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를 너무 잘함-85화 (85/200)

085. 선물

“허허. 잘 가게!”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호준은 스미스 씨의 격렬한 인사를 받으며 대장간의 두 번째 방문을 마무리 지었다.

호준의 얼굴은 무척 밝았다.

방금 8만 골드를 쇼핑하는데 써버린 사람답지 않게, 아주 얼굴에 꽃이 피었다.

“돈 번 보람이 있네.”

원래대로 돈이 없는 상태였다면, 그랬다면 며칠 동안 장작을 하고 다녔겠지만.

지금은 간단하게 골드를 지급하고 아이템 재료를 전부 사들일 수 있었다.

마치 방학 첫날에, 방학 숙제를 모조리 해치운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서 기구를 제작하기만 하면 끝이었다.

“미소야. 집으로 가자!”

― 집 좋다무우! 다들 보고싶다무우!

미소가 몸을 물고기처럼 좌우로 흔들흔들하자, 그 위에 있던 호준과 다크니스도 덩달아 흔들렸다.

“냐앙―”

무릎에서 얌전히 잠자던 다크니스가 한 바퀴 데구루루 구르고는 항의를 담아 작게 울었다.

― 미, 미안하다무우! 천천히 간다무우!

미소는 재깍 다크니스에게 사과하고는 조심조심, 사뿐히 걸어갔다.

“냐―”

다크니스는 대강 답하고는 다시 암모나이트처럼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잠에 빠져들었다.

【다크니스가 당신의 품에 더 파고들고 싶어 합니다】

【다크니스가 종일 돌아다닌 것에 피곤함을 느낍니다】

‘하긴, 피곤했겠지. 싸우기도 많이 싸웠고.’

호준은 잠에 푹 빠진 다크니스에게 미안함이 들어 복슬복슬한 배를 슬슬 긁어주었다.

눈부시지 않도록 손바닥으로 햇빛을 가려주자 다크니스가 기분 좋은 듯 고롱댔다.

골 골 소리에 미소도 호준도 마음을 놓고 집으로 가는 길.

마을 입구를 벗어나 숲길로 들어서자 청량한 공기가 심장을 채운다.

숲에서 나는 익숙한 나무 향에 기분이 좋아지던 찰나.

후루루루! 후루!

휘파람 소리같이 고음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꽂혔다.

고개를 드니 밀밭에서 하얀 닭들이 종종거리며 뛰는 모습이 보였다.

닭들은 밀대 사이를 요리 뛰고 저리 뛰며 복작거렸다.

저들끼리 빙글빙글 돌고 쫓아다니는 것을 보니, 술래잡기라도 하는 모양이다.

최악! 후다닥!

심지어 몇몇 닭들은 날개를 쭉 펴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날아오르는 순간, 다리로는 허공을 걷듯 마구 발버둥 친다.

“잘 날잖아……?”

호준은 닭이 날아서 놀라고, 제법 멀리 날아가서 또 놀랐다.

닭이 날아가는 거리가 적어도 3m 그 이상은 될 듯했다.

용맹하게 날아오른 닭 23은 착지하는 순간, 데구루루 앞구르기로 한참을 갔다.

맨 마지막에는 완벽하게 제 자리에 양 날개를 펴고 섰다.

흡사 체조 선수가 착지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푸드덕! 후루루로!

체조 쇼를 관람하느라 정신이 팔린 사이, 어느덧 오두막에 가까워졌다.

오두막 근처를 걷고 있었는지 별이와 샤롯이 가까이 다가왔다.

“호준니임!!”

“오늘은 얼굴 보기가 힘드네!”

별이와 샤롯은 종종 같이 산책하러 나가곤 했기에 지금도 그런 듯했다.

별이는 파닥거리는 날개로 호준의 어깨에 내려앉고는 푸념을 늘어놓았다.

“너무 늦어서 다치신 건 아닌가 걱정했어요! 혹시 어디 다치신 데는 없는 거죠?”

별이는 심통 난 얼굴을 하고는 그의 몸 주위를 뱅그르르 돌면서 살폈다.

샤롯은 눈치 빠르게 떠나기 전후 변화를 알아차렸다.

