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를 너무 잘함-74화 (74/200)

074. 다크니스

“그러니까. 미르야. 빨리 나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하니까 입에서 불이 나왔다 이거지?”

“끼루루!”

【미르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정리하자면 미르가 브레스를 배운 것은 이 게임 덕분이었다.

미르 입장에서는 호준을 반드시 잡겠다 하고 마음을 먹자, 얼떨결에 브레스가 나왔다는 것.

어찌 됐건 능력을 각성하긴 각성한 것이다.

호준은 그 사실이 놀랍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미르가 스스로 성장한 사실이 대견했다.

“미르야. 네가 용은 용이었구나? 혼자서 힘을 깨우치다니. 대단하다, 우리 미르!”

“끼루루!”

칭찬은 미르를 춤추게 했다.

미르가 끼룩끼룩 울며 포동포동한 엉덩이를 흔들고 꼬리로 바닥을 탁탁 쳤다.

호준은 몇 번이고 잘했다고 칭찬해주고는 어화둥둥 안아주었다.

그렇게 미르를 안아 든 채로, 둘은 미르의 작품을 감상하러 갔다.

“와. 싹 타버렸네.”

새까맣게 타버린 나무는 앙상하다 못해 처참했다.

조금 전만 해도 푸르렀을 나무가 검은 먹색으로 변해 대부분이 소실되고 기둥만 남아 있었다.

호준은 속이 다 타버리고 껍데기만 앙상한 기둥을 보며 어깨를 오스스 떨었다.

‘겉모습만 용이라고 우습게 봤다가 자칫 꼬치구이가 될 뻔했네.’

만약 그때 브레스를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그래서 머리나 어깨 팔 등이 브레스에 닿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 나무 꼴이었겠지.’

레벨 1을 보호해주는 건, PK일 때뿐이다.

몬스터, 천재지변으로는 얼마든지 죽을 수 있었다.

키우던 요정의 브레스에 당하면 그건 천재지변인가.

‘모르겠다. 어쨌든 미르에게 조심하라고 단단히 일러둬야지.’

“끼루?”

호준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르는 말 없는 호준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 귀여운 녀석.”

호준은 미르를 쓱 쓰다듬어주었다.

곧 요정들이 그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호준이 미르를 안고 있었기에 다들 말하지 않아도 승자를 아는 눈치였다.

미르를 높이 들어 올린 호준이 공식적으로 시합의 승리를 알렸다.

“시합 우승자는 미르다!”

쿠아아앙―

【미르가 황혼의 브레스를 토해냅니다!】

용의 타오르는 숨결이 창공으로 퍼졌다.

* * *

“끼루루!”

“꺄아아! 미르 최고!”

이제 간택의 시간.

1위 미르가 선택한 같이 들어갈 파트너는 별이었다.

둘은 행복하게 손을 잡고 요정의 집으로 직행했다.

모두가 그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별이가 요정의 집에 입장했습니다】

【미르가 요정의 집에 입장했습니다】

둘은 들어가는 순간 앞으로 고꾸라졌고, 꽃잎이 오므라들어 더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불빛과 함께 요정의 집이 작동을 시작했다.

【요정의 집의 출입을 제한합니다】

【알 생성을 시작합니다!】

. . . . . . .

【알 생성을 완료했습니다】

알 생성을 마친 꽃잎이 사르륵 열리고.

“끼룩!”

“뀨뀨!!”

“메에!”

【아무가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뿌리를 쥐었다 폈다 합니다!】

【토순이가 자손을 만든 미르와 별이를 부러워합니다!】

【핑구가 깃털을 뜯으며 알의 정체를 궁금해합니다!】

【메이가 어서 빨리 알을 만지고 싶어 합니다!】

모두가 알의 정체를 궁금해했다.

‘거대한 흑요석 같네.’

호준 또한 은은하게 검은빛을 띠는 알을 보고 감탄했다.

알 옆에는 미르와 별이가 알을 껴안고 잠자고 있었다.

역시 지난번과 같은 양상이었다.

송이 때와는 다른 검은색의 알.

과연 어떤 요정이 튀어나올지 기대됐다.

‘이번에는 기다릴 필요 없지.’

지난번에는 긴 시간 기다렸지만, 이번은 다르다.

이전에 퀘스트 보상으로 얻은 부화 촉진제가 있으니까.

호준은 인벤토리에서 꺼낸 부화 촉진제를 주머니에 넣었다.

주사기 모양인 부화 촉진제의 사용법은 간단했다.

‘알에 내용물을 주입하면 끝이다.’

호준은 알을 슬며시 꺼내 땅바닥에 내려놓고 자신도 바닥에 앉았다.

가랑이 사이에 알을 잘 놓고서 주사를 꺼내 들었다.

단단한 알 표면에 주삿바늘을 대고 살짝 눌렀다.

