다.

저 태연하고 뻔뻔한 모습을 보니, 도리어 웃음만 난다.

유기준은 피식 웃으며 허리를 굽혔다.

골골―

손가락을 세우고 노랑이의 배를 간지럽히자, 골골대는 소리가 더 커진다.

“호준이가 안 와서 심심한 모양이구나?”

냐아~

노랑이는 서울로 떠난 아들, 호준과 유독 친한 고양이였다.

아들은 잘 지내고 있으려나.

기준은 노랑이의 몸 곳곳을 긁어주며 아들을 떠올렸다.

씩씩하고 긍정적인 성격의 아들은 나름 회사에서도 인정받는 모양이었다.

보너스를 탔다며 한우를 바리바리 싸 들고 오는 일도 생겼으니까.

얼마 전에는 이것저것 먹으라고 음식을 보내주기도 했지.

요즘 전화할 때에는, 이상하게 기운이 넘쳐 보이기도 했다.

“애인이라도 생겼나? 하긴 그럴 나이지.”

아들에게 애인이 생겼나보다 생각하며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리 몇 모금 마시다 보니 커피가 똑 떨어졌다.

그는 빈 잔을 쟁반 위에 내려놓고 외투를 걸쳤다.

딸기밭에 물 주러 갈 시간이었다.

“엇차. 노랑아. 이제 밖으로 가자~”

그는 노랑이를 옆구리에 끼고 신발을 신었다.

그대로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벌컥―

안방 문이 먼저 열렸다.

방문 밖으로 고개를 내민 아내가 큰 소리로 외쳤다.

“여보! 여기 좀 와봐요! 큰일 났어요!”

“무슨 일인데 그래?”

“얼른 와봐요. 빨리.”

유기준은 아내의 재촉에 재빨리 안방으로 들어갔다.

노랑이가 옆구리에서 내려달라고 냥냥대서 재빨리 내려놓았다.

“저 TV에 나오는 호준이라는 사진 좀 봐요. 우리 호준이랑 똑같지 않아요? 잘 봐요!”

“흐음?”

기준은 아내가 가리키는 TV 화면을 뚫어져라 보았다.

TV 속에는 미모의 앵커가 열정적인 어조로 게임 영상을 소개하고 있었다.

【오늘 아침, 유토피아 화제의 플레이어, 호준에게 새로운 타이틀이 추가되었습니다. 이번에 공개한 전투영상에서 병아리로 변신하는 기연을 보여준 것이죠 ······익명의 제보에 따르면, 유호준 플레이어는 농경생활을 즐기기 위해 시골에 정착한 것일 뿐, 지금까지 여러 습격자를 해치운 전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 실력이 어디까지인지 아무도 모른다고 하네요!】

곧이어 이어지는 전투 영상들.

― 오오오!

방청객과 출연진이 입을 벌리며 감탄했다.

전투영상이 끝나자 앵커가 말을 이었다.

【유호준 플레이어는, 실력뿐만 아니라 사업분야에 있어서도 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요리로 성공하기 힘든 유토피아에서, 맛 좋고 값싼 음식을 팔아 큰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합니다! 가게 오픈과 동시에 1시간 안에 매진될 만큼 어마어마한 인기를 얻고 있는데요. 한번 방문한 고객은 재방문율 100%라는 이야기가 돌 정도입니다. 실제로 음식을 맛본 고객으로부터 인터뷰를 했는데 한번 보시죠!】

곧 화면은 인터뷰 영상으로 가득 찼다.

인터뷰 당사자는 요리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직원들과 동물들이 얼마나 친절한지, 그밖에 가게의 특별한 점도 언급했다.

인터뷰 영상 왼쪽에는, 호준의 이미지가 커다랗게 붙어 있었다.

기준은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이거 우리 아들 맞는데? 점도 똑같고. 아니 이렇게 똑같을 수가 없잖아?”

“그러게 말이에요. 비슷해도 너무 비슷한 거 아닌가? 얘가 유. 이 유머시기 게임을 하나 봐요? 어쩐지 요새 집에 전화를 안 하더라니.”

이미지를 넋 놓고 보던 유기준은, 문득 어제 받은 메시지를 떠올렸다.

아들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 요즘 밤에 게임을 해서, 연락이 잘 안 될 거에요. 오후 7시~오후 9시에 연락 가능합니다! 일할 때, 몸조심하세요.

게임을 한다고 했으니, 어쩌면 저 TV에 나오는 아들과 똑같은 캐릭터는 아들이 맞지 않을까.

정말 아들이 맞다고 생각하니 기준의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늘 어리다고 생각했던 아들이, 이렇게 멋진 모습으로 TV에 나오다니.

남들이 하기 힘든 것을 해냈다는 앵커의 설명을 들으니 기준의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

아들이 기특하고 대견하게 보였다.

얼른 관련 뉴스를 찾아봐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저녁에 꼭 연락해봐야지.

“흠. 이따 저녁에 연락이 가능하다고 했으니까. 그때 물어보자고.”

