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를 너무 잘함-81화 (81/200)

081. 도마뱀 사냥

황금 문을 여는 순간 푸른 숲이 펼쳐졌다.

보통의 푸른 숲이라면 맑은 공기가 가슴을 꽉 채울 듯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숲인데도 불구하고 습하고 더운 공기가 불쾌지수를 높였다.

그리고 기분 탓일까.

앞에 펼쳐지는 원시시대를 떠올리는 숲은 왠지 모를 꺼림칙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공룡이라도 나오는 건가?’

눈앞의 광경은, 공룡이 툭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법한 고대 원시림이었다.

높다란 야자수와 가지각색의 양치식물이 가득했다.

‘일단 가보자.’

호준은 미소와 다크니스를 이끌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몇 분을 걸었을 무렵, 거슬리는 숨소리가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크르르릉

으르렁거리는 듯한 숨소리.

그 소리에 호준은 걸음을 멈추고 뒤에도 멈추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주위를 둘러보던 그는 적당한 나무를 기어 올라가 앞을 살폈다.

나무 마디에는 움푹 파인 홈이 있어서 기어오르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마침내 적당한 높이까지 올라가고 나자, 그제야 거친 숨을 내쉬는 범인을 알 수 있었다.

‘리자드퀸……!’

【골드 리자드퀸】

‘골드 몬스터다.’

골드 몬스터라는 사실에 호준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흔하게 오는 기회가 아니야.’

골드 몬스터는 언제 어디서나 보는 흔한 몬스터가 아니었다.

골드 몬스터는 극악의 확률로 나타나는 몬스터로, 나올 확률이 0.0001%라는 소문이 돌만큼 희귀한 몬스터를 말한다.

게임 홈페이지에는 그렇게 적혀있으나 어찌나 희귀한지 목격담만 많고 증거 영상은 없었다.

‘누군가 목격했다고 말해도 증거가 없으니 사실인지 허풍인지 판단할 수가 없지.’

그렇게 소문으로만 들리던 골드 몬스터를 직접 마주했다.

심장이 뛰는 것이 당연했다.

호준은 가슴을 꾹꾹 누르며 생각을 가다듬었다.

‘사냥에 성공만 하면, 대박이겠군.’

골드 몬스터는 기존 몬스터보다 훌륭한 아이템을 주는 몬스터라고 알려져 있었다.

어째서 골드몬스터가 나타났는가에 대해서는, 호준은 황금 문을 의심했다.

‘황금색 문이 이런 의미였던 건가.’

황금 문의 의미를 나름대로 추측하고서, 그는 상대를 주시했다.

골드 몬스터가 기존 몬스터와 다른 점은, 그저 아이템을 더 훌륭한 것으로 준다는 것뿐.

저 앞에 늘어진 채로 잠자는 골드 리자드퀸은 그냥 리자드퀸과 같게 보면 되었다.

‘쉽지 않은 상대야.’

상대는 리자드퀸.

만나기가 워낙 힘들어서 희귀하다고 손꼽히는 보스급 몬스터다.

전투 상대로는 까다롭다고 알려져 있었다.

‘영상을 몇 번 봤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군.’

다행히 호준은 틈틈이 호기심에 전투 영상을 둘러보곤 했는데 그 영상 중에는, 리자드퀸 공략법 영상도 존재했다.

그리고 잠자는 리자드퀸 덕분에 아직 준비할 시간이 남아있었다.

‘완벽하게 해치운다.’

철저하게 꼼꼼히 따져서, 사냥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그냥 사냥하고 넘기기는 왠지 아까운데.’

흔하지 않은 골드 몬스터 사냥 기회를, 그냥 이 순간으로 날리는 것도 그는 왠지 아깝게 느껴졌다.

그가 알기로 골드 몬스터를 잡는 영상은 지금까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영상리스트를 찾아보고 난 뒤로, 호준의 생각은 방송하는 쪽으로 굳어졌다.

‘이번이 최초의 골드 몬스터 사냥 영상이다. 방송각이다.’

농부 겸 요리사가 덤프트럭의 2배 크기의 몸집의 거대한 리자드퀸을 처치한다.

전투하는 농부.

왠지 색다르게 보였다.

더군다나 최초로 골드 몬스터를 공략하는 것은, 의미가 있는 법.

‘하자.’

그렇게 호준은 완벽 공략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 * *

리자드퀸은 수백~수천 명의 리자드맨을 거느리는 보스급 몬스터로, 외관은 코모도 왕 도마뱀과 같이 생겼다.

이 녀석은 덤프트럭 2~3개를 합한 것처럼 크고 묵직한 체구를 가지고 있다.

‘저 덩치로 4족 보행을 한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지.’

4족 보행을 하는 리자드퀸은 꼬리를 주의해야 하는데, 꼬리가 아주 유연해서 반원 모양으로 휙휙 움직인다.

특히 꼬리 힘이 대단해서 꼬리로 바닥을 내리치면 지표면이 과자 부수듯 부서진다.

