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돈벼락(2)
설리나는 병아리를 만지기 위해 쪼그리고 앉았다.
그 순간.
‘좋았어.’
‘슬슬 빠지자.’
베티와 샤롯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작전을 시작할 시간이었다.
“아. 맞다!”
베티가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오늘 시장에서 세일 한다는데. 얼른 가봐야지 안 그러면 세일품목 다 매진될 거야.”
“어머. 내 정신 좀 봐. 그걸 깜빡했네. 얼른 가자! 당근 수프 하려면 당근은 꼭 사야지~”
둘은 서로 맞장구를 치며, 팔짱을 낀 채로 병아리와 멀어져 갔다.
자연스레 샤롯과 베티가 퇴장.
그 자리에는 설리나와 병아리만이 남았다.
삐이~
병아리가 고개를 갸웃하자, 설리나는 피식 웃었다.
자신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저렇게 어리석게 웃기만 한다니.
‘이런 병아리쯤이야 금방 잡지.’
그녀의 눈에 병아리는, 가소롭기 짝이 없는 약자였다.
“아유. 예쁜 병아리네…?”
설리나는 그 어느 때보다 상냥한 목소리로 손을 내밀었다.
가만히 있어 이 녀석아.
목소리와는 달리 차가운 눈빛은 잘 벼려진 칼날 같았다.
그 고압적인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병아리는 전혀 기죽지 않았다.
삐이―!
도리어 가슴을 부풀리더니
후다닥―
뒤돌아 도망가기 시작했다.
‘이런 젠장.’
설리나는 재빨리 일어나 병아리를 뒤쫓았다.
때아닌 추격전이 벌어졌다.
* * *
탓 탓 탓 탓―
병아리가 잽싸게 달려가고.
탁탁탁탁―
그 뒤를 쫓는 설리나의 로브가 정신없이 펄럭였다.
“하아. 하아― 쬐끄만 게 제법 뛰네.”
병아리가 뛰면 얼마나 뛰겠나 싶었는데.
의외로 병아리는 빨랐다.
그것도 아주 많이.
‘무슨 치타 고기를 먹고 자란 거야. 왜 이리 빨라.’
병아리는 로켓을 발사한 것처럼 뛰었다.
“이렇게 나온다면 어쩔 수 없지.”
설리나는 스태프를 꺼내 들고 달리기 시작했다.
스펠만 다 외면 녀석을 얼려버릴 생각이었다.
그녀는 스태프의 끝으로 병아리를 겨누고, 중얼중얼 스펠을 외기 시작했다.
그런데 점점 병아리의 속도가 느려지자 스펠을 외우는 것을 멈췄다.
‘뛰다가 지쳤구나. 이대로면 잡을 수 있겠어.’
“얌전히 이쪽으로 오면, 살려는 줄게. 얼른 오렴? 응? 안 그럼 찢어 죽여버릴 거야. 응?”
그녀는 협박과 회유를 번갈아 제안했다.
그러나 병아리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삐이―!
단호한 거절을 말했다.
병아리는 고개를 홱 돌리고는, 엉덩이를 씰룩이며 달려갔다.
병아리가 우거진 수풀을 골라 다니는 바람에, 설리나도 덩달아 수풀을 지나야 했다.
어느새 그녀의 옷에는 이런저런 잡풀과 흙먼지, 낙엽 등이 붙어버렸다.
그렇게 정신없이 쫓아간 지 1분이 흘렀을까.
탁―
드디어 병아리가 멈춰 섰다.
멈출 수밖에 없었다.
병아리가 선 곳은, 절벽 끝이었으니까.
‘잡았다!’
막다른 골목에 놓인 병아리.
그리고 그런 병아리를 바라보며 히죽 웃는 설리나.
추격전의 승자는 누가 봐도 설리나였다.
“노랑아. 절벽은 위험하니까. 이쪽으로 와야지?”
