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를 너무 잘함-110화 (110/200)

110. 나비효과

눈부신 호수.

포르르―

호수 위를 헤엄치던 물새가 사람의 기척을 느끼고 날아가 버렸다.

폴짝―

물새는 워터슬라이드 위에 살포시 내려앉아 나무를 쪼기 시작한다.

딱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호준은 평상을 손짓으로 가리켰다.

“여기 앉으시죠.”

“아, 네!”

미주가 평상에 앉고 호준도 그 옆에 앉았다.

둘은 나란히 앉아 호수를 바라보았다.

고즈넉한 풍경 때문일까.

호준은 아까보다 생각이 명료하게 정리되었다.

‘왜 나를 골랐지? 나보다 구독자 수가 많은 이들도 수두룩한데.’

이미주는 이미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PD였고.

그녀의 손을 거쳐 일약 스타가 된 이들은 그녀와 다시 일하기를 손꼽았다.

조금 완벽주의적이다 보니 까다롭다는 얘기가 있지만, 일적인 면에서 그녀의 평판은 훌륭했다.

― 미주만큼 완벽하게 컨트롤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녀는 마치 조각가 같아요. 잡티 하나 없게 심혈을 기울이니까요. 예술가죠. 진정한 예술가.

― 미주는 절대 작은 것 하나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어요. 일에 있어서는 최고의 아티스트이고. 그녀의 말대로만 하면 최고의 결과가 나옵니다. 힘들지만 그 과정을 같이 하는 것에 의미가 있어요.

완벽주의자.

그리고 일 중독자.

‘돈이 산처럼 쌓였음에도 일에 매달리는 일 중독자라고 했나.’

10년간 같은 집에 사는 소박한 면도 있었다.

‘다큐에서 보기로는 그랬는데.’

이미주는 한국을 대표하는 인물로 손꼽히기에.

그녀에 대한 정보는 많이 온라인에 떠돌고 있었다.

그래서 호준도 얼마 정도의 정보는 알고 있었고.

‘유명인사를 직접 만날 줄이야.’

직접 만난다는 것이 조금 싱숭생숭하기도 했다.

“저 워터슬라이드는 직접 만드신 건가요? 재주가 있으시네요~”

그 화제의 인물은, 의외로 재잘거리며 즐기고 있었다.

할리우드의 스타메이커이자, 한국의 자랑이 아니라.

“호수가 끝내주네요. 수영하고 놀고 싶다~”

눈을 반짝이는 그녀는 수영장에 놀러 온 20살 대학생 같았다.

‘무엇을 원할지는 모르겠지만 들어봐도 나쁠 건 없겠지.’

호준은 먼저 입을 뗐다.

“제게 독점 계약을 제안하는 이유가 뭡니까?”

“음… 사실은 말이죠.”

이미주는 사뭇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저는 심장이 시키는 대로 일을 합니다. 호준 님을 발견하는 순간, 꼭 같이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호준 님도 아시다시피 제 직업은 PD이고. 새로운 영상물을 창조할 때마다. 음… 마치 예쁜 아기고양이를 데려와서 잘 씻겨주고 먹여주고, 사랑해주면서 무럭무럭 자라게 하는. 그런 과정 같아요.”

손을 조물조물 쥐었다 폈다 하는 이미주는 너무나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저는 일 중독자라고 할 만큼, 침대에 눕기 전까지 종일 일을 합니다. 매 순간, 일을 하면 제 심장이 뛰는 것 같고 살아있는 것 같죠. 남들은 별종이라고 하지만. 이게 제 행복이랍니다. 이번에 연담을 1억 구독자 수 규모로 성공한 이후로, 저는 새로운 일을 찾고 있었어요. 제 마음을 흔들만한 플레이어를 찾다가… 호준 님을 찾은 거죠! 마치 운명처럼 말이죠. 그래서 이렇게 메시지를 보내고 직접 찾아왔습니다. 아, 제가 말이 너무 많았네요. 일 얘기를 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말이 많아져요.”

“아닙니다. 계속하시죠.”

이미주는 커뮤 반응이 얼마나 좋은지 미주알고주알 얘기했다.

그것은 아부성 발언이 아니었다.

“동물을 키우신다길래 캡처를 찾아봤는데. 어쩜~ 토순이는 몽글몽글한 빵 같고. 토끼 귀라서 넘 귀엽더라구요!! 토순이 모양 본떠 인형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니까요? 밤에 잘 때 안고 자면 좋겠죠?”

그녀는 순수하게 요정들에 대한 감상을 말했다.

다크니스가 뛸 때 뱃살이 달랑달랑 흔들리면 너무 귀엽다며,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요즘 들어 다크니스가 볼록한 뱃살을 발로 꾹꾹 누르며 불만을 표출했는데, 그녀에게는 통통한 뱃살마저 행복인 모양이었다.