폭―

‘잘 들어가네?’

알 표면이 달걀껍데기처럼 딱딱했는데.

신기하게도 마치 두부에다 주사를 놓는 것처럼 간단하게 주삿바늘이 들어갔다.

호준은 씩 웃고는 그대로 피스톤을 꾹 눌렀다.

피스톤을 누르자 촉진제가 알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그리고 메시지가 떴다.

【부화 촉진제를 성공적으로 사용했습니다!】

【알이 부화합니다!】

반짝―

눈이 부신 빛이 가득 차 앞을 볼 수 없었다.

잠시 뒤, 시야를 되찾았을 때, 그의 가랑이 사이에는 검은 털 뭉치가 있었다.

우웅―

검은색 벨벳으로 둘러싸인 늘씬한 몸.

매력적인 엉덩이.

기다랗고 가느다란 꼬리를 지닌.

아주 매력적인 검은 털 뭉치가.

“냐앙~”

고양이 요정이 호준을 보며 간드러진 울음을 토했다.

늘씬한 검은 고양이가 그를 보며 눈을 부드럽게 휘었다.

* * *

요나스 마을 인근 오솔길.

사람들이 오솔길을 따라 걸으며 삼삼오오 이야기 중이었다.

그들은 퀘스트를 위한 여행이 길어지면서 몸과 마음이 지쳐있는 여행객이었다.

“아, 다다음 마을까지 가려면 한참 남았네.”

“그러게. 얼른 돈이나 벌어서 마차 타고 다니고 싶다.”

“여관 들어가서 온천욕 하고 잠이나 실컷 잤으면.”

그렇게 푸념을 늘어놓던 남자가 한숨을 폭 내쉬다가, 저 멀리에 보이는 뭔가를 발견했다.

토끼 바위 위에서 뽐내듯 서 있는 검은 고양이.

고양이 덕후인 남자는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고양이다!”

“어디? 오오! 누구 고양인지 몰라도 귀여운데?”

“그러게. 털이 윤기가 장난 아니잖아.”

“우아해 보이는 게 귀족들이 키우는 그런 고양이 같아.”

지쳐있던 사람들은 미묘 고양이를 보기 위해 다가갔다.

고양이는 요물이라더니 사람들의 칭찬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일까.

검은 고양이는 엉덩이를 높이 치켜들고 허리를 낮추어 요망스러운 자세를 하고 사뿐사뿐 걷더니.

주위를 한번 쓱 살피고는 바위 아래로 내려와 우아하게 숲속으로 돌아갔다.

“아, 그냥 가네. 길들이기 기술 같은 건 없나?”

남자의 푸념에 옆에 있던 동료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테이머가 되는 확률이 얼마나 낮은데. 카드깡 최소 30번은 해야 할걸?”

“하긴. 그렇지. 현실에서도 고양이 못 키우는데 여기에서도 어렵다니. 너무 슬프잖아.”

“자식, 푸념 그만하고, 얼른 갈 길 가자고.”

고양이를 흘깃거리던 사람들은 아쉬움을 토로하며 다시 갈 길을 향했다.

‘눈도 바다색처럼 푸르고. 털도 윤기가 자르르 흐르던데. 아쉽네.’

아쉬움이 남은 남자는 고양이가 사라진 방향을 몇 번이나 돌아보며 부러운 눈길을 했다.

* * *

호준이 산딸기 수확을 마치고 잠시 쉬는데 그 옆으로 누군가 다가갔다.

그 정체는 정찰을 나갔던 고양이, 다크니스였다.

“다크니스야 왔어?”

“냥!”

다크니스는 호준이 붙여준 이름이었다.

이름이 조금 길긴 해도 그의 마음에 쏙 들었다.

“다크니스. 입꼬리가 올라갔네? 어디 이쁜 고양이라도 만나고 온 거야?”

“냥!”

호준의 물음에 다크니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크니스가 자신은 임무에 충실한 요정이라고 말합니다!】

【다크니스가 이 근방에 수상한 사람은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 잘했다. 아주 든든해. 다크니스 장군!”

“냥!”

다크니스가 호준의 정강이를 발로 콩콩 때리며 장난을 쳤다.

솜방망이로 맞아봤자 웃음만 났고, 제풀에 지친 다크니스가 허벅지를 타고 올라왔다.

“냥!”

【다크니스가 안아주지 않으면 계속 매달려있겠다고 말합니다】

“그래그래. 이리와.”

다크니스는 원대로 호준의 품을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

아주 자연스럽게 팔 위에 드러누운 다크니스가 까끌까끌한 혀로 손바닥을 핥았다.

“이 요물 같으니라고.”

호준은 만난 지 얼마 안 된 다크니스의 매력에 푹 빠져있었다.

