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6. 코코아
“형, 이건 수도에 아는 상인을 통해 얻은 씨앗인데요. 왠지 형이라면 키울 수 있을 것 같아서 가져왔어요.”
호준의 눈에는, 넉살 좋은 미소를 지으며 씨앗 주머니를 내미는 진수의 뒤로 후광이 비쳤다.
그럴 만도 했다.
그가 내미는 것은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씨앗이 아니었으니까.
【카카오 열매 씨앗】
【특 6급】
【설명】
카카오는 아메리카 열대 지역이 원산지인 작물로, 씁쓸하면서도 매력적인 맛이 일품이다. 열매에 카페인과 지방 등이 함유되어 있어 각성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카카오 열매를 빻아 만든 가루로 코코아를 만들 수 있고.
*카카오 열매에 우유와 설탕 등을 첨가해 초콜릿을 만들 수도 있다.
‘초콜릿을 만들 수 있군…! 코코아도…!’
달콤하고 쌉싸름하며 입에서 살살 녹는 초콜릿.
한겨울의 추위를 가시게 해주는 달콤하고 진한 코코아.
이 둘은 현실에서도 충분히 맛있는 먹을거리였다.
‘더군다나 여기에서라면 훨씬 맛이 좋지.’
그리고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유토피아의 음식은 현실보다 훨씬 맛있었다.
훨씬 이라는 의미는, 기존의 음식 맛을 완전히 대체할 정도로 훌륭한 맛이라는 의미.
그러니 카카오 열매로 만들 초콜릿과 코코아가 기대되는 게 당연했다.
‘게다가 특 6급이면…… 잘하면 특 5급 열매를 수확할 수도 있고.’
작물을 수확하면 등급이 대개 1등급이 올라갔다.
많이 올라가면 2등급 올라가기도 했고.
등급이 오른다는 것은, 곧 맛이 훨씬 좋아진다는 것.
‘수확량도 많구나.’
게다가 카카오 열매는 특이한 점을 가지고 있었다.
【특징】
*이 작물은, 한 번에 6개의 수확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마치 꽃이 핀 듯한 형태로 6개의 카카오 열매가 맺힙니다.
즉, 작물 하나에서 6개 열매를 동시에 수확하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작물 1개에서 한 번에 열매 1개만을 수확할 수 있었는데.
다른 작물에 없던 카카오 열매만의 특징이었다.
아무리 봐도 마음에 쏙 드는 열매다.
호준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진수의 말을 경청했다.
“혹시, 형이 괜찮으면 그분에게 부탁해서 귀한 씨앗을 구해달라고 해도 되거든요. 씨앗 값은 비싸면 한 1만 골드? 그 정도가 최고일 거예요.”
거래제안을 하는 그 물음에 호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값은 내게 청구하도록 해.”
“네. 그럼 다음부터 귀한 씨앗 있으면 가져올게요!”
호준은 고운 말만 골라 하는 진수의 어깨동무를 하며 너그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밥은 먹었냐?”
“사실 뛰어오느라 밥은 못 먹었는데. 괜찮아요. 조금 참으면 되죠.”
“밥을 안 먹으면 쓰나.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건데.”
호준은 그대로 저항하는 진수를 이끌고 양탄자에 앉혔다.
그리고는 그의 앞에 맛좋은 음식들로 가득한 한 상을 차려주었다.
3가지 맛의 치킨, 소고기 오븐 스테이크, 거기에다 채소튀김 등의 튀김 등.
진수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젊은 나이답게 아주 잘 먹었다.
그렇게 음식으로 씨앗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고서, 호준은 터벅터벅 밭으로 걸어갔다.
“흠흠~”
카카오 열매를 수확할 생각에 콧노래가 멈추지 않았다.
“냐앙~”
그 뒤를 다크니스가 따르며 같이 노래를 불러주었다.
* * *
챙 챙 챙!
챙 챙 챙!
날카로운 철이 맞부딪치며 쨍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갑자기 이게 웬일이냐 하면.
호준이 하는 제작 퀘스트 때문이었다.
채챙 챙!
그가 삼지창을 앞으로 뻗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단도를 튕겼다.
단도는 날아왔던 방향으로 몇 바퀴 회전하며 날아가 버렸다.
그와 동시에 메시지가 떴다.
【방어 성공!】
【제작을 위한 충분한 에너지가 모였습니다!】
호준이 들고 있던 창과 화면 속의 단도가 모두 사라지고.
