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를 너무 잘함-101화 (101/200)

101. 럭키 데이

승리는 너무나 달콤했다.

달콤함 때문에 온몸이 저릿해진달까.

우와아―!

호준은 환호성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는 느낌을 받았다.

우레와 같은 환호성이란 이런 것일까.

경기장의 특성상, 환호성은 입체 서라운딩 사운드처럼 그의 몸을 휘감았다.

‘화면에 비친 게 나구나.’

그는 전광판에 비치는 자신이 어색하면서도 신기했다.

오른손을 흔들자, 전광판의 사내도 똑같이 손을 흔든다.

이거 신기하면서 또 재밌잖아?

― 우와아아! 인사했어!

― 호준 님 여기요!

― 와아아!

손 흔드는 것만으로 관중석에서 탄성이 일었다.

【현재 보상을 정산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진짜 해냈구나.’

눈을 뒤덮을 것 같던 피로는 사라졌다.

피로의 빈자리에 만족감이 차올랐다.

300명을 제치고 1위를 했고.

고난의 시간이 끝났음을.

달콤한 보상만을 앞두었다.

그의 머릿속은 기대로 가득 찼다.

‘새 스킬을 뽑는다.’

본래는 직업별로 배우는 스킬이 한정되어 있지만, 언리미티드 스킬은 그 한계를 깨준다.

‘일종의 치트나 마찬가지지. 남들은 가질 수 없는 기회이니까.’

곧 바니바니가 진행을 하기 시작했다.

【뜨거운 박수갈채네요! 경기장 분위기가 후끈합니다!】

【이번 경기 우승자는, MVP로 활약하신 호준 님입니다! 그럼, 호준 님을 위한 보상을 오픈해볼까요!】

짝짝―

그녀가 박수를 두 번 치자 경기장 바닥이 갈라졌다.

바닥에서 뭔가 치솟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바닥에서 솟아오른 것은 계단이 있는 피라미드였다.

교과서에서 본 마야 피라미드와 유사한 형태.

계단은 20개 정도 있었고, 꼭대기에 황금의자가 있었다.

【그럼 우승자는 황금의자에 앉아주십시오!】

【의자에 착석하는 즉시, 언리미티드 스킬 카드가 주어집니다!】

“오오!”

“스킬 뽑기라. 부럽네!”

“무슨 스킬이려나?”

관중들 못지않게, 호준도 궁금했다.

‘무슨 스킬일까.’

어떤 스킬을 얻게 될까.

한 걸음.

두 걸음.

걸음을 내딛을수록 기대감이 차오른다.

굳이 누군가 무슨 스킬을 갖고 싶냐 묻는다면.

호준은, 농사와 요리를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스킬을 갖고 싶었다.

‘그런 스킬이라면 염력이 있지.’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스킬은 염력이었다.

염력.

물건을 옮기는 능력.

보통 플레이어는 공격용으로 생각하겠지만, 의외로 요리나 농사에도 쓸 일이 많아 보인 것.

‘잘 익은 복숭아 수십 개를 손짓만으로 딸 수도 있고.’

공중 무채 썰기도 가능할 것이다.

음식 서빙도 금방 끝나리라.

‘생각해보니, 진짜 괜찮은데?’

염력은 의외로 활용 방안이 무궁무진했다.

호준은 염력으로 20명에게 동시 서빙하는 상상을 펴며 옅게 웃었다.

터벅터벅―

어느새 피라미드 꼭대기에 거의 도달했다.

황금의자를 눈앞에 두자 들뜬 마음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일단 진정하자.’

상상은 상상일 뿐.

아쉽게도 염력이 나올 가능성은 희박했다.

‘염력은 희귀 스킬이지. 랜덤으로 나온다 해도 쉽게 나올 리가….’

염력은 환상술사의 대표 스킬이었다.

환상술사란 유일하게 초능력을 배울 수 있는 특수직업군으로.

‘전 세계에서 3명만이 가진 직업.’

그 3명의 플레이어는 나란히 세계랭킹 1위, 3위, 6위를 유지하고 있다.

상위랭커의 상징. 환상술사의 상징이 바로 염력이다.

‘그런 괴물들이 가진 스킬을, 쉽게 내줄 리가.’

사람 욕심은 끝이 없다더니.

1위 하겠다고 아등바등하다가 1위를 하고 나니, 더 큰 욕심이 난다.

호준은 마음을 가라앉히고자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뭐가 뜨든, 받아들이자.’

한결 마음이 가뿐해졌다.

일말의 부담도 사라졌고.

그렇게 마음을 가라앉히고서 호준은 무심히 의자에 앉았다.

【언리미티드 카드 뽑기가 시작됩니다!】

마침내 기다리던 카드 뽑기가 시작되었다.

네모난 화면 가득, 카드들이 배열되었다.

차르르르―

화면을 메운 30장의 카드들.

