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를 너무 잘함-115화 (115/200)

115. 2호점

한 여자의 입꼬리에 주름이 생겼다.

그녀는 얼굴을 와그작 구긴 채로 병을 집어 던졌다.

쨍그랑!

날아간 와인병은 석조바닥에 부딪혀 산산 조각났다.

와인병으로 끝이 아니었다.

쨍그랑!

와장창!

와인 병, 유리컵, 의자, 화장품이 담긴 병 등.

그녀는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집어던졌다.

물건이 날아다니는데도 집사 스미스는 벽에 붙어 서서 미동도 없었다.

마치 조각상처럼 무감한 표정으로, 설리나의 흥분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아악! 분해 그 ×××. 그 이미주 년도 그래! 건방진 것들같으니라고!”

머리를 마구 헤집는 설리나.

그녀는 막무가내 안하무인이란 말이 아까웠다.

3층 방인 걸 알면서도 와인 병을 창문 밖으로 내던지는 그녀의 모습은, 망나니라는 말이 딱 적절했다.

“그 ××× 걸리기만 해봐. 가만 안 둘 테니까. 그깟 푼돈 가지고 낄낄대라지!”

설리나의 눈동자는 분노로 활활 타올랐다.

그녀는 돈을 뺏겨서 화난 것이 아니었다.

돈이야 이미 차고 넘치니 큰 의미가 없었다.

“건방진 새끼들. 그 연놈들을 가만두나 봐라.”

그 하늘 같은 자존심.

자존심이 상하는 것이 문제였다.

그녀의 자존심은 영상으로 공개된 이후 갈가리 찢겨 버렸다.

스미스는 집사로서 수년간 그 곁을 지켰기에, 다른 말로 버텼기에 잘 알고 있었다.

얼마나 설리나의 마음이 좁은지.

그리고 자존심이 드높은지를.

조금이라도 비위를 못 맞추면 온갖 폭언이 쏟아져서 수많은 이들이 나가떨어졌다.

‘사모님의 반이라도 닮았으면 좋으련만.’

스미스는 그녀의 어머니를 잘 알고 있었다.

품격있고 우아하고 배려심 넘치는 여장부.

그러나 설리나의 친모가 테러로 죽고, 딸만 남게 되었다.

스미스는 홀로 남은 딸을 안타깝게 여겨 잘 돌보려 했다.

성심성의껏 대했다.

그러나 딸의 성정은 어머니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애정 결핍이라고 보기에도, 어머니의 생전과 생후가 별로 다르지 않았다.

‘타고난 성품이 저런 거겠지.’

제아무리 잘해줘도 설리나는 안하무인, 막무가내.

설리나의 아버지도 마찬가지로 딸을 불쌍히 여기고 애지중지 키웠고 그 결과가 지금 이 꼴이었다.

지금 이 사태를 해결할 사람은 오직 한 명.

쾅―

“이게 무슨 짓이냐. 설리나.”

미국 재계 1위, 망고 그룹 오너.

설리나의 친부.

세바스찬 크로프트.

그가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방안을 쓱 둘러본 그의 미간에 주름이 짙게 드리웠다.

“아 아빠. 그, 그게… 아니 있잖아. 오늘 내가······.”

설리나는 아버지에게 냉큼 달려가 안겼다.

바닥의 유리 잔해들이 그녀에게 짓밟혀 콰직 소리를 냈다.

“걔네들이 말이지······.”

설리나는 미주알고주알 자신이 얼마나 억울한지 호소했다.

세바스찬은 그 말을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경청하는 듯했다.

“그 이미주 PD 있잖아. 어떻게 안 될까? 이대로는 괘씸해서 못 봐주겠어. 지가 뭐라도 되는 줄 아는데. 어떻게 골탕 먹일 방법이 없을까? 그 여자가 망했으면 좋겠어. 아주 쫄딱. 노숙자 신세가 되는 것도 좋겠고.”

그러나 세바스찬은 얼굴을 석상처럼 굳혔다.

‘도저히 못 들어주겠군.’

여전히 눈에 보이는 딸은, 먼저 간 아내를 쏙 빼닮아 사랑스럽지만.

‘심성이… 어찌 이리 고약할까.’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최악이었다.

가시 돋친 말들.

일반적인 도덕을 지닌 그로서는, 딸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이 자리에 온 것 또한.

딸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는 슬쩍 이마를 짚으며 숨을 내쉬었다.

