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습격
플레이타임 3시간을 남겨두고 호준은 가게 오픈 준비를 했다.
“엇차~”
그는 홀로 가구 배치를 마무리했다.
요정들은 농장과 외양간, 양계장에 밀린 일을 하러 갔고.
베티와 샤롯은 그릇을 씻으러 갔으니까.
‘혼자여도 충분하지.’
가구를 움직이는 것쯤이야 손가락을 까딱이면 끝.
휘르륵― 탁
염력으로 인해 생활의 질이 달라졌다.
가구를 가지런히 배열한 뒤, 그는 고민에 잠겼다.
“흠. 세트메뉴를 한번 팔아보고 싶은데.”
종종 생각해오던 세트 메뉴.
생각할수록 세트메뉴는 장점이 많았다.
‘파는 입장에서는 한 번에 세팅해서 판매하니까. 두 번 할 일을 한 번에 하지.’
처음 방문하는 손님들은 요리를 많이 시키지 않고 적게 시켰다.
맛을 보고 더 시킬지 말지 결정하는 것.
그렇다 보니 맛보고 추가로 주문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추가 주문하는 사람들 숫자가 수십 명이다 보니, 의외로 주문을 받는 과정도 번거롭다는 것.
‘수십 명이 추가 주문을 하다 보니.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기도 하고. 좀 시끄럽지.’
그런데 세트메뉴를 저렴하게 내놓으면, 고객들이 단품보다는 세트 쪽으로 쏠릴 테고.
주문에 낭비하는 시간도 줄어들지 않을까.
덩달아 서빙하는 입장에서도 세트로 한 번에 서빙하는 게 나눠서 하는 것보다 편리하고.
‘한번 해 보자.’
호준은 메뉴판을 꺼내 들고 세트 메뉴를 정했다.
심사숙고하여 결정한 메뉴는 다음과 같았다.
【MENU】
【음료류】
【특제 주스(3급)】 . . . . 60 골드
【바나나 우유(3급)】 . . . 60 골드
【팥빙수(특10급)】 . . . . 300 골드
【코코아(1급)】 . . . . 100 골드
【알코올류】
【복숭아 발효주(1급)】. . . . 150 골드
【식사류― 고기】
【치킨(1급)】 . . . . 250 골드
【고추장 양념치킨(특10급)】 . . . . 300 골드
【간장 양념치킨(특10급)】 . . . . 300 골드
【겨자 양념치킨(특10급)】 . . . . 300 골드
【겨자 양념치킨(특10급)】 . . . . 300 골드
【소고기 오븐 스테이크(1급)】 . . . . 250 골드
【매콤한 소고기 오븐 스테이크(특10급)】 . . . . 300 골드
【분식류】
【간장소스, 매콤 소스, 머스타드 소스 무료 제공~】
【떡볶이(특10급)】. . . . 400 골드
【종합 야채튀김(1급)】. . . . 80 골드
【감자튀김(1급)】. . . . 80 골드
【고구마튀김(1급)】. . . . 80 골드
【양파튀김(1급)】. . . . 80 골드
【한식류】
【갓 지은 밥 1개 기본 제공】
【매운탕(1급~특급) 물고기에 따라 등급 다름】. . . . 400 골드
【소고기 장조림(특9급)】. . . . 500 골드
【킹크랩 간장게장(특7급)】. . . . 500 골드
【★★세트메뉴 HOT SALE】
【세트메뉴 도입기념 이벤트~】
【세트메뉴 1개 주문 시 음료류 1개 무료 제공】
★【떡튀 세트】
【떡볶이+ 튀김 3개 추가(튀김 선택 가능)】 . . . . 500 골드
★【치스 세트】
【치킨 + 스테이크 (각 1개, 맛 선택 가능)】. . . . 500 골드
★【밥도둑 세트】 (30개 한정판매)
【소고기 장조림 + 간장게장 + 밥 4개】. . . . 800 골드
★【해장은 술로 세트】
【매운탕 + 복숭아 발효주】. . . . 500 골드
복숭아 발효주, 코코아, 각종 떡볶이 튀김들.
