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 폭풍 성장 & 저주 풀기
전투에서 승자는 모든 것을 얻지만, 패자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지금 골드 리자드퀸의 상황도 그런 상황이었다.
크르르릉….
세상을 호령할 듯 위풍당당하던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너무나도 초라하게 골드 리자드퀸은 바닥에 엎드렸다.
힘을 거의 잃고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눈만 끔벅이는데, 누군가 그에게 다가갔다.
푹!
호준은 가차 없이 리자드퀸의 목줄을 끊어냈다.
푸와악!
피가 분수처럼 쏟아지고, 리자드퀸의 눈에서 총기가 사그라들었다.
고개가 바닥에 쓰러짐과 동시에 메시지가 떴다.
【골드 리자드퀸을 처치했습니다!】
완벽한 작전으로 얻은, 완벽한 승리였다.
* * *
“후우…!”
호준은 가쁜 숨을 내쉬고는.
“흐음…!”
튀김기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숨을 들이마셨다.
방송 중이라 표정으로 티 내지 않았으나, 그는 지금 속으로 놀라고 있었다.
‘계획대로 될 줄이야.’
트랩을 완벽히 설치하기까지 호준은 치밀하게 움직였다.
먼저 그동안 영상에서 보아온 리자드퀸의 먹잇감들을 다크니스가 사냥하도록 했고.
리자드퀸의 다소 둔한 움직임과 4족 보행을 고려하여 트랩으로 사용할 구덩이를 탐사했다.
마지막으로 구덩이에 기름을 듬뿍 바르고, 적절한 절벽 위로 올라가 사냥감이 나타나기만을 호시탐탐 기다렸다.
그 결과.
― 성공이다무우!
“냐앙!”
【다크니스가 승리의 함성을 내지릅니다!】
완벽한 승리.
그 승리를 만끽하기에 앞서, 호준은 고개를 내렸다.
“모두 수고했다.”
그는 전투의 일등 공신 다크니스와 미소의 어깨를 다독이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특히 미소의 날쌘 움직임이 아니었다면 이번 작전은 어려웠을 것이 분명했기에 엄지손가락도 척 들어주었다.
― 흠흠. 이쯤이야 별거 아니다무우! 더 멋진 소가 되겠다무우!
미소는 꼬리를 살랑대며 주위를 왔다 갔다 하며 흥분했고.
연이어 칭찬을 받은 다크니스도 허리를 우아하게 굴곡지게 한 채로 섰다.
【다크니스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기쁨을 표합니다!】
“설탕 먹으면서 쉬고 있어.”
호준은 둘에게는 사탕이나 다름없는 설탕을 나눠주고서, 방송을 마무리하기 위해 채팅창을 살폈다.
시청자들은 한창 흥분한 분위기였다.
└ 능숙하게 적을 함정에 몰아넣는 게 인상 깊었습니다. 첫 전투 영상이라는 게 놀라울 정도임. 혹시 영상 편집을 원하시면 여기로 연락해주세요. 대박 비디오 컴퍼니
–명함―
누군가는 영상 편집을 하겠다고 나섰고.
└ 리자드퀸한테 깔려 죽을까 봐 조마조마했음.
└ 미소 완전 빠르네. 다리가 굵어서 그런가? 굴곡진 곳도 촐랑촐랑 잘도 뛰던데.
└ 그나저나 튀김기로 공격하는 건 난생처음 봄 ㅋㅋㅋㅋ 요리사가 싸우는 방식은 그런가?
대부분은 전투 영상에 대한 소감을 이야기했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긍정적이었다.
‘골드 몬스터라는 사실은 아직 말하지 않았지.’
호준은 유종의 미를 장식하듯, 불타는 논쟁에 기름을 부었다.
“지금까지 골드 리자드퀸 사냥 방송을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투 특성상 말없이 방송했는데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봐 주셔서 감사해요! 지금부터는 퀘스트 진행을 해야 해서 영상은 종료하겠습니다!”
