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를 너무 잘함-69화 (69/200)

069. 특급 무기

가끔 그런 날이 있다.

웬일로 운이 좋은 날.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타야 하는 버스가 올 때.

혹은 오늘 제출해야 하는 과제를 실수로 집에 놓고 온 날, 휴강한다거나 하는.

‘이게 무슨 일이야. 대체.’

호준은 지금 그때처럼

난데없이 행운을 얻은 기분이 들었다.

호숫가에서 가만히 널브러져 쉬다가 2만 골드와 아이템을 얻게 되었으니.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다행히 이해를 돕기라도 하듯, 메시지가 떴다.

【송이가 제카슨 외 6인을 처치했습니다】

【송이와 ???의 뿌리 간의 결속이 강화됩니다】

【송이의 감각이 ???의 뿌리와 밀접히 연결됩니다】

【사망자는 3일 동안 접속이 불가능합니다.】

【골드 2만 2,313골드를 얻었습니다.】

【귀부인의 팔찌를 얻었습니다.】

【영부인의 귀걸이를 얻었습니다.】

. . .

【청결 열매 씨앗(특급)을 얻었습니다.】

【아테네의 활 (9 강화)을 얻었습니다.】

. . .

‘송이가 처치했다고?’

송이는 혼자 숲속을 뛰노는 걸 좋아했는데 아무래도 무슨 사달이 난 듯싶었다.

호준은 방금 이상한 진동이 들렸던 숲으로 향했다.

송이가 무사하기만 하기를 바라며 달려갔더니 그곳에는 송이가 있었다.

몸을 암모나이트처럼 둥그렇게 만 채로.

슉 슉

혀로 비늘을 다듬던 송이와 눈이 딱 마주쳤다.

호준은 송이에게 다가가 몸을 이리저리 살피며 물었다.

“송아. 네가 누굴 해치웠다는데. 사실이야?”

“묘옹!”

【송이가 적을 해치운 것에 자부심을 가집니다.】

“적이라고?”

“묘옹!”

그 물음에 송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바닥을 발로 탕 내리쳤다.

나름대로 늠름해 보이려고 한 동작인 것 같은데.

워낙 작았기에 호준의 눈에는 앙탈 부리는 정도로 보였다.

‘설마 저 뿌리를 이용한 건가?’

호준은 송이의 뒤에서 스르륵 스르륵 소리를 내는 뿌리를 바라보다가.

송이 머리 위로 뜨는 재생 버튼을 발견했다.

재생 버튼은 음악 프로그램에서 흔히 보는 삼각형 형태였다.

‘그런데 이 버튼은 뭐지?’

궁금한 마음에 버튼을 클릭하자 사건의 경위가 드러났다.

【자동 저장된 전투 영상이 재생됩니다】

네모난 화면 위로 전투 영상이 재생되었다.

영상을 보고 나서야 호준은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아…!’

붉은 머리의 사내와 그 일행이 호숫가 쪽으로 공격하려고 가던 순간.

그 앞을 송이가 앞을 가로막았고.

송이가 맞기 직전에 뿌리가 나타나 침입자의 심장을 차례차례 꿰뚫었다.

호준은 송이가 다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야. 송이가 안 다쳐서.’

괴한들이 죽은 것에는 그리 마음이 쓰이지 않았다.

먼저 칼을 빼든 것은 저쪽이고 호숫가로 공격하러 가는 것도 확연히 드러났다.

이 근처에는 호준과 그 일행 외에는 아무도 없으니, 자신이 목표물이 되었다는 것은 확실했다.

‘저 사람들은 3일 뒤에 다시 올 수도 있겠군.’

아마 돈과 아이템을 뺏겼다고 이를 바득바득 갈지도.

그럴 경우가 거의 확실해 보였다.

그러나 호준은 겁먹지 않았다.

‘호락호락하게 당할 생각은 없다.’

그는 마음을 굳게 먹고는 송이를 끌어안고 호숫가로 걸어왔다.

걸어오는 내내 송이에게 단단히 일러주었다.

“송아. 앞으로도 누가 해코지하려는 것 같으면 지금처럼 하면 돼. 절대 당하지 마. 알았지?”

“묘옹!”

“네가 다치지 않는 게 우선이다. 알았지?”

“묘옹!”

늠름하게 우는 송이를 안아 들고서 호준은 슬쩍 뒤를 보았다.

슬그머니 뒤를 따라오던 뿌리가 좌우로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이 녀석도 고맙네. 송이를 지켜줬으니.’

호준이 뿌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자 뿌리는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뿌리는 그렇게 조금 덩실거리더니 곧 땅의 갈라진 틈으로 사라져 버렸다.

매번 뿌리의 도움을 받으니 호준은 고마우면서도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책을 마련하자. 모두를 더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호준은 송이를 더 꽉 안으며 호숫가로 되돌아갔다.

* * *

“와. 송이가 다 해치웠단 말이야? 이 작은 애가?”