그녀는 눈으로 싹 스캔을 마치고는 감탄하는 어투로 말했다.

“음. 옷도 그렇고. 무기도 들 수 있네! 이 제복이 훨씬 낫다.”

“그래?”

“그럼. 이전 초보자 옷은 너무 오래 입어서 누렜잖아. 그것보다는 이렇게 깔끔한 게 훨씬 낫지. 모양도 나고.”

“샤롯님 말씀이 맞아요! 왠지 귀족이 입을 것 같은 옷이네요! 그런데 이 옷은 어디서 구하셨어요?”

“다크니스가 구해다 준 거다.”

호준은 제복을 구해온 일등 공신, 다크니스를 높이 들어 올렸다.

그러자 잠결에 들린 게 불만이었는지 다크니스가 작게 항의의 울음소리를 내었다.

― 냐아…!

녀석은 네 발을 뻗으며 다시 안아달라고 재촉했고, 호준은 어쩔 수 없이 다시 품에 안아 들었다.

츄릅―

다크니스는 서비스 차원에서 목을 한번 핥고는 다시 쿨쿨 잠에 빠져들었다.

골골대며 잠을 자면서도 두 발로 호준의 손가락은 꼭 잡고 있었다.

“어머. 귀여워라.”

“다크니스는 좀 아기 같아 보여요. 애교가 많아서 그런가?”

잠에 취한 다크니스를 바라보는 두 여성의 눈빛에도 꿀이 떨어진다….

호준도 손을 빼지 못하고 그대로 다크니스를 안고 있었다.

그렇게 모두가 다크니스를 바라보고 있는데, 정체불명의 외침이 들려왔다.

뀨룰후루우―

그 정체불명의 외침은, 저 멀리서 달려오던 요정들이 내는 소리였다.

울음소리가 동시에 들리면서 합해진 것.

총총거리며 달려오는 요정들을 보니 호준은 왠지 미소가 지어졌다.

모두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 들었던 것.

“역시, 집이 최고다.”

행복은 그리 멀지 않다.

환히 웃으면서 자신을 반겨주는 이가 있는 것.

그것이야말로 행복의 시작이니까.

* * *

농장에 돌아온 호준이 첫 번째로 한 일은, 모두에게 휴식을 주는 일이었다.

종일 고생을 한 요정들은 휴식을 격하게 반겼다.

끼루루!

뀨우우!

미르와 토순이가 바위에 기대앉은 호준 곁에서 헤엄치며, 말을 걸어왔다.

호준은 둘에게 마찬가지로 손을 흔들어 주었고.

퐈아악!

그의 몸은 미르와 토순이가 날리는 물벼락에 그대로 맞아 흠뻑 젖었다.

“어딜!”

호준도 마찬가지로 반격하는 척하다가, 토순이와 미르를 냉큼 끌어안고는 허리를 꽉 조였다.

캑!

낑!

완전히 포박된 녀석들은 서럽다는 얼굴을 한 채로 올려다본다.

눈물을 머금은 듯한 촉촉한 눈동자에 호준은 팔에 주었던 힘을 풀었다.

“물에서 놀아.”

마음이 약해져 둘을 다시 물에 방생해주자, 보란 듯이 찰박찰박 물장구치며 깔깔대며 놀았다.

둘의 빠른 태세 전환에 호준은 피식 웃고는 머리 뒤에 깍지를 끼고 누웠다.

쉬이잉―

마치 물찬 제비처럼.

아니 물찬 펭귄이라고 해야 할까.

핑구가 물속에서 날아올라 포물선을 그리며 물에 다시 입수했다.

“뀨뀨!”

허공을 지나가면서 경례 자세를 취하는 핑구가 웃겨서 그도 덩달아 같이 웃었다.

그렇게 한참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는, 그는 다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시 시작해야지.”

그는 지금 노는 중이 아니었다.

자동화 절임 통 만들기를 위한 작업을 하다가 잠시 쉬는 중이었으니까.

호준은 검지를 동그랗게 만 다음, 하얀 구슬을 세게 때렸다.

팅―

구슬이 데굴데굴 굴러가 목표로 한 구슬을 정확히 맞추었다.

