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3. 불타오르다
붉은 딸기밭을 지나는 한 남자가 있었다.
딸기밭의 주인 호준.
그는 싱글벙글 미소지으며 길을 걷고 있었다.
호준은 중간에 노랑이를 닭들에게 맡기고서 홀로 요정의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이제야 요정의 집을 사용하는구나!’
길고 긴 쿨타임이 드디어 끝났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이전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요정의 집을 맨 처음 사용했던 그 기억이.
‘갑자기 아무랑 미르가 들어가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
아무와 미르가 꽃잎을 뜯고 몰래 들어가는 바람에 놀랐고.
둘이 기절해서 두 번째로 놀랐다.
그러나 다행히, 별 탈 없이 모두 무사했고 송이도 탄생했다.
‘이번에는 원하는 녀석을 들여보내자.’
그는 이번 시도에서는 들어가기를 원하는 요정에게 기회를 줄 생각이었다.
요정의 의사를 존중해서 그리하기로 한 것.
‘어떤 요정이 나오려나.’
새로 얻을 요정을 생각하니 미소가 지어졌다.
“뀨뀨!”
“뀨우우!”
“아무!”
고개를 드니 요정들이 손과 발, 뿌리를 흔들며 인사했다.
별이를 보내 모두를 불러오라고 했는데 금방도 모였다.
맨 앞에서 달려오던 아무는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했는데 별이가 옆에서 잡아주었다.
“아무야. 걸어와도 돼! 다들 어서 와!”
호준은 인사를 하는 한편, 요정들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벌써 일곱 명이구나.’
요정들의 숫자가 늘어난 것이 새삼 눈에 들어왔다.
벌써 요정들 숫자가 토순이. 미르. 아무. 송이. 핑구. 메이. 별이.
총 일곱 명이나 되었다.
‘이제 여덟 명이 되겠지.’
그리고 한 명이 더 추가되기까지 얼마 안 남았다는 사실.
다다익선이라고.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요정의 집 앞에 집결 완료.
호준은 요정들에게 요정의 집에 관해서 간단히 설명했다.
안에 들어가기 전 서로 손을 꼭 잡아야 한다는 주의 사항도 알려주었다.
그렇게 주의 사항까지 알려주고서 그는 한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자, 이제부터는 자원할 요정을 모집할 건데. 혹시 안에 들어가고 싶으면 높이 손 들어봐!”
가장 중요한 요정의 집 자원자를 모집했다.
요정들은 옆의 요정을 보며 망설이는 눈치였다.
‘별로인가?’
호준이 잠시 요정들의 표정을 살피는데, 별이가 손을 들어 질문했다.
“호준 님, 저기 들어가면, 오후에 일 안 하고 푹 잘 수 있는 거네요?”
“음. 아마 그렇겠지? 한두 시간 정도 잘 거야. 지난번에도 그랬으니.”
별이는 휴식이라는 단어를 듣자 눈을 반짝이며 답했다.
“그럼 지원하겠습니다! 사실 아까부터 살짝 졸렸거든요.”
“그래. 별이에다. 혹시 다른 지원…… 어라?”
호준은 별이 다음으로 타겟을 물색하려 했는데.
다른 요정들을 보고 잠시 당황했다.
‘언제 다들 손발을 들어 올린 거지?’
“뀨뀨!”
“아무!”
【핑구가 휴식이라는 맛에 귀를 쫑긋하며 의지를 드러냅니다!】
【미르가 잠자는 것에 관심을 보입니다!】
【아무가 옆에 미르가 하는 것을 보고 따라 참가하고자 합니다!】
‘아무는 그냥 따라 하는 거네. 어쨌든 다들 참가한다는 건가.’
어찌 됐든 별이를 기점으로 다른 요정들도 요정의 집에 들어가겠다고 자원했다.
“음. 여섯은 못 들어가는데. 어쩌지?”
호준은 돌연 난감해졌다.
이렇게 전부 다 지원할 줄은 생각하지 못했던 것.
그런 난감한 상황에 해결책을 제시한 이는 별이었다.
“호준 님, 지원자가 많으니까 그러면 공정하게 선발전을 하죠? 게임을 해서 1등하고 2등한테 기회를 주는 거죠!”
“게임이라. 다들 어때?”
【토순이가 별이의 의견에 수긍합니다!】
【미르가 옳은 말이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메이가 승부욕을 불태우며 털을 부풀립니다!】
【핑구가 물에서 시합하는 거 어떠냐며 은근슬쩍 말합니다!】
【송이가 자존심을 건 승부라며 투지를 불태웁니다!】
‘다들 찬성하는 분위기네.’
별이의 제안에 다들 눈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원 다 찬성하니 호준도 그 의견을 수용했다.
“그래. 선발전을 치르는데. 종목을 뭐로 하지?”
“최대한 공정하게 호준 님이 결정해주세요!”
“음.”
이제 선택권은 호준에게 돌아왔다.
‘어떤 종목이 가장 공정할까.’
게임에 관해 곰곰이 생각하던 그는 좋은 방법을 발견했다.