땅 땅 땅―
화면에는 동그란 쇳돌과 그 쇳돌을 내리치는 망치가 보였다.
망치가 쇳돌을 내리칠 때마다 섬광이 튀었다.
땅 땅 땅―
【제작 중】
【제작 중】
그렇게 10초쯤 기다리자 드디어 기다리던 메시지가 떴다.
【자동화 주전자 제작을 완료했습니다!】
【자동화 주전자를 얻었습니다!】
【퀘스트 목표 일부 달성!】
【직업 퀘스트】 새로운 요리 장비 갖추기!
【퀘스트 목표】 : 자동화 요리 장비를 제작하여 새로운 요리의 세계를 맛보세요!
자동화 절임 통 완료
자동화 주전자 완료
자동화 훈제기 0 / 1
쿵!
“후유. 이제 하나 남았군.”
호준은 바닥에 내려앉은 새하얀 주전자를 보며 깊이 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허리 높이까지 오는 주전자.
그것은 백자처럼 매끈한 디자인이었다.
아이템 설명 또한 매끈한 디자인답게 간결했다.
【자동화 주전자】
【설명】
차를 즐기는 분들을 위한 편리한 주전자입니다.
버튼 몇 번 누르는 것으로 음료를 대량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사용법】
재료를 투입하고 요리를 선택하십시오!
“간단하네. 재료 넣고, 선택하고.”
호준은 뭔가 만들어볼까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나중에 시간이 흐른 뒤, 코코아를 만들기로 한 것.
“후아아!”
그는 머리 뒤에 깍지를 끼고 누운 채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시원한 땅바닥은 등을 시원하게 해주고.
청명한 하늘이 마음을 가뿐하게 해줬다.
매애앰!
그는 지금 혼자가 아니었다.
【좁쌀 매미】
【좁쌀 매미】
【좁쌀 매미】
나뭇가지에 매달린 좁쌀 매미들이 간간이 그를 내려다보았다.
매미의 숫자는 대략 30마리 정도?
좁쌀 매미들은 새하얀 색깔에 새끼손가락 손톱만 한 크기를 지녔다.
새하얀 좁쌀 매미는 나무들이 진한 갈색이기 때문에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눈에 띌 뿐만 아니라 귀도 확 사로잡았다.
매애앰!!
그 작은 몸으로 우는 소리가, 황소 잡아먹을 만큼 우렁찼다.
악바리처럼 우는 소리.
여름이구나 싶을 만큼 전형적인 매미 소리여서 호준은 그저 말없이 그 소리를 들었다.
‘이렇게 매미 소리 듣는 것도 오랜만이네.’
그가 도시에 온 뒤로, 매미 소리를 듣는 게 생각보다 별로 없었다.
특히 그는, 낮에 꽁꽁 창문을 닫고 실내에 있었고 점심도 배달음식으로 다 같이 먹었기에 나갈 일이라곤 거의 없었다.
가로수가 잘 조성된 거리에서 잠시 듣기는 하지만 아주 잠깐뿐.
‘하긴, 매미로서도 도시보다는, 시골이 낫겠지.’
삭막한 콘크리트에서 사는 것보다 무성한 숲에서 사는 것이 훨씬 행복하리라.
고향에 대한 향수가 있던 그로서는 매미 소리가 그냥 매미 소리로 들리지 않았다.
어릴 적 친구들과 뛰놀던 마을, 동네길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고향에 한 번 내려갈까.’
고향 생각을 하다보니, 잠이 쏟아졌다.
종일 제대로 쉬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숨 자도 괜찮겠지.’
그가 스르륵 잠이 들었다.
얼마 뒤, 요정들이 소곤소곤 속삭이는 소리를 내며 그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 * *
“호준 님!”
“냥!”
“뀨우우!”
“끼루루!”
“아무우!”
요정들이 제각기 외쳐대는 것에 호준은 잠을 깼다.
눈을 비비적대며 일어나 가슴팍에 안겨있는 녀석들.
“으음… 왔어?”
작은 털 뭉치들을 한 번에 와락 안아주니 다들 까르르 웃으며 발버둥 친다.
호준은 한 번 더 꽉 안아주고는 요정들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별이가 포르르 날아 어깨에 앉고는 나무 뒤를 가리키며 속삭였다.
“호준 님! 카카오 열매를 따왔어요! 열매가 아주 실하더라고요!”
