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를 너무 잘함-93화 (93/200)

093. 나들이

때로는 위기가 기회가 되기도 한다.

지금 호준도 그러했다.

손바닥 뒤집듯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이런 건 예상 밖인데.”

퀘스트 창 메시지는 그에게 기회를 주었다.

“길들이기라…!”

이무기를 길들일 기회를.

【깜짝 퀘스트】 이무기 길들이기

【퀘스트 목표】 : 온순한 성질을 지닌 이무기를 길들이시오.

【퀘스트 설명】

* 온순한 성격을 지닌 이무기를 길들이세요.

* 이무기를 길들이려면 맛좋은 먹이를 주고, 대화를 나누십시오.

* 호감도 100을 달성하면 길들이기 성공!

【퀘스트 보상】

* 양육자 칭호 획득!

* ??? 획득!

보상이 주어지는 것을 떠나, 이무기를 길들이는 것이라면 관심이 갔다.

‘천년 묵은 이무기라니. 왠지 멋지잖아.’

이무기는 적으로는 무서운 존재지만, 아군으로는 최고였으니까.

이 퀘스트에는 시간제한이 있었다.

【퀘스트 시간제한】 : 10일

무려 10일 동안 길들이기에 도전해야만 한다.

도전에 실패하면 페널티까지 있다.

【퀘스트 실패 페널티】

* 이무기의 원수 칭호 획득!

* 이무기의 원수가 되면, 현존하는 모든 이무기가 당신을 갈기갈기 찢고자 할 것입니다.

“절대 실패하면 안 되겠네.”

실패하는 즉시, 유토피아에 거주하는 모든 이무기와 척을 진다는 의미였다.

호준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10일. 그 안에 끝내야 해.”

그는 다크니스를 품에서 내려놓았다.

“까짓것 해 보지 뭐.”

이제는 최대한 이무기를 매료시킬 시간이었다.

얼어붙은 이무기의 마음을 녹여버릴 음식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 * *

“그래서 생후 10년쯤 친구 이무기가 떠난 이후로, 혼자서 살았단 말이지? 계속 혼자서?”

― 그렇다 사악! 천년 넘게 쭉 혼자였다 사악!

이무기는 그 사실이 못내 아쉬운지 고개를 수그렸다.

눈빛에 씁쓸한 기분을 읽은 호준은 굳이 더 묻지 않았다.

그 대신 치킨을 그릇에 착착 쌓으며 넌지시 물었다.

“온천에 작은 물고기들 있잖아. 게네랑 어울리면 안 되나?”

― 물고기들은 나를 보면 무서워서 도망간다 사악!

“나한테 하듯이 말이라도 걸어보지 그랬어?”

― 음…… 그게 녀석들이 너무 맛있어서 말하다가 먹고 그래서. 그 뒤로는 절대 다가오지 않는다 사악!

“아. 그건 어쩔 수 없지.”

잡아먹히는데 안 도망갈 몬스터가 어디 있을까.

호준은 치킨 10마리를 쌓은 그릇을 이무기에게 내밀었다.

“자. 이건 치킨이라는 건데 한번 먹어봐. 이건 간장 맛, 이건 고추장 맛, 이건 겨자 맛이야. 오리지널은 이 색깔 없는 거야.”

― 고, 고맙다 사악!

녀석은 거절하지 않고 단숨에 접시를 삼켰다.

“접시는 먹는 거 아닌 거 알지?”

윙!

이무기는 볼록해진 입을 한 채로 고개를 주억거린다.

우적우적―

녀석은 잘 먹었다.

“맛있어?”

― 이건 천국의 맛이다 사악!

호준은 이무기가 뱉어낸 접시를 바닥에 놓고 다시 치킨을 올렸다.

이무기는 혀를 날름거리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 음! 최고다 사악! 백 마디 말이 필요 없는 맛이다 사악!

그때부터였다.