‘그래. 저거야.’
“별아 저것 좀 가져올래?”
“네!”
별이가 뽀르르 날아가 가져온 것은 노란 고무공이었다.
어제 요정들이 마을에서 사 온 것으로 야구공 정도 크기였다.
몸집이 작은 송이도 붙잡을 정도의 크기.
호준은 이 고무공을 목표물로 정하기로 했다.
“지금부터 잘 들어야 해. 이제부터 내가 이 고무공을 들고 뛸 거야. 너희들 중에 가장 먼저 공을 얻는 요정이 1등이다. 나머지 한 명은 1등이 지목하는 거로 하자. 어때?”
“좋아요!”
“뀨뀨!”
“끼루루!”
호준의 제안에 모두 두손 두발 들고 찬성했다.
“아무우!”
【아무가 꽃을 활짝 피우며 흥분을 드러냅니다!】
【아무의 뿌리가 흥분으로 부르르 떨립니다!】
아무는 뿌리 손을 좌우로 흔들며 춤을 추었다.
그런 아무 옆에서 미르와 송이는 콧김을 뿜어내고 있었다.
핑구는 날개를 뚝뚝 꺾으며 뼈 소리를 냈다.
다들 승부욕이 장난이 아니었다.
호준은 심판으로서 별이의 날개에 관해 의견을 물었다.
별이가 날아다녀서 너무 빠르니, 날개를 쓰지 않는 페널티를 줘야 하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호준으로서는 공정성을 위해 한 질문이었으나, 그 질문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아무우!”
“끼루!”
“뀨뀨!”
【미르가 날개와 상관없이 자신이 이길 수 있다며 자신감을 내비칩니다】
【송이가 자신에게는 뿌리라는 아군이 있다며 승리를 호언장담합니다】
【핑구가 절대 지지 않겠다며 쿡 하고 웃습니다】
다들 날개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자신만만했으니까.
모두 신경 쓰지 않아서 별이는 정상적으로 날아도 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누가 이기려나.’
작고 동글동글한 요정들이 투지를 불태우는 것을 보며 호준은 씩 웃을 따름이었다.
* * *
시합 준비를 위한 장소로 선택된 곳은, 숲 근처에 있는 넓은 초원이었다.
널따란 초원 한가운데에 호준이 홀로 섰다.
그는 주머니에 넣은 공을 만지작거리며 침을 꼴깍 삼켰다.
시선으로 인해 볼이 따가웠다.
‘다들 조용하네.’
그의 주위, 100m 정도의 거리에서 요정들이 서 있었다.
요정들은 상체를 낮게 유지하고 눈을 빛내고 있었다.
눈빛만 보면 호루라기를 부는 순간, 용수철처럼 튀어 나갈 기세다.
호준은 주위를 둘러보며 어디로 뛰어갈지 한 번 더 점검했다.
이왕 하는 게임, 재미를 주고자 그는 미르와 아무 그사이를 넘어서 멀리 달아날 생각이었다.
특히 가장 빠를 것으로 보이는 별이와, 뿌리를 이용하는 송이는 피해야 했다.
‘너무 빨리 끝나면 재미없으니까.’
조금 시간을 끌면서 즐기다가 잡힐 생각이었다.
토순이와 메이, 핑구도 아직 그 저력을 확인해 보지 않아 알 길이 없었으니.
뭐니 뭐니 해도 만만한 것은 아무와 미르였다.
그렇게 아무와 미르 방향으로 진로를 정한 호준은 호루라기를 입에 물었다.
휭―
움찔.
움찔하는 요정들을 보니 왜 이렇게 긴장감이 느껴지는지 모를 일이다.
호준은 살짝 무릎을 굽히면서 호루라기를 힘차게 불었다.
그리고 땅을 박차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는 쏜살같이 앞으로 달려나갔다.
달려가는 그의 귓가로, 뒤에서 뭔가가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다.
콰콰콰쾅―
‘뿌리다.’
땅이 뒤집히는 소리였다.
슬쩍 뒤를 돌아봤더니 역시나.
“묘옹!”
송이가 뿌리에 선 채로 진로를 가리키자, 뿌리가 그 방향으로 진격했다.
진격하는 방향은 당연히 호준 그 자신이 있는 곳이었다.
거대한 뿌리가 음습한 기운을 품으며 다가오는 모습은 호준에게 있어 공포였다.
“묘옹!”
【송이가 고무공의 소유권을 강력히 주장합니다!】
‘송이가 의외로 무섭…….’
호준은 소름 끼치는 뭔가를 느끼고 재빨리 상체를 오른쪽으로 기울였다.
쉬잉―
무언가가 그의 머리가 있던 자리를 스쳐 지나갔다.
얼마나 속도를 냈는지 멈추지 못하고 그대로 앞으로 튀어 나갔다.
‘피하지 않았으면 잡혔겠는데.’
한참 앞에 가서야 멈춘 그 존재는, 예상대로 별이었다.
“아, 아깝다.”