【총 30개의 카드 중에 1개를 선택하세요!】

선택지를 무려 30개나 준단다.

‘고를 수 있으면 땡큐지.’

그냥 카드 하나가 나오는 것인 줄 알았는데, 배려심 넘치게도 선택할 권리까지 주었다.

호준은 재깍 카드 확인에 들어갔다.

‘어디 보자… 파이어볼. 라이트 애로우….’

총 3장의 페이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장마다 10개의 카드가 있는 모양이었다.

눈앞에 카드는 총 10장.

카드 색상은 전부 다 구리색이었다.

‘구리구리한 색답게 내용도 구리구리하네.’

흔한 스킬들 뿐.

없어도 그리 불편함은 없는 스킬들이었다.

― > 다음 페이지

호준은 다음 페이지를 눌렀다.

‘흠. 이번에는 은색 카드도 있네? 파이어 볼케이노? 라이트닝 월?’

두 번째 페이지에는 그나마 업그레이드된 카드가 있었다.

은색 카드가 세 개나 있는데 아마 색깔로 놓고 보면, 구리색보다 은색이 더 높은 단계인 듯했다.

‘그래도 애매해. 고르기에는 좀….’

어정쩡한 치유계와 공격계 스킬들.

그가 원하는 대로, 일상생활에서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스킬들이었다.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아야겠군.’

연이은 실패로 인해 기대치는 낮아졌다.

호준은 기대를 내려놓고 마지막 페이지를 열었다.

‘……!’

마지막 페이지를 보는 순간, 그는 얼어붙었다.

‘이게 왜 여기서 나와?’

쿵 쿵 쿵

심장이 터질 듯이 요동쳤다.

금빛 카드.

그 안에 적혀있는 메시지는 그의 눈을 의심케 했다.

【염력】

세계에서 4번째로 염력 스킬을 얻을 기회가.

그에게 주어지는 순간이었다.

* * *

“요리사 양반, 잘 싸우던데? 아주 멋졌어!”

“황금의자도 멋지던데요? 나중에 가게 가면 구경할 수 있나요?”

경기장을 빠져나오고서 호준은 축하 인사를 받았다.

많은 이들이 축하해주었고.

“물론이죠. 가게에 오시면 앉으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가게로 놀러 오시면 우승턱 쏘겠습니다!”

호준도 많은 답례 인사로 답해주었다.

여러 번 답하다 보니 한층 사람 대하는 것도 능숙해졌다.

‘염력을 얻게 될 줄이야.’

호준은 인사를 마치고 발길을 옮기며, 무심코 생각했다.

염력을 얻은 것은 기대 이상의 성과였다.

도전할 당시만 해도, 파이어볼 정도로도 괜찮겠다 생각했건만.

‘제법 편리하겠어. 그냥 움직이는 능력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렇게 간편할 줄이야.’

염력은 스킬이 발동되어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어서 호준은 ‘음’으로 정했다.

“음!”

아주 작게 소리 내어도

【염력 스킬이 발동되었습니다!】

【원하는 물건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스킬이 귀신같이 발동한다.

누구에게 써볼까 하다가, 어깨에 앉은 별이가 눈에 들어왔다.

별이는 옆에 토순이 귀를 주물주물하며 장난치고 있었다.

‘이 정도 거리면 가능하려나?’

호준은 시험삼아 머릿속으로 별이를 잡아당기겠다 생각했다.

슈욱!

“엄마야!”

별이가 그의 주먹 안으로 쏙 들어왔다.

눈 깜짝할 새에 벌어진 일이었다.

별이는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부스스한 머리로 올려봤다.

“호준 님 무슨 요술인가요? 응? 내가 언제 여기로 왔지?”

“요술이 아니라 스킬이다! 염력이라는 거야.”

“와아! 그럼 다른 물건도 이리저리 옮길 수 있네요! 신기해요!”

별이는 박수를 치며 새로운 스킬에 기뻐했다.

“고맙다. 다시 돌아가 있어.”

호준은 원래 자리로 스르륵 옮겨놓았다.

염력 컨트롤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생각만으로 충분했으니까.

“끼루루?”

“아무우?”

그런데 다른 요정들도 은근한 눈빛을 보냈다.

자신들도 당겨달라 이건가?

“근데 한번 쓰면 조금 시간이 걸려. 지금 당장은 못 쓸듯.”

“뀨우우….”

그 말에 토순이가 시무룩해져서 볼을 부풀렸다.

미르와 아무는 아쉬운 마음에 정강이를 박박 긁는다.

그래봤자 간지럽기만 하지 뭐.

호준은 각자의 엉덩이를 토닥여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물론 더 쓸 수도 있지만….’

염력을 마음대로 써도 상관없지만 지금은 급히 할 일이 있었다.

‘퀘스트를 하러 가야지.’

― 꼭 와주었으면 좋겠네!

촌장님이 직접 오라고 부탁했을 때.

호준은 냄새가 났다.