골드 몬스터라는 단어가 나오자 반응은 곧바로 이어졌다.
채팅창은 활활 불타올랐다.
└ 헐! 골드 리자드퀸? 골드 몬스터가 진짜로 나온 거야?
└ 정말 골드몬스터라면 이게 공식적으로 전 세계 최초잖아?
└ 레알 최초라면, 조회 수는 떼놓은 당상인데. 유토피아 커뮤니티에는 쫙 뿌려질 듯.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21억 명 이상의 플레이어들이 하는 게임에서, 최초로 골드 몬스터를 잡았다는 것.
그리고 골드 몬스터를 사냥한 영상을 찍어 공식화했다는 점에서,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볼 수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모두가 열광한 것은 아니었다.
골드 몬스터라는 발언의 사실 여부를 의심하는 이들도 있었다.
└ 설마. 지금까지 자뻑으로 저런 녀석이 한둘인가? 커뮤니티만 가도 저런 썰은 얼마든지 있음.
└ 빼도 박도 못 하는 증거가 있어야지. 증거 있음?
└ 구라인지 아닌지 우리가 어떻게 암?
그런 반응을 예측 못 한 그가 아니었다.
호준은 씩 웃고는 손을 간단히 움직였다.
그는 메시지 한 개를 선택해 비공개에서 공개로 전환했다.
그가 공개한 메시지가 방송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골드 리자드퀸을 처치했습니다!】
└ 와 레알이네.
└ 진짜잖아?
└ 응 아니야. 가짜 아니고 진짜거든! 이런 거 거짓말하면 괜히 망신만 당하는데 왜 거짓말하겠음?
여론은 금방 호준 편으로 돌아섰다.
아까 의심하던 사람들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 믿는 게 당연하지. 메시지 조작은 게임 개발자만 가능하니까.
누구나 알 듯, 게임 메시지 조작은 개발자가 아닌 이상 불가능했으니까.
└ 그럼 호준 님이 전 세계에서 제일 처음으로, 골드 몬스터를 발견한 거네?
└ 조회수 대박이겠다…!
└ 조회수 당 광고 1원씩만 넣어도 얼마야…….
└ 1,000만은 그냥 찍을 듯.
└ 와. 잭팟 터짐! 축하드려요. 호준 님!
└ 회당 광고 3원만 깔아도 조회 수 1,000만 넘으면 3,000만 원이네. 카. 개꿀!
└ 골드 몬스터면 보상 끝내준다던데. 이왕 이렇게 된 거 다 공개하시죠!
└ 솔까 부럽네.
많은 질문을 받았지만, 호준은 더 방송을 진행할 의지가 없었다.
어차피 영상은 완벽하게 마무리했고.
‘보상을 까봐야지.’
새로 얻은 보상을 살피고, 아이템의 저주를 풀 생각이었으니까.
그렇기에, 화면을 향해 간단히 인사하고 방송을 마무리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다음에도 알찬 정보로 찾아뵐게요!”
톡톡!
방송을 종료한 그는 미소와 다크니스의 곁에 털썩 주저앉았다.
― 음음. 설탕은 천국의 열매다무우!
미소가 취한 듯 중얼거리는 말에 피식 웃으며 그는 바닥에 벌러덩 누웠다.
미소 등에 몸을 기대니 복슬복슬하니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깍지를 끼고 누운 채로 그는 새로 뜬 메시지를 확인했다.
‘뭐. 퀘스트에 관한 내용이겠지.’
그는 별 기대 없이.
그저 그렇겠거니 하고 위로 메시지를 넘기려 했다.
그러나 그의 손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어…?”
호준의 고개가 갸웃했다.
“이게 몇 개야. 도대체?”
전설적인 골드 몬스터는 정말로 보물단지를 품고 있었다.
* * *
‘여기저기 뛰며 고생한 보람이 있네.’