【명중!】

【10점 구슬치기 성공!】

【남은 2,329점을 획득하여 자동화 절임 통 제작을 완료하세요!】

자각 자각―

“이것도 계속하니까 손이 아프네.”

호준은 손가락을 이쪽저쪽으로 쭉 늘리면서 화면을 보았다.

화면 속에는 아직 맞춰야 하는 구슬이 가득했다.

빨리 맞춰달라는 듯 구슬들이 빙그르르 춤을 췄다.

그가 하는 게임의 규칙은 간단하다.

하얀색 구슬을 손가락으로 튕겨서 다른 구슬을 맞춰야 했다.

그렇게 맞춘 구슬에 적혀있는 숫자만큼, 점수를 획득하는 것.

총점 3천 점을 채워야만 제작이 완료되는데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

“오늘 안에는 끝내자.”

호준이 빨리 끝내고 싶은 이유는, 손가락이 아픈 것도 있었지만.

절임 통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메시지를 통해 확인한 절임 통의 쓰임새는 다양했다.

【자동화 절임 통】

【설명】

*과일과 야채 등의 다양한 식자재를 절임으로 만들어주는 기기입니다!

*본 기기는 자동 세척기능과 자동 절임 기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재료 투입구에 재료를 충분히 넣어 놓으면, 재료가 떨어지기 직전까지 자동으로 조리가 됩니다.

*절임 통으로 절임을 제조할 경우, 그냥 통에서 제조할 때보다 품질이 대폭 향상되고, 제조시간이 줄어들고, 요리의 풍미가 훌륭해집니다.

【조리 가능 품목】

― 해산물 절임, 젓갈류 등 요리 가능,

― 과일 발효주, 과일 당절임, 식초 절임 등 요리 가능

― 각종 야채 절임 요리 가능

― 식초, 설탕, 소금 등, 어떤 첨가물을 넣느냐에 따라 다양한 요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기구의 끝판왕이네.’

과일 당절임, 야채 식초 절임, 해산물 소금절임(젓갈류), 해산물 간장절임 등.

절임 통은 한식과 양식을 아우르며 다양한 요리가 가능했다.

절임 통 하나만으로 다양한 요리를 손쉽게 만들 수 있었다.

‘과일주를 한번 만들어보자.’

그의 제일 먼저 관심 가는 요리는, 과일 당절임과 과일주였다.

그 밖에 식초 절임과 소금 절임도, 기회가 되면 해 볼 생각이었다.

언젠가는 바다에 나가 게를 잡아서 간장게장 같은 맛깔나는 음식도 만들 수 있으리라.

그 시작이 바로 이 절임 통이었다.

호준은 입맛을 쩝 다시며 손가락을 튕겼다.

팅―

흰색 구슬이 빠른 속도로 굴러가, 다른 구슬을 맞추었다.

【명중!】

【9점 구슬치기 성공!】

【당신은 구슬치기에 재능이 있으시군요!】

【30번 연속 성공 판정을 받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총 5개의 구슬을 동시에 쏠 수 있습니다!】

【남은 2,320점을 획득하여 제작을 완료하세요!】

“어. 구슬이 많아졌네요? 이거 여럿이 해도 된다는 그 소리죠?”

어깨에 앉아 구경하던 별이의 질문에, 호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민한 감각을 타고난 별이는 얼마든지 환영이었다.

“그래. 얼른 해치워 버리자.”

“후딱 마무리 짓도록 하죠. 후후!”

쉬이이잉!

곧 별이가 바람 마법으로 자신의 분신을 만들었고, 별이, 별이 1, 호준 이렇게 셋이서 게임에 참가했다.

탕 탕 탕 ―

별이가 투입되자,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소리가 났다.

마치 총을 쏘듯, 별이와 별이의 분신은 구슬을 총알처럼 빠르게 날렸다.

바람 마법으로 날아간 구슬이 총알처럼 목표물을 산산조각내고, 자신도 공멸했다.

“허어…….”

호준은 별이의 묘기에 감탄하여, 잠시 손을 멈추었다.