설리나는 팔을 벌리며 병아리에게 다가갔다.
양팔로 병아리의 퇴로를 막은 채로 계속 접근했다.
병아리는 뒤에 절벽을 한번, 설리나를 한번 보더니.
주춤주춤 그녀에게 다가갔다.
‘좋았어.’
설리나는 히죽 웃으며 발을 내디뎠다.
“나쁜 짓 안 해요! 응? 이리 온!”
삐야악~
병아리는 거부반응은커녕, 오히려 날갯짓하며 엉덩이를 흔들었다.
그 모습을 본 설리나는 병아리가 자신에게 완전히 마음을 열었다고 확신했다.
‘좋았어.’
자신감이 붙은 그녀는 성큼성큼 다가갔다.
병아리에게 온 정신이 팔린 나머지.
그녀는 알아채지 못했다.
자신이 아슬아슬한 절벽 끝에 지나치게 가까워졌음을
“아유. 착하지. 네가 얌전히 잡혀야 내가 네 주인을 협박하지 않겠니? 응? 잘했어, 이쪽으로 와 어서!”
설리나는 병아리 획득이 코앞에 다가오자 본심을 드러냈다.
어둠 속에서 그 장면을 다 찍는 방송구름의 존재를 알지 못했기에, 서슴없이 말할 수 있었다.
이어지는 욕설과 협박들이 고스란히 녹화되었다.
‘성공이다!’
마침내 그녀의 손가락이 병아리 날개를 스친 순간.
주르륵―
그녀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뭐, 뭐야!”
시종일관 당당하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그녀의 눈앞에, 청천벽력 같은 메시지가 떴다.
【불가사의한 힘에 의해 당신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일시적으로 시력을 잃습니다】
‘시력을 잃다니. 이게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야.’
그러나 그녀의 생각과 달리 메시지는 옳았다.
그녀의 시야는 빠르게 어두워졌다.
마치 검은 장막이 드리운 것처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앞이 보이지 않자, 어깨가 부들부들 떨렸다.
“아, 안 보여. 앞이 안 보인다고!”
설리나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완벽한 어둠에 갇히자, 앞에 누가 있는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사삭―
작은 소리에도 예민해져 고개를 저었다.
온몸이 긴장해서 날카로운 칼날 위에 선 것만 같았다.
“이대로… 이대로 질 수는 없어. 누구야. 이딴 짓거리를….”
말을 멈춘 그녀는 그제야 깨달았다.
병아리를 만지고서 앞이 안 보였고.
그래. 병아리도 호준의 간계였던 것인가.
“맙소사.”
모든 것이 이해가 갔다.
갑자기 병아리가 나타난 것과.
병아리를 만지자마자 일어난 이변들.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상황.
‘당했다.’
마침내 위험을 깨달은 설리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병아리를 찾았다.
“아직 끝이 아니야.”
살기를 띠며 지팡이를 쥐고 일어서려는데.
콰콰콰쾅―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갑작스러운 폭발음.
너무나 큰 소리에 놀란 그녀는.
“꺄아아아!”
또다시 주저앉아 몸을 웅크렸다.
“으으 뭐야!”
그녀는 본능적으로 소리의 발원지로부터 몸을 피하며 데굴데굴 굴렀다.
“하아. 하아….”
심장이 터질 듯이 콩닥댔다.
콰쾅 콰쾅 쾅―
고막이 터질듯한 폭발음은 계속 이어졌다.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상황에 놓인 설리나는 혼비백산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정신을 차릴 틈은 없었다.
지면이 기우뚱하기 시작했으니까.
뒤늦게 그 움직임을 알아챘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젠장…!!!”
앞도 안 보이는데 어디로 도망가며.
어디가 안전한 곳인 줄 안단 말인가.
기우뚱―
마침내 절벽 끄트머리 땅덩어리가 분해되어, 추락했고.
위에 있던 설리나 역시, 추락했다.
