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3. 귀환
코발트 광산 지하 2층.
이제는 즐거웠던 광산 탐험 일정을 마무리 할 시간.
호준 일행은 광산을 떠날 준비를 했다.
준비라고 해봤자 호준과 다크니스가 미소의 등에 올라타는 것뿐이지만.
어찌 되었든 그것도 준비라면 준비라 할 수 있지 않은가.
처음에는 무뚝뚝했던 베리나도 이별이 많이 아쉬운 듯, 그 주변을 몇 번이나 맴돌았다.
베리나는 떠날 준비를 마친 호준을 올려다보며 아쉬움을 표했다.
“음… 조금 아쉽군.”
“원래 여기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야?”
“그렇다. 여기 코발트 광산은 별로 인기 있는 맵도 아니고. 애당초 요나스 마을은 인구가 적어서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적을 수밖에 없지.”
“하긴….”
“그리고 음식도 조금 맛있긴 했고….”
그 말을 하며 베리나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조금 풀이 죽은 베리나에게, 호준은 살짝 기분이라도 풀어줄 겸, 웃으며 말을 걸었다.
“이거, 내가 너무 입맛을 높여놨나 보네.”
“흠흠. 음식이 맛있긴 하더군.”
이런. 그런 음식은 나도 얼마든지 먹는다 따위의 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순순히 인정하는 베리나를 보니 호준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골드 리자드 퀸의 심장을 얻은 것은, 그녀의 도움도 있었으니.
호준이 무어라 말하기 전에, 베리나가 먼저 허공에 손을 대며 말했다.
“그래도 가야 하는 건 어쩔 수 없지. 이건 내게 맛있는 음식을 준 선물로 주는 거다.”
그녀의 손짓에 따라 푸른 나선형 포털이 생겼다.
포털 너머에는 광산 입구가 비쳤다.
지잉―
“이곳으로 들어가면 바로 광산 입구로 갈 수 있다.”
“이왕 하는 거 토끼바위 쪽으로 하지. 아니 내 가게로….”
호준은 생각을 그대로 뱉었으나, 베리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건 불가능해. 내가 가본 곳 말고는 만들 수 없으니까.”
“아… 어쨌든 고맙다. 미로를 빠져나가는 시간을 벌었어.”
호준의 진심 어린 감사에 베리나가 고개를 끄덕이는데 입가에 미소가 자리했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호준도 입꼬리를 올렸다.
포탈 덕분에 미로를 한참 돌아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으니까.
“고맙다. 베리나. 아, 그리고!”
호준은 베리나가 만든 포탈로 들어가기 직전, 그녀에게 보란 듯이 바위에 뭔가를 올려 두었다.
포탈 옆의 바위 위로 물건들이 탁탁 올라갔다.
종류별 치킨, 소고기 오븐 스테이크, 주스 등등.
“어…!”
가득 쌓이 음식을 확인한 베리나의 눈동자가 커졌다.
호준은 강아지처럼 눈을 크게 뜬 그녀에게 손을 흔들며 나지막이 말했다.
“이것저것 조금 챙겼으니까. 입가심으로 먹으라고.”
“고, 고맙다…!”
베리나의 초롱초롱한 눈빛과 활짝 올라간 입꼬리를 보며 호준은 피식 웃었다.
“더 먹고 싶으면 토끼바위를 찾아와.”
그렇게 가게 홍보까지 마무리한 그는 포탈 속으로 뛰어들었다.
“자, 잘 가!”
베리나의 마지막 인사가 그의 귓가를 맴돌았다.
그렇게 짧지만 소중한 인연을 만들며 동굴 탐사의 종지부를 찍었다.
* * *
가지각색의 즐거운 경험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호준은 유유자적 미소의 등에 올라타 몸 편히 이동했다.
― 으으응! 배부르니 세상이 다 행복해 보인다무우!
찹찹찹
미소는 설탕을 쪽쪽 사탕처럼 빨며 터벅터벅 길을 걸었다.
미소가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그 위에 앉은 호준도 엉덩이가 덩실덩실 움직였다.
미소가 그에게 질문했다.
― 다크니스는 언제 올까무우?
“음, 글쎄. 사냥을 마치면 돌아오겠지?”
사냥을 떠난 다크니스의 행방을 묻는 질문에 호준은 나직이 대꾸하고는, 주위를 살폈다.
코발트 광산이 위치한 산은 한참 전에 떠났고.
우거진 나무숲이 한창이었다.
행인은 없었다.
‘행인 상대로 홍보하는 것도 괜찮은 것 같네.’
호준은 길을 가는 시간도 그냥 버리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가게를 홍보했다.
무료 주스를 하나씩 나누어 주며 위치를 알려주기만 하면 끝.
