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를 너무 잘함-80화 (80/200)

080. 마녀의 부탁

쩌저적―

덤프트럭만 한 거미줄 공이 반으로 찢겼다.

호준은 찢어진 틈 사이로 나타난 새하얀 존재와 눈이 마주쳤다.

그가 숨을 들이마시자 상대도 숨을 멈추고 바라보았다.

“…….”

‘마녀인가?’

공에서 튀어나온 소녀는 마른 체형에 하얀 머리카락과 피부와 눈동자를 지녔다.

앙다문 붉은 입술이 유일하게 하얀색이 아니었다.

그녀의 굳게 다문 입술이 먼저 열렸다.

“나는 이곳에 사는 마녀, 베리나다. 여기까지 온 이유가 무엇이지?”

“전 호준입니다. 베리나 님.”

“그래. 호준. 굳이 여기까지 와서 향긋한 냄새를 풍기며, 식욕을 돋운 이유를 말하라!”

“저는 저주를 풀기 위해 왔습니다. 음식은 배고파서 먹었고요.”

베리나가 입맛을 살짝 다시며 그 말에 답했다.

그녀의 눈이 음식을 향하더니 다시 호준에게로 향했다.

“흠흠. 냄새를 풍기는 음식을 먹지 않는 이에게는 고문이다.”

“죄송합니다. 혹시 베리나 님도 같이 드시겠습니까? 요리는 부족하면 만들면 그만이니까요.”

호준의 제안에 베리나가 음식을 흘깃 보더니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아쉬움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을 하고 말했다.

“나는 맨입에 음식을 얻어먹고 그러는 마녀가 아니다. 요새 박쥐고기만 먹어서 질리기는 했다만…….”

아무리 봐도 베리나는 튀김에 미련이 남은 것처럼 보였다.

호준은 한 번 더 찔러 보았다.

“대가가 없어도 괜찮으니 같이 드시죠. 한 명만 빼놓고 먹으면 먹는 이들도 불편하기 마련입니다. 저희를 불편하게 하지는 않으시겠죠?”

“흠흠. 그리 부탁하면 어쩔 수 없지.”

호준의 적극적인 요청에 베리나는 냉큼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녀는 다크니스와 미소 옆에 앉아 눈인사를 나누었다.

다크니스와 미소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그녀를 반겼다.

― 하얀 여자다무우! 반갑다무우!

“하얀 여자가 아니라 베리나다! 흠, 너는 아주 훌륭한 소구나. 진화하는 힘을 지닌 모양이니 앞으로 더 훌륭해지겠구나.”

― 흠흠 맞다. 나는 훌륭한 소다무우!

마녀의 인정을 받은 미소의 가슴이 활짝 펴졌다.

다크니스는 용감하게도 마녀의 무릎 위로 올라가 똬리를 틀었다.

발칙하다 못해 용감한 다크니스의 행동에 마녀는 잠시 굳는 듯하더니, 얼굴을 풀고 다크니스를 내려보았다.

“으음. 요망하게도 사람 마음을 쥐었다 폈다 하는구나.”

“냐앙~”

“얌전히 있어라.”

베리나는 투덜대기는 해도 다크니스가 편하도록 무릎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불편할 텐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마른 손으로 다크니스의 등을 쓰다듬으며 미소지었다.

호준은 한 덩어리가 된 이들을 뒤로 한 채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들 먼저 먹고 있으십시오. 다른 요리들도 만들어 올 테니까요!”

“네가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 호준!”

― 다녀와라무우!

“냥!”

새로운 손님을 맞이한 그의 칼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유토피아의 AI 캐릭터는 기존의 NPC와 개념이 달랐다.

이곳의 AI 캐릭터는 자유로운 인공지능 때문에 성격, 행동 패턴, 대화법이 다 다르다.

‘결국, 이들에게 잘 보여야 더 많은 혜택을 주지.’

캐릭터들이 베푸는 호의 또한 오로지 AI 캐릭터 손에 달렸다.

그렇기에 이들과 친할수록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더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는 것.

‘마녀에게 잘 보여서 나쁠 것은 없는 것이고.’

누군가는 캐릭터에게 잘 보이는 시스템이 귀찮다고 AI 캐릭터를 하대하거나, 혹은 폭행을 가하기도 했다.

‘어차피 캐릭터니 무시해도 된다고 말이야.’

그러나 이렇게 반항하는 이들에게 AI 캐릭터는 저항했다.

험하게 구는 이들에게는 퀘스트를 아예 주지 않고 만남도 거부했다.

결국, 이런 플레이어들도 퀘스트를 위해서는, 긴 시간 동안 틀어진 관계를 회복해야 했다.

‘결론은, 캐릭터들과 친할수록 내게 좋다는 거지.’

착 착 착!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요리를 완성한 그는 접시를 들고 양탄자로 되돌아갔다.

미소와 다크니스는 새로운 음식 냄새에 코를 킁킁대며 눈을 빛냈고.

