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를 너무 잘함-89화 (89/200)

089. 접속 해제

유토피아의 이벤트는 많으면 60여 개 정도가 동시에 진행된다.

그것도 매주 마다.

물론 호준은 그 이벤트를 다 외우고 다니지 않았다.

‘그거 외우다가는 머리 터지지.’

매주 바뀌는 걸 외울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이미 그는 농장 경영으로도 충분히 머리가 아팠다.

그리 이벤트에 관심 없던 그에게 돈벼락 이벤트는 눈앞의 현실이었다.

【주의!】

【돈벼락이 쏟아집니다!】

황금 주머니 비가 쏟아졌다.

촤자자작!

바람에 흩날리는 주머니들!

우수한 시각 덕분에 수십m 위의 황금 주머니를 또렷이 볼 수 있었다.

한 개의 주머니가 유독 맨 앞에서 날아왔다.

“엇차!”

정면으로 돌진하는 주머니를 호준은 단숨에 잡았다.

아쉽게도 주머니는 닿자마자 금빛 가루로 흩어졌다.

사라지는 주머니가 아쉬워 애꿎은 주먹을 쥐었다가 펴는데 메시지가 떴다.

【돈벼락 맞으셨네요!】

【주머니 1호에서 777골드를 획득 성공!】

【보유 골드】: 65만 1323골드 (최근 변화 : +777골드)

777 골드.

단숨에 쥐어진 거금에 그는 주먹을 꾹 쥐었다.

‘좋았어. 최대한 잡자.’

첫 성공은 그에게 자신감을 주었다.

남은 주머니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호준은 우왕좌왕하는 손님들에게 필요한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그는 카운터 위로 올라가 소리쳤다.

“여러분. 주머니는 먼저 잡는 분이 임자입니다! 자유롭게 주우십시오. 단, 주머니를 가지고 서로 싸우는 분들은 블랙리스트로 올려 두고 절대 받지 않을 겁니다. 칼을 들거나 무기를 드는 분들은 그에 맞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겁니다.”

호준의 말에는 위엄이 서려 있었다.

가게에서 분란을 일으키지 말라는 의미.

그런 의미가 충분히 전달되었는지 손님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뜻에 동조했다.

“알겠소. 그럼 자유롭게 주워도 된다는 거잖아.”

“쪼렙인 우리야 이득이지!”

“개꿀이다!”

“좋은 생각일세! 주머니에 집중해야지~”

“돈벼락이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것도 아니고!”

손님들은 그의 제안에 수긍하며 주머니가 모여드는 좌표인 호준 주변으로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손님들도 높은 곳에서 주머니를 잡고자 호준을 따라 테이블 위로 올라갔다.

테이블, 의자 위로 사람들이 섰다.

【대량의 주머니가 도착하기까지 50m 남았습니다.】

【대량의 주머니가 도착하기까지 30m 남았습니다.】

호준은 10m라는 메시지가 뜨는 순간, 힘차게 신음을 내뱉었다.

“흠!”

그는 그대로 허리를 90도로 뒤로 꺾었다.

그리고는 주머니로 뒤덮인 하늘을 정면으로 올려다보았다.

‘역시 허리가 하나도 아프지 않아.’

칭호로 얻은 유연성 때문에 허리가 아프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뒤통수가 발뒤꿈치에 닿도록 몸을 굽혀도 가능할 것 같았다.

“히익, 허리가 어떻게 저렇게 되지?”

“요리실력뿐 아니라 무예도 뛰어났군. 유연성이 저 정도라면 얼마나 고통스럽게 수련했을지 상상이 안 가.”

“그런데 왜 저렇게…… 아! 정면에서 봐야 더 많이 잡을 수 있으니까!”

누군가 그리 중얼거리는 사이, 황금 주머니들이 쇄도했다.

투두둑!

수많은 주머니.

그것들을 얼굴이나 몸으로 맞은 사람들은 정신이 하나도 없을 지경이었다.

“앗! 여기! 이잇!”

“앗싸! 10골드! 30골드! 이 이것도!”

사람들은 테이블 아래로 내려가 바닥을 기어 다녔다.

주머니가 바닥으로 떨어지니 테이블 아래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후후! 100골드다!”

“난 300골드라고! 이것도! 후!”

“기분 끝내주는데? 99골드 얻음! 개이득~”

“엇차 주웠다!”

다들 주머니를 꼭 안으며 히죽히죽 웃었다.

그러나 모두와는 달리 유일하게 높은 곳에 있는 자가 있었다.

그는 연체동물 허리를 지닌 호준이었다.

“흐압!”

그의 꺾인 몸통 위에, 주머니가 수북이 쌓였다.

착 착 착!

