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4. 경기장 입장
이무기를 궁지로 몰아넣고 불태워 죽이려던 사람들은 당황했다.
“어…… 이건 그러니까.”
“뭔 짓이냐고 물었잖습니까. 손님들?”
질문하는 호준의 눈빛이 너무 날카로웠기 때문이다.
듣기에는 존댓말인데 묘하게 기세가 무섭다.
마치 베일 것처럼 날카로운 눈빛에 몇몇은 어깨를 움츠렸다.
뒤로 물러나는 이도 있었다.
그들은 서슬 퍼런 기세에 압도되었다.
‘원래 이런 분위기를 지닌 사람이 아닌데. 표정 변화가 무섭네.’
‘순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잖아.’
‘눈빛으로 사람 하나 잡을 것 같네.’
그들은 호준의 눈빛에서 본능적으로 심각한 상황임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누가 대신 나서 달라는 마음으로,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어떻게 해야 해.’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젠장. 그냥 지나갈걸. 이 분위기 어째.’
우물쭈물하는 분위기에, 서릿발 같은 음성이 꽂힌다.
“제 동료인 이무기에게 왜 스펠을 외웠는지 알고 싶습니다. 설명해 주시죠?”
눈에 힘을 바짝 준 채로 저리 말하니, 사람들은 더욱 몸이 움츠러들었다.
이들은 동료라는 말에서 이미 상황 파악을 했다.
‘동료면 길들이는 중이라는 거잖아.’
‘길들이는 몬스터를 중간에 가로채는 건, PK 뜨자는 건데.’
‘PK 뜨면 우리가 100% 진다고.’
몬스터를 길들이는 기회가 아주 드물다.
그래서 중간에 길들이기를 방해하면, 싸움이 벌어지기 일쑤였다.
“아…… 그 그러셨군요. 저희는 그것도 모르고…….”
그리 말하는 남자의 얼굴은 구깃구깃 구겨졌다.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었다.
‘× 됐다.’
‘뭐라고 변명하지?’
‘젠장. 그냥 가게로 갈걸.’
그들은 호준의 음식이 절실한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가게 손님 대부분은, 호준의 음식을 먹으면서 또 그 음식을 다른 곳에 팔아 차익을 보았다.
그 수입이 제법 쏠쏠했고 본 수입을 넘기까지 했다.
오늘만 해도 그냥 가도 되었지만, 음식을 살 수 있으면 꼭 사려던 참았던 것.
‘젠장. 이러다가 가게 오지 말라고 하면 어떡하지?’
‘학자금 대출 갚으려면 꼭 사야 하는데. 하아…!’
그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호준이 가게를 그만 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누구도 호준과 적대적인 관계가 되길 원하지 않았다.
지도자 격인 뾰족 머리 남자가 사태를 수습하고자 나섰다.
그는 공손한 자세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결례를 범했습니다. 저 이무기가 길들이는 중인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미리 알았더라면 절대 공격하지 않았을 거예요. 맹세코 사실입니다.”
“음…… 혹시 여기 있는 분 중에, 이무기에게 공격당한 분 있습니까?”
“예? 아…… 그게.”
“음…….”
“아…….”
“…….”
호준의 지적에 사람들은 말을 잃었다.
다들 어버버 거릴 뿐 대꾸하지 못했다.
“그게…….”
그들은 그제야 이무기가 자신들을 한 번도 공격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히려 달려든 것은 그들 자신이었다.
상황 파악을 마친 남자가 어깨를 움츠린 채로 말했다.
“제 불찰입니다.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이 없을 겁니다.”
“죄, 죄송합니다. 호준 님. 이무기가 처음이라 들떠서 그만…….”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다른 이들도 허리를 굽히며 용서를 구했다.
사람들의 눈동자는 호준의 얼굴로 향했다.
호준은 굳게 다문 입을 천천히 열었다.
“알겠습니다. 다만 저 녀석에게 대신 사과해 주시죠. 저기 울고 있는 이무기 보이시죠?”
“아…….”
호준이 가리키는 방향을 본 뾰족 머리 남자가 작게 탄식했다.
호수에 머리만 내민 이무기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이무기는 호준의 행동에 감동해서 우는 것이었지만, 남자는 그를 오해했다.
‘우리가 공격하려 해서 겁먹은 거였구나.’
남자의 어깨가 더 수그러들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미, 미안하다. 이무기야.”
사악~
그는 이무기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왠지 그 눈빛이 괜찮다고 말하는 듯해 피식 웃었다.
“미안해.”
“나도 미, 미안.”
나머지 사람들도 그를 따라 사과했다.
“저…… 호준 님 덕분에 생계가 많이 나아졌습니다. 제 첫 딸이 이제 돌인데 새 옷도 한 벌 사줬어요. 어찌나 좋아하던지요. 염치없지만 앞으로도 가게에 방문하고 싶습니다. 괜찮을까요?”
