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1. 회사 레벨업
쭉쭉 거리는 요상한 소리.
그 소리의 정체는 바로 눈앞에 있었다.
여관 옆에는 정육각형 지푸라기 더미들이 가득 쌓여있는데.
요정들이 제각기 지푸라기 더미 하나에 폭 파묻혀서는 나무 막대기를 쪽쪽 빨고 있었던 것.
지금까지 지푸라기 안에 파묻혀 있어서 발견하지 못한 것이었다.
‘많이도 먹었네.’
요정들 옆에는 막대기 탑이 높게 쌓여있었다.
축축해진 채로 빛나는 수십 개의 막대기.
솜사탕 장수의 표정이 왠지 좋아 보인다 했더니 요정들이 많이 사 먹었기 때문인 듯했다.
저 막대기 탑을 이룰 만큼의 개수만큼 사 먹었다면 말이 됐다.
호준은 피식 웃고는 솜사탕을 추가 주문했다.
“아저씨. 솜사탕 10개만 더 포장해주세요. 아니 스무 개 더요.”
“허허, 고맙네! 얼른 만들 테니 기다리게!”
호준은 새로 산 솜사탕을 한가득 들고 요정들에게 다가갔다.
요정들이 하나둘 일어나 솜사탕을 향해 달려들었다.
“으응! 솜사탕이다!”
“뀨뀨!”
호준은 배가 빵빵해져 스스로 못 일어나는 핑구와 미르를 직접 일으켜서 솜사탕을 입에 꽂아주었다.
그렇게 모두에게 솜사탕을 안겨주고는 작별을 고했다.
아쉽지만 지금은 잠시 이별해야 했다.
“다녀올게!”
“다녀오세요!”
“뀨뀨!”
“아무우!”
“뀨우우!”
“메에에!”
“끼루룩!”
“묘옹!”
― 보고 싶을 거다무우!
미소, 그리고 요정들의 얼굴이 서서히 옅어졌다.
‘시간이 어떻게 간 줄 모르겠네.’
점점 옅어지는 환한 얼굴을 보며.
호준도 마찬가지로 미소 지었다.
오늘도 바쁘고 알찬 하루를 보낸 기분이 들었다.
알 수 없는 충족감이 마음에 차올랐다.
로그아웃과 동시에 눈앞이 새하얗게 되더니.
곧 유토피아의 문구가 보였다.
‘당신은 특별합니다. 당신은 그 누구보다 특별하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그 문구를 보며 호준은 마음에 안도감이 들었다.
‘매일매일이 즐겁다.’
그에게 유토피아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 있었다.
* * *
오전 업무를 끝내고 잠시 휴식하는 점심시간.
호준은 회사 건물 옥상에 홀로 나와 하늘을 향해 기지개를 켰다.
“으음― 음!”
입에서는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집 짓는 가격이 생각보다 싸네.’
그는 업무를 끝내 놓고 오전에 부모님 집 짓는 가격을 한번 알아보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시골에 집을 짓는 가격은 저렴했다.
땅값도 싸고 수요도 거의 없는 시골이니까.
<이 지역은 땅값이 저렴한 편이라 그 정도면 넉넉합니다. 워낙 외진 곳이다 보니 땅값도 저렴한 편이고요. 집을 지으실 용도라면 굳이 땅을 많이 살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방금 전화한 부동산 업자에 의하면 집 짓는 것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구체적인 일정은 나중에 결정하기로 하고 호준은 전화를 끝맺었다.
‘이제 아들 노릇 좀 하네.’
그동안은 자리 잡느라 바빴는데.
부모님께 뭔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뿌듯했다.
‘더 편한 집으로 지어드리자. 이왕 하는 김에 아버지가 농사지을 땅도 더 얻고.’
그는 새로운 집 계획을 다가오는 아버지 생일날 말할 생각이었다.
다들 깜짝 놀라겠지.
‘쓸만한 가구도 마련해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시계를 살펴보니 벌써 근무 시간이 다가왔다.
호준은 재빨리 계단을 내려와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유 주임. 오늘 표정이 좋은데? 무슨 일 있어?”
“혹시 애인 생기신 거 아니에요? 요새 얼굴이 활짝 피신 거 같아요!”
상사와 동료의 물음에 호준이 답을 고민하는 사이.
다른 직원들이 그 곁에 다가왔다.
“어, 계속 숨기는 것 보니까 이상한데?”
“정말 애인 있는 거예요? 주임님?”
