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불가능을 가능으로
옥상은 직사각형 형태였다.
직사각형의 꼭짓점에 위치한 물탱크.
그곳이 호준과 힐리아가 숨은 위치였다.
크르르르―
‘좀비가 많아도 너무 많군.’
옥상의 탁 트인 공간으로 좀비들이 바닥에 흩뿌린 밀가루처럼 퍼져나갔다.
너무 많아서 징글징글할 정도.
크아앙―
좀비들은 게걸스럽게 침을 흘리며 먹잇감을 찾아 헤맨다.
호준은 살갗이 흘러내리는 좀비로부터 시선을 돌려, 깃발을 바라보았다.
깃발은 옥상의 맨 끝에 위치했는데.
맨 왼쪽부터 오른쪽까지.
일정한 거리를 두고 깃발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내건 가장 왼쪽에 있고.’
자신의 이름이 적힌 깃발 위치를 확인한 그는 힐리아의 것의 위치도 파악했다.
‘멀리 떨어졌어.’
힐리아의 깃발과 자신의 깃발이 멀리 떨어져 있었다.
직선거리 50미터 정도.
즉, 하얀 깃발은 옥상의 꼭짓점에 하나씩 놓여있는 형국이었다.
‘따로 가야겠어.’
힐리아도 그를 눈치챘는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묵묵히 바닥에 글씨를 적었다.
좀비들에게 들키지 않으려면 필담은 필수였다.
― 각자 깃발을 향해 가야겠네요. 여기까지 고마웠어요.
호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에게 깃발 정보를 공유했다.
호준은 왼쪽, 그녀는 오른쪽.
갈 방향이 결정되었다.
이제부터는 각자 하기 나름에 따라 결과가 달라졌다.
‘그럼 이제부터는. 준비해야지. 계획을.’
호준은 주위를 훑어보고는 적당한 것을 주웠다.
그것을 하나 힐리아에게도 건네주었다.
탁―
호준이 건넨 것은 네모난 판자였다.
‘……?’
힐리아의 눈동자에 의문이 담겼다.
호준은 나머지 판자 하나를 손에 쥔 채로 쭈그려 앉았다.
그리고는 바닥에 글씨를 적었다.
― 살수대첩
― 어떻게 터뜨리시려고요?
그녀의 질문에 호준은 행동으로 답했다.
인벤토리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새빨간 폭죽 같았는데, 막대기 10개가 한 묶음으로 묶여있었다.
힐리아는 그걸 보며 눈을 크게 떴다.
― 사제폭탄 10개 묶음
― 맙소사.
힐리아는 그제야 살수대첩의 진의를 간파했는지 너무나 놀라 표정이었다.
파도타기를 해야 함을 알리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 고마워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부디 몸조심하시길!
그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힐리아와 호준은 주먹을 맞대고 각자 자리에 섰다.
호준은 정해진 위치에 폭탄을 설치하고서 판자를 붙잡았다.
쿠와아아앙!
이어지는 폭발음은 천둥소리 같았다.
쑤와아아아!
물탱크에 고이 잠든 물이 깨어나자.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물.
그 물을 타고 둘이 쾌속 질주했다.
* * *
모든 생명체에게는 강점과 약점이 있기 마련이다.
좀비에게 있어 강점은, 예민한 청각이었다.
“너무 잘 들어서, 상대하기 까다롭지.”
대체 얼마만큼 잘 듣기에 그러는 것일까.
“글쎄, 수백 미터 정도 떨어져 있기에 안심하고 걸어 다녔는데, 낙엽 밟는 소리를 그 멀리에서도 듣더라니까.”
“독한 녀석이야.”
지독하다고 할 정도로 우수한 좀비의 청각.
그 때문에, 일반 유저들 사이에서 좀비는 사랑받지 못하는 몬스터였다.
“생긴 것도 좀 징그럽지만, 뭣보다. 저 손톱은 위험하지.”
사랑은커녕, 외면받았다.
흉측한 외관도 별로지만.
무엇보다도 좀비의 손톱은 특히 위협적이었다.
“시독을 갖고 있으니까.”
시독.
시체에서 만들어지는 독으로, 좀비나 언데드 몬스터들이 가진 강력한 독이었다.
시독은 힐러에게는 치료가 불가능하고, 성직자 계열 직업군의 도움을 받아야만 온전한 치료가 가능했다.
그래서 일반 유저에게는 좀비는 기피 대상이었다.
유토피아에서 시간은 곧 돈인데, 좀비는 시독떄문에 시간을 잡아먹는 최고의 몬스터였으니까.
“좀비들이 득실거리는 학교라니. 빨리 탈락할 만해.”
좀비와 싸운 경험이 있는 유저들은 그런 습성을 잘 알기에, 8명이나 탈락한 상황을 두고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당연히 받아들였다.
“한밤중에, 그것도 혼자, 어두운 학교에서. 좀비들이랑 있는다는 것 자체가 악몽이지.”
“나 같으면 좀비들이랑 있느니, 그냥 포기할 것 같은데.”
“나도. 그 손톱만 봐도 오싹하잖아.”
