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를 너무 잘함-98화 (98/200)

098. 코코아를 마십시다

스테이지 2가 끝나자 생존자는 시작점으로 되돌아가고.

탈락자는 무대에서 사라졌다.

산이 가라앉고 난 빈자리를, 관중들의 우렁찬 함성이 메운다.

“하아. 끝이구나.”

“등산만 했더니 진이 다 빠지네.”

“후. 살아남았어!”

생존자 대부분은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바닥에 주저앉았다.

얼굴에는 피로가 가득하다.

산행으로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호준은 옷에 묻은 먼지를 탁탁 털며 준비했다.

다음 스테이지에 참가할 준비를.

곧이어 보상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다.

탁―

이전과 똑같은 황금색 주머니가 안겨든다.

호준은 안을 들여다보며 옅게 웃었다.

‘반지구나.’

【황금 반지】

【레벨 제한】 : ―

【등급】 : 없음 (비매품)

【아이템 설명】

― 요나스 마을에서 황금 반지는 행운을 상징합니다.

【장착 효과】

― 7% 가격 할인

*요나스 마을 내에서 구매하는 물건 가격이 7% 다운됩니다.

*물건의 종류에 상관없이 할인 효과가 적용됩니다.

반지의 효과는 훌륭했다.

‘딱 필요한 거네.’

반지만 끼면 요나스 마을에서 결제하는 모든 아이템을 7% 할인받을 수 있었다.

아이템 개수, 금액 제한도 없다.

‘7% 할인이면 이게 얼마야.’

누가 보면, 7% 정도의 할인으로 왜 그렇게 좋아하냐고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르지만.

호준에게는 7% 할인은 큰 혜택이었다.

‘10만 골드를 써도 7천을 할인받으면. 음. 계산하면 7백만 원이 굳는 거네.’

이미 그가 씨앗과 무기를 사고자 쓰는 돈은 일반인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었으니까.

금액이 큰 만큼, 할인받는 금액도 커졌다.

그러니 7% 할인으로도 큰돈을 아낄 수 있는 것.

‘개꿀이다.’

호준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반지를 꼈다.

왼손 두 번째 손가락에서 반지가 반짝인다.

번뜩이는 빛이, 마치 황금빛 미래를 암시하는 듯했다.

【황금 반지를 장착했습니다!】

【거래 시 반지의 효과가 자동으로 적용됩니다】

흐뭇한 얼굴로 반지를 낀 손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울음이 들렸다.

삐로리!

종달새의 노랫소리다.

화면 속에서 바니바니가 양팔을 활짝 벌리며 소리치고 있었다.

【여러분, 이제 세번째 스테이지를 시작하겠습니다!】

― 우와!

― 빨리 시작해라!

― 호우!

― 우우!

함성이 울려 퍼지자 바니바니가 화사하게 웃으며 답한다.

【이번에는 특별히 공포 특집으로 준비했습니다! 이제 참가자들은 전원, 좀비들이 득실거리는 고등학교에 배치됩니다. 어떻게 해서든 6층 옥상에 올라가서, 자신의 이름이 적힌 깃발을 흔드세요! 좀비들과 즐겁게 지내시라는 의미로 스테이지를 정성껏 준비했습니다!】

― 오오! 좀비라고?

― 아주 영화를 찍네.

― 정말 재밌겠는데.

― 캬. 여름 하면 공포지!

좀비 학교라는 말에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른다.

그러나 후끈 달아오른 분위기에서도 참가자들은 웃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얼음장 같군.’

호준이 쓱 주위를 둘러보니 낯빛이 어둡다.

오른쪽에 선, 통통한 체형의 한 남자는 얼굴이 허옇게 질려 있었다.

“미쳤어. 좀비라니! 으아―”

그는 몸에 벌레라도 붙은 것처럼 부르르 떤다.

공포영화라면 치를 떠는 부류인듯했다.