강력한 꼬리 힘은 호준도 영상으로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꼬리치기 한 번으로, 거대한 구멍을 내서 수십 명을 그대로 추락시켰지.’

리자드퀸의 주의할 점은 꼬리뿐만이 아니었다.

‘비늘 발사가 훨씬 위험하다.’

처음에는 꼬리를 흔들었다면, 본격적인 공격은 비늘 발사다.

이 녀석은 전신을 휘감은 수천 개의 비늘을 동시에 발사했다.

비늘은 초고속으로 날아가 주위에 플레이어를 조각조각 도륙하는 것.

― 비늘이 대단해봤자 얼마나 대단하다고? 그냥 쳐내면 되는 거 아냐?

비늘의 실체를 모를 경우, 이렇게 가볍게 대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직접 전투 영상을 보면 생각이 바뀔 수밖에 없었다.

‘그냥 비늘이 아니니까. 잘 벼려진 칼날이 빠른 속도로 날아오면 검도 부술 수 있는 법이지.’

리자드퀸 비늘은 잘 벼려낸 칼날처럼 날카롭고 단단하다.

그 비늘에 가속도가 붙어서 날아오게 되면 위력은 배가 된다.

만약 날아오른 비늘에 제 목을 허락한다면 그대로 저세상행은 확정.

팔이나 발목이 닿으면 잘릴 각오를 해야 했다.

‘전략을 세워야 한다. 몸을 안전하게 피할 수 있는.’

객관적으로 리자드퀸과 호준의 힘의 격차는 너무나 컸다.

‘당연하지. 리자드퀸은 보통 레벨 30 이상부터 잡으니까.’

레벨이 20 남짓한 그는 애초에 리자드퀸에 도전할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아무리 회사 버프로 눈썹이 휘날리도록 빨리 달릴 수 있다 해도, 이동속도가 빠르다고 안전까지 보장해주지는 않으니까.

촘촘히 날아오는 비늘로부터 안전하다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영상을 보면, 팀플레이로 한다 해도 사상자가 제법 나왔다.’

더군다나 리자드퀸을 솔플로 상대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었다.

한쪽에서 탱커가 주의를 끌면 다른 이들이 후방에서 집중 공격하는 방식을 취했으니까.

전형적인 공격패턴이었다.

그러나 호준은 포기하지 않았다.

‘방법이 아예 없지는 않아. 그 방법으로만 하면.’

그는 그만의 해답을 찾았다.

‘약점을 이용한다.’

리자드퀸이 가장 대미지를 많이 입은 약점을 이용하는 것.

그것에 승패가 갈린다고 판단하고서 호준은 행동에 들어갔다.

주위 지형 탐사하고 완벽하게 준비를 마쳤다.

수없이 머릿속에서 작전을 시뮬레이션 한 결과는 하나였다.

‘할 수 있다.’

호준은 고개를 돌려 양옆을 보았다.

미소와 다크니스가 그를 신뢰를 담아 바라보았다.

호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직이 말했다.

“좋아. 시작이다.”

― 엎드린 뱀을 무찌른다무우!

“냥!”

준비를 마친 호준이 손가락으로 방송구름을 톡톡 두드렸다.

【방송을 시작합니다!】

【초보농사꾼 님이 입장했습니다】

【익명의후원자 님이 입장했습니다】

【고양이덕후 님이 입장했습니다】

【나는야라면요리사 님이 입장했습니다】

└ 어라. 공룡 만나러 가심? 주ㅁ기 공원인 줄.

└ 그러게. 영화 촬영장 같다. 어디지?

└ 호준 님, 설마 전투 방송으로 전환하심?

어리둥절한 모두를 향해 호준은 한 마디를 날렸다.

“지금부터는 사냥 방송을 시작하겠습니다.”

그의 최초 사냥 방송이 시작되었다.

* * *

크릉!

긴 잠에서 깨어난 골드 리자드퀸의 심기는 좋지 않았다.

평소라면 주위를 살피면 적당히 먹을 것이 있었는데 그렇지 않은 것.

오늘따라 주위를 굴러다니던 작은 동물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누가 채가기라도 한 것처럼.

리자드퀸은 허기진 배를 움켜쥐며 코를 킁킁댔다.

크릉?

극도로 발달한 후각은 평소처럼 먹잇감이 어디 있는지 귀신같이 추적했다.

크릉!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먹이 냄새가 아주 진하게 났다.

리자드퀸은 침을 줄줄 흘리며 먹잇감 냄새를 흡입했다.

먹잇감이 한 데 모여있는 듯했다.

토끼와 사슴, 노루 등의 냄새가, 한 곳에서 물씬 풍겨오니 리자드퀸의 입에 침이 고였다.

크르릉!

리자드퀸은 냄새가 나는 방향으로 허겁지겁 달렸다.

쿵 쿵 쿵―

성급히 다리가 움직일 때마다, 수십 개의 나무 기둥이 나뭇가지 부러지듯 부러졌다.

축축한 땅이 깊게도 팼다.