그의 손이 쌓여있는 주머니를 터치하자 단숨에 50여 개 주머니를 획득했다.

“후후…! 쉽네!”

호준은 여유롭게 미소지으며 허리를 원상으로 복구하고는 허리에 손을 올린 채고 주위를 쓱 둘러보았다.

“여기 있다!”

“이거야!”

사람들은 바닥을 기며 주머니를 줍기에 바빴다.

그의 시선은 사람들에게서 멀어져 먼 곳, 요정들에게로 향했다.

“히얍!”

별이가 바람 폭풍으로 주머니를 쓸어 담아 옮긴다.

그녀가 주머니들을 옮긴 곳에는 토순이가 대기하고 있었다.

타다다닥!

토순이가 귀를 쭉 늘여 주머니를 한 번씩 터치하고 지나갔다.

주머니 수십 개가 삽시간에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수십 개를 한 번에…!”

가까이서 그 광경을 지켜본 새집 머리 남자가 입을 벌리며 감탄했다.

그는 곧 정신을 차리고는 다시 무릎으로 바닥을 쓸고 다녔다.

‘와, 한 방이네!’

호준은 눈앞의 메시지를 보며 감탄했다.

【돈벼락 맞으셨네요!】

【주머니 132호에서……】

이루 셀 수 없이 많은 메시지.

너무 많아 세는 것에 의미가 없었다.

‘남은 건 요정들에게 맡기자.’

호준은 편안한 마음으로 카운터에 걸터앉아 요정들을 바라보았다.

“끼로 끼로!”

“아무우!”

“묘옹!”

“메에!”

메이, 미르, 송이, 아무는 황금 가루가 휘날리는 것이 기쁜지 총총거리며 가게를 뛰어다녔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호준은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그릇장 위에서 구경하던 다크니스와 눈이 마주쳤다.

“냐아~”

녀석은 하품을 쩍― 하고는 벽장 구석으로 슬금슬금 들어가 버렸다.

안 보아도 잠을 진득하니 자고 있겠지.

“와. 많이 주웠다!”

“대박이야 후후후!”

“너무 재밌었어!”

“돈벼락 맞는다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한 달 월급을 단번에 벌었어!”

지갑 사정이 좋아지면 얼굴이 피는 법.

사람들의 얼굴에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미소가 번졌다.

요정들도 난데없는 이벤트를 즐기며 웃음꽃이 피었다.

【돈벼락 이벤트가 종료되었습니다!】

모두가 즐겁게 웃으며, 돈벼락을 마무리 지었다.

그런 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호준이 얼굴을 차갑게 굳혔다.

‘뭐…?’

그는 눈을 크게 뜨고는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현재 보유 골드】 : 88만 4천 216 골드

(최근 변화 : + 23만 2천 893 골드)】

돈벼락을 제대로 맞았다.

* * *

돈주머니를 품에 안은 가게의 손님들이 모두 떠났다.

가게에서는 바닥에서 뒹구는 요정들만이 재잘재잘 수다를 떨어댔다.

호준은 요정과 직원에게 먹고 싶은 만큼 음식을 먹으라 말한 뒤, 구름에 다가갔다.

└ 돈벼락을 실황으로 봤네 ㅋㅋㅋ

└ 나도 저기 갈걸 ㅠㅠ

└ 젠장~ 10분만 늦게 나왔어도 주머니 줍는 건데.

└ 밥도 먹고 돈도 줍고 개꿀…!

흥분이 가시지 않은 시청자들의 채팅이 속속 업데이트되었다.

아쉬운 그런 반응에도 더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호준은 고개를 한번 숙이며 방송 종료를 고했다.

“그럼. 여러분. 오늘 방송도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 또 봬요! 하트 감사합니다~!”

손가락 하트를 한번 발사하고서 그는 구름을 톡톡 두드렸다.

【방송을 종료했습니다】

【하트가 10만 개 이상 누적되어 있습니다!】

【누적 하트】 : 10만 9천 267개

하트의 처분은 늘 그래왔듯이 미뤄두었다.

당분간 돈이 부족할 일이 없으니 처분할 이유는 없었다.

‘이제 남은 시간이 얼마 없구나.’

【남은 플레이 시간】: 40분 23초

6일 차 플레이도 어느덧 마무리에 접어들었다.

꾸르르르~

까르르!

바닥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레슬링 하는 어린 요정들도 익숙해졌고.

장사도 몸에 익어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활력이 솟는 듯하다.

하루 동안 얻은 것들도 많았기에 마음도 느긋하다.

‘성취감이 장난 아니네.’

차오르는 성취감은 말할 것도 없고.

그는 이제 남은 시간을 어찌 보낼지 고민했다.