반면 왼쪽에 선, 푸른색 단발머리 여자는 조금 침착한 모습이었다.

“좀비라. 음…… 어렵긴 하겠지만. 뭐 어떻게 되겠지.”

‘좀비를 안 무서워하나 보네.’

호준은 잠시 그 여자를 보다가, 고개를 들어 전광판을 보았다.

바니바니가 뭔가를 또 땅에서 끄집어내고 있었다.

【자, 그럼 이번 미션의 무대를 소개하겠습니다!】

짝짝짝!

쿵―

박수 소리와 함께 건물이 바닥에서 치솟았다.

새하얀 벽을 지닌 학교 건물을 운동장이 감싸 안은 형태다.

운동장은 검디검은 진흙으로 가득 찼다.

질퍽한 진흙은 걷기조차 힘들겠지.

꿀렁꿀렁―

【학교 바깥으로 나가는 순간, 저 진흙에 그대로 파묻히게 되실 겁니다. 학교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경고나 마찬가지죠!】

진흙에 발을 댔다가는, 좀비의 한 끼 식사가 될 거라는 살벌한 경고도 이어졌다.

‘어둡군.’

공포 특집에 걸맞게 무대의 배경은 밤이었다.

하늘에 보름달이 떴다고 해도, 달빛은 어슴푸레하게 앞을 비출 뿐.

학교 내부를 보기는 어려웠다.

휘이― 휘이―

음산한 분위기에 걸맞게 음산한 바람이 불어온다.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느티나무는 머리를 산발로 풀어헤친 여자 같았다.

‘소름 끼치게 잘 만들었네.’

삐걱― 삐걱―

머리카락이 쭈뼛 서게 하는 맵이었다.

― 와. 공포영화에서 그대로 가져온 듯. 진짜 으스스하다.

― 으으. 정말 무서울 듯.

― 저런 데를 혼자 들어간다는 거야?

― 거기다 좀비까지 있음ㅋㅋ 근데 보는 재미는 있을듯ㅋㅋㅋㅋ

― 좀비 대전 가즈아!

시합을 기대하는 관중들의 환호가 경기장에 울려 퍼진다.

【그럼 빠른 시작을 위해, 미션을 공개하겠습니다!】

환호에 화답하듯, 바니바니가 미션 정보를 공개했다.

호준은 숨을 죽이고 화면에 집중했다.

* * *

미션은 간단했다.

【스테이지 3】

【미션】 : 학교 옥상에 있는 깃발 흔들기.

【제한 시간】: 1시간

【성공 보상】: 5,000골드, 다음 스테이지 진출

‘깃발을 흔들면 된다는 거지.’

옥상에 있는 깃발을 흔들면 끝.

옥상에는 각자의 이름이 적힌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옥상은 6층이었다.

제한 시간이 1시간이나 된다는 점으로 볼 때, 미션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어려운 이유는, 아마 좀비들 때문이겠지.’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좀비들이었다.

바니바니가 말한 좀비의 특징은 다음과 같았다.

1. 머리가 좋다.

2. 시각과 후각이 안 좋은 대신, 청각이 기가 막히게 발달했다.

3. 이동속도가 꽤 빠르다.

4. 그리고 숫자가 많다.

그녀가 말한 힌트는 여기까지가 전부였다.

‘정리하자면 머리 좋은 좀비들이 가득하다는 건데.’

호준은 1분이라는 준비 시간 동안 대책을 세웠다.

현재로서는 최선의 대책.

‘몸을 숨기고 좀비의 정체를 가늠한 뒤에. 움직이자.’

좀비의 특성을 파악하기 전까지 섣불리 움직이지 않기로.

준비시간은 금방 끝이 났다.

【자, 그럼 대망의 세 번째 스테이지를 시작하겠습니다】

바니바니가 양손을 높이 위로 뻗자, 엄지손가락에서 빛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 빛 입자들은 참가자들의 입으로 쏙 빨려 들어갔다.