“저도 다음 학기 등록금 마련하는데 큰 보탬이 되었어요.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다른 이들도 절실한 사정을 말한다.
누구나 절실한 사정이 있기 마련이었다.
“흠…….”
호준은 그 이야기를 경청하고서 생각 끝에 답을 내렸다.
“이번 일은, 다들 모르고 한 일이니 넘어가겠습니다.”
“후유―”
“하아…….”
안도의 한숨.
“다만, 또 이런 일이 발생하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겁니다.”
경고가 이어졌다.
“물론이죠. 하하.”
“그럼요.”
“절대 안 합니다. 네버!”
사람들은 도리도리 고개 젓기 바빴다.
“그럼 다음에 가게에서 뵙겠습니다!”
“죄송했어요!”
사람들이 떠나고 난 호숫가에는 요정과 호준.
그리고 이 모든 걸 지켜본 이무기만이 남았다.
스르륵―
이무기는 물가에 고양이 망토를 조심히 놓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 고, 고맙다 사악! 나도 그러려던 건 아닌데…… 사악! 폐를 끼쳤다 사악!
녀석의 볼이 조금 붉어진 듯하다.
눈도 잘 못 마주친다.
정말 미안해하는 기색이었다.
“냐아!”
입을 열려던 찰나 다크니스가 이무기에게 달려들어 제 몸을 비볐다.
녀석이 비늘을 핥자 이무기가 활짝 웃었다.
― 고양이 요 녀석, 가, 간지럽다사악! 하하!
이무기가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호준은 이무기가 잘 웃는 걸 보니 마음이 편해졌다.
“여기는 놀러 온 거야?”
― 옷도 가져다주고……그냥 얼굴 보려고 왔다 사악…!
이무기는 설렘을 드러내듯 꼬리를 살랑거렸다.
“잘 왔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이무기의 눈에 빛이 담긴다.
‘역시 오길 잘했어. 이 녀석은 달라. 다른 이들과.’
이무기는 은근히 머리를 내밀었고, 호준은 그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냐아!”
“아무?”
“끼루루!”
작은 생물들이 이무기 주위로 모여든다.
‘귀엽네…!’
이무기는 포동포동한 동물들이 마음에 쏙 들었다.
이무기의 눈에서, 이전의 멍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 * *
“베티, 샤롯. 잘 부탁한다.”
“물론이지.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
“농장이랑 이무기는 잘 챙길 테니까. 우승하면 우승 턱 쏘라고!”
“당연하지.”
호준은 그 말에 피식 웃고는 인사를 고했다.
“고맙다. 둘 다 맡아줘서. 잘하고 돌아올게!”
그렇게 인사를 마치고 나니.
베티와 샤롯 뒤로, 눈을 깜박이는 이무기도 보였다.
언제 말을 걸어야 하나 기다리는 눈치다.
호준이 먼저 눈을 마주치자 이무기가 말을 걸었다.
― 경기 잘하고 와라 사악!
이무기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인사한다.
“그래. 조금 이따 보자. 갔다 올게.”
모두에게 인사를 마치고서 호준은 경기장으로 떠났다.
그의 곁에는 요정들이 함께했다.
다들 한껏 들떠 칭얼칭얼 요정어 노래를 불렀다.
“어머. 쟤네 진짜 귀엽다.”
“그러게. 인형들이 걸어 다녀.”
“실력이 꽤 되나 봐. 한둘이 아닌데?”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도 쏠렸다.
호준은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고 메시지를 살폈다.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피었다.
‘호감도가 많이 올랐네.’
이무기를 구한 일로 인해 호감도가 대폭 올라 있었다.
【이무기 132호와의 호감도가 대폭 올랐습니다!】
【현재 호감도】: 53
그는 호감도가 오른 사실보다, 이무기가 다치지 않은 것이 더 마음에 들었다.
‘녀석이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 주위에 있었기에 망정이지.’
이무기가 곤경에 처했을 때, 그는 요정을 찾느라 근처에 있었다.
나무가 부서지는 소리에 다가가니 그런 사태가 벌어진 것.
미리 발견한 것은, 천운이라고 봐야 맞았다.
‘앞으로 그 주위에는 요정을 꼭 붙여둬야지. 길들이기 전까지만.’
이무기에 대한 처우를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경기장에 도착했다.
【소규모 콜로세움】
소규모라고 적혔는데 왜 이리 규모가 클까.
“콜로세움을 실제로 보니까 신기하다. 교과서에서밖에 못 봤는데.”
“로마의 원형을 그대로 재현했다며? 안도 구경해 보자.”
“로마에는 못 가봐도 이렇게 볼 수 있으니 좋다!”
막 도착한 사람들도 콜로세움의 위용 앞에서 감탄하기 바쁘다.
호준도 마찬가지였다.
이미지로만 보던 것을, 실물로 보니 기분이 남다르다.
볼을 벽에 대보니 참 시원하다.
