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9. 파도타기
목표가 같으면 대화가 통하는 법.
호준과 힐리아의 경우도 그러했다.
둘의 목표는 옥상.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옥상에 빨리 올라가는 방법을 논의했다.
“여기 외곽계단을 타고 가는 건 어떨까요?”
“음, 외곽계단은 계단 폭이 좁습니다. 자칫하다 좀비들이 포위하면 위아래로 꽉 막힐 수 있죠. 그보다는.”
탁!
호준의 손가락이 지도의 한 지점을 짚었다.
“여기로 가죠.”
중앙 계단이었다.
힐리아가 고민되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음. 중앙 계단이 여기와 가장 가깝기는 한데. 가능할까요? 아까 좀비들이 득실거리던 것 같은데.”
“좀비들이 종일 계단에만 있지는 않을 겁니다. 있다 해도 해치우고 가는 수밖에요. 외곽계단까지는 거리가 너무 머니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이곳. 중앙 계단뿐입니다.”
“그러네요. 외곽계단까지 가다가 복도에서 포위당할 수도 있구요. 그럼 호준 님 말대로 중앙으로 갑시다!”
그렇게 중앙 계단으로 가기로 결정되었다.
둘은 전력 질주를 앞두고 1분간 휴식하기로 했다.
호준은 지도를 들여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시간이 많지 않아.’
남은 시간은 20분.
아직 성공을 가늠할 수 없었다.
중앙 계단에서 시간을 얼마나 잡아먹을지 알 수 없었으니까.
그리고 옥상이라고 해서 좀비 안전지대라는 보장도 없다.
‘옥상에도 좀비가 있을 가능성이 높아.’
좀비의 숫자가 수십 마리가 되면, 사냥보다는 달리는 것이 이로운 선택이었다.
유토피아가 무슨 무쌍게임류도 아니고.
학교 복도나 계단 같은 좁은 공간에서는, 포위되면 어디로 도망칠 곳이 없었으니까.
‘빨리 옥상으로 올라가는 게 답이다.’
다행히 힐리아는 문밖의 몬스터가 있는지 미리 알 수 있는 법이 있었다.
외부 탐지스킬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 탐지 스킬로 반경 2m 안에 몬스터가 있는지를 알 수 있어요.
탐지 범위가 넓지 않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작전 시작을 앞두고 문 쪽으로 걸어가는데, 힐리아가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저 호준 님 무기에 축복을 드려도 될까요?”
“축복이라면…?”
“여신의 축복을 받은 무기는, 언데드 몬스터에게 대미지가 더 높아지거든요. 싸우는 데 도움이 될 거에요.”
어둠은 빛으로 대적한다는 건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이었다.
힐러의 축복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입니다. 그런 축복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죠.”
“감사합니다. 그럼 10초만 시간을 주세요!”
― 여신의 자비를 바라건대 부디 이곳에 축복을 내려주시기를
힐리아가 스펠을 외치자 손바닥에서 빛이 흘러나온다.
빛으로 이루어진 덩굴이 그녀의 지팡이, 호준의 활, 화살, 그리고 단검을 휘감았다.
잠시 뒤 빛이 사그라들었다.
【여왕 아라크내 맹독이 발린 화살에 여신의 축복이 부여되었습니다】
【언데드 몬스터에 대한 기본 대미지가 300% 상승합니다】
축복은 성공적이었다.
“휴우!”
숨을 몰아쉰 힐리아가 지팡이를 곧게 쥐며 말했다.
“아까 문… 그냥 닫아버릴 수도 있으셨을 텐데. 열어주셔서 감사해요. 제가 첨단 공포증이 있어서… 좀비들 손톱만 보면 너무 무섭거든요. 감사하다는 말 그냥 의례적으로 하는 게 아니에요. 정말 진심이에요.”
그녀의 눈빛은 진지한 눈빛을 띠었다.
그런 눈빛에 호준은 뭐라 답할지 망설이다 입술을 뗐다.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겁니다.”
“아뇨. 음… 호준 님이라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고마워요.”
그녀의 귓가가 조금 빨개져 있었다.
뭐라 답할까 고민하는데, 힐리아가 돌연 주먹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그 그러니까 옥상까지 파이팅입니다! 뒤에서 열심히 보조할 테니, 잘 부탁드려요!”
“저야말로 잘 부탁합니다!”
의기투합을 마친 둘은 문에 귀를 가져다 댔다.
카랑― 카랑―
좀비들의 손톱이 바닥을 긁는 소리가 작게 들린다.
“탐지!”