그의 경악하는 시선을 눈치채지 못한 별이는,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듯 구슬들을 산산조각내기 시작했다.

마치 어린아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듯, 그녀의 얼굴에는 장난기만이 가득했다.

탕 탕 탕

【명중!】

【명중!】

【명중!】

그렇게 몇 분이 흘렀다.

【놀라운 구슬치기 실력입니다!】

【자동화 절임 통 제작 성공!】

【제작 스킬 레벨업!】

【자동화 절임 통을 얻었습니다.】

별이에 의해, 완성된 절임 통이 눈앞에 드러났다.

허리춤까지 오는 절임 통은 크기가 커서인지 왠지 듬직해 보였다.

호준은 절임 통 제작 1등 공신인 별이에게 상을 주었다.

“수고했다. 특별상으로 설탕 50개를 주마.”

“오! 감사합니다~ 서얼타앙 설타앙~”

별이는 설탕 50개를 하늘에 빙그르르 돌리며 기뻐했다.

호준은 그 반응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저런 반응은 당연하였다.

언젠가 뭘 갖고 싶냐고 물었더니, 설탕으로 지은 집을 갖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그녀는 설탕을 무척이나 좋아했으니까.

“설탕 창고에다가 갖다 놓고 올게요~”

별이는 허공에 설탕을 동동 띄운 채로 숲으로 포르르 날아갔다.

별이가 떠나고 홀로 남은, 호준은 자동화 절임 통을 앞에 두었다.

“첫 과일주는…… 복숭아로 해 보자.”

그의 눈은 새콤달콤한 복숭아 발효주에 대한 기대로 번뜩였다.

* * *

발효주 제작은 의외로 간단했다.

【이대로 발효주를 제작하시겠습니까?】

“제작한다.”

【발효를 시작합니다!】

【물렁물렁 복숭아 발효주 생성까지 2시간 남았습니다!】

“벌써 끝이네.”

과일을 집어넣고 설탕을 넣고.

메뉴에서 발효주를 선택하면 끝.

이보다 더 간단할 수가 없었다.

“직접 발효주를 만드는 건 만만치 않았을 텐데.”

현실에서 발효주는 원래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과일도 일정한 크기가 될 때까지 다듬어야 하며, 이스트 등등 각종 재료를 투입하고.

적당한 온도와 습기가 있는 곳에서 오랫동안 보관해야 만들 수 있다.

그 오랫동안이 무려 몇 개월이나 된다고 하니.

만드는 것 자체보다도 기다리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

“역시 게임이 편하긴 편하네.”

2시간 만에 뚝딱 만들 수 있으니.

거기다가 현실의 발효주보다 맛이 좋다면, 그것이야말로 최고 아닌가.

호준은 기대를 담아 남은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발효주의 등급은 투입한 과일 등급보다 훨씬 상향 조정됩니다!】

【발효주를 오래 보관하면 보관할수록 맛과 등급이 향상됩니다!】

설명대로라면, 과일 등급보다 발효주 등급이 높다고 했으니.

적어도 특 10급 이상은 나올 듯했다.

“2시간이니. 느긋하게 기다려볼까.”

호준은 양탄자에 깍지를 끼고 누운 채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동글동글한 구름이 마치 조금 전에 보았던 복숭아가 연상되었다.

나른하고 편하고 기분 좋고.

종일 이것저것 하느라 바빠서일까.

분주함 뒤에 갖는 휴식은 달콤했다.

“천국이다.”

잠이 솔솔 왔다.

호준은 옆으로 누워 잠을 청했다.

일명 태아 자세라 불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몸이 편해지고 나른해진다….

완전히 의식이 끊겨가던 무렵.

누군가 부르지만 않았더라면 그대로 잠을 잤을 것이다.

“형!”

언제 들어도 쾌활한 진수의 목소리였다.

호준은 눈을 서서히 뜨고 소리 나는 쪽으로, 몸을 홱 돌렸다.

그의 시야로 보이는 진수는, 오른손을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그러나 호준은 그 손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 반대쪽 손으로 진수는 뭔가를 꽉 쥐고 있었다.

‘씨앗?’

무지개색 씨앗 주머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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