소고기 장조림, 간장게장, 매운탕 등.
팔 수 있는 음식이 정말 많았다.
끝없이 펼쳐지는 메뉴판을 보니 실감이 난다.
“생각해보니까… 진짜 오지게 많이 만들었구나.”
그나마 더 추가할 수 있었지만.
많이 뺀 것들이었다.
예를 들어 오징어 버터구이 같은 요리는 얼마든지 만들겠지만.
나중에 추가하든가 해야지.
그리고 기존 요리를 함부로 뺄 수는 없었다.
‘치킨이나 스테이크를 먹기 위해 멀리서 오는 분들이 있는걸.’
이미 알고 있는 음식을 맛보기 위해 단골들이 다시 찾아주는데.
막상 자신이 먹고 싶은 요리가 없다면.
‘나라도 서운할 거야.’
서운함이 느껴질 것만 같다.
“여기까지 와 줬는데. 맛있게 대접해야지.”
그렇게 메뉴판 정리도 마치고서.
마지막으로 방송구름을 꺼냈다.
“방송도 시작해야지.”
방치 방송.
즉 진행 없이, 카메라만 방치하는 방송을 하기 위함이었다.
의외로 방치 방송은 사람들의 관음 욕구를 충족하기 때문인 것인지.
시청자 수가 제법 되었다.
【방송을 응원하는 하트가 1만 개가 쌓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방송을 시작해주길 바랍니다~!】
└ 미르 보고싶어요~
└ 아무는? 그냥 방치방송이라도 ㄱㄱ
어서 방송해달라는 글이 게시판에 제법 올라와 있기도 하고.
방송을 하는 것은 시청자들을 위한 도리였다.
호준은 건물 야외 벽에 구름을 설치하고.
구름을 톡톡 두드렸다.
【방송을 시작합니다】
【라면먹고싶어 님이 입장했습니다】
【배고프당 님이 입장했습니다】
【초보농사꾼 님이 입장했습니다】
【소환사입문 님이 입장했습니다】
익숙한 알림들을 넘기고서.
호준은 공지사항을 작성해 올렸다.
【1시간 뒤, 요정의쉼터 오픈 예정!】
【신메뉴 코코아, 복숭아 발효주, 떡볶이튀김, 소고기 장조림 간장게장 등등 출시!】
【방치 방송 진행~ 댓창 바로 못 봐서 죄송요~】
【오늘은 가게 외부 식사장면을 담을 예정으로, 편하게 관람해주시기 바랍니다】
공지사항도 올라왔고.
준비는 얼추 끝났다.
“그동안 세트메뉴 준비하자.”
의뢰 보상으로 얻은 오븐 2개.
냄비, 프라이팬, 절임통 각 1개.
그것들로 요리를 할 차례였다.
복작복작.
보글보글.
치지지직.
그의 손이 춤을 추었다.
냄비에서는 매운탕이 보글보글 끓고.
갓 지은 밥도 완성되고.
“그릇 씻어왔어!”
설거지를 마친 베티와 샤롯도 돌아왔다.
곧 요정들도 일을 마치고 씻고 돌아오리라.
그렇게 순탄하게 흘러가는 와중에.
알람이 떴다.
【메시지 도착!】
“응? 누구지? 진수인가?”
약 팔러 떠난 녀석이 메시지?
호준은 의아한 눈으로 하던 요리를 멈추고 메시지를 확인했다.
“어…?”
그의 얼굴은 점점 굳어갔다.
【팔당】: 지금 요나스 마을로 가는 길인데. 약탈 방송하는 녀석들이 네 가게를 습격하려는 모양이야. 요정의 쉼터 운운하는데 네 얘기인 것 같아서.