“이렇게 큰 건물은 처음 봐요!”
“그러게. 멋지게 잘 지었네.”
호준은 별이의 말에 공감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구경을 마치고서 그는 요정들을 데리고 입구로 향했다.
입구에는 인파가 더 많다.
사람 중에서도 파란색 티셔츠를 입은 이들이 눈에 띄었다.
그들의 머리 위로는 진행요원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저분들한테 말을 걸면 되나 봐요.”
“그래. 가보자.”
성큼성큼 요원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주위에서 그의 발목을 잡았다.
“어, 호준 님 안녕하세요!”
“여기서 다 뵙네요.”
“경기 참여하시나 봐요?”
“네. 한번 재미 삼아 해 보려고요!”
“응원하겠습니다! 제 친구도 참가한다네요.”
그와 안면이 있는 가게 손님들이 말을 걸어왔다.
호준은 가볍게 인사를 하고 그들을 보냈다.
점점 진행요원과 가까워져 갔다.
그런데 누군가 그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어…?”
호준은 눈을 크게 뜨고 상대를 바라봤다.
“촌장님? 이야. 몰라볼 뻔했어요. 옷도 새 걸로 맞춰 입고. 수염도 싹 정리하셨네요?”
“크흠. 그렇게 되었네.”
입가에 주먹을 갖다 대는 촌장님은 가죽 정장을 걸치고 우아한 자세로 서 있었다.
이전에보다 중후한 멋이 더 있어 보였다.
그는 기침하며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크흠. 오랜만이군. 호준 군. 시합에 가는 모양이지?”
“예. 그렇습니다.”
“그동안 자네를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네. 정말 일취월장했어. 시합 준비는 많이 했나?”
“도전하는 의미로 최선을 다해 보려고요.”
“도전이라고 하기에는 눈빛이 살아있군그래.”
“과찬이십니다.”
“허허. 요즘 젊은이답지 않게 겸손한 모습이 참 좋네. 인사성도 좋고.”
“인사는 기본이지요.”
“말도 곱게 하는군. 허허.”
한바탕 호탕하게 웃던 촌장이 살짝 웃음을 지웠다.
그의 고개가 호준의 귀에 가까이 다가왔다.
촌장은 둘만 들을 만큼 조용히 말했다.
“내 자네에게 꼭 할 이야기가 있네. 혹시 경기가 끝나고 시간을 내줄 수 있겠나?”
“음, 무슨 이야기를 말씀하시는지…?”
“사정이 있어 다 말할 수 없네. 상부에 지침이 내려진 사안이거든.”
‘상부 지침이라면? 설마 퀘스트인가?’
촌장의 의미심장한 눈빛에서 퀘스트의 냄새가 났다.
“절대 후회할 일이 없을 거네.”
가늘게 웃는 촌장의 눈길에서 퀘스트의 냄새가 아주 진하게 났다.
“경기가 끝나고 대장간 옆에 빈집으로 오게. 거기 2층 안쪽 방에서 기다리고 있겠네.”
그 말을 끝으로 촌장은 지팡이를 짚고 떠났다.
“무슨 퀘스트려나.”
호준은 살짝 미소짓고는 고개를 들었다.
“참가시간 5분 남았습니다. 모든 참가자는 이곳으로 오세요!”
요원이 손나팔을 만들어 큰 목소리로 외친다.
드디어 시합에 나설 시간이다.
“호준 님 열심히 응원할게요!!”
【아무가 다치지 말라며 꼭 안아줍니다!】
【토순이가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라며 바닥을 팡팡 내리칩니다!】
【미르가 여차하면 볼폭탄을 쏘겠다고 말합니다!】
【다크니스가 어두운 기운이 필요하면 말하라고 합니다!】
【핑구가 날개를 파닥이며 응원의 힘을 보냅니다!】
【메이가 아쉬운 마음에 몸을 비빕니다!】
요정들의 걱정하는 마음은 충분히 전달되었다.
“하하. 다들 믿음직스러운데? 고맙다. 잘하고 올게!”
호준은 모두를 한 번씩 안아주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참가자는 이쪽으로 오세요!”
요원을 따라 경기장 안으로 입장했다.
“와아아!!”
“꺄아아!”
타오르는 열기가 뺨으로 느껴진다.
“우우!”
2천이 넘는 관중 덕분에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른다.
달아오른 열기는 평범한 직장인 호준의 마음도 달아오르게 했다.
이런 관심을 지금까지 받아본 적이 있던가.
수많은 눈이 그를 향했다.
호준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부담은 되었지만 두려움은 가지지 않았다.
어차피 판은 깔렸다.
지금 필요한 건 두려움이 아니라 자신감이었다.
‘생각한 대로만 하면 이길 수 있어.’
그는 어깨를 활짝 편 채로 경기장으로 들어섰다.
그가 걸을 때마다 여왕 아라크네의 맹독이 발린 화살통이 덩달아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