호준은 유토피아를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최근 퇴사자들이 유토피아를 이유로 그만뒀기에, 회사 내에서 유토피아 플레이를 한다는 것은 입밖에 내뱉지 않는 분위기였다.
유토피아라는 단어 자체에 예민했다.
누군가 유토피아를 한다고 말하는 순간.
‘저 친구 그만두겠군’ 하는 말을 듣고 퇴사자로 낙인찍히는 것이 당연한 분위기.
‘갑분싸가 될 수는 없지.’
호준은 어깨를 으쓱하며 사실을 말했다.
“취미로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요리도 시작했는데 아주 재밌네요.”
요리와 농사를 시작한 것은 사실이었다.
유토피아에서 한다는 말만 뺐을 뿐.
고로 덜 말했을 뿐이지 거짓말은 아니라고 자기합리화를 했다.
“어머. 농사에다 요리까지? 멋진데. 역시 유 주임은 못 하는 게 없어.”
“그러게요. 지난번에 워크숍 가서 보니까 요리도 기본기가 있으시던데. 신 주임도 조금 보고 배워. 맨날 핸드폰 게임만 하지 말고. 임신한 부인한테 요리도 만들어주면 좀 좋아요?”
“저도 요리할 줄 알거든요? 주말마다 라면 정도는 해준다고요.”
간만에 물꼬를 튼 대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팀장님이 문을 열고 들어왔으니까.
“다들 점심은 잘 먹었나? 오후에도 힘내 보자고! 이건 업체에서 준 수제 견과류 초콜릿이네. 자네들 것도 가져왔으니. 입가심하면서 일하라고!”
“와아! 감사합니다. 팀장님!”
“맛있겠다. 잘 먹겠습니다. 팀장님!”
“우와! 감사합니다!”
호준은 팀장님에게서 받은 초콜릿 상자를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아몬드 맛 초콜릿은 제법 맛있었다.
‘초콜릿도 만들어볼까? 초콜릿 시럽을 만들어서 팬케이크에 뿌리는 것도 괜찮겠는데?’
그의 머릿속에는 어느새 초콜릿으로 만들 수 있는 무궁무진한 아이디어가 팡팡 터졌다.
‘5시간 남았다.’
그의 눈은 기대로 반짝였다.
* * *
집에 도착했다.
호준은 주린 배를 채우고자 도시락을 세팅했다.
채를 썬 양배추를 소스에 버무리며 그는 곰곰이 생각했다.
‘요정들이 전투해도 내 레벨은 오르지 않을 거야. 그 추측이 맞을 것 같군.’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송이 때문이었다.
얼마 전 송이가 전투했을 때 <송이가 적을 죽였다>고 메시지가 떴다.
그때 호준 그 자신이 경험치를 얻었다는 메시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호준은 추측했다.
‘요정들이 전투해도 요정왕에게는 그 경험치가 오지 않는 거지.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다.’
즉 요정왕이 싸우면 요정왕이 경험치를 먹고.
그 아래 요정이 싸우면 전투를 치른 요정이 경험치를 먹는 것으로 보는 게 타당했다.
송이의 경우를 볼 때 그렇게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호준은 포크로 샐러드를 삭삭 긁어모아 입에 넣었다.
새콤한 마요네즈 소스가 입맛을 돋웠다.
“내가 요정왕이 아니라 소환사였으면 반대로 경험치를 다 먹었겠지.”
반대로 소환사는 소환수의 모든 경험치를 자신의 것으로 흡수했다.
즉 소환수 10명이 싸우면 그 경험치를 소환사 한 명이 독식하는 것.
소환사는 그 강대해진 힘으로 더 많은 소환수를 만들어 힘을 강화했다.
‘지금까지 소환사라고 둘러댔는데. 요정들이 많아지면 내가 고렙이라고 생각할 게 뻔하겠군.’
그 자신을 소환사라고 둘러댔으니 당연히 고렙이라는 오해를 살 만도 했다.
마을에만 가도 그런 추측이 나돌았다.
‘누군가는 빼먹을 게 있을 거라고 방해할지도 모르고.’
방해꾼이 생길 가능성은 농후했다.
물론 호준은 그에 대한 대안을 생각해냈다.
‘요정들을 전원 무장시킨다.’
바로 요정들을 전원 무장시키는 것.
특급 무기를 최대한 구해서 요정들을 전원 무장시키는 것이다.
방어구도 마찬가지였다.
‘요정들 숫자도 늘리고.’
거기다 요정의 집으로 요정 늘리기.