마녀는 눈을 휘둥그레 뜬 채로 말했다.

“그 잠깐 사이에 이거를 다 만든 것이냐.”

“이 정도야. 식은 죽 먹기입니다.”

호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턱 아플 정도로 벌어지는 마녀의 입을 신기하게 쳐다보다가, 그 옆의 채팅창이 보였다.

└ 진짜 식은 죽 먹기지.

└ 5분 만에 끝냈음ㅋㅋㅋ

└ 고구마 튀김 진짜 좋아하는데. 부럽다

└ 난 어니언링…!

└ 감자튀김으로 산을 쌓았네 ㅋㅋㅋㅋ

그가 5분 만에 내놓은 요리는 총 3가지.

양파 튀김, 고구마튀김, 감자튀김이었다.

찍어 먹을 용으로 케첩, 마요네즈, 간장, 고추장도 준비 완료.

흠잡을 데 없는 튀김 만찬에 마녀는 침을 꼴깍 삼켰다.

“대단하군. 어떻게 요리를 마법처럼 금방 만들지?”

“제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꽤 실력이 있습니다.”

그 말에 베리나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호준은 그 앞에 튀김이 담긴 접시를 세팅했다.

튀김 요리들이 한가득 있는 가운데, 후식으로 팥빙수도 준비했다.

“이건 눈으로 만든 설탑인가? 이것도 먹는 것이냐?”

마녀는 팥빙수를 아예 모르는지 고개를 갸웃하며 시선을 떼지 못했다.

“눈탑이 아니라 팥빙수입니다. 5명이 먹어도 충분한 양이죠.”

“신기하군. 과일도 이것저것 박혀있고.”

“이건 이렇게 섞어 먹는 겁니다.”

호준은 수저로 팥빙수를 능숙하게 잘 비볐다.

찹찹찹 야무지게 비비자 베리나는 볼을 손바닥으로 감싼 채로 눈을 반짝였다.

어린아이 같은 해맑은 미소를 보니, 음식을 대접하는 호준도 기분이 덩달아 들떴다.

그는 베리나에게 팥빙수를 가득 담긴 앞접시를 내밀며 말했다.

“자, 먹읍시다!”

“그, 그러지!”

“냥!”

― 먹자먹자무우!!

미소, 다크니스, 호준, 베리나 전원의 숟가락이 분주히 움직였다.

“이 고구마튀김은 아주 맛나구나. 매일매일 먹어도 되겠어!”

“난 간장 파인 모양이다. 야채튀김에 간장을 찍어 먹으니 짭조름하니 맛있군!”

“감자튀김의 식감이 바삭하면서도 속은 꽉 찼구나. 감자가 아주 실한 모양이다.”

“팥빙수는 아주 입에서 살살 녹는군. 내 생애 이렇게 맛있는 얼음은 이것이 처음이다!”

베리나의 찬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호준은 미소지으며 많이 먹도록 그 앞에 음식을 내주었다.

베리나는 사양하지 않고 야무지게 잘 먹었다.

“냐앙!”

― 튀김 잔치다무우! 오늘은 행복한 날이다무우!

다크니스와 미소도 만족이 절절히 담아 외치며 식사를 이어갔다.

그 많던 튀김과 팥빙수가 야금야금 사라졌다.

접시에 음식이 다 떨어지기까지, 그 누구도 숟가락을 놓지 않았다.

【베리나가 당신에게 느끼는 호감이 +10 상승했습니다!】

【베리나가 당신에게 느끼는 호감이 +10 상승했습니다!】

결국, 호준은 요리의 힘으로, 베리나의 마음을 얻는 데에 성공했다.

* * *

음식을 먹고, 다크니스가 설거지하러 간 사이.

호준은 방송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퀘스트를 위해 방송을 포기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방송과 퀘스트, 둘 다 신경 쓰면 이도 저도 아닐 것 같았으니까.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더 편했다.

“여러분. 먹방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이따 가게에서 다시 방송하겠습니다!”

그의 말에 채팅창에서는 아쉽다는 반응이 흘러나왔다.

└ 아 더 보고 싶었는데…!

└ 잘 보고 갑니다! 저도 메카슨 대륙에서 주스점을 개업했는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줍니다.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는 호준 님 덕분인지라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지금은 미약하지만, 나중엔 더 성장할 거로 생각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적지만 후원금으로 마음을 전합니다!

└ 요리왕초보 님이 999 하트를 후원했습니다!

└ 아쉬워요. 베리나 다음에도 보고 싶네요. 나중에 호준 님이 농사길드 꾸리면 저도 참여하고 싶습니다!

└ 유토피아농사꾼1호 님이 1982 하트를 후원했습니다.

└ 다크니스 멋지네요. 나중에 가게 한번 찾아가겠습니다.

└ 고양이로켓펀치 님이 132 하트를 후원했습니다!

└ 베티랑 샤롯 안 나오니 섭섭…… 다음 방송 기다릴게요!