머리부터 추락하자 설리나는 절규했다.
“꺄아아아!!!”
처절한 절규가 절벽을 뒤흔들었다.
* * *
호준은 절벽 위를 날고 있었다.
앙증맞은 병아리의 모습을 한 채로.
【구미호의 가호가 발동됩니다】
【당신은 지금 병아리로 변신했습니다!】
【변신 해제까지 남은 시간 3분 20초】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왼쪽 날개가 미르의 목을 감고 있었다.
‘한 번에 꿰뚫는다.’
오른쪽 날개로는 검을 꽉 쥐었다.
스릉―
앙증맞은 사이즈로 작아진 타타니홀의 대검.
역수로 쥔 검의 끝은 추락하는 설리나의 심장을 향했다.
“가자 미르!”
“끼루~”
미르가 신호에 맞춰 날개를 힘차게 펄럭였다.
둘은 빠르게 수직 낙하했다.
쾌속으로 날아간 끝에, 검이
푹―
설리나의 심장을 꿰뚫었다.
서겅―
대검은 가슴부터 정수리까지 반으로 갈랐다.
“크으으아아!”
설리나가 분노에 차올라 비명을 내질렀다.
그녀의 눈은 저주로 인해 새까맣게 변해 있었다.
“이 개새새애애끼 버러지만도 못한 새끼가아!! 너 같은 새끼는 죽어…….”
서겅―
좀비처럼 허우적대던 설리나는 목을 그이자, 말을 잇지 못했다.
펑―
【설리나가 사망했습니다】
【설리나에게는 사망 페널티가 적용됩니다】
【3일간 접속 불가…】
사망 판정을 받아, 한 줌 연기가 되어버렸으니까.
* * *
유토피아가 등장한 이후 아침 풍경은 조금 달라졌다.
방송사들은 앞다투어 유토피아 관련 방송을 중계했다.
워낙 유토피아 관련 방송이 인기가 높다 보니, 아침 방송에서도 유토피아 관련 뉴스가 소개되기에 이르렀다.
SNS 방송사의 유토피아 모닝도 그런 부류였다.
“네. 오늘의 화제는 말이죠! 바로 이미주 PD의 선택을 받은, 떠오르는 신성. 플레이어 호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유토피아 관련 방송에 호준이 등장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입소문이 나도 한참은 났으니까.
실검에도 자주 오르락내리락했고, 연관검색어까지 등장한 상태였다.
“이번에 새로운 영상이 소개됐다고 하는데요. 라이브 영상이라고 합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LA에 파견 나간 이현지 리포터를 통해 듣도록 하죠! 이현지 리포터!”
“네. 안녕하세요! 앵커님, 저는 지금 이미주 PD님의 사가와 그리 멀지 않은 LA 시내를 걷고 있습니다. 저기 뒤로 보이는 곳이, 이미주 PD의 손바닥이 찍혀있는 LA 파크이구요.”
“경치가 아주 좋군요. 저도 한번 가서 보고 싶습니다. 저 이현지 리포터. 지금 실시간으로 올라온 검색어가 아주 독특하다고 하는데. 그 부분부터 얘기해주시죠?”
“네. 지금 실검이 아주 재미있는데요! 1위가 병아리 기사. 2위가 병아리 변신입니다. 3위는 병아리 드래곤이구요.”
“호오, 검색어마다 병아리라는 수식어가 붙은 게 독특한데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네. 이 재밌는 검색어는 유호준 플레이어 덕분인데요. 지금 이미주 PD와 협력 중인, 유호준 플레이어는, 오늘 아침 방송에서 병아리 기사로 변신했다고 합니다.”
“병아리 기사라고요? 하하. 좀 특이하네요?”