아버지의 안색이 안 좋은 걸 아는지 모르는지, 설리나는 계속 자기 얘기만 했다.

“그 유토피아 영상도 문제야. 내가 반으로 쪼개지는 모습이 그대로 나왔다니까? 그 방송도 정지 먹였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안 될까? 게임사에 따로 아빠가 연락을 해서 제재를 가하게….”

“그만해라. 설리나.”

세바스찬은 차갑게 일갈하며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설리나의 얼굴이 충격으로 굳었다.

“뭔 소리야? 그만하라니…? 아빠?”

설리나의 눈이 흔들렸다.

지금 눈앞의 아버지가 자신이 알던 아버지가 맞는 걸까?

아버지의 눈빛이 지나치게 차가웠다.

평소의 아버지와는 너무 많이 다른 모습에 어깨가 오스스 떨렸다.

“네가 말하는 건 뭐든 들어줬지. 지난번 TV 방송에서 네가 해서는 안 될 말을 했을 때도. 뒤처리를 다 해주었다. 그런 일이 있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너는 반성도 없고 더 큰 일을 벌이려고 했더구나.”

더 큰 일이라면. 설마. 그 마약을?

설리나는 뜨끔한 나머지 눈을 빠르게 깜박였다.

그녀는 대량으로 마약을 사둔 상태였다.

사람을 사주해 이미주 PD의 집에 몰래 넣어두고, 이미주 PD를 마약 복용혐의로 넘기려 했건만.

그 계획이 들킨 것일까?

아직 실행하려면 며칠이 남았는데. 어떻게 아버지의 귀에 들어간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어리숙한 그녀는 진심을 숨기지 못했다.

설리나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세바스찬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그는 이런 딸을 지켜보는 것이 너무나 참담했다.

“네게 너무 실망했다. 대체 왜 이런 짓을 벌인 게냐.”

예쁘고 고운 딸이 이렇게 망가지다니.

먼저 간 아내를 쏙 빼닮은 딸이라, 아끼고 아낀 것인데.

모두 자신의 잘못이라며 그는 혀를 찼다.

“그, 그건… 내 잘못이 아니야. 아빠. 걔들이 못 사니까 별말도 아닌 걸로 난리 치는 거지?”

딸은 아내의 심성이 100이라면 그중에 1도 담지 못한 듯했다.

남을 헐뜯고, 남을 괴롭히고, 남을 짓누르는 데 혈안이 된 딸.

세바스찬은 이제 딸을 방관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미 보고를 통해 들었다. 대량의 마약도 준비해두고 사람 하나를 마약쟁이로 만들려고 했다지?”

냉철한 세바스찬과 달리 설리나는 얼버무리며 눈을 못 마주쳤다.

“무, 무, 무슨 소리야? 내가 마약을 왜 해? 무섭게 왜 그런 소리야? 누가 보고를 했는지는 몰라도. 나 그런 적 없어. 진짜야?”

“휴― 스미스. 부탁하네.”

“네!”

세바스찬의 명을 받은 스미스가 어디론가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가 향한 곳은 거대한 옷장.

옷장의 크기만큼이나 아래 서랍의 크기도 상당했다.

다른 의미심장한 무언가를 넣어도 될 만큼.

스미스의 등을 바라보는 설리나의 눈빛이 마구 흔들렸다.

그녀는 착 붙어 팔짱을 끼며 애교를 피웠다.

“저기에 뭐가 있다고 그래? 하하… 저긴 속옷 넣는 데야. 아빠. 창피한데 이러지 마!”

“그건 열어 보면 알 일이다. 딸아.”

은근슬쩍 팔을 빼내는 아빠를 보며, 설리나는 울상이 되었다.

그녀의 눈은 이제 스미스에게로 향했다.

“스미스 이 개자식! 너지? 네가 꼰지른 거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우리가 몇 년이나 같이 지냈는데!”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이 방안을 메웠다.

그녀의 악다구니를 들으며 스미스는 서랍장을 끄집어내 바닥에 엎어버렸다.

콰직― 콰지직

속옷 아래에 숨겨져 있던 수많은 마약들.

도합 20kg에 버금가는 어마어마한 양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만약 경찰에 들켰다면 변호사를 아무리 내세워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양.

“하아······.”

