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를 너무 잘함-68화 (68/200)

068. 득템

“잘 먹고 마시고 갑니다.”

“맛있게 잘 먹어요. 사장님 내일도 올게요!”

“다음에도 또 들르겠습니다. 신메뉴도 기대할게요!”

“다음에는 매운탕도 꼭 먹고 싶어요!”

손님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환한 표정으로 인사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심히들 가세요!”

호준도 마찬가지로 환한 표정으로 손님들을 배웅했다.

마지막 손님 일행이 자리를 뜨고 나자.

부스럭 부스럭.

가게에는 그릇 치우는 소리만 남았다.

“어휴! 손님 진짜 많네!”

“그러게. 어제보다 3배는 넘는 것 같은데.”

“3배 더 되는 것 같아. 다 호준 방송 덕분이지! 이러다가 분점 내야 하는 거 아닌지 몰라.”

베티와 샤롯의 넋두리에 호준은 피식 웃었다.

그녀의 말대로 손님들은 폭풍우 몰아치듯 들어오고 나오고를 반복했다.

앞으로도 이 정도만 장사가 되어도 만족스러울 것 같았다.

‘그래도 요리 속도가 빨라져서 감당할 수 있었지.’

시기적절하게 요리 속도가 빨라져서.

주문량이 늘었어도 감당할 수 있었다.

‘얻은 것도 많고.’

물론 소득도 높았다.

호준은 가판대에서 돈을 수금하고, 별이가 받은 돈과 합쳐서 점검해 보았다.

역시나 액수는 그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현재 보유 골드】 : 294,216 골드

‘3억이 넘겠네.’

3억.

정말 억 소리 났다.

판타지 소설에서나 억이 흔하지, 현실에서 평범한 직장인이 억을 벌어들인다는 것은 먼 얘기였다.

‘정말 눈덩이처럼 불어났어.’

눈덩이처럼 불어난 3억이라는 골드.

어안이 벙벙했다.

심장이 콩콩댔다.

그는 애초에 억 단위에 익숙하지 않은, 월세 40 조그만 원룸에 사는 월급쟁이였으니까.

정신을 추스르고자 몸을 움직이니 시간이 지나자 마음이 가라앉았다.

막연히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이대로 더 돈을 모아서. 나중에 부모님 집도 지어드릴 수 있으려나.’

40년 된, 부모님이 사시는 고향 집도 새로 번듯하게 지어드리고.

마당에 사는 고양이들이 뛰놀게 마당도 더 널찍하게 넓히고.

‘생각만 해도 기분 좋네.’

옅게 미소지으며 그릇을 한데 쌓아 올리는데.

“뀨뀨!”

핑구가 유리잔을 부둥켜안은 채로 지나가면서 인사했다.

제 몸만 한 유리잔을 안은 걸 보니 참으로 대견했다.

“우리 핑구 잘한다!”

“뀨뀨!”

핑구는 돌고래 소리로 답하고는 아장아장 그릇을 모은 쪽으로 걸어갔다.

포동포동한 핑구 엉덩이를 보며 피식 웃다가,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촉감에 고개를 내렸다.

그의 주머니에는 진수가 가져온 씨앗 주머니가 들어있었다.

‘그나저나. 진수가 특급 씨앗을 가져다준 건 정말 예상 밖이었지.’

진수로부터 선물 받은 특급 씨앗은 그의 가슴이 뛰게 했다.

처음으로 얻은 특급 씨앗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 설명을 살펴보니 앞으로가 기대되는 것이다.

‘한 번만 더 볼까? 혹시 놓친 게 있을지도 모르니까.’

호준은 한 번 더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에, 씨앗 주머니를 꺼내 안을 들여다보았다.

황금빛을 뿜어내는 씨앗 위로, 메시지가 떴다.

【황금쌀 씨앗】

【특10급】

【특징】

*이 씨앗을 심으면 거대한 황금빛 낱알을 얻을 수 있다. 자칫하다가는 낱알에 깔려 죽을 수 있으니 수확할 때 조심하라.

대체 낱알 하나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설명에는 자칫하다 낱알에 깔려 죽을 수 있다고 적혀있었다.

호준은 이 부분을 별이와 요정들에게 몇 번이나 강조할 생각이었다.

그밖에도 이 씨앗에는 별도 특이사항이 존재했다.