그녀가 가리킨 곳을 보니, 진갈색의 카카오 열매가 보였다.
총 6개의 열매가 꽃 모양처럼 한 모양으로 붙어있는데, 열매의 크기는 그의 팔뚝 정도였다.
【카카오 열매】
【특 5급】
【맛깔나는 코코아나 초콜릿을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재료이다】
【카페인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 운동하거나 기분이 가라앉은 이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카페인 성분으로 인해 스트레스에 관해 관대해지고, 심장이 쿵쿵 뛰어 설렘을 느낄 수 있다】
호준은 고마운 마음에 한명 한명 엉덩이를 토닥여주었다.
“수고했다. 다들 고생 많았어!”
엉덩이를 만져질 때마다 요정들은 기분 좋은 듯 몸을 비비 꼬았다.
“냥~”
“꾸오!”
곧 다크니스와 핑구가 호준의 발등 위에.
“끼루~”
“아무!”
미르와 아무가 정강이와 허벅지 위에.
“묘옹!”
“메에!”
메이와 송이는 배에 올라타 매미처럼 달라붙었다.
아무래도 오늘 떨어져 있던 시간이 많아서 아쉬워하는 눈치여서 호준은 그대로 놔두었다.
꼼지락대는 온기가 싫지 않았다.
“우리 복덩어리들.”
호준은 하나하나 몸을 어루만져 주다가 살짝 주위를 살폈다.
주위에 보이지 않는 거로 보아, 진수는 외양간에서 약 만드느라 두문불출하는 모양이었다.
‘입가심으로 뭐라도 만들어 볼까.’
다 같이 뭐라도 먹을까 생각하다가 호준은 코코아를 만들기로 하고 레시피를 찾아보았다.
레시피는 참으로 간단했다.
【코코아】
【필수 재료】: 카카오 열매 1개
【추가 가능한 재료】: 꿀, 메이플시럽, 설탕 등
【레시피】
1.자동화 주전자에 카카오 열매를 넣어주세요.
2. 재료만 넣으면 알아서 자동화 주전자가 요리합니다.
“카카오랑 설탕만 있으면 되겠군.”
호준은 그 즉시 카카오 열매를 먼저 주전자에 투입했다.
주전자는 그의 바로 옆에 있어서 요정들은 그대로 둔 채로 얼마든지 열매를 투입할 수 있었다.
【카카오를 투입했습니다!】
【카카오를 투입했습니다!】
【카카오를 투입했습니다!】
【카카오를 투입했습니다!】
【카카오를 투입했습니다!】
【주전자가 꽉 찼습니다】
【코코아 5병을 제작 가능합니다!】
【주전자를 나무 근처에 두십시오】
【자동화 주전자는, 근처 나무에서 증발하는 수분을 흡수해 맛좋은 차를 제작합니다】
“물을 흡수한다니. 신기하네…!”
주전자의 작동원리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실상 게임이니 알 수도 없었지만, 어쨌든 물을 뜨러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간편했다.
【코코아를 제작하시겠습니까?】
【추가 재료로 설탕을 투입할 수 있습니다만, 지나치게 달 우려가 있습니다】
설탕에 대한 주의 사항을 보고서 호준은 설탕을, 넣지 않기로 했다.
적당히 만든 뒤에, 취향 따라서 설탕을 넣어 먹기로 한 것.
그렇게 설탕은 패스하고, 카카오 열매만으로 제작을 지시했다.
“이대로 제작한다.”
【코코아 조리를 시작합니다!】
【코코아 5병을 완성하기까지 5분이 남았습니다!】
취이이익!
자동화 주전자에서 김이 뿜어져 올라왔다.
“엄마야!”
“끼루루?!”
“꾸아아?”
요정들은 증기기관처럼 김을 뿜는 주전자를 구경하며 입을 크게 벌렸다.
미르가 새끼 새처럼 입을 벌렸기에 장난삼아 손가락을 콕 넣었더니, 미르가 퉤퉤 하면서 손가락을 살짝 씹었다.
일부러 살짝 다물었는지 하나도 아프지 않아, 호준은 그저 웃음만 났다.
“흠…… 좋다!”
코코아의 향이 퍼져나가자 심신이 안정되었다.
미르의 말랑말랑한 뱃살을 주물럭거리며 호준은 코코아가 완성되기를 기다렸다.
‘이런 게 행복이지.’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요정들과 같이 있으니.
이보다 더 천국은 없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