스르르―

눈앞이 새하얀 빛으로 가득 차더니.

― 주번

김정미

이주한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교실에 서 있었다.

정확히는 교탁을 등지고 칠판을 바라본 자세였다.

‘1―1반, 1층인가.’

반 표지판 옆에, F1이라고 적힌 것을 봐서 1층이었다.

‘어둡지만 안 보일 정도는 아니야.’

다행히 눈은 달빛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자 색깔 구분을 할 정도로 앞이 보였다.

텅 빈 교실을 두루 살핀 그가 칠판을 보고자 고개를 돌렸다.

‘이건…!’

호준은 그 순간, 심장이 툭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달빛 아래 벌겋게 빛나는 칠판은 경악하기에 충분했다.

온갖 글씨가 피로 적혀있고, 피로 물든 손바닥 자국이 가득했으니까.

살려줘

죽고 싶어

제발

무서워

밖에 괴물이

피에 젖은 메시지는 문장을 이루지 못하고 뚝뚝 끊겼다.

섬뜩한 기분에 한 발 뒤로 물러서는데.

삐걱―

더 섬뜩한 소리가 등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삐걱삐걱―

‘누가 오고 있다.’

누군가에 의해 낡은 나무 바닥이 짓눌리고 있었다.

그는 좀비일까 사람일까.

직접 보기 전까지는 모른다.

이대로 무방비하게 맞을 수는 없었다.

‘일단 몸을 숨겨야 해.’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호준은 재빨리 청소 비품함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비품함은 사람 한 명이 들어가기에 넉넉한 크기였다.

비품함 안으로 들어간 뒤, 호준은 천천히 문을 닫았다.

‘소리 내면 안 돼.’

그르르르―

가끔 들리는 저 울음은 좀비의 울음이리라.

좀비는 소리를 잘 듣는다고 했으니, 소리를 내면 곤란했다.

문을 반 넘게 닫았다.

천천히 마저 닫으려는데.

드르륵―

교실 문이 열렸다.

‘흡…!’

호준은 하마터면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교실 문은 사물함과 서너 발자국 떨어진 곳에 있었으니까.

좀비가 언제 그 앞으로 도달했는지는 몰라도 지척에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크어억―

구루루루―

좀비는 하나가 아니었다.

반쯤 닫힌 문 사이로, 좀비들이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다행히 좀비들의 눈은 시력이 좋지 않은지 호준을 보고도 그냥 쓱 지나쳐 갔다.

‘숨을 못 쉬겠네.’

혹시라도 숨소리를 들을까 봐 호준은 숨을 천천히 나눠 쉬면서 문을 천천히 닫았다.

영화에서 보면 꼭 문을 닫고 있는데 삐걱 소리가 나지 않던가.

호준은 정말 심혈을 기울여서 천천히, 느릿느릿 닫았다.

‘후유―!’

다행히 비품함 문은 완전히 닫히기 직전까지 가는 동안 삐걱 소리가 나지 않았다.

완전히 닫으면 철컹 소리가 날듯하여, 호준은 손가락이 낄 정도로만 조금 열어둔 채로 있었다.

그르르릉―

좀비들의 위협은 계속되었다.

비품함에는 딱 머리 높이에 구멍이 나 있었다.

그 구멍을 통해 호준은 밖을 볼 수 있었다.

‘왜 계속 들어오는 거야.’

좀비들이 계속 교실로 들어왔다.

벌써 10마리나 들어와서 안을 걸어 다녔다.

슬쩍 보니 좀비들은 신체구조도 특이했다.

‘저 손톱에 박히면 즉사겠는데.’

좀비들은 손가락 끝에 50cm 정도의 날카로운 손톱을 달고 다녔다.

손톱이 바닥을 긁으며 기익 소리를 낸다.

손톱 날은 날이 제대로 서서 위협적이었다.