말랑말랑한 뱃살도.

보드라운 솜털도, 베이비파우더 향에도 매력을 느꼈다.

그는 뱃살을 손끝으로 간지럽히며 앞으로 계획을 살폈다.

이미 요정들은 농사, 목축, 요리일 분배를 마친 상황.

지금 아무와 송이가 농사일을 하고 주스를 만들고 있고.

메이가 목축일 하고.

토순이가 치킨, 오븐 스테이크를 만드는 일을 도맡았다.

‘지금 요리가 얼마나 모였더라.’

호준은 인벤토리를 켜 요리 재고를 살펴보았다.

【특제 주스(3급)】 × 750개

【바나나 우유(3급)】 × 160개

【팥빙수(특 10급)】 × 130개

【치킨(1급)】 × 63개

【소고기 오븐 스테이크(1급)】 × 53개

【고추장 양념치킨(특 10급)】 × 39개

【겨자 양념치킨(특 10급)】 × 28개

【간장 양념치킨(특 10급)】 × 41개

【매콤한 소고기 오븐 스테이크(특 10급)】 × 32개

과연 그가 로그아웃한 동안 요정들이 만든 요리의 양은 어마어마했다.

‘나까지 만들면 금방 늘어나겠지.’

금전으로 따져도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액수.

그러나 호준은 지금 수준에 만족하지 않았다.

‘시작한 김에, 특1급 요리까지 한번 만들어보자.’

그의 목표는 높았으니까.

앞으로 1급 요리도 만들어보고, 그 요리를 씹고 뜯고 즐기고 싶었다.

‘원석 퀘스트만 끝나면 새 요리도 만들자.’

새 요리 후보로는 떡볶이가 떠올랐다.

황금 쌀로 떡을 빚고, 그걸로 떡볶이를 만드는 것.

새빨간 국물을 머금은 떡을 어묵에 돌돌 말아 꿀꺽.

상상만으로 입에 침이 고였다.

‘얼른 광산에 갔다 오자. 방송도 시작해야지.’

요정의 집 사용도 끝났으니 이제 방송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는 구석에 방송 탭을 켜고 다크니스를 내려놓으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돌발상황이 벌어졌다.

“냐―앙!”

품 안에 얌전히 있던 다크니스가 갑자기 긴 울음을 내뱉었다.

【다크니스가 근처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말합니다!】

【다크니스의 특별한 힘이 활성화됩니다!】

검은 연기가 다크니스의 몸에서 나오더니, 갑자기 다크니스가 뛰어내려 내달리기 시작했다.

다크니스가 달리는 방향은 한 번도 간 적 없는 남서쪽 숲 쪽이었다.

“다크니스 어디가!”

“냥!”

【다크니스가 자신을 따라오라고 합니다!】

‘따라오라고?’

호준은 다크니스를 말리려 했으나 이미 한참 멀어진 뒤였다.

어쩔 수 없이 그는 헐레벌떡 그 뒤를 뒤따랐다.

한 5분 정도 달렸을까.

다크니스가 멈춰 섰다.

멈춰선 곳은 이끼가 가득한 바위 앞이었다.

“냥!”

다크니스가 바위를 발로 가리켰다.

【이 바위 밑에서 음습한 냄새가 난다고 말합니다】

음습한 냄새라고…?

“다크니스, 바위 밑에 뭔가 있다는 말이지?”

“냥!”

다크니스는 단호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긍정 사인에 호준은 고민하지 않고 곡괭이를 꺼내 들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부술 수 있다.’

바위는 1인용 소파 정도 크기.

스미스 씨에게들은 바로, 이 정도 크기의 바위는 곡괭이를 사용하면 충분히 부술 수 있었다.

‘뭐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해보자.’

그는 곡괭이로 바위를 내리쳤다.

깡 깡 깡 깡 깡―

쩌저적―

무려 스무 번 내리치자 바위가 반으로 쩍 갈라졌다.

갈라진 바위 사이로 다크니스가 비집고 들어가더니 뭔가를 입에 물고 나왔다.

다크니스가 호준 앞에 내려놓은 물건은 새까만 의복이었다.

“냥!”

다크니스의 울음과 동시에 메시지가 떴다.

【다크니스가 어둠의 요정으로 각성했습니다】

【어둠의 요정은 저주받은 아이템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다크니스가 당신에게 맨 처음 추적한 아이템을 바칩니다】

【저주받은 왕족의 제복】

【아이템 등급】: 특 10급

【이 아이템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저주를 풀면 아이템 등급이 대폭 상승합니다】

저주받은 아이템.

다른 말로 무조건 가치가 상승하는 아이템.

다크니스가 바치는 제복을 받아들이며 호준은 심장이 뛰었다.

‘대박이네.’

다크니스가 아니라 대박이라 불러야 할 듯싶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