까탈스럽지만 결과가 완벽한 완벽주의자.

철혈 PD라고 소문난 그녀는.

“미르가 커지는 건 제대로 편집해서 두고두고 추억으로 남겨두면 좋겠죠? 시간이 지나서도 영원히 완벽한 영상으로 남아있는 거죠!”

요정들에 호감을 느꼈으며.

열정이 흘러넘쳤다.

호준의 눈에 비친 이미주는, 일과 흥미가 일치하는 사람이었다.

“저 진짜 작은 동물들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더 호준 님과 일하고 싶어요. 매일 영상으로 애들을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열정은 숨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말할 때마다, 행동할 때마다 흘러넘쳐 주위 사람에게 전달되었다.

이 정도로 동물을 좋아하면 애완동물도 있으려나?

“혹시 동물 키우십니까?”

“네! 제가 고양이를 키우는데. 고사리, 숙주, 콩나물이에요. 이름이 귀엽죠?”

“이름이 특이하네요. 나물 좋아하시나 봐요?”

“맞아요. 유기묘 센터에서 데려온 3형제인데. 너무너무 귀여워요! 나물 이름으로 지은 건. 제가 엄마가 해준 한식이 너무너무 그리워서 그렇게 붙였답니다. 어머니가 몇 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이상하게 엄마가 해준 나물 맛이 너무 그립더라구요. 그래서 나물로 이름 붙였어요.”

“아. 유감입니다.”

미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엄마도 분명 좋은 데 가셨을 거예요. 그보다 제가 갑자기 오셔서 많이 놀라셨을 텐데.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왕이면 직접 제안서를 드리고 싶어서요. 부디 긍정적으로 검토 부탁합니다.”

미주는 고급 가죽 봉투를 내밀었다.

가죽 서류봉투에서 꺼낸 제안서는 10장짜리였다.

상당한 양이었기에 호준은 그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내 수익이 90%인 건 변함없군.’

수익을 9:1로 나누고.

‘독점 계약 기간은 6개월. 6개월 후 한쪽이 불만을 가질 경우, 계약 파기 가능.’

계약 기간이 짧은 것도 마음에 들었다.

6개월만으로 충분히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자신하는 뉘앙스였다.

‘방송 채널도 관리해주고. 게시판을 이용해 이벤트도 개최.’

타 방송 채널의 경우, 경쟁적으로 이벤트를 진행했다.

리뷰 이벤트를 하는 음식점 경쟁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이벤트를 해서 시청자를 사로잡으려는 많은 시도들.

그런 홍보를 대행해준다.

조금 특이한 부분은 굿즈 판매였다.

‘굿즈면 인형 같은 건가?’

미르 인형, 아무 인형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특히 가끔 아무를 보면서 길게 바나나처럼 늘려서, 밤에 다리 사이에 끼고 자면 괜찮겠다 생각했었으니까.

굿즈 수익 역시 9 대 1로 수익 배분은 동일했다.

“굿즈는 어떤 식으로 만드는 겁니까?”

그 질문에 미주는 기다렸다는 듯 술술 답했다.

“제 지인이 피규어나 인형제작 사업을 하고 있어서 회사를 인수할 생각입니다.”

“인수라고요?”

“네. 그 친구가 디자인 감각이 훌륭해서. 언젠가 인수할 생각이었거든요. 앞으로 굿즈 시장도 개척해두면 나쁘지 않을 겁니다. 그 얼마 전에 언더더씨 영화 아시죠?”

“아, 그 1,000만 영화 말인가요?”

“네. 전 세계에서 큰 호평을 들었죠. 그 영화의 그래픽 디자인을 맡았던 녀석이 바로 제 친굽니다. 이미 결정된 사안인 만큼, 조만간 언론 발표도 날 겁니다. 굿즈는 최소한 3주 내에 시장에 나올 수 있습니다!”

그밖에도 호준은 궁금한 점들을 꼼꼼히 챙겼다.

이미주는 그에 성실히 대답했다.

‘정말 완벽주의자군.’

호준은 미주의 꼼꼼한 면에 놀랐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일에 관한 광활한 도면이 그려진 듯했다.

수많은 곁가지까지 모르는 게 없고.

박학다식하다.

그만큼 일 하나하나 세심하게 챙기고, 관심을 가지고 있음이 느껴졌다.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바로 술술 나오는 것도 바로 그 때문.

‘이런 사람이라면 일을 맡겨도 괜찮겠어.’

이미주의 능력뿐 아니라.

실제로 계약을 하더라도, 크게 불편한 것은 없었다.