별이는 날개를 추스르고는 다시 로켓처럼 날아와 호준을 덮쳤다.
그러나 호준도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았다.
“쉽게 잡히면 재미없지.”
그는 달려드는 별이를 피해 옆으로 데구루루 굴렀다.
호준이 별이보다 조금 더 느리기는 했지만 피할 수 있는 이유는 한 가지였다.
‘어디로 갈지 보인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호준은 왠지 감이 왔다.
별이가 어디로 움직일지가.
그래서 예상되는 방향과 정반대로 움직였다.
그렇게 별이의 습격을 몇 번이나 피할 수 있었다.
별이가 약이 오른 듯 크게 소리쳤다.
“호준 님! 잘 피하시지만, 이번에는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별이가 정면에서 그의 바지춤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바지에 달라붙어 올라오려는 전략을 취하는 모양.
‘그렇게는 안 되지?’
그러나 호준은 왠지 잡히고 싶지 않은 마음에 닿기 직전 높이 뛰어올랐다.
뜀틀을 뛰듯 좌우로 다리를 찢으면서.
“어어!”
별이가 제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가랑이 사이로 쏙 지나가 버렸다.
그렇게 날아간 별이는 송이와 부딪쳐서 엎치락뒤치락했다.
알까기는 성공!
‘도망가 볼까.’
의외로 재미있어서 호준은 싱글벙글 웃으며 앞으로 달려갔다.
버프 때문에 빨라진 몸은 너무나 가볍게 움직였다.
“아무우!”
이번에는 아무가 달려들었다.
아무는 어떻게든 잡아보려고 짧은 뿌리를 길게 늘였으나.
‘너무 짧아.’
짧은 뿌리는 슬픈 법이다.
길이가 더 늘어나지 않아 아무는 점점 거리가 멀어졌다.
그렇게 아무와 멀어지자 호준은 여유를 두고 뒤를 관찰했다.
퓨퓻
“에잇!”
날아다니던 별이는 뿌리에 구속되어서 포로 신세가 되었고.
송이는 배의 선장이라도 된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서서 지휘하고 있었다.
핑구와 토순이는 뿌리 더미에 가려서 보이지도 않았다.
이제 미르만 따돌리면 모두를 따돌리는 상황이었다.
“끼루루!”
기다렸다는 듯이 미르가 뒤에 따라붙었다.
호준은 힘차게 달리다가 새로 떠오르는 메시지를 보고 실소했다.
【미르가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희망을 품습니다!】
‘이런. 미안하지만 안 될 텐데.’
미르에게는 미안하지만 짧은 다리로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길이 차이가 있지 않나.
‘별이도 따돌렸는데. 미르쯤이야?’
호준은 이전의 경험으로 자신감이 충만해 있었다.
“미안 미르야. 먼저 갈게!”
호준은 손까지 흔드는 여유를 보이고는, 가차 없이 고개를 돌리고 전속력으로 질주했다.
마치 바람을 타고 달리는 기분이 들 정도로 가뿐했다.
‘달리기가 이렇게 재밌는 건가?’
잘 달리는 데다 달리는 데 힘도 들지 않아서 더욱 상쾌했다.
그렇게 흥겨운 달리기를 만끽하며 한 걸음 내딛는데.
‘뭐지?’
뭔가 께름칙한 기분이 느껴졌다.
뒤에 뭔가 있는 느낌.
반드시 피해야만 하는 것이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왜인지 등이 뜨끈뜨끈한 것도 같고.
‘뜨끈뜨끈하다고? 갑자기?’
결국, 호준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경악했다.
【미르가 맹렬한 기세로 불을 뿜어냅니다!】
“헉!”
난데없는 불기둥이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경악하는 바람에 그의 몸이 굳어버렸고 속도가 줄어들었다.
화르르륵―
천만 다행히도 불기둥은 그를 스쳐 지나갔다.
머리 바로 옆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간 것.
불에 정신이 팔린 호준은 저도 모르게 불구경을 하다가 속도가 줄어들었다.
화르르륵―
불기둥은 착실하게 그의 앞에 있던 나무를 격추했다.
불벼락을 맞은 나무가 자작자작 소리 내며 타올랐다.
나뭇잎이 불타면서 생긴 불똥 비가 그 아래로 후드득 내렸다.
난데없이 불 쇼가 펼쳐졌다.
더 이상 그 길로는 갈 수 없는 상황.
그렇게 발목이 붙잡힌 상황에서 미르가 재빨리 그의 주머니에서 공을 낚아챘다.
“끼루루루!”
흥분한 미르가 공을 이빨로 콱 물었다.
파앙―
고무공이 갈기갈기 찢어져 버렸다.
호준은 펑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미르를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이 녀석, 불을 쏘네?’
미르는 그가 놀란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입을 쩍 벌리고는 승리의 화염을 발사했다.
푸화아아악 ―
【미르가 만천하에 승리를 알리고자 화염을 연사합니다!】
굵직한 불기둥이 하늘을 수놓았다.
모두가 필사적이었던 달리기 대결은, 미르의 완벽한 승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