【특이사항】

【1. 주위 땅을 비워둘 것】

이 씨앗은 땅으로부터 많은 지력을 흡수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씨앗을 심은 토지를 아우르는 8개의 토지를 비워둘 것을 권장한다. 만약 주위 토지를 비우지 않을 경우, 작물의 성장 속도가 심각하게 느려질 수 있다.

【2. 일반 비료를 사용하지 말라】

본 씨앗은 특급 씨앗으로 일반 비료와 거부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일반 비료는 되도록 사용하지 말 것을 권한다. 억지로 일반 비료를 사용하면 성장이 영원히 멈출 수 있다.

【3. 적합한 비료는 따로 있다.】

양질의 과일을 분해해서 비료로 준다. 8시간마다 한 번씩 비료를 주면, 수확물의 등급이 대폭 올라갈 확률이 높아진다.

주의 사항을 정리하면 간단했다.

1. 씨앗을 심어둔 토지. 그 토지를 아우르는 토지 8개를 비워둘 것.

2. 비료는 일반 비료를 주지 말 것.

3. 비료는 양질의 과일을 분해해서 8시간마다 준다.

‘만약 비료 주기를 혼자서 했다면 번거로웠겠지만.’

호준에게는 비료 8시간마다 주기 미션이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요정에게 부탁하면 되지.’

그에게는 요정들이 있었으니까.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나저나 호준은 과연 이 작물로 쌀밥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쌀이 엄청 크다는데. 쌀밥도 할 수 있는 건가?’

사실 그는 쌀밥을 먹고 싶기도 했다.

특히 매운탕을 먹을 때는 더더욱.

매운탕 국물에 밥을 비벼서 한 입 먹고 싶다는 생각을 당연히 했다.

‘하지만 쌀을 파는 데가 없었지. 잡화점에도 안 팔고.’

그러나 그런 마음과는 달리 쌀 씨앗을 살만한 곳이 없었다.

잡화점에서 팔지 않으니 구할 수가 없었고.

그동안의 빡빡한 일정 탓에, 직접 외부 마을과 도시를 돌아다닐 시간은 더더욱 없었다.

그런데 쌀이 알아서 냉큼 굴러들어왔으니 반가울 수밖에.

‘공짜로 얻었으니 이게 어디야. 그나저나 황금 쌀이면 황금색 쌀인가?’

정말로 황금 쌀이면 씹을 수 없을 텐데.

황금 쌀은 과연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며.

호준은 기분 좋게 웃었다.

* * *

상업 도시 릴케.

요나스 마을 남단부에 있는 이 도시는.

요나스 마을과는 가장 가까운 도시였다.

평소라면 그다지 부산하지 않은 릴케의 광장이 오늘따라 활기가 넘쳤다.

“특급 팥빙수가 399골드요! 아주 맛이 끝내줘요!!”

“소고기 오븐 스테이크도 팔고 있습니다요!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맛이라오!”

오늘따라 음식을 파는 이들이 여럿 있었기 때문이다.

한 붉은 모자를 쓴 상인은 청산유수처럼 맛깔스럽게 말하며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산지에서 과즙이 쭈와아악! 뽑혀 나온 특제 주스 3급짜리가 있습니다. 가격이 얼마냐고요? 겨우 80골드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오늘만 하고 내일은 절대 없는 특가세일! 놓치지 마세요!”

자신만만한 상인의 으름장에 지나가던 행인 일행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행인 무리가 발걸음을 멈추자 상인은 더더욱 목청을 높였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니에요! 요정의 쉼터에서 파는 건 한정판이라 한번 구매하려면 줄을 100m나 서야 한다니까요! 한번 맛보면 다른 음식은 못 드실 겁니다!”

호객행위가 통한 것일까.

가장 부유하게 차려입은 듯한 행인이 가까이 다가섰다.

상인은 미리 따라둔 주스 한 잔을 내밀며 말했다.

“이거 한번 드셔보세요. 손님!”

“아, 네.”

행인은 주스를 한 모금 들이키고는 눈을 반짝였다.

그런 행인을 보며 주스를 넘긴 상인 남자는 군침을 삼켰다.

‘돈 좀 있어 보이는데?’

가까이서 보니 행인은, 고급스러운 시계를 끼고 있었다.

게다가 주스 잔을 내려놓는 행인은 뒤에 대기하는 6명의 리더인 듯싶었다.