힐리아가 스펠을 외치자 그녀의 눈동자에 고대 문자가 떴다.
“으음….”
곧 그녀의 눈동자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힐리아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문 앞에 좀비가 없다는 신호.
철커덩 ―
호준은 문을 열었다.
후다다닥―
남녀 한 쌍이 쏜살같이 계단을 향해 달렸다.
다행히 복도에는 좀비들이 몇 없었다.
계단을 오르자 바닥에 피가 흥건히 묻어 있었다.
누가 희생되었는지는 금방 눈으로 확인했다.
‘은발 머리가 죽었군.’
미하일이 혀를 쭉 내밀고 처참한 상태로 죽어있었다.
호준은 시체에서 시선을 떼고 계단을 올랐다.
성큼성큼 계단을 올랐다.
힐리아도 뒤에서 잘 따라오고 있었다.
크르르!
크아!
그들이 지나가자 근처에 있던 좀비들이 발소리를 듣고 소리를 내질렀지만.
“으아아! 저리 가!”
때마침 또 다른 생존자가 4층 끝 복도에서 소란을 피워 시선이 분산되었다.
크앙!
청각이 예민한 좀비들은 시끄러운 생존자에게로 향했다.
‘됐다.’
천운 같은 기회를 잘 이용한 끝에.
4층
그리고 5층을 지나
마침내 6층을 목전에 뒀다.
그러나 옥상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호준은 멈추었다.
‘이런…….’
멈출 수밖에 없었다.
‘문이 잠겼어.’
두꺼운 철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잠긴 원인은 사람 머리통만 한 자물쇠였다.
자물쇠에는 열쇠 구멍이 없었다.
즉, 문을 통과하려면 문이나 자물쇠 둘 중 하나를 부숴야만 했다.
힐리아도 당황해 눈동자가 흔들렸다.
호준은 조용히 하라는 의미로 검지를 손에 가져다 대고는, 다시 자물쇠를 살폈다.
‘문은 너무 두껍고 부수려면 자물쇠를 부숴야 해.’
다만, 문제는 자물쇠를 부수려면, 소리가 난다는 것.
곧 그 소리를 듣고 좀비들이 몰려올 것이다.
그에 대해 고민하고 있자, 힐리아가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성스러운 방벽이라고, 벽을 설치할 수 있어요. 긴 시간은 못 버티지만… 뒤는 제가 지킬 테니 자물쇠를 부숴주세요!”
호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자물쇠 부수기에 들어갔다.
그는 소화기를 들어 자물쇠를 세게 내리쳤다.
그의 등 뒤에서 힐리아가 잔뜩 긴장한 채로 아래를 내려다봤다.
캉 캉―
깡깡거리는 소리가 계단을 타고 울려퍼진다.
계단이라는 구조 덕분에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크아아!
그 소리를 들은 좀비들이 울부짖는다.
계단 벽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좀비들이 몰려오는 것이 보지 않아도 느껴졌다.
깡깡―
호준은 쉼 없이 자물쇠를 세게 내리쳤다.
어찌나 센지 소화기 가운데가 움푹 파일 정도였다.
그러나 자물쇠는 아직 금조차 가지 않았다.
‘빨리 부숴야 해.’
크아앙!
“녀석들이 거의 다 올라왔어요!”
다급한 힐리아의 외침이 들렸다.
호준은 자물쇠를 향해 풀스윙으로 내리쳤다.
까앙―!
콰직―
자물쇠에 가는 금이 갔다.
‘좋았어!’
실처럼 가는 금에서 호준은 희망을 얻었다.
크아아!
마침내 좀비들이 계단으로 들이닥쳤다.
“라이트월!”
힐리아가 연한 노란빛 방벽을 펼쳤다.
치지지직―
좀비들이 방벽에 다가가다 살이 불타오르자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시간벌기는 된듯했다.
크르르!
크앙!
분노에 찬 좀비들이 양손을 볼에 대고 돌고래 비명을 내질렀다.
귀를 찢는듯한 비명.
호준과 힐리아 모두 인상을 찡그렸다.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호준은 손을 멈추지 않았다.
깡깡깡깡깡―
“부, 서, 져, 라, 좀!”
그는 금 간 부위를 집중적으로 내리쳤다.
그렇게 내리치기를 얼마나 했을까.
촤자작―
마침내 금이 점점 더 커지더니.
자물쇠가 깨지기 시작했다.
깨지기 시작하자 삽시간에 자물쇠가 가루가 되어 부서졌다.
파스스슥―
호준은 발로 자물쇠를 온 힘을 다해 걷어찼다.