― 약탈 방송이면. 아무나 때려눕히고 잔인하게 죽여서 후원금으로 먹고사는 양아치들 말입니까?
【팔당】: 그래. 약방이라고 줄여 부르지. 지금 내가 폴리모프해서 뒤쫓고 있네. 감각 공유를 하면 바로 들을 수 있는데. 하겠나?
감각 공유란 상대가 보고 듣는 것을 화면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그 정도로 상황이 심각한 건가.
― 알겠습니다.
【팔당 님이 감각 공유를 신청합니다!】
【승인과 동시에 팔당 님의 감각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승인 버튼을 누르자 팔당의 시야가 오른쪽 화면에 팝업창으로 떴다.
한 무리의 남자들이 길을 걷고 있는 것이 뒷모습으로 보이고.
‘이런… 귀찮게 됐네.’
유감스럽게도 듣기 좋은 말은 아니었다.
* * *
많은 사람들은 자극적인 것에 끌린다.
방송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되자.
사람들은 더 수익을 높이기 위해 자극적으로 방송하기 시작했다.
‘남들보다 더 구독자 수를 늘리고. 남들보다 더 주목을 받고자. 19금 딱지 걸고 더 잔인하게 방송하는 거지.’
그런 잔인한 방송 부류 중에는.
소위 약탈 방송이라는 것이 있다.
‘구독자들이 후원하트만 주면. 시키는 건 뭐든 한다.’
― 19금 잔인 주의 화끈하게 도륙 ㄱㄱ
― 29금 잔인함의 정석! 후원금 팍팍 쏘시면 뭐든 해드립니다!
살아있는 상대를 대상으로.
잔인한 행위를 서슴지 않는 것.
현실이라면 잡혀갔겠지만 이곳은 유토피아.
게임사의 규정 외에는 법이 없는 무법지대였다.
― 약방 ㄱㄱ, 시골마을 털어보자~
― 약방, 보이는 건 다 조진다!
약방, 일명 약탈 방송의 줄임말.
단체로 몰려다니며 약자를 괴롭히는 방송.
단체로 한두 명을 다구리 치고.
괴롭히고 농락하고 우습게 만들고.
‘악질 중의 악질.’
최악이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최악의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이 존재한다.
이 시청자들은 잔인할수록 후원금 액수를 높인다.
‘결국, 약탈 방송 진행자는 더 잔인하게 괴롭혀서 돈을 벌어들일 테고.’
그런 방송을 하는 녀석들이, 지금 쳐들어온다고.
호준은 실시간으로 엿들으며 알 수 있었다.
“가게 오픈이 1시간 뒤라 이거지?”
“네 대장님. 가게 오픈 전에 목 따버리면 우리 약방 홍보도 될 겁니다. 우리 팀이 얼마나 대단한지 다들 알게 될 겁니다.”
“홍보라….”
‘저 녀석이 리더군.’
붉은 모자를 쓴 리더와, 부하로 보이는 녀석의 대화.
둘을 제외한 7명은 조용히 그 뒤를 뒤따르고 있었다.
호준은 귀를 쫑긋하며 대화에 집중했다.
“그 호준이란 녀석이. 시청자 수가 몇이라고?”
“10만이 넘었습니다.”
“뭐? 10만? 구독자 수가 몇이길래 시청자 수가 이렇게 많아?”
“구독자 수는 35만 넘었네요.”
순간, 리더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뭔가 아니꼬운 모양.
리더는 입술을 부루퉁하게 내밀며 그르렁거렸다.
“아니 건방진 놈이네. 전투도 제대로 안 하는 녀석이 우리보다 구독자가 많아?”
“예. 소재는 좀 별론데. 가끔 전투 영상도 찍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요리를 제법 잘하는 것 같기도 하구요. 어쨌든 우리가 확 꺾어버리는 걸 그 녀석 방송으로 내보내면. 저희들도 이름 좀 알릴 겁니다. 이참에 어그로끼고 홍보 제대로 하는 거죠.”