‘설거지하고 호숫가에서 쉬자.’

단순히 생각을 마친 그는 인벤토리에서 청소 열매를 꺼내 주먹으로 으스러뜨렸다.

콰직!

청소 열매가 터진 홍시처럼 과육을 껍질 밖으로 내밀었고.

치지징―

【가게의 청소를 시작합니다!】

푸른 직선의 섬광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시야를 가득 메웠던 푸른색의 섬광은 차차 사그라들었다.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열매의 효과는 한눈에 보였다.

“흐음…!”

찌꺼기가 묻었던 그릇들이 깨끗한 상태로 그릇장에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이리저리 삐뚤게 꽂혀있던 의자와 어지럽혀진 테이블도 가지런한 모양 그대로.

가게가 모델하우스처럼 완벽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완벽한 청소는 존재했다.

지금 그의 눈앞에서 실현되었으니까.

“와…! 마법이 편하긴 편하네! 그릇을 부실 필요가 없어졌잖아?”

“청소 끝이다!! 앗싸!”

청소를 안 해도 된다는 사실에 베티와 샤롯은 만세를 외치며 기뻐했고.

요정들도 그녀들을 따라 호레이! 헤에! 따위의 추임새를 외쳤다.

호준은 그들에게 어깨를 으쓱하고는 밖을 가리켰다.

“남은 시간은, 호숫가에 가서 푹 쉬자고.”

유유자적하는 삶을 지향하는 그다운 선택이었다.

* * *

쉬잉―

미끄럼틀 위로 누군가 쉬익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기름을 발라둔 미끄럼틀은 너무나 미끄러워서 몸이 허공으로 날아갈 것만 같다.

푸와악!

그대로 물속으로 골인한 한 남자.

“푸아!”

호준은 수면 위로 솟구쳐 오르며 머리를 뒤로 휙 젖혔다.

머리카락을 따라 물방울이 사방으로 흩어져 마치 광고의 한 장면 같다.

“후우. 시원하고 좋네!”

기름 바른 워터 슬라이드를 타는 기분은 최고였다.

난데없는 워터 슬라이드는 그의 제안으로 만든 것이었다.

“의외로 만드는 게 어렵지 않았어. 진작에 만들걸.”

어릴 때부터 늘 갖고 싶다고 생각했던, TV 광고에서나 볼법한 워터 슬라이드는 만들기 어렵지 않았다.

요정들과 다 함께 제작하니 5분 만에 완성!

미끄럼틀 면에다가 올리브유를 발랐더니 미끄럼 능력이 배가되었다.

“후우!”

시원한 물속에서 그는 해방감을 느꼈다.

다리를 살살 앞뒤로 흔들며 헤엄치다가 그는 몸에 힘을 쭉 빼고는 둥실둥실 떠올랐다.

흐르는 물결 따라 흔들흔들.

물결에 몸을 맡긴 채로 그는 시원한 기분을 만끽했다.

몸은 시원하고.

아름드리 하늘이 그를 내려다본다.

지상천국이 따로 없었다.

“끼루루루~!”

“아무우!”

푸와아!

그의 뒤를 따른 아무와 미르가 물에 들어가자 왕관 모양으로 물이 튀긴다.

돼지 꼬리 형태로 된 미끄럼틀은 호준뿐 아니라 요정들, 직원들도 다들 만족했다.

“우와~~!”

푸와앙!

“짱 재밌다!”

“최고야 최고!”

베티와 샤롯이 옷이 푹 적은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얼른 미끄럼틀 줄을 서러 지상으로 이동했다.

다들 종종거리며 그 앞에 줄을 선 것을 보니 호준은 왠지 모를 뿌듯함이 들었다.

잠시 그들을 구경하다가 다시 하늘을 보고 누웠다.

“흐음…….”

물에 잠긴 귀에서 윙윙 소리가 들렸다.

가끔 물의 출렁거림을 제외하면 조용하다.

‘오늘 하루도 잘 보냈어.’

그는 종일 했던 일들을 떠올리며 물속을 마음껏 누볐다.

그러다가 남은 시간 1분을 남겨두고서야 억지로 떠밀리듯 게임 접속을 해제했다.

“갔다 올게!”

아쉬운 마음에 요정들에게 손을 휘휘 흔들자 요정들도 양발을 흔들었다.

【요정 일동이 아쉬움을 표하지만 애써 티를 내지 않고자 합니다】

“내일 보자!”

호준은 서서히 사라지는 이들에게 미소지었다.

로그아웃으로 눈앞이 하얗게 변하는 순간에도 그는 생각할 수 있었다.

그 순간, 그는 바랐다.

‘내일이 기대된다.’

머릿속은 내일에 대한 기대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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