‘일단 버티자.’

복도에도 좀비가 다섯이나 포진했는데, 길을 꽉 채우고 있어서 화살로는 역부족이었다.

지금으로서는 사물함이 가장 안전하다는 판단이었다.

크르르르!

크아!

좀비들은 사냥에 대한 불만인지.

배고픈 것인지는 몰라도 계속 그르렁거렸다.

그 울음이 마치 먹이를 먹고 싶어 안달 난 야수의 울부짖음처럼 느껴졌다.

크아앙!

쿠쿡―

바로 앞의 좀비가 팔을 휘두르는 바람에, 비품함을 뚫고 손톱이 들어왔다.

‘아. 깜짝이야!’

갑자기 발악하는 좀비 때문에 욕이 나오려던 것을 간신히 참았다.

다행히 좀비의 움직임이 눈으로 보였기에, 손톱을 피할 수 있었다.

손톱을 빼낸 좀비가 다시 걷는 것을 보니, 특별히 의식하고 공격한 행동은 아닌 듯했다.

잠시 숨을 돌리며, 기회를 모색하던 그때.

“꺄아아악!”

고음의 비명이 교실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는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렸다.

크르르르!

크아앙!

큰 소리로 인해 좀비들이 흥분했다.

우당탕!

좀비들이 일제히 소리 나는 쪽으로 이동하면서, 의자와 책상이 사방에 나뒹군다.

비명을 들은 교실 안 좀비들이 일제히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크악! 꺄악!”

여자의 비명.

크아아아!

그 비명 사이로 좀비의 울음도 섞여 들렸다.

옆 교실에서는 섬뜩한 상황이 일어나는 듯했다.

“꺄아아아!”

여자의 비명으로 인해, 복도 좀비들도 다 사라졌다.

호준은 기회임을 눈치챘다.

‘이때다.’

좀비 지옥에서 벗어나 위층으로 갈 기회였다.

“꺅 꺅!”

그의 발걸음 소리는 여자의 비명에 묻혀 좀비의 시선을 끌지 못했다.

‘오케이. 바로 계단이다.’

다행히도 교실과 계단은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호준은 계단 위를 슬쩍 보고는,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후다닥 올라갔다.

성큼성큼 위로 올라간 그가, 3층으로 향하려던 그때.

크르르!

3층에서 계단을 내려오는 좀비들의 기척을 느꼈다.

‘좀비들도 계단을 쓸 줄 알아.’

호준은 계단을 내려오는 좀비를 피해 2층으로 갔다.

다행히 계단 좀비들은 계단이 익숙지 않은지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도망갈 시간은 번 셈.

2층 복도에 서자, 소름 끼치는 울음이 귀를 붙잡았다.

크우우!

쿠우우!

좀비들이 팔을 휘저으며 달려오고 있었다.

“꺄아아! 살려줘요!”

아까 봤던 파란색 단발머리 여자가 좀비들을 이끌고 뛰어오고 있었다.

카랑카랑―

그녀 뒤로 좀비들이 손톱을 까득거리며 달려온다.

설상가상으로 이번에는 좀비들 숫자가 열 마리는 훌쩍 넘어 보였다.

손톱 당 한 번씩만 긁혀도 피부가 갈기갈기 찢길 것 같았다.

‘일단 피하자.’

호준은 주위를 둘러보다 철문이 설치된 화장실을 발견했다.

철문이라면 저 발톱을 막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 충분히 가능할지도.

철커덕―

높은 근력 수치 때문인지 문은 쉽게 열렸다.

호준은 재빨리 안으로 들어가고 문을 닫았다.

아니, 문을 닫으려 했다.

“자, 잠깐만…… 사 살려주세요. 제발!”

여자가 간절히 내미는 손을 보며 호준은 잠시 고민했다.

그녀는 제법 잘 달렸지만, 그 뒤에 매달린 좀비들이 문제였다.

