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환골탈태
전투에 앞서 호준은 먼저 싸우지 않는 이들을 대피하도록 했다.
‘누가 다치는 일은 없어야지.’
미소를 필두로, 강남소, 베티, 샤롯, 닭, 병아리를 대피하도록 했다.
임시 대피소는 이무기가 살던 온천 연못쪽으로 정했다.
그렇게 대피 조가 떠나고 나자, 그는 요정과 이무기를 한곳에 모았다.
“지금부터 작전을 얘기할 테니까. 잘 들어.”
이제 중요한 일이 하나 남았다.
‘다시는 공격할 생각을 못 하게 만든다.’
저들이 스스로의 선택을 뼈저리게 후회할.
함정을 준비하는 일만이.
* * *
“메카인님. 이제 얼마 안 남았습니다. 10분 정도 가면 도착할 것 같습니다요.”
“그래. 5분 지나면 마스크를 쓰고. 전원 다 수신호로 말한다. 정 어려우면 단체 채팅방에 올리도록.”
“네.”
착착착―
메카인의 명령에 따라, 부하들이 마스크를 착용한다.
메카인은 리더로서는 신망을 받았다.
그 이유는 메카인이 돈을 두둑이 주는 리더였기 때문이었다.
의리나 배려 그런 것은 없었다.
적어도 이 바닥에는.
‘이번에도 제대로 한탕 치자.’
돈에 한이 맺힌 것처럼 돈을 위해서라면 온갖 짓을 다 하는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돈이 부족한 일이 없이 자란 인물이었다.
시골의 부농이시던 아버지. 그 옆에서 일을 도우시는 어머니.
두 분의 밑에서 외동아들로 자라면서 한 달 용돈 90만 원 이하로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다 이전 얘기가 되어버렸지만.
대학 등록금도 다 게임에 꼴아박고.
3수를 해서 들어간 대학교를 퇴학당했으며.
심지어 원룸 보증금, 학자금대출과 생활비대출, 부모님이 주는 용돈까지 모조리 게임에 부은 것을 알자.
부모님이 돈줄을 끊어버렸다.
― 내가 내 아들을 망쳐버렸어. 너무 오냐오냐하며 키웠구나.
그렇게 가족들의 돈을 물 쓰듯 쓰고서, 연을 끊고.
홀로서기를 한 메카인은 유토피아에 운명을 걸었다.
아직까지 카드 돌려막기로 버틸 만 했고.
그는 유토피아가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유토피아에서 얻는 재력과 사람들의 관심에 중독되어 있었다.
└ 메카인님 오늘도 방송 재밌게 잘 볼게요!
└ 지난번처럼 화끈하게 팔 절단쇼 부탁ㅋㅋ
└ 더 잔인하게 가면 후원금쏜다앙~!
‘현실이면 이런 짓도 못 할 텐데. 진짜 여기보다 재미있는 데는 없다니까 ㅋㅋㅋ’
그의 머릿속에는 어떻게 하면, 사냥감을 잔인하게 고문할까에 대한 생각뿐.
└ 메카인님 최고!
└ 다음엔 더 하드하게 ㄱㄱ
└ 이 바닥에서 요거처럼 트루한건 없는듯.
└ 컨셉 오진다 ㅋㅋㅋ 이걸 내가 왜 보는 거지?
더군다나 잔인함을 찾는 시청자들은 제법 많았다.
【10분 동안 구독자 수가 +100 늘었습니다!】
사냥감을 발표하자마자 구독자 수가 늘어날 정도니.
└ 피를원한다 님이 10하트를 후원했습니다
└ 피를 원한다님의 메시지 : 사냥감 팔 자르면 100하트 추가로 드림! 최대한 천천히 잘라주삼~ 10분동안 자르면 300하트 추가!!
후원금도 계속 들어왔다.
판은 이미 깔렸고 이제 물러날 수 없었다.
‘질 수야 없지.’
서렁―
그는 일주일 전에 레벨 45짜리에게서 얻은 귀살검의 손잡이를 어루만졌다.
겉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는 이 검은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달랐지. 아주 많이.’