리자드퀸이 콧김으로 쏘는 보라색 독액이 바닥에 뚝뚝 떨어지며 주변의 나무를 독으로 오염시켰다.

독액에 조금이라도 노출된 나무들은 삽시간에 검게 변해 죽어갔다.

죽음을 널리 흩뿌리면서 리자드퀸은 쿵쿵 앞으로 걸어갔다.

크르릉!

리자드퀸이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하자, 기쁨의 울음을 토했다.

리자드퀸의 앞에는 그 자신이 들어가도 될 만큼의 거대한 구덩이가 있었다.

원래는 없던 지형이지만 리자드퀸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크르르!

그 아래에 최상의 먹이들이 가득 쌓여있었으니까.

마치 폭격이라도 맞은 것처럼 거대한 크레이터가 있었고, 그 안에는 토실토실하게 살찐 대형 노루와 사슴들이 죽은 채로 늘어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준비해 놓은 것처럼 완벽한, 리자드퀸의 만찬과도 같았다.

크르르!

리자드퀸이 만약 인간이었다면, 뜬금없는 장소에서의 만찬을 의심했겠지만.

몬스터는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법.

리자드퀸은 본능대로 먹잇감이 담긴 구덩이를 향해 몸을 내던졌다.

리자드퀸이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포동포동한 노루를 한입에 꼴깍 삼키는 그 순간.

쨍그랑!

작전이 시작되었다.

어딘가에서 날아온 유리병들이, 리자드퀸의 등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다.

주르륵.

유리병에 담긴 액체가 등을 푹 적셨다.

크릉??

리자드퀸은 등에 부딪힌 것을 보려고 고개를 뒤로 꺾었으나 이미 병은 깨지고 난 뒤였다.

푸르릉!

몸에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생각한 리자드퀸은 귀찮은 듯 다시 먹는 것에 집중했다.

우적우적―

리자드퀸은 먹이를 먹고자 허리를 동그랗게 말고 바닥에 입을 처박았다.

그때였다.

쾅 쾅!

리자드퀸의 등 위로 횃불이 던져진 것은.

횃불의 불이 그대로 등에 옮겨붙은 것은 삽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크르륵!”

리자드퀸은 처음으로 겪는 따끔한 불의 감각에 깜짝 놀라 몸부림을 쳤다.

적이 누군지를 간파하기 위해 고개를 높이 들어 올렸다.

그 순간이었다.

쾅!

“크아아아!”

머리에 횃불이 던져졌고, 눈코입 할 것 없이 전부 불타기 시작한 것은.

제아무리 비늘이 단단하다고 해도 눈까지 비늘로 덥힌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가장 연약하고 예민한 신경이 모인 코가 불타기 시작하자, 리자드퀸은 고통에 몸부림쳤다.

더 비극적인 상황은, 눈과 코가 타들어 가면서 감각이 마비되고, 그로 인해 적을 간파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

크르르르!

리자드퀸은 분노에 차올라 전신에서 독 안개를 뿜어내고, 구덩이를 기어 올라오려 했다.

자신을 공격한 적이 위에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신은 리자드퀸의 편이 아니었다.

주르륵―

구덩이 벽면은 누군가 발라놓은 기름 때문에 미끌미끌해져 있었으니까.

리자드퀸은 주르륵 미끄러져 머리를 바닥에 처박고 말았다.

가뜩이나 불타올라 아픈 머리에 큰 충격이 가해져 리자드퀸의 몸이 축 늘어졌다.

리자드퀸이 어떻게든 등에 붙은 불을 끄려고 몸을 완전히 뒤집어 배를 하늘로 향하게 했다.

숨죽여 모든 것을 지켜보던 호준 일행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공격!”

배 아래에 달린 보라색 독주머니.

독주머니는 리자드퀸의 재생력의 근원이자 심장보다도 더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그런 소중한 독주머니를 향해 미소가 돌진했다.

미소가 칼을 휘두르는 순간.

왈칵―

독주머니가 세로로 찢기면서 보라색 독액이 터져 나왔다.

“크아아앙!”

리자드퀸은 심장이 찢기는 듯한 고통에 저항하듯 몸을 들썩였다.

그러나 독주머니에 접근한 호준 일행은 그에게 최후의 한 방을 날렸다.

찌지지직!

미소의 칼날과 다크니스의 발톱이 유일하게 여리디여린 독주머니를 4조각으로 싹둑 잘라버렸다.

미소는 호준과 다크니스를 어깨에 매단 채로 바깥으로 나와 안전한 곳으로 대피했다.

크아아악!

리자드퀸은 거칠게 발악하며 주위를 부술 듯이 난동을 부렸다.

그러나 호준 일행은 멀리서 지켜보기만 할 뿐 다가가지 않았다.

너덜너덜해진 독주머니로는, 리자드퀸 특유의 재생력을 쓸 수 없는 몸.

쿠에엑!

호준과 그 일행은 멀리 빠져나와 호시탐탐 때를 기다렸다.

그는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남지 않았다.’

최후의 일격을 가할 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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