└ 튀김 먹방 잘 보고 갑니다! 다음에는 떡볶이·튀김·순대 세트 기대합니다!

└ 배고프다먹방러 님이 231 하트를 후원했습니다.

감사 메시지와 하트들이 쏟아졌다.

호준은 그 마음이 고마워 구름을 향해 고개 숙였다.

“후원과 남겨주신 글 모두 감사합니다. 저도 더욱 알찬 내용으로 찾아오겠습니다. 다음 방송에서는 제가 키우는 특급 작물과 새로운 요리를 선보이겠습니다. 그럼 이따 봬요!”

호준은 손을 흔들고서 구름을 톡톡 두드려 방송을 종료했다.

종료와 동시에 관련 메시지가 주룩주룩 떴다.

【방송이 종료되었습니다!】

【누적 하트】 : 19,267 (대략 1천 9백 2십만 원)

【구독자 숫자가 10만 1,342명으로 증가했습니다!】

【하트는 골드 또는 원화 등의 화폐로 전환 가능합니다!】

‘하트가 많이 쌓였네.’

무시하지 못할 만큼 하트가 쌓였지만, 지금은 그에 대해 고민할 때가 아니었다.

“호준, 준비됐나!”

“어, 지금 갈게!”

베리나가 자신이 만든 포탈 앞에 서서 손짓했으니까.

식사를 마친 베리나가 편하게 말을 놓으라 했고, 호준도 그를 받아들여 이제는 편하게 말을 하는 사이가 됐다.

호준이 미소와 다크니스를 데리고 그녀에게 다가가자, 베리나는 기침을 한번 하고는 포탈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주를 풀기 위해서는 퀘스트를 수행해야 한다. 네게 부탁을 하지.”

베리나가 호준의 어깨를 짚자 퀘스트가 떴다.

【퀘스트】 마녀의 부탁

【퀘스트 목표】 : 마녀에게 보석을 가져다주기

【퀘스트 설명】

*마녀 베리나는 비밀의 방에서 얻은 보석을 갖기를 원합니다.

*비밀의 방에 사는 몬스터를 무찌르고 보석 1개를 가져다주세요.

*퀘스트를 하다 사망한 경우, 3일 접속 불가 벌칙이 적용되며 마녀의 집에서 부활합니다.

【퀘스트 보상】

*아이템의 저주를 풀 수 있다.

*마녀와의 호감도를 높일 수 있다.

“포털이라면 이것을 말하는 건가?”

팅!

베리나는 호준의 질문에 손가락을 튕기는 것으로 답했다.

쉬이이잉!

그와 동시에 나선형 포탈의 크기가 훨씬 커졌다.

포탈 속에는 수많은 검은 문이 존재했는데, 모두 검은색을 띠었다.

베리나의 설명이 이어졌다.

“보다시피 색깔도 크기도 똑같은 100개의 문이 있다. 이 많은 문 중의 하나를 선택하면, 몬스터를 발견할 것이다. 몬스터를 해치우고 보석을 가져오면 저주를 풀 수 있다.”

“간단하군. 모든 문 안에는 몬스터가 있는 건가.”

그 말에 베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모든 방에는 반드시 몬스터가 한 마리가 있다. 다만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뭐지?”

“문을 열면, 그 순간 방 안에 갇힌다. 몬스터를 죽이기 전까지는 절대 빠져나올 수 없다.”

결국은 전투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에 호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튀김기와 프라이팬, 미소와 다크니스의 힘으로 어떻게든 해보겠다는 생각인 것.

베리나는 입을 달싹이며 작게 속삭였다.

“몬스터 레벨은 최하급부터 최상급까지 있다. 미니 고블린부터 드래곤까지 있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전투 난이도가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너는 괜찮은 녀석이니 특별히 알려주마.”

두어 걸음 가까이 다가온 베리나는 사려 깊은 눈동자를 한 채로 말했다.

“몬스터를 30분 내로 죽이면. 특별한 보상이 주어진다.”

“그게 뭐지?”

“그 몬스터가 가진 가장 값비싸고, 진귀한 전리품을 손에 넣을 수 있다. 30분. 그 안에 해치우기만 하면 반드시 얻을 수 있다.”

그녀의 확언에는 퀘스트를 관장하는 자의 확신이 담겼다.

베리나가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러니까. 30분 안에 돌아오도록!”

호준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30분 뒤에 보자고.”

* * *

“이건 예상 밖인데….”

베리나가 말했던 모든 문의 색깔이 같다는 정보는 거짓이었다.

그의 눈에는 베리나가 보여준 것과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졌으니까.

검은 문 사이로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황금빛 문이 있었다.

미소와 다크니스도 모두 검은색 문으로 보인다고 답했으니, 황금 문을 볼 수 있는 것은 그 자신뿐이었다.

‘왠지 감이 좋다.’

예감이 들었다.

황금 문 너머로 훌륭한 보상이 있을 듯한 기분 좋은 예감이.

“가자.”

그의 발걸음이 저절로 황금 문을 향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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