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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너무 잘함-70화 (70/200)

070. 솜사탕

특급무기는 예기치 못한 행운이었다.

호준 입장에서는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었고.

‘빼앗긴 입장에서는 많이 열 받겠는데.’

빼앗긴 경우에는 속이 아주 쓰릴 것이 분명했다.

기분 좋은 행운을 얻었음에도 호준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그는 팔짱을 끼고 고민 중이었다.

‘활을 사용하면 레벨이 오르는데. 이게 문제네.’

문제는 활의 레벨 제한을 낮춰서 그가 사용하는 순간.

레벨이 오른다는 것이었다.

‘레벨이 오르면 레벨 1의 장점이 사라진다.’

남들은 당연하다 생각하는 싸움을, 호준은 단 한 번도 하지 않고 잘 지내왔다.

돈도 벌고, 농장도 크게 세우고, 약 사업도 시작했고.

이런 성과는 레벨 1이기 때문에 가능하기도 했다.

‘레벨 1이면 PK를 당하지 않으니까.’

레벨 1이기에.

누군가에게 공격받아 아이템과 골드를 뺏길 걱정 없이 살아온 것이다.

누군가 그를 공격한다 해도 상관없고.

‘공격한 놈이 알아서 뒤지니까. 페널티 때문에.’

초보자 보호 페널티 덕분에 공격받은 이는 죽지도 않고, 공격으로 인한 아픔도 느끼지 않는다.

반대로 공격한 자는 알아서 죽어버린다.

레벨 1이 개꿀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다.

다른 이들이야 밥벌이를 위해 레벨을 올린다지만.

‘이대로 유지해야만 해.’

호준은 반대로 이 편한 삶을 위해서 레벨업을 하지 말아야 했다.

‘레벨 1을 벗어나는 순간. 무한 경쟁이 시작될 테니까.’

레벨 2부터는 PK로부터 보호받는 혜택이 사라진다.

안전한 보호막이 벗겨지는 순간, 무한 경쟁이라는 지옥으로 직행.

이 지옥에서는 끝없이 경쟁하고 강해져야 하고.

더 좋은 아이템을 찾아 헤매야 하니.

농사와 요리 외에도 신경 쓸 게 많아진다.

‘골치 아프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경쟁을 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었다.

‘지금도 먹고살 만하단 말이야.’

더군다나 이미 농사와 요리로 큰돈을 벌어들이는 그로서는.

굳이 피곤한 길로 갈 이유가 전혀 없었다.

‘제대로 된 아이템이 생기기만 한다면, 레벨을 올려도 상관없겠지만.’

장비를 완전하게 다 갖춰놓는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다만 그 순간이 지금은 아니었다.

‘그때까지 레벨 1은 유지하자.’

그렇기에 호준은 레벨 1은 유지한다는 쪽으로 마음을 먹었다.

다만 한 가지.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다.

‘레벨 1이면 요정들을 지킬 수가 없을 텐데.’

만약 강한 자들이 공격해 올 때 요정들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단점.

그 단점을 극복해야만 했다.

‘방법이 없을까.’

그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그는 뭔가 빠트린 것이라도 있을까 싶어 아테네의 활 정보창을 빤히 보았다.

길고 긴 메시지를 정독하다가 그는 눈에 띄는 문구를 하나 발견했다.

‘어…… 이건?’

붉은색.

아주 작은 글씨로 다음과 같이 적혀있었다.

【본 아이템은 모든 이종족이 착용 가능합니다. (심지어 유령도 가능)】

이종족이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호준은 머릿속에 전구가 켜진 기분이 들었다.

왠지 찾은 것 같았다.

‘어쩌면 요정도 쓸 수 있을지도.’

레벨 1을 유지하면서도

특급 활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 * *

“형 말대로 그런 옵션이 달리면, 소환수도 아이템을 쓰는 게 가능하다고 알고 있어요!”

“그렇단 말이지.”

진수가 보글보글 끓는 약병을 흔들며 답하자 호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호준은 진수의 확답을 들으니 왠지 마음이 놓였다.

‘진짜 쓸 수 있는지는 요정들을 만나면 확인해 보자.’

확인하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고서 호준은 나머지 궁금한 점을 물었다.

“그럼 무기의 레벨 제한은 그 이종족에게도 적용되는 건가?”

“네. 레벨 제한은 같게 적용되죠. 그런데 아까 레벨 제한을 없애는 퀘스트가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렇지.”

“그 퀘스트를 깨면 이종족 누구나 쓸 수 있을 거예요. 레벨 제한을 없애는 건 흔치 않은 기회인데. 아이템 운이 좋으시네요!”

“뭐. 그런 셈이지.”

호준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특급 활을 내려다보았다.

반짝이는 특급 활.

어쩌면 땅에 붙어있는 자신보다는 날아다니는 별이에게 더 빛나는 무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중에서 활을 쏘면 그만큼 더 위력적이겠지.’