‘요정들에게 무기만 쥐여주면 절대 약하지 않아.’
요정들은 작고 약해 보여도 이동속도 버프를 받았기 때문에 제법 날쌨다.
그리고 덩치가 작으므로 피하는 것도 간단하다.
‘덩치가 크다고 잘 싸우는 것도 아니지.’
승리하는 자가 강자인 법.
치명적인 공격을 할 수 있다면, 몸의 크기는 상관없지 않은가.
호준은 그리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는 무기를 배급하고.
각자 지기 몸을 지킬 정도의 능력을 갖추도록 전력으로 도울 생각이었다.
그리고 전사 후보에는 요정뿐 아니라 소와 닭도 있었다.
‘할 생각 있는지 한번 물어보자. 아마도 할 것 같다만.’
적극적인 닭과 소들은 전투 얘기를 하면 왠지 무기를 달라고 할 것 같았다.
만약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닭에게는 대체 무슨 무기를 줘야 할 것인가.
호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떠오르지 않아 고개를 젓고는 샐러드를 마저 다 먹었다.
“조금 출출한데.”
배를 채우고자 대형 요거트를 꺼내 그 안에 블루베리를 한 움큼 넣었다.
설탕을 다섯 숟가락 넣고서 잘 비벼 먹었다.
“꿀맛이네!”
요거트를 묻힌 블루베리가 입에서 살살 녹았다.
톡톡 터지는 식감도 좋았다.
달달한 요거트를 후루룩 다 먹고서 설거지를 하며, 그는 다른 할 일을 떠올렸다.
“황금 쌀 씨앗이랑 청소 열매도 확인하고.”
과연 어떤 열매가 생겼을지 기대됐다.
“닭 부화기를 열어서 병아리를 꺼내야지.”
부화기에 달걀을 넣은 지도 하루가 지났다.
병아리는 태어나자마자 말을 하려나.
보통 병아리처럼 노란색이려나?
이런저런 생각 하며, 설거지를 마친 그릇의 물기를 탁탁 털었다.
해야 할 일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코발트 원석 퀘스트도 해야지. 그리고 요정의 집에 요정들도 집어넣고.”
제법 할 일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일은.
“스미스에게 무기를 의뢰해야지.”
이미 그는 무기제작을 주제로 조사했다.
조사 결과, 무기제작은 마을의 대장장이에게 의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직접 무기제작을 하려면 대장간을 지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대장장이로부터 퀘스트를 100개나 깨야 했다.
‘미친 짓이지.’
100개를 깨는 그 시간에 다른 것을 하는 게 훨씬 이로웠다.
그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사람들은 편리하게 대장장이에게 무기를 의뢰했고 호준도 마찬가지로 그리할 생각이었다.
‘이왕이면 특급 무기를 의뢰하자.’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뒤, 호준은 잘 채비를 하고 캡슐에 누웠다.
취이이익―
― 유토피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익숙한 푸른 하늘이 시야에 가득 찼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을 하늘이다.
주위가 조금 조용했다.
‘다들 뭐하나.’
그가 누워있는 곳은 딸기밭 근처였다.
아마도 요정들은 다른 곳에서 일하는 모양이라며 호준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바쁜 모양이네.’
호준은 별생각 없이 호숫가로 발을 디뎠다.
그렇게 무심히 걸으려 하는데.
“어?”
뜻밖의 무언가가 이목을 사로잡았다.
그 무언가로 인해 호준의 눈이 한없이 커졌다.
【페어리 컴퍼니 보유 자산이 40만 골드를 넘어섰습니다】
【페어리 컴퍼니 레벨이 한 단계 상승합니다!】
【페어리 컴퍼니 레벨이 2가 되었습니다!】
“회사 레벨이 올랐다고?”
그의 심장이 마구 뛰었다.
그 레벨업 때문에 놀란 것은 아니었다.
연달아 나타나는
‘이게 웬 떡이야…!’
보상 때문이었다.
【회사 레벨이 올라 회사 직원의 능력치가 상향 조정됩니다】
【전 직원의 이동속도가 20% 향상됩니다】
【전 직원의 체력의 최대치가 20% 향상됩니다】
【전 직원의 시력과 청력이 20% 향상됩니다】
【전 직원이 모든 종류의 독에 내성을 갖습니다】
【독에 내성을 지닌 자는 절대로 독에 대미지를 입지 않습니다】
그뿐 아니라 모든 동료가.
독으로 온천욕을 해도 안전한 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