“그래. 송이가 쥐방울만 하기는 해도 힘은 야무지단 말이지!”

“이야. 송아 너 대단하다! 어쩜 그렇게 대단해?”

“뀨뀨!”

“메에!”

【요정 일동이 송이의 무력에 감탄을 표합니다】

호준이 상세하게 상황을 설명하자.

송이는 모두의 관심을 듬뿍 받았다.

베티, 샤롯 그리고 다른 요정들의 칭찬이 송이에게 듬뿍 쏟아졌다.

요정들은 특히나 송이 주위를 맴돌며 요정어로 칭송의 노래를 부르는 듯했다.

“묭묭!”

송이의 얼굴은 그야말로 꽃이 피었다.

살랑살랑 흔들리는 꼬리와 활짝 올라간 입꼬리는 덤이었다.

개선장군의 기세 저리가라였다.

“묘오옹!”

“뀨뀨!”

“끼루루!”

“묘오옹!”

호준은 송이가 요정들의 헹가래를 받는 것을 보며 피식 웃고는 구석의 바위에 앉았다.

그리고는 인벤토리에 있는 아이템 정리에 들어갔다.

‘생각보다 얻은 게 많네.’

메시지가 많아서 예상하기는 했지만, 아이템은 총 45개.

그중에서 귀부인의 장신구, 영부인의 장신구라 불리는 2개의 보석은 각각 베티와 샤롯에게 주었다.

베티와 샤롯은 가게에 뼈를 묻겠다고 격렬히 반기고는.

열렬히 포옹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그다음, 호준은 요정들에게도 용돈을 주었다.

한 명당 무려 5,000골드씩이나 주었는데.

“뀨우우?”

“아무우?”

요정들은 정작 골드를 어디에 왜 써야 하는 줄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그래서 별이에게 요정들의 돈을 관리하도록 했다.

누가 뭐 먹고 싶거나 사고 싶은 게 생기면 사주도록 한 것이다.

별이는 골드 보따리를 마법으로 공중에 띄운 채로, 엄지를 추어올렸다.

“호준 님은 역시 상냥해요!”

“뭘. 너도 새 옷 사 입고 그래. 물론 지금 옷도 이쁘긴 하다만.”

“헤헤. 단풍잎으로 드레스를 만들고 싶었는데. 한번 의류점에 가서 할 수 있는지 알아봐야겠네요! 잘 쓰겠습니다.”

별이는 살랑살랑 머리 위를 맴돌며 요정 가루를 뿌려주었다.

호준은 머리 위에 수북이 쌓이는 요정 가루를 흐트러트리고는 모두에게 자유시간을 주었다.

“다들 수고 많았다. 베티와 샤롯도 돌아가도 되고. 요정들도 다 자유시간이야.”

“그럼 오늘은 들어가 볼게. 목걸이 고마워!”

“다들 내일 봐!”

“그래 수고 많았다.”

그렇게 베티와 샤롯이 모두에게 인사하고 떠났다.

별이는 요정들을 데리고 상점가에 쇼핑하러 가겠다고 나섰다.

별이와 요정들을 배웅하고 나니 주위가 조용해졌다.

그렇게 호준은 홀로 남아 아이템을 점검했다.

‘청결 열매 씨앗이라.’

그는 먼저 청결 열매 씨앗을 확인했다.

‘꼭 아쿠아 마린 같네.’

새파란 형광색 씨앗은 푸른 하늘을 녹여 만든 보석 같았다.

청결 열매의 등급은 황금 쌀과 같은 특 10급.

그러나 황금 쌀과는 조금 다른 부류의 씨앗인 듯했다.

청결 열매 씨앗 위에 뜨는 메시지가 그 사실을 증명해 주었다.

【청결 열매 씨앗】

【특 10급】

【특징】

*이 씨앗을 심으면 특별한 열매를 얻을 수 있다.

특별한 열매를 이용하면 더러워진 공간을 한 번에 깨끗하게 원상 복귀할 수 있습니다.

원상 복귀라니. 말이 안 된다고요? 직접 본다면 그 생각이 달라질 겁니다.

*청결 열매는 그 청소 기능 때문에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을만한, 대중적인 수요가 있는 열매입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구하기 힘든 귀한 씨앗이기 때문에 대부분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습니다.

*이 전설적인 씨앗을 구하기 위해서는 극동지역에 사는 미친 마녀의 101가지 소원을 들어주거나. 혹은 북부의 사자 라이런의 13번째 보물상자를 열면 일정한 확률로 얻을 수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이 씨앗은 청소하는 기능이 있고. 아주 많이 구하기 힘든 씨앗이라는 거네.’

무척 희귀하다는 것만은 여러 번 강조되었으니 분명했다.

그나저나 청소 기능이 상당히 궁금했다.

‘청소 기능이면. 설거지할 필요도 없고 그릇 치울 필요도 없는 건가?’