사람들은 지친 낯이 환하게 펴진 채로, 주스를 받아 마셨다.
무료 주스를 먹고 난 뒤, 초롱초롱한 눈으로 가게로 찾아오겠다는 이도 많았다.
“왠지 이번에는 손님이 많을 것 같은 기분이 드네.”
호준의 예감으로는 정말 손님이 많을 것 같았다.
방송의 효과도 그렇거니와.
길거리 홍보까지 했으니.
왠지 손님으로 가게가 미어터지는 것 아닐까.
그런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지난번에도 결코 적은 숫자는 아니었지.’
생각해보면 지난번도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가게 안도, 밖도 사람들이 줄지어 늘어설 정도로 많았으니까.
심지어 테이블도 부족해서 소규모 손님들이 합석하기도 했다.
‘테이블을 늘려야 돼.’
테이블 수는 확실히 늘려야 했다.
‘골드 몬스터 공략 영상도 올렸으니까.’
골드 몬스터 영상 맨 마지막에 가게 홍보 문구도 올렸다.
혹시라도 그 문구를 보고 찾아오는 이들이 있을 테니 준비해야 했다.
‘테이블도 대량으로 만들고. 야외에다 쫙 깔자.’
그렇게 생각한 호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대장간 먼저 가야지.’
테이블 설치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활 레벨 제한도 풀고. 무기도 제작해야 하니.’
코발트 원석 1,000개를 주고 활의 레벨 제한도 풀어야 하고.
간 김에 골드 리자드퀸의 심장으로 무기 제작을 의뢰할 생각이었다.
“미소야. 마을로 들어가면 대장간으로 간다! 알았지?”
― 나는 호준 말대로 한다무우!
미소가 크게 외치며 앞으로 박차고 나갔다.
상쾌한 바람이 호준과 미소를 훑고 지나갔다.
* * *
경로의 한 반쯤 지났을까.
미소의 등에 완전히 누워 구름을 보던 호준은 거슬리는 소리를 들었다.
탁 탁 탁
실내화가 바닥에 질질 끌리는 듯한 소리.
그는 재깍 일어나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폈다.
“어!”
그는 환하게 웃으며 그 앞을 바라보았다.
탁 탁 탁―
다크니스가 네 발로 날렵하게 달려오고 있었다.
탁탁 소리가 나는 것은, 다크니스가 입에 물고 있기 때문이었다.
큼지막한 메기 한 마리가 다크니스에게 물린 채로 질질 끌리고 있었다.
“이야… 제법 큰데?”
호준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메기는 다크니스의 몸집의 3배 정도 되었으니까.
다크니스의 무는 힘이 얼마나 센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쉭쉭―
메기는 물 밖임에도 불구하고 격렬히 저항했으나 이미 너무 늦었다.
콰직―
다크니스가 입을 꾹 다물어 숨통을 쥐어 버렸으니까.
캑―
메기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가녀린 숨을 뱉고는 몸을 축 늘어트렸다.
다크니스는 방금 전 숨통을 틀어막은 행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기쁜 눈망울을 하고는 사뿐히 점프했다.
“냐으으응!”
“왔어?”
― 왔냐무우!
다크니스가 호준의 앞에 자리를 잡고는 마치 조공하듯이 메기를 바닥에 갖다 댔다.
아직 숨이 살은 메기가 펄떡였으나 다크니스가 꽉 꼬리를 물어버리자 메기도 힘이 쪽 빠졌다.
“흐음…! 진짜 크네.”
호준은 메기의 크기에 감탄하여 그것을 살짝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메시지가 주르륵 떴다.
【메기가 왕족의 제복과 접촉하여 저주를 받았습니다】
【메기가 7초 동안 시력을 잃었습니다!】
쉭쉭
메기는 눈이 보이지 않는 게 불안한지 좌우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수염을 파닥파닥 떠는 것이 불안감을 느끼는 것으로 보였다.
호준은 말없이 손을 떼고는 다크니스에게 메기킹을 넘겼다.
다크니스는 메기킹을 발로 이리저리 드리블하듯 장난을 치면서 메기를 가지고 놀았다.
호준은 그 모습을 보며 잠시 생각했다.
‘닿기만 하면 되니 편하네. 일종의 보호막으로 써도 되겠어.’
그가 파악한, 저주의 사용법은 간단했다.
‘내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존재에게는, 저주가 내려지지 않는다.’
즉, 아이템 착용자가 상대를 적으로 인식하면 저주가 내려지는 것.
반대로 친밀한 관계나, 적으로 인지하지 않은 존재에게는 저주가 내려지지 않았다.
‘7초는 적은 시간이 아니야.’
7초라는 시간도 짧아 보일 수 있지만.