콰장창―
자물쇠가 산산 조각나 구석으로 나가떨어졌다.
호준은 문을 벌컥 열었다.
상쾌한 겨울밤 공기가 얼굴을 두드리고.
칠흑 같은 하늘과 동그란 달이 둘을 맞이했다.
“하아. 하! 드디어! 옥상이네요!”
“혹시 모르니까. 쉿!”
호준의 경고에 힐리아는 입을 손으로 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호준은 재빨리 주위를 살폈다.
거대한 물탱크에 가로막혀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다.
보이는 곳에는 깃발은 없었다.
“호준 님, 벽이 곧 무너져요! 일단 몸을 피해야 합니다!”
뒤를 돌아보니 그녀의 말대로 방벽이 무너져가고 있었다.
아니, 사실상 거의 무너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벽이 얇아지자, 좀비들이 벽을 찢어발기기 시작했으니까.
크아아!
벽을 찢어발긴 것이 기쁜 것일까.
좀비들이 히죽히죽 웃으며 검붉은 혀를 날름거린다.
‘일단 몸부터 피하자.’
계단 좀비는 50마리는 넘었고.
안 보이는 좀비는 더 많을 것으로 보였다.
‘도망갈 곳이라면. 여기지.’
호준은 물탱크의 사다리를 타고 올랐다.
힐리아도 그 뜻을 알아채고 따라 올라갔다.
콰자자작―
마침내 방벽이 무너지고.
크아아아―
크르르르―
입맛을 쩝쩝 다시는 좀비들이 옥상으로 들이닥쳤다.
그들은 먹잇감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크르르?
그러나 먹잇감은 온데간데없었다.
‘벌써 올라갔지.’
호준과 힐리아는 이미 사다리를 타고 물탱크에 올라가 걸터앉아있었으니까.
힐리아는 작게 미소지으며 좀비들을 여유롭게 내려다보았다.
물탱크 높이는 덤프트럭 높이 정도.
둘은 위에서 좀비들을 훤히 내려다볼 수 있었다.
그들 중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고, 그 덕분에 좀비는 그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크르르르―
좀비들은 놓친 사냥감을 찾고자 혈안이 되었다.
어떤 녀석은 무릎을 꿇고 네발 자세로 바닥을 개처럼 기었고.
손톱을 이리저리 휘두르면서 먹이를 찾아 나서다가 옥상에서 떨어지는 멍청한 녀석도 있었다.
그러나 청각만 발달한 그들로서는 소리를 내지 않는 먹잇감을 찾을 길이 없었다.
좀비들이 뻘짓을 하는 사이, 호준은 깃발을 찾았다.
물탱크의 높이 덕분에 손쉽게 찾을 수 있었다.
‘제법 멀리 있군.’
직선거리 200m 정도일까.
원래대로라면 식은 죽 먹기였겠지만 좀비들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콩나물시루 같군.’
옥상에 좀비들이 콩나물시루처럼 꽉 찼던 것.
기침 소리만 내도 기민하게 알아차리는 좀비를 200마리나 뚫고 가려면.
날개라도 달지 않는 이상 어려워 보였다.
‘더군다나 제한 시간 5분 만에. 다 해치우려면….’
덩달아 시간도 없었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한 번에 확 쓸어버릴 방법이.’
여기까지 와서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웠다.
【참가자가 사망했습니다!】
【참가자가 사망했습니다!】
【참가자가 사망했습니다!】
옥상으로 오는 사이 다른 참가자들 셋도 사망했다.
그러니 호준과 힐리아가 이번 스테이지의 유일한 도전자였다.
― 음. 어떻게 할까요?
힐리아도 난감한 얼굴을 하고 호준을 향해 소리 없이 말했다.
깃발을 갖고 싶으나 방법은 없고.
그녀도 고민이 되는지 소리 없이 끙끙 앓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 생각해보죠.
호준은 탱크 바닥에다가 손바닥으로 글씨를 적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생각해내자.
좋은 방법이….
‘그러니까…….’
불가능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그였기에.
호준은 머리를 데굴데굴 굴리며 바닥을 무심코 내려다봤다.
새파란 물탱크의 겉면이 보였다.
‘무슨 방법이… 잠깐만.’
그는 문득 고개를 내렸다가 희망을 발견했다.
그가 밟고 서 있는 거대한 큐브 모양의 물탱크.
그 위에 글자가 새겨져 있던 것.
‘이거야.’
― 주의, 물탱크 내부에는 2t의 물이 들어있음 ―
2,000kg의 물에서 그는 희망을 보았다.
‘파도타기 한번 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