‘이 녀석만 잘 구슬리면 주스를 다 팔 수 있겠어.’

상인은 그 즉시 입에 발린 소리를 늘어놓았다.

“어르신. 요정의 쉼터라고 요 근처에서 알아주는 맛집이 있는뎁쇼. 거기에서 1시간이나 줄 서서 사 온 것들입니다! 주스 맛은 괜찮았나요?”

“크흠. 맛은 훌륭하군. 등급이 높은 것 같은데. 이 정도 가격에 팔아도 괜찮은 건가?”

“아이고. 저도 거의 남는 것이 없습죠. 토끼 같은 아내랑 여우 같은 자식 먹여 살리려고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로만 팔고 있습니다요!”

“죽는소리하는 것 보니 먹고 살만은 한가 보군. 주스는 다 사겠네.”

“아이고. 감사합니다. 나으리!!”

상인은 통 크게 나오는 손님을 향해 화색을 표하고는 분주히 손을 움직였다.

순식간에 준비한 물건을 다 파니 상인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그런 상인에게 VIP나 다름없는 손님이 넌지시 물었다.

“그 요정의 쉼터라고 했나? 거기 위치가 어디인가.”

“아, 그게…….”

상인이 쉼터의 위치를 가르쳐주자 남자는 주스를 바리바리 싸든 채로 자리를 떴다.

그런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상인은 어깨를 으쓱했다.

‘뭐, 알려줘도 상관없겠지. 주스값이 비싸다고 따질 수도 없을 테고. 어차피 여기는 바로 뜰 테니까 말이야.’

상인은 고개를 도리도리 젓고는 잡생각을 접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오늘 벌어들인 거액의 돈만이 가득했다.

* * *

요나스 마을로 가는 오솔길.

붉은 머리 남자를 필두로 수행원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수행원 중 한 명이 앞으로 따라붙어 붉은 머리 남자에게 조심히 물었다.

“제카슨 형님. 요정의 쉼터라는 데는 왜 가시려는 겁니까?”

그 물음에 제카슨은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꽤 실력 있는 놈 같으니 내 밑에 두려고 그런다.”

“역시. 그런 생각이 있으셨군요. 그런데 요리사는 뒀다가 어디에 쓰시려고요? 싸움도 못 할 텐데요?”

“싸움은 무력으로만 하는 게 아니지.”

“네?”

남자, 제카슨의 말을 이해 못 한 부하가 고개를 갸웃했다.

제카슨은 혀를 차고는 검지를 흔들며 말했다.

“싸움은 힘으로 하는 게 아니라 돈으로 하는 거다. 그 요리사가 번 돈으로 우리가 좋은 장비를 사서 PK를 뜨고 다니면. 당연히 돈이 눈덩이처럼 불지 않겠나.”

“아하. 그렇군요. 역시 생각이 남다르십니다. 하하하.”

“아부하고는.”

제카슨은 부하에게서 시선을 떼고 발걸음을 계속 옮겼다.

그는 유토피아 내에서 PK로 돈을 버는 일명, 사람 사냥꾼이었다.

대놓고 PK를 하다 경비병에게 들키면 명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몰래 하는 것은 당연지사.

그러나 제카슨은 어느 순간부터 PK를 하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돈을 제대로 벌려면 실력 좋은 놈들을 밑에 둬야 해.’

사업 규모를 더 늘리고 싶었던 것.

지금 곁에 있는 어중이떠중이들이 아니라, 조금 더 실력 있고 돈을 벌만 한 녀석들을 부하로 둬야만 했다.

그래야만 앞으로 더 큰 수익을 올리고.

그 수익으로 사업체도 꾸리고.

‘그때쯤 되면 가만히 있어도 돈이 술술 늘어나는 거지.’

현실에서는 조폭 출신.

전과 10범.

그런 그가 제카슨이라는 이름으로 새 삶을 얻었으니.

그는 어떻게든 돈을 벌어 성공하고자 했다.

‘성공한다면야 뭔들 못할까.’

성공을 위해서라면 누구든 이용해도 괜찮고 짓밟아도 괜찮다고 여겼다.

애초에 그는 죄의식을 무감한 타입이었다.

‘처음에는 겁 좀 주는 게 좋겠지. PK로 죽여버리고. 돈도 좀 뺏고. 겁먹은 새끼들은 말을 곧잘 들으니까. 3일 뒤에 돌아오면 잘 구슬려서 돈을 상납하게 하자.’