“그래그래. 홍보 좋지. 그리고 돈도 좀 있다고 하지 않았나?”
“네. 장사가 아주 잘 돼서 못해도. 50만 골드는 있을 겁니다. 제대로 한탕 치면 후후.”
“수입이 쏠쏠하겠군.”
부하는 눈치를 살피느라 바빴다.
‘저 녀석이군. 나를 건드리자고 제안한 게.’
호준의 눈에는 각이 나왔다.
지금 상황은 부하가 호준을 치자고 제안했고.
리더가 호준을 칠지 말지 결정하는 상황이었으니까.
곧 리더의 입술이 열렸다.
“그래. 네 말대로 하지. 길을 안내해라.”
“물론입죠. 이 길로 쭉 가면 토끼바위가 나오거든요. 거기로 길을 틀어서 숲 쪽으로 가면…….”
부하는 아주 신이 났다.
엉덩이를 흔들며 길을 설명했다.
분명 성공하고 수익도 보장된다며 종알종알 이야기한다.
“그 작은 동물들은 어쩔갑쇼?”
“동물 해부쇼라고 부제 달고 간다. 19금 달았으면 극한까지 가 보자고!”
“넵!! 다들 준비합시다. 20분 뒤면 도착이니까!”
“네!”
그들은 무기를 재정비하고 걸음을 옮겼다.
곧이어 그들은 작전내용을 공유했다.
“독가스를 터뜨리고 접근해 납치.”
“방독면은 미리미리 써 두고.”
“녀석을 나무에 매달은 다음. 몽둥이로 폭신 두들겨 패고.”
“몸 이곳저곳 칼로 그으며 데리고 놀다가 죽입시다.”
“빨리 죽이지 말고 느릿느릿 죽이죠. 금방 죽이면 시시하니까요.”
“그래. 마지막에는 동물 해부쇼로 끝.”
“마무리가 깔끔하네.”
농담하는 것처럼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쓰레기들이네.’
호준은 필요한 대화를 모두 듣고난 뒤, 접속을 해제했다.
【팔당】: 일단 따라붙기는 하겠지만. 독가스는 나도 해독을 못 해서. 조금 떨어져야 할 것 같네.
― 거리를 두시고. 감사합니다. 나중에 크게 한 끼 사겠습니다.
【팔당】: 뭘. 조심하게. 저 녀석들 레벨이 3 0중반은 되어 보이니.
【감각공유를 해제했습니다】
호준은 공유를 해제하고서, 잠시 머릿속을 정리했다.
‘저들은 쓰레기다. 제거해야 돼.’
자비나 인정, 혹은 양심?
그런 건 개나 준 녀석들이었다.
“후우―”
깊게 숨을 들이켜며 분노가 차오른 마음을 다스렸다.
지금 중요한 것은 한 가지.
‘가만히 있는데 건드리는 건. 마음에 안 들지.’
서렁―
호준은 대검을 꺼내 들었다.
검의 길이만 2미터에 이르는 검.
스미스 씨가 직접 배달을 해준, 타타니홀의 대검이었다.
【타타니홀의 대검】
【레벨 제한】 : 25
【등급】 : 특 7급
【기능】 : 물리 공격력 +120
【특수 기능】
― 리턴 : 날아간 검은 예외 없이 되돌아 온다.
― 적중 : 반드시 적을 맞춘다. (유령은 예외)
― 흡혈 : 적 체력의 10%를 흡수한다. (재사용 대기시간 10분)
한 손에 검을 쥐었다.
묵직한 무게가 마음에 든다.
그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잘 됐어.’
먼저 공격을 해준다니.
오히려 반가웠다.
‘최고의 쇼를 만들어주지.’
얼마든지 생중계할 생각이었다.
대검을 시험해 볼 좋은 기회가 될 테니까.
‘대검이 날아가면 얼마나 꽂히려나.’
대검이 날아가는 걸 상상하는 그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