고생한 만큼 보상은 훌륭했다.
【퀘스트 아이템 획득!】
【음습한 기운이 닮긴 보석 1개를 얻었습니다】
퀘스트 아이템을 얻은 것은 당연지사.
놀라운 것은 따로 있었다.
【레벨업!】
【레벨업!】
【레벨업!】
【레벨업!】
【레벨업!】
“한 번에 5 레벨이나 올랐네.”
【레벨업으로 인해, 전 스탯이 +5 씩 상승했습니다!】
스탯도 덩달아 상승!
팔에 힘이 저절로 솟구쳤다.
그뿐 아니라 칭호도 세 개나 얻었다.
【칭호 ‘불굴의 의지를 가진 자’ 획득!】
【칭호 ‘속전속결’ 획득!】
【칭호 ‘전설을 만난 자’ 획득!】
【불굴의 의지를 지닌 자】
【설명】 : 이 칭호는, 자신과 20레벨 이상 차이나는 몬스터를 해치우는 용감한 자에게 주어진다. 불굴의 의지를 한층 더 강력하게 만들어 준다.
【효과】 : 힘 +10
【속전속결】
【설명】 : 고대의 숲에서 30분 내로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면 얻는 칭호이다. 전도유망한 전사에게 내려지는 축복의 의미를 지니는 칭호다.
【효과】 : 민첩 +10 정신력 +10
【전설을 만난 자】
【설명】 : 골드 몬스터를 해치운 자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칭호다.
【효과】 : 전 스탯 + 10
각각의 내용을 확인하고 나니 박수가 절로 나왔다.
호준은 입을 벌리며 감탄했다.
한눈에 봐도, 칭호 효과로만 스탯이 각각 20씩 올랐다.
즉, 칭호 3개를 얻음으로써 레벨업을 20번 한 것과 같은 효과를 얻은 것.
‘왠지. 다리에서도 힘이 솟구치더니. 이래서 그런 거였어.’
스탯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사실에 호준은 어깨가 절로 들썩였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스탯은 전투에서 중요한 요소였다.
힘은, 물리 공격력을 높이고.
민첩은 이동속도와 반응 속도를 높이고.
정신력은 크리티컬 대미지를 높이고 피격 대미지를 낮추는 기능을 담당했다.
‘그리고 요정력은 요정들의 원기를 회복하는 데 쓰이고. 확실한 건 스탯이 오를수록 내가 싸우는 데 유리하다는 거지.’
실제로 스탯을 살펴보니 놀라울 정도로 높아졌다.
【호준】
【직업】 : 요정왕
【레벨】 : 25 (LEVEL UP +5)
【힘】 51 【정신력】 51 【민첩】 51 【요정력】 51
【최근 변화】: 전 스탯 + 25
‘원래는 레벨 50이 되어서야 얻을 스탯이네.’
이 정도의 스탯이라면 본래는, 레벨업을 50번은 되어야 했다.
그러나 이런저런 칭호를 모으다 보니, 레벨 25임에도 이런 훌륭한 스탯을 얻게 된 것.
호준의 어깨가 으쓱했다.
‘칭호는 할 수 있는 만큼 다 모으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지막으로 남은 메시지를 살폈다.
메시지를 다 읽은 호준은 말을 잃었다.
“흐음…!”
그저 생각할 뿐.
【골드 리자드퀸을 단시간 내에 사냥하여 특별아이템을 얻었습니다!】
【골드 리자드퀸의 심장 획득!】
【골드 리자드퀸의 심장은, 무기 재료로 아주 적합한 아이템입니다】
【골드 칭호가 붙은 재료를 이용해 무기를 만들 경우, 무기의 등급이 대폭 상승합니다!】
【무기 제작은, 가까운 곳에 있는 대장장이에게 의뢰하세요!】
‘새로운 무기라…!’
그의 머릿속에는 얼마 전 도감에서 보았던, 전설적인 무기가 아른거렸다.