만약 비등비등한 상대와 싸우게 된다면, 절대로 7초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단 7초만으로 승부가 날 수 있는 법이니까.’
7초를 기회로 삼아, 전세가 뒤바뀔 가능성도 충분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상대가 모르니, 내게는 훨씬 유리하다.’
누가 옷에 닿았다는 이유로, 눈이 안 보일 거라 생각할까.
결국 저주 효과는 그가 전략적 우위에 서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운이 좋았어.’
이런 귀중한 아이템을 찾아준, 다크니스를 향해 관심을 돌리던 그때.
호준은 다크니스의 포식 행위를 그대로 보았다.
콰직
다크니스는 마지막으로 발악하는 메기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버렸다.
날카로운 이빨로 머리를 거의 다 잘라낸 것.
메기의 검던 눈망울이 새하얗게 변함과 동시에 메시지가 떴다.
【다크니스가 메기킹을 사냥했습니다!】
그냥 메기도 아니고 메기킹이라니.
어쩐지 덩치가 크더라니 메기보다 더 우수한 종인 모양이었다.
꿀꺽―
다크니스는 고개를 뒤로 꺾고는 메기킹을 라면 먹듯 후루룩 삼켰다.
“허어….”
호준은 황당해서 입을 크게 벌렸다.
“턱 안 아픈가…?”
입이 악어처럼 90도 넘게 벌어지는 것도 신기했거니와.
제 몸의 3배나 되는 메기를 삼키는 광경에 말을 잃은 것.
다크니스는 입을 쩝쩝 다시며 방금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태연하게 눈을 깜박였다.
“냐―앙!”
【다크니스가 물고기의 맛에 만족해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다크니스가 발바닥 젤리를 만지는 것도 오늘은 허락해 줄 수 있다고 너그럽게 말합니다!】
“냐앙~”
다크니스가 요염하게 엉덩이를 흔들며 걸어오더니 무릎에 냉큼 올라와 발을 축 늘어트렸다.
마치 특별히 허락해준다는 듯, 눈빛은 도도하면서도 은근히 눈치를 살피고 있다.
호준은 마치 제 지정석인 마냥 구는 다크니스의 모습에 피식 웃고는 젤리를 만지기 시작했다.
젤리를 꾹 누르면 발톱이 볼록 튀어나왔는데, 말랑말랑한 발바닥 젤리는 만질수록 기분이 좋아졌다.
‘하루종일 고양이랑 노는 것도 왠지 좋을 것 같다.’
동물을 좋아하는 그로서는 동물들과 종일 뒹구는 것이 천국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휴가도 한번 가야지. 경치 좋은 데로!’
그렇게 막연하게 휴가를 생각하고서 호준은 다크니스의 발바닥을 손톱 끝으로 슬슬 간지럽혔다.
다크니스가 기분 좋은 듯 그릉그릉 울었다.
손을 쉬지 않고 움직이면서 그는 입도 쉬지 않았다.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듯이 말했다.
“우리 다크니스는, 귀엽고, 잘 달리고, 사냥도 잘하고. 발바닥도 부들부들하고. 아주 못하는 게 없네?”
“냐아앙~”
“뭐. 주인님 닮아서 이렇게 멋지고 강하다고?”
“냥!”
“그래그래. 주인님 닮아서 그렇지. 그렇고 말고!”
호준은 다크니스의 말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피식 웃기 바빴다.
다크니스는 허리를 뒤로 휙 비틀어 그의 손가락을 핥으며 애교를 부렸다.
호준은 손끝에서 느껴지는 까끌한 감촉이 싫지 않아 그대로 손가락을 맡겼다.
【다크니스가 당신에게 맹목적인 애정을 느낍니다!】
그렇게 호준과 다크니스가 서로에게 푹 빠져 있던 그때.
미소가 별안간 큰 울음소리를 냈다.
― 호준! 저기 마을이 보인다무우!
미소의 외침에 호준은 다크니스를 보던 눈을 들어 올려 앞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많이 익숙해진 요나스 마을의 전경이 한눈에 펼쳐졌다.
좌우로 늘어선 가게 건물들.
그 사이로 난 자갈길을 따라, 사람과 마차가 서로 한 데 섞여 분주하게 오가는 것이 보였다.
그중에서 그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검은 굴뚝에서 새하얀 연기를 쉼 없이 뿜어내는, 대장간이었다.
“미소야! 가자!”
― 출발이다무우!
미소가 힘차게 달려나가자 알록달록한 광석이 가득한 대장간이 가까워졌다.
그 순간 호준은 알지 못했다.
‘무슨 무기를 만들 수 있으려나.’
그곳에 그를 위한 특별한 선물이 잠들어 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