녀석의 칭찬 세례가 시작된 것은.

이무기는 모든 요리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가식적으로 하는 칭찬이 아니었다.

― 육즙이 살아있다 사악! 멋진 요리사로군 사악!

― 코코아 열매가 입에서 춤을 추면서 내 우심방을 뛰게 한다 사악!

― 이 튀김 맛은 척추를 저릿하게 하는군. 사악! 정말 요리실력이 대단하다 사악!

녀석은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꿀떡 잘도 삼킨다.

부르르 떠는 몸과 황홀한 눈빛으로 진심임을 드러냈다.

칭찬을 계속 들으니 호준도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자연스레 어깨도 으쓱해진다.

호준은 예쁜 말만 골라 하는 이무기에게 음식을 아낌없이 주었다.

“자. 다 먹어라!”

우적우적―

― 흐흐! 최고다 사악!!

이무기와 호준 사이의 호감도도 쾌속으로 올라갔다.

【이무기 132호와의 호감도가 1 올랐습니다!】

.

.

.

【이무기 132호가 완벽한 품질의 음식에 만족합니다!】

.

.

.

【이무기 132호와의 호감도가 1 올랐습니다!】

이무기 132호는 드디어 배부른 배를 움켜쥐고 누워버렸다.

더는 먹을 수 없다는 신호였다.

배는 임신한 것처럼 불러서 그곳에 몸을 대고 누우니 폭신폭신하다.

― 후유 배가 터질 것 같다. 배가 빵 터지면 날 화장시켜주라 사악!

“터지기만 해 봐. 그전에 난 멀리 도망가버릴 테니. 네 몸은 온천에 가라앉아 저기 손톱만 한 물고기들 차지가 되겠지.”

― 칫 치사하다 사악! 히유! 너무 배부르다 사악! 정말 잘 먹었다 사악!

이무기 132호는 긴 숨을 내뱉으며 숨 쉬느라 바쁘다.

“정말 터지는 건 아니지?”

혹시나 싶은 마음에 배를 꼭 누르자 이무기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호준은 이무기가 왠지 정이 갔다.

― 흥, 인제 와서 걱정해도 소용없다 사악! 나 삐졌다 사악!

이무기는 옆으로 픽 누워버린다.

호준은 장난치는 이무기를 달래주고자 옆구리를 동그랗게 어루만지며 말했다.

“이리 얌전한 것 보니 괜찮네.”

“냐아~”

때마침 다크니스가 도도하게 걸어왔다.

물에 푹 젖은 다크니스는 물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엇차. 한번 짜 줘야지.”

호준은 다크니스를 붙잡고 이곳저곳의 물기를 짜냈다.

‘슬슬 가야겠다.’

콜로세움 참여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슬슬 농장으로 돌아가 요정들을 모으고, 콜로세움으로 갈 생각이었다.

【현재 호감도】: 35

호감도가 다 차지 않았으나 그는 결과에 만족했다.

‘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아직 10일이나 남았으니.’

아쉽지만 이별할 시간이다.

호준은 민머리를 쓰다듬으며 눈을 보고 말했다.

“이무기야. 오늘은 급한 일이 있어서 가야 하는데. 나중에 또 올게. 알았지?”

― 벌써 가는 거냐 사악?

이무기 132호의 눈이 아래로 축 처진다.

호준도 마찬가지로 이별이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응. 오늘 마을에서 중요한 시합이 있거든? 그 시합 때문에 가봐야 해.”

― 멀리 안 나간다 사악!

“그래!”

이무기는 온천에 몸을 넣고는 꼬리만 물 위로 올려 살랑살랑 흔들었다.

그 나름의 인사다.

이무기의 앞에는 선물로 남겨둔 음식들이 쌓여있었다.

‘내일 또 오자.’

호준은 다크니스의 인도를 받아 어둠 속을 가로질렀다.

하얀 꼬리는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계속 흔들렸다.