뿌리를 타고 다니는 송이에게 줘도 될 듯싶고.

다행히도 요정들의 몸 크기가 작은 것은 하등 문제가 되지 않았다.

‘활 크기는 착용자에게 알맞은 크기로 변한다고 했으니까.’

즉 거인에게는 거인이 쓸만한 크기의 활이 되고.

소인에게는 소인이 쓸만한 크기의 활이 되는 식이다.

‘대장간에 가는 김에 화살도 구해야겠군.’

호준은 활도 구하고 무기 퀘스트도 할 겸.

마을로 떠날 채비를 했다.

외양간을 나서기 전, 그는 진수에게 나직이 당부했다.

“진수야. 혹시 누가 침입할지도 모르니까. 몸조심해. 영상으로 보여준 그 사람들. 그 얼굴도 잘 외워두고. 아마 3일 뒤에는 다시 올 거야.”

“네! 그 사람들 얼굴은 캡처도 해 뒀으니까 꼭 외울게요! 누가 나타나면 저는 호수로 뛰어들게요. 제가 수영 하나는 자신 있거든요!”

“그럼 수고하고! 마을에 좀 다녀오마.”

주먹을 불끈 쥐는 진수에게 손을 흔들고 호준은 외양간을 나왔다.

“다녀오세요! 아, 형. 그리고 팥빙수 잘 먹겠습니다!”

“그래!”

진수의 배웅을 받고 오솔길로 터벅터벅 걸었다.

근처에서 풀을 뜯던 미소가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 요즘 우리 만남이 너무 적어졌다무우! 소외감 느낀다무우!

“우리 미소 많이 서운했구나? 미안. 바빴어.”

시무룩한 미소의 턱을 긁어주자 꼬리가 살랑살랑 좌우로 흔들렸다.

미소가 은근슬쩍 제 옆구리를 허리에 비비며 말을 이었다.

― 그래도 얼굴 보니까 좋다무우 어디가냐무우?

“마을 가려고. 같이 갈래?”

― 좋다무우!

미소의 합류로 호준은 미소의 등에 올라탔다.

미소의 뿔을 잡고 타서인지 자세도 안정적이고 승차감도 좋았다.

― 그런데 손에 들고 있는 반짝이는 건 뭐냐무우? 먹을 거냐무우?

미소의 질문에 호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거는 활이라고 무기야. 먹는 건 절대 아니지.”

― 그렇구나 무우― 반짝이는 게 꼭 보석 같다무우!

“멋지긴 하지.”

호준은 씩 웃으며 활을 쓰다듬었다.

미소가 감탄할 만큼 아테네의 활은 외관이 화려했다.

황금으로 빚은 활대 곳곳에 굵직한 다이아몬드가 수십 개 박혀있었으니까.

관상용으로 놓아도 제법 눈요기를 할 만했다.

미소가 활을 보며 눈을 반짝이는 것을 보다가.

‘어, 잠깐만?’

순간 떠올렸다.

모든 이종족이 착용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미소도 가능한가? 소인데?’

이 부분은 호준도 잘 몰랐다.

이종족이라는 개념이 어디까지인지.

그 경계를 정한 문구는 메시지에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으니까.

‘활을 쏘려면 두 발로 걸어야 할 텐데.’

만약 미소가 활을 착용할 수 있다고 쳐도.

소가 네 발로 걷기 때문에 활을 쏘는 데 문제가 있었다.

입에 물고 활을 쏠 수는 없을 테니까.

그래도 호준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소에게 확인차 물어보았다.

“미소야. 너 두 발로 걸을 수 있니?”

― 두 발? 아, 이거 말이냐무우?

척!

“어어!”

미소가 냉큼 두 발로 중심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거대한 근육질 몸이 세로로 서자 호준은 자연스레 뿔을 잡은 채로 대롱대롱 매달렸다.

“가능하네?”

호준은 너무나 쉽게 미소가 이족 보행 하는 것이 신기해서 웃음이 났다.

과연 활을 주는 것은 어떨까?

내친김에 미소에게 활을 건네주었다.

“미소야. 이거 앞발로 들어봐”

― 알았다무우!

미소는 하라는 대로 활을 앞발의 굽으로 잡았다.

양쪽으로 갈라진 굽은 두 손가락과도 같이 움직여서 활을 아주 잘 잡았다.

미소가 활을 잡고 온전히 들자 곧 메시지가 떴다.

【미소가 아테네의 활을 착용했습니다】

【아이템 레벨 제한으로 인해 미소가 활을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화살이 부족합니다】

【활을 사용하려면 화살통을 구해 미소에게 장착하십시오】

【화살통은 대장간이나 경매장 등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와. 소도 가능하구나.”

이종족이라고 하더니 놀랍게도 소까지 가능했다.

호준은 미소를 원상태로 네 발로 걷게 하고는 활을 회수했다.