특 10급 검답게.
특수 기능이 매우 우수했다.
‘칼을 맞으면 반드시 환각을 보게 되니까.’
2초.
누군가에게는 짧은 시간이지만.
전투를 하는 입장에서는 2초는 긴 시간이었다.
‘2초 동안 무방비상태가 되니. 다리나 팔을 자르면 끝이지.’
이 검 덕분에 전투는 수월해졌다.
습격마다 승승장구.
구독자 수, 후원금도 하늘 높이 치솟고.
‘이건 내 금 동아줄이 될 거야.’
귀살검만 있으면 뭐든 될 것만 같았다.
검 손잡이를 쥐는 그의 눈이 욕망으로 번들거린다.
“형님. 저깁니다!”
나란히 걷던 부하가 어딘가를 가리키며 속삭였다.
그 손끝을 따라가니 작은 오두막집과.
그 앞에 펼쳐진 야외용 간이테이블이 보였다.
장사를 시작하려고 준비한 모양이겠군.
“시작이다.”
메카인은 자세를 낮추고 낮은 목소리로 내뱉었다.
철컥―
전원이 가스 방독면을 썼고 메카인이 앞장섰다.
그는 살금살금 걸어가는 한편, 가게 주위를 살폈다.
‘어디로 간 거지?’
가게 오픈을 한다더니, 인근에 사람은 코빼기도 안 보였다.
동물들이라도 있을까 싶어 찾았는데, 아무것도 안 보이다니.
메카인의 입장에서는 이대로 물러설 순 없었다.
└ 뭐야. 재미없어
└ 언제 싸우는 거임?
└ 개지루하네. 느릿느릿 말고 좀 빨리 진행하고싶음.
└ 설마 도망간거?
└ 사냥 실패?
└ 아, 사냥실패면 후원금 환불해주심 안돼? 암것도 못봤잖아 ―_―
1만 명이나 되는 시청자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를 테니까.
이 바닥에서 이미지는 생명이었다.
한번 실패자로 낙인찍히면 구독자 수가 우수수 떨어져 나간다.
‘상승기류에서 하강기류로 접어들면, 다시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어떻게든 사냥을 해야만 했다.
그가 부하들을 풀어 수색을 시킬까 고민하는 사이.
사사삭―
뭔가 움직였다.
전방 10m.
하얀 솜뭉치 같은 그것은
‘양이잖아?’
양이었다.
소형견 크기 정도의 양.
녀석은 아무것도 모르고 덤불 이파리를 뜯어먹는다.
우적우적―
그때 부하가 그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형님, 저건 호준이 키우는 녀석입니다! 저 녀석을 잡아다 족치죠.”
메카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정도 크기야 뭐. 금방 잡겠지.
성큼성큼 걸어가 양을 향해 손을 뻗었다.
“메에?”
어린 양, 메이가 순진한 눈망울로 손을 올려다보더니.
“메에~~”
잽싸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잡기 일보 직전에 놓친 메카인은,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 질렀다.
“쫓아!”
“네!”
모두가 양을 잡기 위해 달렸다.
메카인은 그 선두에 있었다.
‘달리기라면 자신 있지.’
양은 빨랐지만.
‘쬐끄만한 주제에 제법 빠른데?’
【귀살검의 36계를 발동합니다】
【마력의 30%를 사용해 이동속도가 50% 향상됩니다】
【10분 동안 효과가 유지됩니다】
순간, 귀살검에서 붉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화염 같은 붉은 연기는 그의 전신으로 퍼지더니.
사르륵 흡수되고.
휘잉―
메카인은 로켓처럼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압도적인 속도로 그는 부하들을 따돌리고 앞서나갔다.
‘얼마 안 남았다.’
이제 그는 양을 잡을만한 거리에 도달했다.
홍당무처럼 붉은 양의 머리를 쥐어 잡으리라.
‘잡았…….’
팔을 쭉 뻗어 양의 뒷덜미를 낚아채려는 순간.
“어엇…?”
갑자기 발밑이 허전했다.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쿠쿠쿠쿵―
땅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런 젠장!’