* * *

모두가 떠났다.

오래간만에 시끌벅적했던 온천이 잠잠해졌다.

‘오늘따라 더 조용한 것 같네.’

이무기 132호는 왠지 모르게 심심했다.

꼬리로 물을 한번 튀겼다.

찰박거리는 물소리가 난다.

수면은 금세 가라앉고 고요가 찾아온다.

늘 함께한 고요함인데

익숙해질 법도 한데.

‘심심하다.’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시렸다.

‘그 녀석들 때문인가.’

뻔뻔스럽게 자신의 등 위를 장난감처럼 오르내리던 고양이 한 마리.

더 뻔뻔스러운 주인은 쫑알쫑알 말을 걸어도 허울 좋은 웃음을 지으며 음식을 주었다.

덕분에 이무기 132호는 즐겁게 지냈다.

‘몇백 년 만이던가. 누구랑 대화를 해본 적이.’

이무기는 그동안 많은 사람을 봤고 그들은 다 이무기에게 적대적이었다.

― 저리 가! 이 괴물아!

― 아악! 살려주세요! 끄아악!

― 아 왜 저런 거에게 걸려서 죽는 거야!

공격하지 않았음에도 먼저 공격당했고, 원망을 샀다.

자신을 적대하는 사람을 피해 이무기는 온천에 숨었다.

이 온천은 숲에서도 외진 곳인지라 아무도 찾지 않았다.

“녀석은 달랐단 말이야.”

그에 반해 호준은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

이야기도 잘 통한다.

대화하는 것은 여러모로 심장을 뛰게 하는 일이었다.

호준은 심지어 초대까지 해주었다.

― 이쪽 길로 쭉 가면, 내 농장이 나오거든? 그쪽으로 놀러와.

호준은 당부도 남겼다.

그곳에 있는 작은 동물은 가족과도 같으니, 절대 해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무기 132호는 당연히 그 말을 잘 기억했다.

‘심심한데 한 번 놀러 가 볼까?’

생각하니 진짜 몸이 들썩인다.

잠시 온천을 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음식도 맛있었지.”

호준이 주는 음식도 맛있음은 물론이요.

“가족 같은 동물이라던데. 누굴까? 고양이 같은 녀석들인가.”

고양이 외에 다른 동물도 구경하고 싶다.

더 알고 싶다.

세상에 대해서.

‘음. 아무 이유 없이 가면 좀 그런데.’

놀러 가는 구실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고개를 돌리던 그는 때마침 좋은 구실을 발견했다.

“어라?”

그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곱디고운 옷이었다.

고양이가 입고 다니던 망토가 곱게 접힌 채로 놓여있었다.

깜박 잊고 놓고 간 모양이다.

“놓고 간 건 가져다줘야지. 그래서 가는 거라고.”

옷을 돌려주러 가는 거라고 작게 중얼거리며 이무기는 옷을 조심스레 입에 물었다.

혹시라도 독니에 닿을까 봐 사랑니로 살포시 물어 고정했다.

‘가자!’

쓱쓱―

이무기는 빠르게 숲을 가로질렀다.

이무기는 그 누구도 막지 못할 듯 힘차게 기었다.

* * *

‘여기가 호수로군! 온천은 호수에 비하면 이무기의 피만 한 거였어!’

이무기는 설렘을 담아 호숫물을 홀짝 마시기도 하고 수면을 꼬리로 치기도 했다.

시원한 호숫물은 기분을 좋게 한다.

우거진 나무도, 보슬보슬한 흙바닥도, 눈부신 호수도.

모든 것이 빛나 보인다.

‘진작 나올걸!’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호수를 관람하던 이무기의 귓가로 말소리가 들렸다.

“이 길을 따라가면 호준이라는 사람이 운영하는 음식점이 나온다는 거지?”

사람 목소리였다.

“그래. 이 오솔길 따라가면 된대.”

숫자도 많다.