“그래요. 난 저 유토 머시기라는 거. 뭔지 하나도 모르겠더라니까. 동네 마실이나 다녀올게요.”

그렇게 아내가 외투를 걸쳐 입고 이웃집으로 마실을 가버렸다.

유기준 홀로 집에 남았다.

그는 딸기밭에 물 주는 것도 잊고 핸드폰을 붙잡고 있었다.

“어디 보자. 호준. 오. 여기 있다. 실시간 검색어에도 올랐잖아?”

그는 눈이 침침해진 이후로 생전 켜지 않던 검색 어플을 켰다.

호준의 뉴스를 검색하느라 그의 손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오오. 그 이미주 PD랑 같이 일을 한다고?”

“요리도 농사도 다 잘하는 흠흠….”

“이 병아리도 조금 귀여운데?”

아들에 관한 뉴스를 보는 아버지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날 줄을 몰랐다.

* * *

한편 유토피아에서 호준은 매우 바빴다.

2호점에 관해 촌장님을 만나러 가기 전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까.

“반갑다. 로열 돼지들아.”

― 하이 하이 꿀꿀!

― 안녕하오 꿀꿀!

그는 별이가 데려온 로열돼지를 먼저 만났다.

로열돼지는 백점토로 만든 것처럼 새하얀 돼지로,

기존의 상식으로 알던 분홍돼지에 비해서, 좀더 깨끗해 보였고.

― 잘 부탁한다 꿀꿀~

― 왠지 좋은 냄새가 난다 꿀꿀!

애교도 많았다.

허벅지 높이까지 오는 로열돼지들은 호준의 주위를 빙글빙글 맴돌며 애정을 표했다.

로열돼지는 괜히 로열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 아니었다.

【로열돼지는 육질이 무척이나 부드러우며, 지방의 양을 조절할 수 있는 특수 동물입니다】

【지방의 양을 조절하려면, 로열돼지의 꼬리를 살짝 당기세요!】

지방의 양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

기존의 보통 동물에는 적용되지 않는 옵션이었다.

‘꼬리 잡아당기기라. 한번 해 볼까.’

호준은 로열 돼지의 엉덩이를 톡톡 쓰다듬고는 녀석의 꼬리를 슬쩍 당겨보았다.

용수철 같은 꼬리가 반듯하게 펴지더니, 윗엉덩이에 동그란 버튼이 톡 튀어나왔다.

― 볼록

버튼은 볼륨 조절하는 원형버튼과 흡사했다.

버튼의 사용법은 메시지를 보고 알 수 있었다.

【지방량 조절 패널 ON】

【원형 버튼을 회전해 지방량을 조절하세요!】

【20%】

버튼을 회전할수록 수치가 달라졌다.

최대 100%까지 할 수도 있지만, 너무 지방이 많으면 느끼하니까.

“음… 60%로 하자.”

버튼을 오른쪽으로 회전해 지방의 양을 조정했다.

한 녀석은 60%로, 나머지는 40%로 설정을 마쳤다.

【지방 설정 완료!】

【지방이 골고루 고기에 분포됩니다!】

그렇게 설정을 마치고서, 돼지들을 외양간으로 데려갔다.

외양간 앞에서 선탠을 하던 미소와 강남소는 돼지들을 보고 꼬리를 흔들며 다가왔다.

― 하얀 게 꼭 우유같다무우!

― 반갑다 돼지들아무우!

― 크, 큰 소다꿀꿀!

― 반갑당꿀꿀!

녀석들은 같은 동물들이라 그런지 금방 친해지는 분위기였다.

호준은 다 같이 인사를 시키고, 마지막으로 돼지들의 이름도 붙여주었다.

“로얄돼지니까. 음… 로 자를 따서, 로로하고 로리. 이렇게 정할게. 앞으로 이 외양간에서 지내면 된다.”

― 로리로리…! 마음에 쏙 든다꿀꿀!

― 로로도 좋다 꿀꿀! 고맙다꿀꿀!

로로와 로리는 정강이를 핥으며 마음을 표현했다.

“하하. 그래. 불편한 거 있으면 얼마든지 얘기하고. 미소하고 강남소가 얘네들 먹는 거는 잘 도와줘!”

― 걱정하지 마라무우! 잘 데리고 다닐거다무우!

그렇게 미소와 강남소에게 돼지들을 맡기고서.

호준은 요정들에게 농장을 맡긴 채로 길을 떠났다.

마을로 떠나는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 마을이다 마을사악~

이무기가 같이 있어 주었으니까.

호준은 이무기 머리 위에 올라탔다.

수 미터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나름 기분이 상쾌했다.

시야도 탁 트이고.

이무기는 착실히 길들이기가 진행 중이었다.

【이무기 132호가 당신에게 신뢰를 느낍니다】

【이무기 132호와의 호감도가 1 올랐습니다!】

【현재 호감도】: 95

같이 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호감도가 쑥쑥 올랐다.