거액의 상금을 포기한다고 말할 정도로, 아는 이들이 다 기피하는 몬스터가 바로 좀비였다.
― 불쌍하네.
― 왜 하필 좀비가 나와가지고.
― 좀비들 보고 밤에 잠은 잘 자려나 ㅋㅋㅋ
오히려 관중들은 좀비를 대적한 참가자들을 연민했다.
무슨 업보가 있어서 좀비들과 고생하냐는 것.
― 탈락해도 하는 수 없지.
― ㅇㅇ. 다 탈락할 듯.
― 2명밖에 안 남았다며?
좀비에 대한 선입견이 있는 사람들은 참가자 2명밖에 안 남았다는 소식을 듣자, 이번 판은 이미 끝났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좀비에게 패배했다고.
그렇게 판단한 것이다.
“와… 미친.”
그러나 그것이 오판임을 알려주는 이가 등장했다.
게임 종료 2분.
겨우 2분을 앞두고 전광판에 보이는 영상.
그 영상을 가득 메운 것은 호준이었다.
“저게 진짜야?”
모두가 경악했다.
쏴아아!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줄기.
― 와. 오지네. 좀비들을 물로 쓸어버릴 줄이야.
― 물탱크를 터뜨렸어!
그렇게 얄밉던, 까다롭던 좀비들이 물에 쓸려 내려간다.
좀비들이 물에 뜬 것이 마치 검은 쓰레기봉투가 떠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 ㅋㅋ 잘됐네.
― 좀비들 다 뒈지겠네!
― 쌤통이다!
그 광경을 보며, 좀비들에게 죽은 전력이 있는 이들은, 속 시원해했다.
그들의 가슴속에서는 사이다가 터지는 듯한 자극이 느껴졌다.
―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지?
― 그냥 포기한 줄 알았는데.
몇몇은 호준과 힐리아가 물탱크로 올라가는 장면에서 진작에 포기했고.
그랬기에 그들의 기행에 더더욱 놀라고 있었다.
― 대박이네.
쿠에에엑 쿠읍!
좀비들은 슬프게도 살이 별로 없다.
날씬한 체질을 넘어서 뼈밖에 없는 체형.
뼈로 수영을 할 수 있나?
절대로 할 수 없다.
뼈를 휘저으면 휘저을수록 가라앉을 뿐.
좀비들은 위에서 입만 빠끔거리는 금붕어처럼 둥둥 떠내려갔다.
“오! 다시 나온다!”
다시 카메라가 호준을 비춘다.
화면을 보며 관중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 저게 뭐야. 서핑하는 거야?
― 저 판자때기는 또 뭐래 ㅋㅋㅋㅋ
― 개 웃긴데 ㅋㅋ 오 깃발 잡으러 간다!
호준이 마치 서핑선수처럼 판자때기에 선 채로 파도타기를 하고 있었다.
양 손바닥을 활짝 편 채로 중심을 잡는 모습.
어설프지만 중심이 확실히 잡혀있어서 안정적으로 보였다.
― 잘 타네!
― 이대로 가면 깃발 잡을 듯!
그는 판자의 방향을 조절해 지나가는 좀비들을 피하고 있었다.
잠시 뒤, 카메라가 또 다른 이를 비추었다.
파란 단발머리 여자, 힐리아였다.
― 오오! 힐리아다!
― 미인이라 그런지 화면빨이 잘 받네.
힐리아의 등장에 관중의 시선이 집중된다.
그런데 화면 속 힐리아의 상황은, 그리 좋지 못했다.
― 어! 왠지 불안한데?
― 중심을 잘 못 잡아.
― 근데 중심 못 잡으면 바로 끝 아냐?
그녀는 아슬아슬하게 중심을 잡고 서 있었다.
그녀의 문제는 기다란 마법사용 망토였다.
― 저 망토가 물을 다 먹었잖아!
― 그러니까. 하필 모직으로 된 거라서!
― 어째… 쯧쯧!
망토는 모직으로 되어있어서 물에 젖자 무게가 아주 무거워졌다.
더군다나 길이도 길고, 모자까지 달려있어서 몸이 축 처지는 것.
힐리아로서는 옷을 벗고 탈 수 없어서 선택한 것이지만, 그런 선택이 불안한 상황을 만들었다.
― 어어! 저, 저저저!
불안감이 엄습했다.
물결을 따라 한 좀비가 두둥실 떠서 그녀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크아!
아직 기운이 남아있는 좀비였다.
안타깝게도 힐리아는 거치적거리는 소매를 걷느라, 다가오는 오는 좀비를 보지 못했다.
― 헉!
마침내 좀비가 힐리아의 근처에 도달했다.
좀비는 얌전히 지나가지 않았다.
녀석은 힐리아의 망토 끝자락을 이로 꽉 물었다.
― 끝났어…!
좀비의 치악력은 같은 레벨 언데드 몬스터 중에서 우수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한번 물면 놓치지 않는 치악력.
더군다나 모직으로 된 힐리아의 망토는 찢어지지도 않고, 그대로 좀비의 입안으로 들어갔다.
― 어어!
힐리아의 입이 벌어진다.