그는 활의 주인을 결정하는 것은 잠시 미루기로 했다.

‘지금은 시간이 없어.’

로그아웃까지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으니까.

“미소야. 마을로 전속력으로 간다! 할 수 있지?”

― 지금 간다! 꽉 잡아라무우!

미소는 미친 듯이 돌진했다.

호준은 마치 바람에 날리는 빨래처럼 몸이 쭉 뻗은 채로 흔들렸다.

빠른 속도감을 마음껏 즐기며 둘은 마을로 달렸다.

* * *

땅 땅 땅

스미스 씨가 있는 대장간은 여전히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가득했다.

호준이 도착한 걸 알아차리자 스미스 씨는 화색이 되어 가까이 다가왔다.

호준이 활을 건네자 스미스 씨는 침음성을 흘리고는 답했다.

“허허. 정말 훌륭한 활이군. 내가 본 활 중에서는 가장 화려하고. 다만 자네에게는 너무 높은 레벨의 활이라는 점이 문제겠군.”

“그렇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레벨 제한을 푸는 해결책을 알고 있으신지요.”

호준의 정중한 물음에 스미스 씨는 수염을 만지작거리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사실 요즘 코발트 광석이 대량으로 필요하네만. 자네라면 구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그의 고민을 듣자마자 호준의 눈앞으로 메시지가 떴다.

【아이템 퀘스트 발생!】

【아이템 퀘스트】 무기의 레벨 제한 해제하기

【퀘스트 목표】 : 코발트 원석 1,000개를 대장장이 스미스 씨에게 주기

【퀘스트 설명】

*무기의 레벨 제한을 해제하려면 피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코발트 원석 1,000개를 구해 대장장이 스미스 씨에게 전달하세요!

*코발트 원석은 코발트 광산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곡괭이를 들고 광산으로 고고!

【퀘스트 보상】

*'아테네의 활'의 레벨 제한 옵션을 삭제할 수 있다.

‘1,000개라.’

광석 숫자만 1,000개.

왠지 벌써 어깨가 뻐근한 것 같았다.

“곡괭이도 꼭 사야 하네!”

스미스 씨의 강력 추천으로 호준은 곡괭이와 수리 키트 10개를 구매했다.

수리 키트는 혹시라도 곡괭이의 내구도가 0이 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게 아이템을 바리바리 산 채로 호준은 대장간을 나섰다.

코발트 원석 구하기는 시간이 부족했기에 내일 할 생각이었다.

“호준, 고맙네. 이 팥빙수는 잘 먹겠네!”

“맛있게 드시고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그렇게 스미스 씨를 뒤로하고.

호준은 미소의 등위에 올라탔다.

그는 마을 주변을 돌며 요정들을 찾았다.

“어, 그때 대회 우승한 그 사람이다.”

“저 소는 새로운 품종인가? 덩치가 장난 아니네.”

“레벨이 꽤 높은 모양이야. 그러니 저런 소를 길들이지 않았겠어?”

거리를 누비면서 그를 알아보는 이들이 종종 있었다.

호준은 그런 말들에 별 관심을 두지 않고, 두리번거렸다.

‘다들 어디 있지?’

쇼핑 삼매경에 빠져있을 요정들이 이상하게 코빼기도 안 보였다.

“미소야. 별이랑 애들 보여?”

― 안 보인다무우! 킁킁 좋은 냄새가 난다무우!

“냄새?”

― 으음!!

미소는 호준이 말릴 틈도 없이 냄새의 발원지로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곧 그들 일행이 도착한 곳은 솜사탕 기계 앞.

뽀글뽀글한 머리를 한 솜사탕 장수는 미소를 보며 눈을 크게 뜨다가 호준과 눈이 딱 마주쳤다.

눈이 마주치자 솜사탕 장수의 입에서 간드러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이고. 자네 아주 멋진 소를 타고 있구먼. 이렇게 듬직한 소가 있으니 마음도 듬직하겠소.”

“하하. 칭찬 감사합니다. 그 솜사탕은 얼마입니까?”

“작은 거는 7골드. 큰 거는 10골드이네. 이왕이면 큰 걸 고르는 게 싼 가격이지!”

“큰 거 5개 주십시오.”

호준은 솜사탕이 준비되기를 기다리며 미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소는 코를 킁킁대며 솜사탕 냄새를 흡입하느라 정신없었다.

‘솜사탕 먹어본 적이 언제였더라.’

어릴 적 간이트럭에서 사 먹은 뒤로 전혀 기억이 없었다.

분홍색 솜사탕이 기계속에서 만들어지는 동안 달콤한 캐러멜 냄새가 퍼졌고.

왠지 입맛이 돌았다.

츕 츕 츕

츕 츕 츕

그때.

어디선가 사탕 빠는 듯한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제법 커서 호준은 허리를 곧게 폈다.

그리고 소리가 나는 쪽을 보았다.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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