세바스찬의 눈동자는 슬픔으로 얼룩졌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아, 아빠 이거는 내가 한 게 아니라. 쟤. 쟤가 한 거야. 스미스가 나한테 겁박을 해서. 돈을 달라고 하더니 아마 마약에······.”

설리나는 어떻게든 수습하려 했지만 세바스찬은 손바닥으로 딸의 입을 막았다.

“그만 말해라. 한마디라도 더 하면. 다시는 네 얼굴을 보지 않겠다.”

차가운 눈빛에 설리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으… 그….”

세바스찬은 오들오들 떠는 설리나에게 최후의 선고를 내렸다.

“범법행위를 하는 걸 두고 볼 수는 없다. 그러니 선택해라. 이대로 교도소에 수감될 지. 아니면 병원에 들어가 치료를 받을지.”

“병원이라니. 내가 어떻게 그런 데를 들어가.!”

“너는 제정신이 아니야. 치료를 받기 위한 모든 준비를 다 해 놓았다. 1년 동안 시설 내부에서만 생활하고. 유토피아는 다시는 못 들어간다. 1년 동안 병원에서 치료를 받지 못하면 너는 마약 소지 혐의로 교도소에 들어가게 될 테니. 그렇게 알아.”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에 설리나는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다.

“아, 아빠. 어떻게 1년이나 병원에 있으라는 말을 해. 흐윽…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들어오게.”

그러나 설리나의 눈물도 세바스찬의 마음을 돌리지는 못했다.

“데려가도록.”

“네!”

세바스찬은 미리 대기해둔 요원들을 불러 설리나를 시설로 보내도록 했다.

설리나는 팔다리가 구속된 채로 끌려갔다.

“제발··· 싫어·· ·싫다고!!!”

마침내 그녀가 끌려나가고 나자 방문이 닫혔다.

스미스가 홀로 마약 봉지들을 서랍장에 정리하자, 그 옆에서 세바스찬이 도왔다.

“고맙네. 자네가 아니었으면 몰랐을 거야.”

“별말씀을요. 설리나 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저는 계속 이곳을 지키고 있겠습니다. 건강하게 돌아오시길. 부디 바랍니다.”

“그래. 자네는 믿고 맡길 수 있지. 저 캡슐인가.”

세바스찬은 고개를 돌려 캡슐을 바라보았다.

그에게 캡슐은 딸이 범죄를 저지르게 만든 원흉처럼 보였다.

세바스찬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캡슐은 폐기하고, 아이디도 삭제하게. 다시는 접속하지 못하도록.”

* * *

전투의 순간도 짜릿하지만.

보상을 확인하는 순간의 짜릿함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지금 호준도 그러했다.

‘맙소사…!’

매번 보상을 확인할 때마다 가슴이 뛰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전투에 승리해 101만 3424골드를 획득했습니다!】

무려 100만 골드라니.

“이게 다 얼마야…!”

100만 골드는, 300골드짜리 팥빙수를 3,333개 팔아야 벌 수 있는 액수였다.

“현금으로 치면 10억 원이고.”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거액을 얻었다니.

기분이 싱숭생숭하면서도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음. 그런데 내가 얼마나 갖고 있더라?’

생각해보니 소지금을 확인하지 않은 지 꽤 오래됐다.

얼마나 있는지 어디 볼까.

호준은 싱글싱글 웃으며 인벤토리를 열었다.

화면 오른쪽 하단부, 네모난 박스에는….

“어…?”

그의 눈이 2배로 커졌다.

【보유 골드】 : 221만 6천 319 골드 NEW (최근 1013,424 골드 UP!)

쿵쿵쿵-

“맙소사. 언제 이렇게 벌었지?”

말이 20억이지.

현실에서 20억을 벌려면 투기나 로또 아니고는 불가능하지 않던가.

20억은 평범한 직장인의 입장에서는 심장이 터질 듯이 뛰게 만드는 액수이기도 했다.

“후우… 진정하자.”

호준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겨우 들뜬 마음을 가라앉혔다.

“와…! 진짜구나. 후후-”

눈을 감았다가 떠도 그대로.

비비적거리고 봐도 그대로다.

200만 골드.

앞으로 이 골드로 뭘 할 수 있을까.

멋진 차. 커다란 집.

널찍한 정원?

이런저런 구상들이 떠오르지만.

그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그림이 떠올랐다.

‘분점을 세우자.’

사업을 확장할 생각에, 그의 입꼬리가 활짝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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