처음에 겁을 줘서 기를 팍 죽이고.

그 뒤로 마음대로 조종하는 것.

그것이 제카슨이 일진 시절부터 배워온 사람 다루는 기술이었다.

‘기죽이는 거야 식은 죽 먹기지.’

제카슨은 실력에도 자신이 있었다.

시골 벽지에서 싼값에 음식이나 파는 요리사쯤이야.

자신이 가진 무기와 무력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일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그는 벌써 얼마나 돈을 벌 수 있을지 PK의 이득부터 셈하고 있었다.

‘요정의 쉼터라는 프리미엄까지 붙었으니. 가지고 있는 돈은 넉넉하겠지.’

오래간만에 짭짤한 이익을 얻을 생각에 입맛을 다셨다.

그렇게 발걸음을 옮기던 그때.

“어, 형님. 저기 좀 보십시오!”

“그 호준인가 머시깽인가 하는 놈이 저놈인가 본데요?”

부하들의 말에 제카슨은 망상을 끝내고 고개를 들었다.

부하들이 가리킨 쪽에는 동물들과 놀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남자의 일행은 평화로운 분위기를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다들 호숫가에 모여 앉아 뭐라 뭐라 떠들고는 깔깔 웃고 있었다.

‘옷이 허접하네? 레벨도 낮겠군.’

제카슨은 초보자 옷을 입은 호준.

그리고 잡 동물들이 여럿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잡 동물들도 너무나 크기가 작아서, 그의 자신감은 높아져만 갔다

‘동물은 애완동물용으로 팔면 딱 맞겠군.’

“바로 공격 들어간다.”

“네!”

제카슨의 명령에 부하들도 저마다 대검을 꺼내 들었다.

2m에 달하는 대검 여럿이 햇빛을 밭아 위험하게 번뜩였다.

제카슨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동물은 생포하고 남자는 죽인다. 호준이라는 자는 내가 죽일 테니 건드리지 마라.”

“명심하겠습니다.”

제카슨이 제일 먼저 앞장섰다.

<소리 없는 발걸음을 발동했습니다>

스킬 덕분에 제카슨은 누구보다 은밀히 먹잇감을 향해 전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에게 예상치 못한 방해물이 나타났다.

데구루루.

“묘옹?”

새하얀 솜털 같은 것이 수풀에서 툭 튀어나와 제카슨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제카슨은 새끼 백룡을 보고는 당황했으나.

‘득템이군.’

그러나 보물이 굴러들어왔다는 생각을 하고는 비릿하게 웃었다.

그는 최대한 상냥한 목소리를 내며 팔을 뻗었다.

“이리 오렴. 안 잡아먹을게.”

“묘옹!”

송이가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끼고 그 손을 날개로 세게 쳤다.

제카슨의 인내심은 거기까지였다.

“이 파충류 새끼가!”

제카슨은 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가 내리쳤다.

그 솥뚜껑만 한 손바닥이 송이의 머리로 떨어지려는 순간.

“묘오오옹!!”

송이가 귀곡성 같은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자 바닥이 우지끈하는 소리와 함께 무너졌다.

갑작스러운 싱크홀에 제카슨과 그 일행은 중심을 잃고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런 제기랄.’

추락하는 순간 제카슨은 무언가를 보고야 말았다.

히죽

백룡이 자신을 내려다보며 입꼬리를 올린 것을.

‘저 쥐방울만 한 것…….’

그러나 제카슨은 더는 원망을 할 수도 없었다.

푹!

거대한 뿌리가 가슴을 뚫자 입에서 피가 솟구쳤다.

가슴이 타들어 갈 듯 아팠다.

그러나 더 뼈아픈 메시지가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당신은 타인의 권속 아래에 있는 존재 때문에 사망했으므로 3일 동안 접속이 불가능합니다.>

<보유한 골드 20%를 잃었습니다.>

<귀부인의 팔찌를 잃었습니다.>

<영부인의 귀걸이를 잃었습니다.>

. . .

<청결 열매 씨앗(특급)을 잃었습니다.>

<아테네의 활 (9 강화)을 잃었습니다.>

<젤리슈즈를 잃었습니다.>

‘시발. ×됐다.’

수개월 비싼 값에 팔려고 존버한 아이템들을.

뺏기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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