과연 좀비들을 피해 계속 달릴 수 있을까.

‘그래도 해봐야 알지.’

호준은 문을 반쯤 열어둔 채로, 화살을 쏘았다.

피융―

쿠억!

화살이 좀비의 미간을 관통했다.

호준은 의도적으로 미간을 중심으로 쏘았다.

영화에서 봤듯이 머리가 가장 약점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다행히 판단은 맞았다.

머리에 화살을 맞은 좀비들은 몸을 갸우뚱하면서 속도가 조금 느려졌다.

‘그래도 죽지는 않는군.’

그러나 좀비들은 기우뚱할 뿐, 죽지 않았다.

좀비를 죽이는 방법이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헉 헉!”

다행히 여자는 재빠르게 달려왔다.

그녀는 화살로 시간을 벌어주는 것을 눈치챘는지 이를 악물고 뛰었다.

그 사이 좀비들은 고슴도치가 되어갔다.

크응―

크르르―

화살을 너무 맞은 좀비들이 하나둘 균형을 잃고 뒤로 자빠졌다.

자빠진 좀비들과 뒤에서 달려오던 좀비들이 섞여 난장판이 되었다.

그렇게 좀비들이 혼란에 빠진 사이 여자는 문틈으로 쏙 들어왔다.

철커덩―

철문을 완전히 닫자 좀비들이 문을 마구 두드렸다.

퓽 퓽―

손톱으로 문을 난도질하는지, 날카로운 비음도 들린다.

그러나 문을 뚫지는 못했다.

문은 몇 번이나 들썩이다가 곧 잠잠해졌다.

“후유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숨을 돌린 여자는 사정을 털어놓았다.

복도에서부터 시작한 그녀는, 좀비를 피해 무릎 높이까지밖에 안 오는 사물함에 숨었다고 했다.

하필 그녀가 숨은 사물함 안쪽에 부저가 붙어있었는데 그걸 모르고 등으로 눌렀다나.

“정말 죽을 뻔했지 뭐에요. 하하.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그 소문의 MVP를 이렇게 만나게 되네요.”

쾌활하게 웃는 그녀의 이름은 힐리아.

직업은 힐러였다.

힐러가 여기까지 살아남은 것은 대단한 행운이었다.

호준은 놀란 가슴을 내려치는 그녀에게 머그잔을 건넸다.

“따뜻한 코코아입니다. 한 잔 드시고 가라앉히세요.”

“아…! 감사합니다.”

그녀는 코코아가 담긴 머그잔을 꼭 쥔 채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껴먹듯이 천천히 마시는 모양새가 입맛에 맞는 듯했다.

호준도 한 모금 마셨다.

고생 끝에 달콤한 맛은 심신에 위로가 된다.

진한 코코아 맛은 입에 딱 맞았다.

“우와! 요리사라시더니 진짜 솜씨 좋으시네요. 제가 먹은 코코아 중에 제일 맛있어요!”

힐리아는 엄지를 추켜올리며 배시시 웃었다.

그 눈빛은 감동으로 일렁였다.

“언제든지 찾아오세요. 매일 열려있으니까요.”

“하하. 그런데 좀비가 가득한 학교에서 코코아라니. 뭔가 좀 웃기긴 한데 그래도 좋네요. 잠깐 쉬어가는 것도 있어야죠.”

코코아 한 잔으로 날카로워졌던 신경이 가라앉았다.

코코아를 완성품으로 인벤토리에 미리 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홀짝 홀짝―

어두컴컴한 공간에 불과하지만, 좀비가 없기 때문인지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코코아를 다 들이켠 힐리아는, 품 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것은 종이 쪼가리였다.

“어쩌면, 이게 옥상으로 올라가는 방법이 될 것도 같아요.”

종이 쪼가리가 넓게 펼쳐졌다.

그것은 학교의 전체 구조가 그려진 지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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