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를 너무 잘함-104화 (104/200)

104. 바다로 떠나요

“허허. 그럼 잘 지내게!”

“들어가십시오!”

호준은 손을 흔들어 촌장님을 배웅했다.

촌장님, 아니 촌장 천사님이라고 불러야 할까.

【토지】 × 10,000개.

천사님은 무려 1만 개의 토지를 주고 가셨다.

이러다가 호수 근처 땅은 다 밭이 되버릴지도?

물론 그 정도로 토지를 깔지는 않겠지만.

없는 것보다 많은 게 기분이 훨씬 좋다.

‘이제 나도 땅 부자네.’

촌장님과의 친목 다지기 덕분에 땅도 얻었고.

듬직한 사무소도 지었다.

호준은 길드 사무소 계단 난간을 손으로 쓱 훑었다.

‘내가 만들어서 그런가. 왠지 반듯하니 깔끔하네.’

자화자찬하며 흐뭇흐뭇 웃는데.

벌컥―

갑자기 사무실 문이 열렸다.

세티였다.

세티는 손날로 안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호준 님! 의뢰가 업데이트되었는데, 한 번 보고 가세요. 하실만한 것들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경험치를 주는 의뢰이니, 당근 해야지.

호준은 그녀를 따라 사무소 안으로 들어갔다.

풋풋한 나무 냄새가 코를 찌른다.

“음―”

코르크벽에는 어느새 의뢰서가 가득하다.

A4용지만 한 의뢰서 30개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붉은 접시마크가 달린 것은 요리 의뢰.

초록색 이파리가 달린 것은 농사 의뢰였다.

호준은 농사 의뢰를 먼저 살폈다.

“만년삼. 이건 패스하고.”

만년삼이라니.

이름만 들어도 비싸보이네.

‘진수한테 메시지 남겨야지.’

진수에게 만년삼이 있으면 구하라고 메시지도 남겼다.

녀석이 가져다준 천년삼은 잘 키우고 있으니 만년삼도 구해달라 하면 구해주지 않을까?

이제 만년삼은 진수에게 맡기고 다음 것을 살폈다.

“으음.”

역시 만만치 않았다.

― 다이어트 열매 × 5개

― 통통 열매 × 10개

등등

쉽지 않은 미션뿐.

“다이어트 열매면 날씬해지는 건가? 별 게 다 있네.”

결국 농사 의뢰중에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렇다고 실망하지는 않았다.

‘아직 요리 의뢰가 잔뜩 남았어.’

서둘러 요리 의뢰지를 살펴보았다.

― 제비집 수프 4급 이상 × 10개

― 송로버섯을 첨가한 요리 2급 이상 × 10개

― 1달 숙성한 포도주 3급 이상 × 20병

어려운 의뢰는 패스하고.

패스한 끝에 마침내 찾았다.

“요거다!”

【의뢰명】: 밥도둑을 가져오시오!

【입맛을 잃은 알룽 할아버지로 인해, 가족들의 근심이 매우 큽니다.】

【알룽 할아버지의 아들, 할룽은 할아버지의 입맛을 되돌릴 소고기 장조림과 간장게장을 애타게 찾고 있습니다!】

【의뢰 조건】: 120시간 안에 소고기 장조림과 간장게장 각 3개씩을 제공하시오!

* 각 요리는 3등급 이상이어야 함.

* 완성된 요리는 길드사무소에 제출하십시오.

해야 할 일은 간단했다.

지정된 시간 안에 소고기 장조림과 간장게장을 갖다 주기.

120시간으로, 시간도 넉넉할뿐더러.

‘게장이 불가능한 건 아니지.’

부족한 게를 공수할 방법은 알고 있었다.

그다음 이어지는 보상도, 마음에 쏙 든다.

【보상】

** 보상1. 다음 기구 중 5개 선택 (중복 선택 가능)

― 자동화 오븐(대용량)

― 자동화 튀김기(대용량)

― 자동화 냄비(대용량)

― 자동화 믹서기(대용량)

― 자동화 절임기(대용량)

― 자동화 유제품 제조기(대용량)

* 대용량은 동시에 20인분이 제조가 가능한 옵션입니다.

** 보상2 경험치 10,000 EXP

“보상도 꿀이잖아.”

자동화에다 대용량까지.

한 번에 20개의 요리가 제작 가능한 요리기구 5개를 준단다.

“거기다 경험치도 주고.”

1만 EXP면 결코 적은 수치가 아니었다.

이 정도 EXP를 얻으려면, 고블린 수백은 족히 잡아야 할지도.

“의뢰는 정하셨어요?”

쾌활한 얼굴로 세티가 다가왔다.

호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하죠.”

시원한 바닷바람 쐬러 갈 시간이다.

* * *

바다로 가기 위한 준비는 별 것 없다.

몸 챙기고, 살랑이는 마음 챙기고.

집 지킬 인원도 배정했다.

“마음 놓고 다녀오세요!”

바로 약재료를 바리바리 싸 들고 온 진수였다.