* * *
【포털을 빠져나갑니다!】
리자드퀸을 처치하고 5분이 흐르자, 자동으로 호준 일행은 포털을 빠져나왔다.
그렇게 베리나 앞으로 소환되자, 호준은 그녀에게 부탁받은 보석을 건넸다.
베리나는 흡족한 얼굴로 보석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하다. 이제 저주를 풀어줄 테니 눈을 감도록.”
“알았다.”
“내가 말하기 전까지는 눈을 뜨지 마라.”
호준은 눈을 감고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곧 베리나의 손이 눈 위에 닿았다.
얼음장 같은 손바닥이었다.
호준의 몸이 잠시 움츠러들었다.
그러나 곧 손바닥은 뜨거운 온천물처럼 따뜻해졌다.
따스한 기운이 몸 전체로 스며들기 시작했고, 베리나가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주를 내리는 악신이여. 당신의 원한을 씻기기 위해 이 진귀한 보석을 바치나이다. 부디 이 보석을 대가로 저주를 풀어줄 것을 간청하나이다. 그 무엇도 당신의 신성을 의심하지 않으리니. 부디 노여움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베리나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포근한 기운이 어깨와 가슴, 배, 허리와 허벅지를 지나 전신으로 물감 퍼지듯 퍼져나갔다.
곧이어, 베리나의 밝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호준, 끝났어. 눈 떠봐!”
그 말에 눈을 뜨자, 호준은 생글생글 웃는 베리나를 볼 수 있었다.
그녀가 손가락을 탁 튕기며 말했다.
“저주는 전부 다 풀렸다!”
그 말을 신호탄으로 메시지가 떴다.
【현재 착용 중인 ‘저주받은 왕족의 제복’의 저주가 풀렸습니다】
【저주를 해제해 등급이 상승합니다!】
【저주를 해제해 등급이 상승합니다!】
【저주를 해제해 등급이 상승합니다!】
【등급 변화】 : 특 10급 ― > 특 7급
‘등급도 상승하는구나.’
호준은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남은 메시지도 살폈다.
특수 기능 3개가 개방되는 것을 두 눈으로 볼 수 있었다.
【특수 기능 업데이트 완료!】
【특수 기능 ‘비상착륙’이 개방되었습니다!】
【제복을 착용하는 동안, 높은 곳에서 추락해도 절대로 다치지 않습니다!】
【제복을 착용하면 어느 곳이든 안전히 착지 가능합니다!】
【특수 기능 업데이트 완료!】
【특수 기능 ‘유연함’이 개방되었습니다!】
【유연함을 만끽하세요!】
【허리를 뒤로 180도로 꺾어도 당신은 아픔을 느끼지 않습니다. 이제부터 의복을 착용하는 동안, 당신은 유연한 몸을 가지게 됩니다】
비상착륙과 유연함.
호준은 각각이 모두 마음에 쏙 들었다.
일단 비상은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추락사를 방지해주니 안전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유연하면 유연할수록, 전투 시 날렵하게 피할 수 있을
‘몸이 유연하면 그만큼 공격을 회피하기도 쉽겠지.’
이 두 가지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선물이었지만, 아직 확인할 것이 남았다.
마지막 세 번째 특수 기능을 확인해야 했으니까.
마지막 메시지는 다른 메시지와 달리 뒤늦게 떠올랐다.
띠링―
알람이 들리는 순간, 호준은 그것을 빤히 보았다.
메시지를 읽을수록 그의 동공이 한없이 커졌다.
【특수 기능 업데이트 완료!】
【특수 기능 ‘저주’가 개방되었습니다!】
【이 옷에 몸이 닿은 적은 반드시 저주를 받습니다!】
【저주받은 상대는 7초 동안 시력을 잃습니다!】
‘옷에 닿으면 시력을 잃는다고?’
시력을 앗아가는 치명적인 무기를 얻은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