호준 입장에서는 청소, 설거지가 상당히 골치 아팠다.

그릇을 치우고 닦는데 걸리는 시간은 요리 시간보다 더 오래 걸렸기 때문이다.

만약 그릇 정리가 열매 한방으로 해결된다면?

그러면 더 오랫동안 놀고먹으며 편하게 장사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한번 써 보면 알겠지. 얼른 심어야겠군.’

과연 청소 기능이 어떤 효과일지 사뭇 기대되었다.

청소 열매 메시지에는 한 가지 더 발견한 것이 있었는데.

바로, 그 메시지에는 황금 쌀 씨앗과 같은 내용의 주의 사항이 적혀있다는 것이었다.

청결 씨앗도 황금 쌀 씨앗과 마찬가지로 주위에 다른 작물을 심지 말 것, 과일을 비료로 줘야 한다는 주의 사항이 있었다.

‘특급 씨앗끼리는 특이사항도 같군.’

그렇게 한 가지를 더 배운 호준은 적절한 토지에 자리 잡고 청결 열매 씨앗을 심었다.

드래곤 푸르트를 갈아서 비료까지 가득 뿌려주자, 12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메시지가 떴다.

‘12시간도 황금 쌀 씨앗과 같네.’

12시간이라면.

내일 로그아웃하고 돌아오면 확인할 수 있으니 문제없었다.

이제 남은 것들은 자잘한 아이템을 확인하는 것.

‘허접한 건 팔고. 괜찮은 것만 챙기자.’

허름한 칼.

버려진 단도.

어설픈 마력구.

등등 잡템이 많아서 그것들은 따로 빼 두었다.

그것들은 나중에 스미스 씨에게 한 번에 처리할 생각이었다.

그밖에도 남은 아이템 중 쓸만한 것을 추리는 작업을 계속했다.

‘이건 내가 신어야겠다.’

그는 쓸만한 젤리슈즈를 발에 끼어 신어보았다.

젤리슈즈는 방어 기능도 없는, 기능만으로 보면 별 쓸데없어 보였다.

그러나 기존 초보자 가죽 신발과 비교하면 물컹물컹하고 부드러운 재질이라서 발이 한결 편해졌다.

발바닥이 부들부들한 것이 마음에 쏙 들었다.

‘발이 훨씬 편하네.’

호준은 그 말랑한 감촉에 만족하며 다리를 한번 구르고는 나머지 아이템을 살폈다.

그밖에도 반지 등등의 장신구가 있었다.

그러나 30만 골드 가까이 가진 그에게는 별로 가치가 없는 것들뿐.

‘다 일반등급뿐이네.’

무기 아이템도 농산물과 마찬가지로 일반등급과 특급으로 나뉘었다.

특 10급에서 특1급으로 갈수록 비싸지고 기능이 우수해졌다.

일반등급 장비들은 가격이 적당한 수준이고 도시에서 경매하기만 하면 구하기 어렵지 않았다.

반면, 특급 장비들은 희귀하고 비싸다.

게다가 특수한 기능을 지니면 인기가 아주 많았다.

예를 들면 한 지팡이에 특수 기능으로 <화염계열 마법 공격력이 +30% 향상된다> 같은 기능이 붙어버리면.

화염 계 마법사가 그 지팡이를 들면 화염 마법의 대미지가 극도로 높아졌다.

이렇게 특수 기능이 있냐 없냐에 따라 대미지 차이가 컸다.

그 때문에 특수 기능이 붙은 특급 무기는 희귀하기도 하지만,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비싼 것이었다.

‘설마 특급이 나올 리가. 딱 봐도 길 가던 어중이떠중이 같은데.’

호준은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지나가던 강도가 특급 아이템을 가진다는 것은.

우연히 로또에 얻어걸릴 확률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이미 행운은 연달아 받았기에 더 바라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호준은 아이템들이 죄다 일반등급투성이여도 실망하지 않고 있었다.

‘역시 다 일반등급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마지막 아이템을 확인하는데.

그런데.

“어…?”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한 아이템 정보를 확인하자 그의 눈이 한없이 커지기 시작했다.

설마 했던 일이.

‘말도 안 돼.’

실제로 일어났다.

【아테네의 활 (+9)】

【레벨 제한】 : 40

【등급】 : 특 10급

【기능】 : 물리 공격력 +100

【특수 기능】

명중 : 발사한 화살이 반드시 목표에 명중한다.

집중 : 활을 들고 있을시, 주위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고 오로지 목표에만 집중한다.

【본 아이템은 레벨 제한으로 착용할 수 없습니다】

【아이템의 레벨 제한을 낮추거나 혹은 본인의 레벨을 높이십시오】

【아이템 레벨 제한을 낮추려면 대장장이의 특별한 퀘스트를 수행하십시오!】

‘특급이라고? 레벨 제한도 낮출 수 있고?’

특급 무기.

특수 기능까지 추가된.

보물이 품 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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