몸이 붕 뜨면서 구덩이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구덩이가 너무 커서, 싱크홀처럼 넓었기에 그는 잡을 것도 없었다.
“으아아아!”
“메카인니임”
“우욱!”
“가 가시가!”
소리를 들으니 부하들도 떨어지는 중인 듯했다.
“흐윽―!”
메카인은 간신히 근처에 튀어나온 나무뿌리를 붙잡고 매달렸다.
그러나 부하들은 그런 행운을 얻지 못한 모양이었다.
“으아 가시가… 독이 묻었어!”
“이거 가시가 아니라 화살인 거 같은데?”
“으아아아! 괴 괴물이다!”
비명이 울려퍼진다.
5m는 될법한 거대 구덩이의 바닥은 화살 밭이었다.
기분 나쁜 초록빛이 일렁이는 화살은.
“으으으!”
“크르릅~”
부하들의 거품을 물게 했다.
몇몇은 칼을 휘두르며 눈앞의 동료도 못 알아봤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 돌아버리겠네.”
간신히 추락만은 면했다지만 부하들이 저 꼴이 되었으니.
자신이 살아날지는 미지수였다.
이런 함정까지 파고 있었을 줄이야.
‘스파이가 있었나?’
‘아니. 시청자들 중에 누군가 스파이 짓을 했을지도 모르지.’
‘나보다 순위 밑인 녀석들이 이런 음모를 꾸몄나?’
저지른 짓이 있다 보니 원수 후보만 뽑아도 손가락이 부족할 지경.
그는 분한 마음에 이를 갈았다.
“어떤 새낀지 알아내기만 해봐라.”
그는 아직 기죽지 않았다.
만병통치약을 몇 개 준비해두었으니, 녀석들이 정신만 차리면 던지면 되리라.
제정신을 차리면 다시 데리고 위로….
스르릉―
그러나 그의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생각이 멈출 수밖에 없었다.
‘××. 저건 또 뭐야?’
사람만 한 검이 구덩이 밑으로 날아가는 걸 목격했으니까.
서거거걱―
깔끔한 절삭음.
그리고 이어지는.
“크억―!”
“으으으―”
짧고 힘없는 신음.
대검이 부하들의 등을 꿰뚫어 생명을 거두었다.
화살에 무슨 짓을 했는지, 앞도 못 보는 부하들.
그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꿈만 같군.’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아 메카인은 눈을 깜박였다.
서겅 서겅 ―
눈을 몇 번 감았다 뜨는 사이.
【이천만이 사망했습니다!】
【마동탁 님이 사망했습니다!】
…….
부하들이 모두 죽었다.
불과 20초도 안 된 것만 같은데.
스르륵―
이제 검의 칼끝이 자신을 향한다.
‘이제 내 차례인가.’
뿌리를 잡느라 한 손이 묶여있고.
공중에 매달린 상태로 저 대검을 해치울 수는 없었다.
‘죽기 전에 죽더라도 누가 죽였는지는 알아야지.’
그는 대검을 조종한 자를 찾아 눈을 굴렸다.
대검을 조종하는 자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대검은 이상하게도 3m 정도 앞에 머무르며 가만히 있었다.
조금 말이 안 되지만 검이 도망가지 말라고 감시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떤 개새끼냐. 저 검의 주인은.’
온갖 욕설을 되뇌며 메카인이 눈을 굴리는데.
펄럭―
위에서 부드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미르야. 준비됐어?”
메카인은 고개를 들었다.
그는 한 남자가 초록색 용을 안은 것을 보았다.
남자가 안은 용은 사탕을 머금은 듯, 볼이 불룩했다.
용은 딸꾹질 두어 번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끼르르!”
“그래. 잘했어. 그럼….”
남자는 피식 웃더니,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손가락 끝은 정확히 메카인을 가리켰다.
“끝내버려.”
‘무슨…!’
메카인의 눈이 불안한 듯 흔들렸다.
푸화악―
루비처럼 새빨간 화염이 그를 집어삼켰다.
화염은 그를 완전히 집어삼켰다.