“네. 어떤 특별한 힘을 지닌 게 아닌가. 추측해봅니다. 이번 영상에서는 파란 머리의 여성과 격전이 펼쳐졌습니다. 사실 격전이라기보다, 유호준 플레이어의 일방적인 압승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렇군요. 저도 구독 중인데 나중에 꼭 봐야겠습니다. 병아리의 모습으로 싸운다 이 말이죠?”
“그렇습니다. 드래곤을 타고 다니는 모습도 인상적이었구요. 드래곤이라는 검색어도 붙은 것도 그 때문인 것 같습니다.”
“병아리 영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요. 지난번 영상에서 병아리의 성장기를 보여줘 호평을 받은 바 있죠. 확실히 다른 플레이어와 다르기는 하군요. 단체전이 대세인 요즘, 솔플에 변신까지 하다 보니 이슈 메이커로는 충분해 보입니다.”
“정확한 포인트를 집어주셨네요. 주로 동물들과 어울리는 온순한 채널임에도, 무력을 쓰는 모습도 보여주는 등 다채로운 면을 지니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결과물이 나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네. 좋은 소식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
띠릭―
TV 화면을 끈 이미주는 터벅터벅 커피 머신 쪽으로 걸어갔다.
취이익―
갓 내린 원두커피를 머그잔에 담고.
얼음을 몇 점 집어넣고 꼴깍꼴깍 마셨다.
‘멋진데.’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호준의 전투 영상이 영화처럼 눈 앞에 펼쳐지니, 엔돌핀이 확 퍼지는 듯했다.
“최고였어. 진짜 멋지단 말이야?”
호준에게 마음대로 해도 좋다고 하니, 멋진 결과물을 가져다줬다.
‘편집은 편집이고. 라이브로 보는 맛이 또 있지.’
띠링―
때마침 핸드폰이 울렸다.
화면을 열어 보니, 혜정이 보낸 메시지가 와 있다.
【혜정】: 대박!! 아ㅇㅇㅇ에서 광고 찍고 싶다고 난리야! 거기랑 비슷한 급으로 연락 온 곳이 10군데인데. 호준 님께도 메일 보내놓음! 기존에 없는 이미지라고 다들 좋다는 반응이야!
그녀는 왠지 그런 예감이 들었다.
“대어를 물었다.”
자신이 예상보다 훨씬 큰, 대어를 물었다는.
* * *
“휴우우― 이제 좀 쉴 수 있겠네.”
바깥의 사정을 모르는 호준은 기지개를 쭉 켰다.
그는 미르의 등에 몸을 맡겼다.
병아리의 모습도 색다른 경험이긴 하지만, 역시 사람으로 있을 때가 제일 편했다.
“귀찮은 일도 해결했으니. 이제 좀 쉴까.”
왠지 숙제를 해결한 듯한 개운한 기분이다.
그는 긴 숨을 내뱉으며 미르의 척추뼈를 따라 몸을 늘어뜨렸다.
“미르야. 잠깐 쉬자.”
“꾸르르~”
배를 톡톡 두드리며 미르도 잠재우고.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깍지를 끼고 누운 채로, 생각에 잠겼다.
‘당분간 귀찮게는 안 하겠지?’
나중에 오더라도 또 처치하면 그만이겠지.
걱정은 그만두고 전리품을 확인해 보았다.
“흐음…!”
수많은 메시지를 일일이 확인하는 것도 일은 일이었다.
그의 미간에 주름살이 생겼다.
“생각보다 별거 없잖아?”
아쉽게도 이번에 얻은 아이템은 별 것 없었다.
HP나 MP를 올려주는 포션, 그밖에 자잘한 잡템들 뿐.
이왕이면 더 좋은 것을 바랐는데.
“아쉽네.”
훌훌 털어버리려고 해도, 아쉬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시무룩한 얼굴로 메시지를 살폈다.
그렇게 쭉쭉 메시지를 보는데.
“……응?”
말도 안 되는 숫자가 보였다.
“10만도 아니고. 100만 골드라고?”
눈앞의 메시지에는, 터무니없는 액수가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