편집을 알아서 미주 쪽에서 해주니, 호준으로서는 그저 풀 영상만 보내면 끝.

실시간 방송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었다.

그리고 시청자 게시판의 아우성을 관리해줄 직원도 전담해준다고 했다.

“평소처럼 요정들과 시간을 보내시면 돼요! 편집은 제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녀는 장담했다.

없는 능력도 갈아 넣어 만들겠다고.

‘그리고 홍보가 되면, 퀘스트 달성률도 빨리 높아질 거야.’

그리고 메인 퀘스트를 깨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메인 퀘스트 달성률】: 30 ― > 40퍼센트 NEW

【와우! 놀라운 성장세입니다.】

오늘 장사로 달성률 40퍼센트를 이뤘다.

적지 않은 수확이지만.

아직 방심하기는 일렀다.

【퀘스트 달성률은 100퍼센트에 가까워질수록, 난이도가 급상승합니다】

【계속해서 분발해주세요!】

‘앞으로 올리기 더 어려워질 테니까.’

보다 많이 홍보를 하고.

보다 더 많이 음식을 팔아야.

메인 퀘스트를 달성할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을 마친 호준은 결심했다.

‘그래. 한번 해 보자.’

이미주와 계약을 하기로.

결정을 내린 그가 고개를 들었다.

이미주는 긴장한 얼굴로 그를 보고 있었다.

꿀꺽―

조바심이 가득한 눈망울.

계약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뚝뚝 떨어졌다.

마지막으로 확인을 한번 하고 계약해야지.

계약금은 확인해봐야 했다.

계약금은 계약이 성사된 의미로 미주컴퍼니에서 지급하는 금액인데.

언제쯤 입금되는지는 안 적혀 있기 때문이었다.

“저. 계약금은 언제 입금되는 겁니까?”

그 질문에 미주가 조심스레 답했다.

“계약금은 원래 3일 내로 입금 가능합니다만. 더 빨리 원하시면 언제든 보낼 수 있습니다. 계약금이 혹시 부족하다 여겨지시면, 3억으로 올리겠습니다.”

응? 갑자기 3억이나?

3억 소리에 호준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3억으로 올려도 괜찮은 겁니까? 그 정도 수익이 나지 않을 수도 있는데요?”

그의 질문에 미주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저 이미주가 달려드는 한,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호준 님은 그저 자연스럽게 평소처럼 생활하시면 돼요! 방송구름만 켜주시고요~ 그리고… 저는 호준 님과 같이 일해보고 싶습니다. 왠지 호준 님은 다른 플레이어들보다 솔직하고 가식적이지 않아서. 그 부분이 좋아요.”

미주의 눈빛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누구나 그 눈빛을 본다면 진심임을 알 수 있으리라.

둘의 시선이 허공에 얽혔다.

‘재미있겠군.’

이쯤 되니 호준도 기대가 되었다.

과연 이미주가 어떤 성과를 이뤄낼지를.

그녀의 순수한 일에 대한 열정과 솔직함이 시너지효과를 이루었다.

호준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좋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호준 님.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미주의 당찬 외침과 함께.

그녀의 눈이 호수처럼 반짝였다.

악수를 마친 그녀가, 수줍게 그렇지만 열망이 가득 찬 눈으로 물었다.

“저 근데… 다크니스 한 번만 만나 보면 안 될까요? 그 뱃살… 조금 만지고 싶어서.”

조심히 부탁하는 이미주의 귀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 * *

온라인 계약서를 서명하고 1시간 뒤.

계약금 3억이 계좌로 입금되었다.

“돈도 벌었는데, 치킨이나 먹고 잘까?”

호준은 야밤에 치킨을 배불리 먹고 잠들었다.

그가 잠을 자는 사이.

대형 포털사이트에 속보가 올라와, 분위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미주의 제2의 성공 신화가 시작되나】

【미주컴퍼니 굿즈 제작에도 손대나】

【굿즈 제작 전문 아이돌사 매입 절차 들어가】

└ 뭐지? 굿즈?

└ 굿즈제작하는 거 보면, 새로운 플레이어 영입한듯?

└ 누구지?

사람들의 궁금증은 곧 해결되었다.

목격자들에 의해, 미주컴퍼니가 선택한 플레이어가 누구인지 밝혀졌으니까.

【미주컴퍼니가 선택한 플레이어 호준은 누구?】

【맛깔난 요리로 입소문이 난 요정의 쉼터 주인】

【요리도 농사도 전투도 실력급?】

└ 요리사?

└ 요정의쉼터? 여기 그 맛집이라고 유명하던데?

└ 바이럴마케팅인줄 알았는데 진짜배기인가?

나비의 날갯짓이 시작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