녀석은 농장을 혼자 지키며 약을 만들겠다고 자처했다.

“마음껏 쉬다 오세요. 미소랑 강남소도 있으니 걱정 없습니다!”

가슴을 탕탕 치는 녀석이다.

착한 녀석 같으니라고.

그런 녀석에게 베티와 샤롯이 웃으며 말을 건넸다.

“진수 씨 그럼 가게 잘 부탁해요!”

“진수 씨 몫으로 맛있는 거 사 올 게요!”

“아, 네네네! 하하.”

여자를 대하는 게 어색하다더니, 정말로 어색한 모양이다.

녀석이 말을 얼버무리며 바닥을 본다.

볼이 어느새 붉어졌다.

저럴 때 보면 순진하기는 순진하단 말야.

호준은 녀석의 어깨를 토닥였다.

“무슨 일 있으면 메시지 보내고. 쉬엄쉬엄해.”

“넵! 형, 편히 다녀오세요! 그리고 피자 잘 먹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진수를 놔두고서 호준은 일행과 함께 길을 떠났다.

이무기의 머리 위로, 모두가 올라탄 채로 마을로 향했다.

마을의 텔레포트장으로 향했는데 그곳에서는 돈만 주면 유토피아 어디든 이동 가능했다.

‘가격이 비싼 편이지만. 뭐 어때. 돈은 쓰라고 있는 거지.’

돈이야 넘치도록 많은데 이럴 때 써야지.

옆에 앉은 베티와 샤롯은 한껏 들떴다.

“검은색이 역시 깔끔하니 괜찮으려나?”

“흰색도 괜찮을 듯.”

둘은 수영복을 들춰보며 뭘 입을지 고민이다.

디자인은 비키니로 결정된 모양이었다.

고개를 돌리니 요정들이 보았다.

녀석들은 고사리 같은 손을 서로 부여잡고는 요정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꺄루아락~”

“오롱롱롱!”

“이롱타로로!”

“묘오삐용!”

요정어는 듣다 보면 마치 새소리 같다.

하아암―

무릎 위에 올라간 다크니스가 하품을 하며 몸을 비비적댄다.

고양이의 배는 왜 이리 부드러운 걸까.

보드라운 감촉이 좋아 배를 간지럽히니 골골댄다.

― 냐아~

어라, 살짝 눈웃음까지 치네.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니 요물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말랑말랑 발가락을 만지며 피식 웃는데.

― 바다는 얼마나 큰 물건이냐사악?

이무기가 말을 걸었다.

“음… 얼마나 크려나. 아까 그 호수보다 더 큰 물웅덩이라고 보면 돼.”

― 호수보다 더 크다사악? 어떻게 그런 물이 있지사악!

“너무 놀라지 말라고.”

― 빨리 보고싶다사악~

신이 난 이무기는 속도를 높였다.

몸이 덩실덩실 흔들린다.

어느새 마을 안으로 도착!

“우와아아!”

“헐. 이무기야!”

“이무기가 마을에 쳐들어왔다!”

마을 사람들은 이무기를 보고 깜짝 놀라 소리쳤다.

이런. 많이들 놀란 모양이네.

“진정하세요! 얘는 순한 앱니다. 아무도 안 물어요!”

호준이 애써 진정시켰다.

그의 말을 듣자 흥분한 사람들이 겨우 안도했다

“호준 님이라면야. 뭐 괜찮겠지.”

“휴. 다행이다. 점점 동물이 커지는 것 같네요?”

“대단하십니다! 소환사에다가 테이밍도 한다니.”

몇몇 마을 주민들이 말을 건넸다.

호준은 이무기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답했다.

“제가 아끼는 녀석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앞으로 자주 보게 되겠네요!”

“덩치도 크고 영리한 게 듬직해 보이는구만 허허.”

이어지는 칭찬들.

이무기의 꼬리가 살랑 흔들린다.

그렇게 오해를 푼 뒤, 호준 일행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호준은 다들 땅에 내려오게 하고 텔레포트장 관리인에게 갔다.

관리인은 여자였다.

검은색 망토에 검은색 단발.

머리 위에 뜨는 이름은 ‘올라’.

안경이 잘 어울리는 학구적인 스타일이었다.

“어머, 그 소문의 주인공이시군요!”

“소문이라면…?”

“요리 콘테스트에 콜로세움도 석권. 온갖 동물들을 다 키우고 요리를 어마어마하게 잘 만드는 괴물같은 분이라고 소문이 자자해요.”

“아… 뭐….”

괴물이라는 어감이 그렇지만 나쁜 의미는 아니니 상관 없으려나.

“호준 님께 호감이 아주 많답니다. 호준 님 덕분에 제 수입도 늘어났거든요. 마을 재정 상태를 최상으로 높아져서 유동인구도 늘어났지 뭐에요? 지난달에 월 3천 골드 정도 벌었는데. 이번 달에는 무려 3만 골드 넘게 벌었다구요! 10배나 많아지다니 정말 장난 아니죠?”