벌써 95나 올랐고, 이제 100까지는 얼마 안 남은 상황.

【조금만 더 분발하면 이무기 길들이기를 완료할 수 있습니다!】

【길들이기 성공시 보상】

【1】양육자 칭호 획득

【2】??? 획득

‘이제 곧 성공하겠군.’

호준은 이무기를 완전히 길들이는 상상을 하며 웃었다.

슥슥―

그런 호준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무기는 열심히 바닥을 기었다.

* * *

마을로 가는 오솔길.

호준은 뭇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이무기가 떡하니 기어다니는데, 시선을 안 받는 게 오히려 더 이상했다.

“어머, 그 이무기다.”

“아아! 봤어. 실물로 보니까 진짜 크네!”

“그러게. 나도 한번 타보고 싶다.”

“이무기는 원래 숨어 지내서 찾기가 힘들대. 운이 좋아야 발견한다더라.”

‘이제는 조금 익숙해진 것 같기도 하고.’

호준은 사람들이 다치지 않도록 이무기에게 길 외곽으로 움직이도록 지시했다.

그렇게 둘이 순조롭게 마을 입구 쪽으로 가던 그때.

― 읍… 호준 몸이 이상하다사악!

갑자기 이무기가 멈칫하더니 바닥에 철푸덕 엎어졌다.

덩달아 호준도 바닥에 착지했다.

“왜 그래?”

― 몸이… 배가 타들어 갈 것 같다사악!

배가 아픈지 이무기가 용수철처럼 몸을 휘휘 감고 바닥을 굴렀다.

호준은 재빨리 이무기의 상태를 살폈다.

“안색이 안 좋은데. 괜찮아?”

백설기처럼 하얗던 이무기가 볼이 발그레해진 채로, 숨을 헥헥거렸다.

― 헥헥… 아무래도. 피부가 벗겨지는 모양이다사악! 탈피할 때는 몸이 감기에 걸린 것처럼 아프다사악! 복통도 가끔 있는데 헤엑! 이번이 그때인 모양이다사악!

“그럼 어떻게 하면 낫는데?”

― 그냥 1시간 동안 견뎌야 한다 사악! 미안하다 사악! 괜히 나 때문에 외출을 망쳐서 사악…!

1시간 동안 견뎌야 한다니.

엄청 고통스러워 보이는데 1시간 동안 견딘다고 하니 더 안쓰러워 보였다.

고통을 완화할 무슨 방법이 없을까.

호준은 이무기의 붉어진 눈가를 한번 보고는, 인벤토리를 켰다.

‘음… 뭐가 적당하려나.’

그의 인벤토리에는 진수가 만들어둔 포션이 아주 많았다.

쓸만한 것은 다 미리 쟁여두었던 것.

호준은 그중 가장 적합한 것을 꺼내 들었다.

【조화의 비약】

【기능】: 흐트러진 기운을 안정되도록 만들고, 감기에 특히 좋습니다. 몸에 이상반응이 있을 경우, 심신을 안정시키고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적용 가능 대상】: 모든 사람, 모든 동물, 몬스터에게 사용 가능

보라색 약병에 담긴 조화의 비약.

몬스터에게 사용 가능한 약은 이 약밖에 없었다.

‘제발 효과가 있어야 할 텐데.’

호준은 약 뚜껑을 열고는 그대로 약을 이무기의 입에 들이부었다.

― 쿨럭 쿨럭

이무기가 영문도 모르고 약을 들이켰다.

호준은 이무기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쭉 마셔.”

꿀꺽 꿀꺽

이무기는 얌전히 약을 들이마셨다.

약을 모두 들이켜고 나자, 잠시 동안은 별 반응이 없었다.

곧 이무기에게서 은은한 은광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으으… 몸이 따뜻해지는 기분이다사악!

곧 이무기의 볼이 다시 새하얗게 돌아왔다.

원래 안정적인 상태로 돌아온 모양인지 녀석의 눈동자에도 초점이 생겼다.

― 고맙다 사악! 호준이 세상에서 제일 좋다사악!

이무기는 꼬리로 칭칭 감더니 꽉 조이며 감사인사를 했다.

“큭― 너무 격한 인사인데?”

― 너무 셌냐사악! 미안하다사악!

“괜찮아. 장난이다. 어쨌든 지금은 괜찮은 거지?”

― 응. 너무 좋다사악!

이무기의 고백과 함께.

“어?”

의외의 메시지가 떴다.

【이무기 132호가 약으로 인해, 주기적인 신체 이상을 극복했습니다!】

【이무기 132호가 당신에게 무한한 신뢰를 느낍니다!】

【이무기 132호와의 호감도가 5 올랐습니다!】

【현재 호감도】: 100

“호감도가 100이면… 설마?”

설마는 사실이 되었다.

기다리던 메시지가 떴으니까.

【이무기 길들이기 성공!】

【칭호 및 특별 보상을 지급합니다!】

쿵―

하늘에서 보물상자가 뚝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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