뒤에서 잡아당기는 강한 힘.
가뜩이나 지치고 힘든 몸으로, 판자 위에서 버티던 그녀로서는 그 힘을 견뎌낼 수 없었다.
풍덩―
그녀의 몸이 물로 빨려 들어갔다.
결국 힐리아도 옥상 너머로 흘러내리는 물을 타고 흘러갔다.
― 허어…!
【참가자 1명이 탈락했습니다!】
“이제 한 명밖에 없네.”
남은 참가자는 한 명.
만약 그 한 명도 탈락한다면 제비뽑기가 벌어졌다.
마지막 스테이지 참가자들 중 1명을 랜덤으로 선발하는 것이다.
―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가능할까?
― 글쎄….
누구도 낙관할 수 없었다.
시간이 얼마 없고.
떠내려가지 못한 좀비들도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데, 그 숫자는 50여 마리.
좀비들은 물에 젖어서인지 몸이 흐느적거렸다.
화면은 이제 호준을 비추었다.
탁 탁 탁 !
그는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의 발이 닿을 때마다 바닥의 물이 왕관 모양으로 튀었다.
“왜 저렇게 빨라?”
“달리기 선수인 줄.”
많은 이들이 그의 놀라운 이동속도에 입을 벌렸다.
“호준 님 파이팅!”
“고고고!”
“뀨뀨!!”
“뀨우!”
한쪽 구석에서 별이를 시작으로, 요정들이 큰 소리로 응원했다.
그 응원을 신호탄으로, 연달아 응원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우리 VVIP님 가라!”
대장장이 스미스 씨가 우렁차게 소리치고.
“우승하면 씨앗 할인해줄게요! 화이팅!”
잡화점 제나도 응원에 합류했다.
“요리사 양반 넘어지지 말고 잘 달리라고!”
“고생해서 올라갔으면 뽕을 따야지!”
“전속력으로 가즈아!”
호준을 알고 있는 식당 손님들도 응원했다.
호준! 호준!
그의 이름이 콜로세움에 울려 퍼지고.
크르르르!
화면 속에서는 힘을 회복한 좀비들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피융 피융―
“저리 꺼져!”
그러나 호준은 인사 대신, 눈구멍에 화살을 박아 주었다.
양쪽 눈, 그다음은 심장.
퍽―
화살을 맞고도 다가온 좀비는 팔꿈치로 가슴을 내리찍었다.
쿠엑!
갈비뼈가 나간 좀비가 몸이 두 동강 나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이제 얼마 안 남았어.’
호준은 깃발을 바라보았다.
남은 거리는 10미터 정도.
【8초 남았습니다】
남은 시간은 8초.
앞을 가로막은 좀비는 8마리.
“으아아! 비켜 이 새끼들아!”
호준은 등에 지고 왔던 판자를 마구 휘둘렀다.
판자 옆면이 나란히 선 좀비들의 목울대를 그었다.
날카로운 옆면은 목울대를 잘근잘근 부쉈다.
크억―
좀비들이 저마다 목을 부여잡고 기우뚱하자 호준은 쐐기를 박았다.
호준은 옆차기로 한 녀석의 가슴을 후려 찼다.
퍽―
꾸엑!
발차기로 가슴이 뻥 뚫린 좀비가 오른쪽으로 쓰러졌다.
그 옆의 두 마리가 도미노처럼 쓰러졌다.
크아앙!
다른 좀비들이 달려들었다.
호준은 이번에는 무릎을 겨냥해 판자를 휘둘렀다.
퍽―
【축복을 받아 대미지가 대폭 증가합니다!】
힐리아의 축복받은 판자는 좀비의 정강이뼈를 반 토막 냈다.
콰드득!
좀비들이 무릎을 잃고 쓰러져 이리저리 바닥을 구른다.
쩌적 쩌적
호준은 좀비의 뼈를 밟으며 진격했다.
【1초 남았습니다】
‘어서…!’
메시지를 읽은 그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는 몸을 앞으로 던지며 깃발을 향해 손을 길게 내뻗었다.
【게임 종료】
게임의 종료를 알리는 마지막 순간.
그의 손에는 새하얀 깃발이 들려있었다.
* * *
“와아아아아!!!”
콜로세움에서는 우레와 같은 함성이 울려 퍼졌다.
호준이 게임 종료 1초를 남겨두고 깃발을 잡은 상황이 화면으로 생중계되었고.
마지막까지 손에 땀을 쥐고 본 관중들은 잔뜩 들떴다.
뜨거운 열기는 달걀도 익힐 수 있을 것 같았다.
― 미쳤다.
― 와…! 진짜야?
― 좀비를 그냥 장작개비 부수듯 해치우네.
많은 이들이 감탄했다.
감탄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의 판단, 실력, 스피드는 다른 참가자보다 현저히 앞서 있었으니까.
“해냈어! 꺄아아아!”
“뀨뀨!!!”
“끼루루!!”
경기장 한구석에서는, 요정들이 서로를 껴안으며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있었다.
그렇게 모두의 환호를 받으며, 경기장 한가운데에 호준이 텔레포트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