“그렇네요. 그 정도로 많아질 줄이야.”

저도 전혀 예상치 못했답니다.

“음식 사러 오는 이들도 많아요. 저한테 호준 님 음식점 어디 있냐고 묻는 이들이 꽤 되거든요. 또 방송 덕분에 요나스 마을 인지도가 높아진 것도 있구요!”

나비 효과라고 하는 건가.

음식점으로 쏘아올린 작은 공이, 마을에 활기를 불러왔….

아니 아직 그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더 방송을 하다보면 그 경지까지 오르지 않을까.

작게 희망해본다.

수다를 마친 올라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물었다.

“흠, 오늘은 어쩐 일로 오셨나요? 어디 가고 싶으신 데라도 있으신지?”

“하버 마을로 가고 싶습니다.”

“음~ 하버 마을, 대륙 최남단, 사파이어빛 파도에 백사장이 펼쳐지고. 관광객도 거의 없어서 편안히 여가를 보내기 좋죠. 좋은 시간 되시겠어요. 그럼 여기 작은 친구들이랑 큰 친구도 같이하는 건가요?”

올라의 물음에 호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전부 다 하죠. 금액은 얼마나 합니까?”

“음… 다 해서… 원래는 한명당 400골드, 총 10명이니까 다하면 4,000골드입니다만, 특별 할인이 들어가면…… 에랏, 모르겠다. 2,000골드로 할게요!”

“흠, 너무 싼 거 아닌지.”

“이 정도는 당연히 해드려야죠. 대신 앞으로도 방송 자주 해 주세요!”

그렇다면야 뭐.

호준은 값을 지불한 뒤, 일행들과 함께 텔레포트 장치에 올라섰다.

“자, 그럼 이동합니다! 스타트!”

올라가 스타트 신호와 함께 손을 만세하듯 들어 올렸다.

쉬이잉―

눈앞에 푸른 바람이 불어닥치더니.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철썩― 철썩―

푸른 바다와 새하얀 모래가 펼쳐졌다.

막혔던 숨이 탁 트인다.

역시 바다는 최고야.

* * *

바다는 자유로운 공간이다.

깊이를 알지 못하는 심해부터 옅은 바다까지.

발만 움직이면 자유자재로 누빌 수 있다.

‘수영하면 이런 기분이구나.’

현실에서는 수영을 배우려면 물을 몇 바가지 들이마셔야겠지만.

이곳에서는 수영을 배우지 않아도 얼마든지 수영이 가능하다.

‘역시 유토피아가 짱이라니까.’

호준은 낚싯대를 움켜쥔 채로 물속을 헤집었다.

낚싯대를 들고 왜 물속으로 들어왔냐 하면.

‘물고기를 낚아야 하니까.’

전방에 물고기 발견!

새하얀 빛을 띄며 흐물흐물 떠다니는 저것은.

독한 녀석으로 알려진 포이즌해파리였다.

왜 독한 녀석이냐 하면.

‘한번 정한 상대는 죽을때까지 물고늘어지니까.’

절대 건드리지 말라고 알려진 녀석.

‘좋았어.’

그러나 호준은 조금 반응이 달랐다.

그의 눈에는 독한 녀석이 맛좋은 사냥감으로 보였다.

‘해파리로 할 수 있는 요리도 많을거야. 찾아보면.’

즉시 행동에 들어갔다.

“으음―”

【염력이 발동됩니다!】

스킬 발동!

그다음은 해파리를 바라보며 잡아당기겠다고 생각하면…?

꾸르르르―?

해파리가 끌려온다.

포이즌 해파리는 당황했는지 수십의 촉수를 휘적거린다.

제 딴에는 헤엄쳐서 도망가려는 거겠지?

‘이리 온. 해파리냉채야.’

그러나 호준은 염력으로 해파리를 수중에 고정시켜버렸다.

투둑 ㅡ

그리고 낚싯대를 움직여 해파리를 낚는데 성공!

낚시찌가 해파리를 콕 낚아버린다.

【첫 바다낚시 성공!】

【해파리 100cm (3급) 낚시 성공!】

【요정왕 특전 효과로 낚시 경험치가 2배 증가!】

【낚시 스킬을 레벨업했습니다!】

이것은 새로 고안한 낚시법이었다.

염력으로 물고기를 고정시키고, 찌를 던져서 낚는다.

그냥 물고기를 염력으로 집어 던져도 되겠지만,

그렇게 하면 낚시스킬이 오르지 않겠지.

‘물고기도 얻고 낚시 스킬도 오르고. 일석이조… 어?’

흐뭇한 얼굴로 해파리를 챙기던 호준은

순간 얼어붙었다.

‘저건…!’

유선형의 기다란 몸.

뾰족한 지느러미가 머리 위에 달리고

감출 수 없는 톱날 이빨까지.

【강철 철갑상어】

호준은 메시지를 본 순간 침을 삼켰다.

상어를 마주한 그의 눈빛에는,

‘철갑상어면 캐비아도 있으려나?’

공포보다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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