‘으으으―’
【브레스에 노출되어 저항력이 70% 감소합니다】
【브레스에 노출되어 체력이 70% 감소합니다】
【브레스에 노출된 상태입니다. 빨리 안전한 곳으로 대피를……】
경고메시지가 주룩주룩 뜨고.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는.
띠로리―
절망적인 메시지가 남아있었다.
【당신은 브레스로 인해 사망했습니다!】
【사망 페널티로 인해 3일 동안 게임 접속이 불가능합니다】
【사망 페널티로 인해 보유 골드 20%를 잃었습니다.】
【사망 페널티로 인해 상위 귀족의 망토를 잃었습니다】
【사망 페널티로 인해 현자의 안경을 잃었습니다】
【사망 페널티로 인해 귀살검을 잃었습니다.】
…….
지극히 굴욕적인 상황.
띠로리―
【미치광132 님이 구독을 취소했습니다】
【헬로비너스 님이 구독을 취소했습니다】
【케케로이 님이 구독을 취소했습니다】
【구독자 수가 급감 중입니다】
└ 아. 지는거 보려고 있는거아닌뎅.
└ 젠장. 딴 거 봐야지.
└ 노잼노잼 ㅃ2
악재가 이어졌다.
구독자 수까지 줄어들기 시작.
그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순간이었다.
* * *
“미르야 잘했어. 메이도 수고했다.”
“메에~”
“크아아앙~”
메이가 볼을 붉히며 꼬리를 흔드는 반면.
미르는 입을 쩍 벌리며 늠름하게 울었다.
귀여운 녀석들.
호준은 두 녀석을 양손에 들쳐 안고.
요정들이 숨어있는 수풀로 걸어갔다.
‘돈도 제법 벌리고, 득템도 했네.’
간단하고. 참 만족스러운 전투였다.
누구 하나 다치지 않아서 좋고.
무엇보다 검의 절삭력이 얼마나 우수한지도 알 수 있었다.
‘검이 얼마나 멀리에서 조종 가능한지 테스트해봐야겠다.’
나중에 염력 레벨이 더 높아지면, 어쩌면 수백 미터 멀리 떨어져 전투를 벌일지도?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그는 요정들을 불러모았다.
“아아~ 30m 공중에서 추락시키려고 했는데. 기회가 없었네요.”
― 나는 뒷발굽으로 뒤통수를 찍어누를 생각이었다무우~
아쉬움을 토하는 미소와 별이를 보니 녀석들이 아군이라 다행이다 싶다.
“다들 이제 마음 푹 놓고 장사하면 돼. 이제 돌아가자~”
“네엥~~”
그렇게 다 같이 집으로 돌아가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리려 하는데….
파지직―
갑자기 파열음 소리가 들렸다.
뭐지 이 종이 찢어지는 소리는?
“끼루루?”
미르가 몸을 버둥거리더니 갑자기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미르야 왜…어? 네 가슴에 그 번개 모양은 뭐야?”
미르의 가슴팍에 못 보던 번개 마크가 생겼다.
가슴과 배, 하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번개 모양.
“끼루루??”
미르가 눈물을 매달고 그 부분을 박박 긁지만.
번개 모양은 없어지기는커녕.
콰지지직―
더 커지기만 했다.
뭐지?
“안 되겠다. 병이라도 걸린 거 아냐?”
“어어 호준 님!”
일단 뭔지 모르겠으니 마을 의원에게라도 가 볼까.
별이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제대로 들을 정신이 아니었다.
‘마을 의원이라면 왜 저러는지 알 거야.’
한시라도 미르를 치료하러 갈 생각이었으니까.
호준은 미르를 부둥켜안고 숲속을 달려갔다.
“끼루루!”
한참을 뛰어가는데.
미르가 갑자기 목을 핥으면서 어깨를 박박 긁었다.
“미르야. 왜… 어?”
고개를 내린 호준은 눈을 크게 떴다.
미르의 눈동자가 초록색에서 황금색으로 변하더니.
【미르가 진화하기 충분한 경험치와 친밀도를 얻었습니다】
【진화를 시작합니다】
황금빛 광채가 둘을 순식간에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