저 멀리서 열댓 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걷고 있다.

오랜만에 보는 사람이라 이무기는 긴장한 채로 가만히 있었다.

그의 귓가로 듣고 싶지 않아도 말소리가 들려온다.

“영업 푯말이 없던데. 이렇게 가도 되나?”

“그냥 한번 가보자는 거지. 혹시 열었으면 먹는 거고. 아니면 되돌아가야지. 이번이 아니면 한동안 못 먹잖아.”

“하긴. 호준 님 음식이 좀 맛있어야지.”

호준이라는 이름에 이무기는 눈을 빛냈다.

‘호준의 손님인가 봐.’

이무기는 대화를 들으며 알 수 있었다.

‘호준은 인기가 많구나.’

호준에 대한 말은 칭찬 일색이었다.

그의 음식뿐 아니라 동료에 대한 칭찬도 많았다.

어여쁜 직원이며 앙증맞은 동물들까지.

‘궁금하다. 얼른 가봐야겠어.’

이무기는 가게로 향하기 위해 바닥을 기었다.

우지끈―

이무기가 움직이자 나무들이 기우뚱 쓰러졌다.

도미노처럼 나무가 쓰러지자 사람들이 그 기척을 알아챘다.

“꺅! 저게 뭐야! 배 뱀이다!”

“아냐. 저건 뱀이 아니라 이무기잖아!”

“당장 공격해야 해. 거리가 너무 가까워!”

“얼른 마법 시전해. 이무기는 화공으로 태우는 게 좋대!”

이무기를 발견한 사람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아, 공격할 생각은 없는데.’

이무기는 뭐라 변명하려 입을 열었으나, 사람들은 이무기가 공격하려는 줄 알고 더 소리를 질렀다.

“힐러 뒤에서 대기하고. 탱커 앞으로 가고!”

마법사들이 스펠을 외기 시작한다.

나머지 사람들이 마법사 주위로 에워싼다.

그런 행위가 전투를 위한 준비임을 이무기는 잘 알고 있었다.

‘싸우고 싶지 않은데…!’

이무기는 화가 나 이를 다물려다가 턱에서 힘을 뺐다.

그랬다가는 사랑니에 닿은 고양이 옷이 망가질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아악 공격하려고 하잖아! 스펠 아직이야?”

“조금만 더 기다려봐. 30초만 있으면 돼.”

공격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무기 132호는 시무룩해진 채로 슬금슬금 뒤로 기었다.

‘괜히 나왔어. 그냥 얌전히 온천에서 기다릴걸.’

사람들에게 공격을 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호준이 아는 사람을 죽이는 것은 왠지 내키지 않았다.

혹시라도 호준이 보게 된다면, 실망할 것 같기도 했다.

이무기 132호는 호수로 슬금슬금 몸을 집어넣었다.

아까만 해도 상쾌했던 물이 차갑게 느껴진다.

“물로 들어간다! 머리라도 공격해!”

“괜히 공격하다가 우리 다 죽는 거 아냐? 레벨이 몇인데.”

“상관없어. 공격해서 마을 쪽으로 끌고 가면 수십 명이 달라붙을 텐데. 기여도만큼 템을 주니까 비늘 한 조각이라도 얻겠지.”

“아아…!”

그 말을 들은 이무기는 몸을 더 말아 호수에 집어넣었다.

‘가자. 오늘은 못 만나겠어.’

이무기는 아쉬운 마음에 오두막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왠지 모르게 서러웠다.

그냥 바깥으로 나온 것뿐인데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빨리 공격하자고. 아직 스펠 멀었어.”

사나운 음성에 이무기가 머리를 완전히 집어넣기 시작했다.

머리가 완전히 빠지기 직전, 누군가의 목소리가 이무기에게 똑똑히 들렸다.

“지금 다들 뭐 하는 짓입니까!”

얼음같이 냉랭한 목소리가 숲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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