‘냄새가 나. 히든 퀘스트 냄새가!’

히든 퀘스트.

숨겨진 퀘스트, 즉 아무나 할 수 없는 퀘스트다.

수많은 히든 퀘스트 썰들이 나돌지만.

그중에서 널리 알려진 것은 바로.

‘보상이 압도적으로 좋다 이거지.’

괜히 히든이라는 글자가 붙을리가.

심지어 플레이어 한 명이, 히든 퀘스트 한 방으로 포르쉐 한 대를 뽑기도 했다는 풍문이 돌기도 했다.

포르쉐까지는 아니더라도 히든 퀘스트는 일반 퀘스트보다 월등히 보상이 훌륭했다.

즉, 괜히 히든이 붙는 것이 아니다.

“어디 한번 가볼까!”

호준이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길을 걸었다.

요정들도 흥얼흥얼 따라 부르며 그 뒤를 따랐다.

그렇게 요정들을 이끌고 호준은 건물로 들어갔다.

삐걱―

촌장이 말한 그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허허! 자네 왔는가!”

테이블에 안경을 낀 채로 서류를 보던 촌장이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맞이했다.

낡은 벙거지에 소박한 옷차림은 평소 그대로였다.

그가 짚고 일어선 탁자에는 서류가 잔뜩 쌓여있었다.

집무실이라도 되는 것인가?

“집무실에 처음 와보겠군.”

역시 집무실이 맞았다.

“네. 일이 제법 많으신가 보군요.”

“허허, 일은 줄어들 생각을 안 하지. 음. 이리 앉게.”

“실례하겠습니다.”

호준은 그가 손으로 가리킨 소파에 앉았다.

촌장은 그 앞에 마주 본 소파에 앉더니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실은 이번에 마을의 재력이 탄탄해져서, 새로운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네. 그 건 때문에 자네를 부른 걸세! 마을이 성장한 것은 내가 보기에는 자네 덕분인 듯하네.”

“그럴 리가요.”

“아니야. 요 며칠 자네가 일으킨 변화를 생각하면 놀랄 일도 아닌걸. 벌써 요나스 마을의 변화가 눈에 보이지 않나. 이전보다 유동인구도 2배는 늘어난 기분일세.”

“좋은 영향이 있었다니 저도 기쁘게 생각합니다.”

마을의 규모가 커진다는 것은 곧, 더 많이 발전한다는 의미.

그 사실이 만족스러운지 촌장은 흐뭇한 얼굴로 수염을 쓰다듬었다.

촌장은 호준의 어깨를 두드리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래서 자네에게 괜찮은 일거리를 하나 주고자 생각했네. 지금처럼 농사도 짓고 요리도 하면서. 가끔 들어오는 의뢰를 해결해서 경험치도 올리는 거지. 그러면 자네 주특기인 요리만으로도 레벨을 올릴 수 있을 걸세.”

‘농사나 요리를 하면서 레벨을 올린다고?’

생산 스킬은 아쉽게도 레벨 올리는 시스템과 관련이 없는데.

그걸 가능하게 하는 거라면….

‘아…!’

머릿속에 뭔가 번뜩 스쳐 지나갔다.

‘설마… 길드?’

요나스 마을에는 없지만, 큰 마을에는 종종 길드가 설치되어 있다.

길드 시스템은 지극히 간단하다.

플레이어가 길드사무소에 있는 의뢰를 해결하면, 경험치와 보상을 얻는 것.

‘길드라… 괜찮겠는데?’

길드 의뢰를 해결하면 앞으로 굳이 전투하지 않아도, 요리와 농사만으로 레벨을 올릴 수 있다.

그러니 촌장의 말이 맞았다.

‘퀘스트에다 길드 의뢰까지 하면, 더 빨리 성장할 수 있겠어.’

당연히 레벨이 높아질수록, 안전은 보장된다.

거절할 것이 없는 제안이었다.

“그럼 제가 뭘 하면 되겠습니까?”

“흠흠. 자네는 길드를 세워주게. 자네에게 특별히 길드설립자의 지위를 주고 싶네!”

그렇게 말하는 촌장의 손이 어깨에 닿는 순간, 메시지가 떴다.

【히든퀘스트 발동!】

【길드사무소 설립 퀘스트!】

【길드사무소 설립자에게는 특별한 혜택이 주어집니다】

【특별 혜택1 ― 길드의 수익 10%를 영구적으로 획득합니다!】

【특별 혜택2 ― 길드의 성향을 선택해 해당 카테고리 의뢰만 받을 수 있습니다 요리/농사/제작/무기/방어구】

【특별 혜택3 ― 길드사무소 위치는 마을 내 어디든 선택 가능하며 설립자의 의지에 따라 이동할 수 있습니다!】

호준은 누군가 귀 옆에서 징을 친 것만 같았다.

‘미쳤다.’

이번 히든 퀘스트는, 두고두고 기억될 역대급 퀘스트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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