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7. 황금 씨앗
가게는 손님으로 가득 찼다.
“살이 야들야들하니. 죽이네.”
“주스를 곁들여 먹으니까 건강해지는 기분이야.”
“다음에는 스테이크도 썰어 보자고!”
활기찬 분위기였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주스와 비교하면 스테이크와 치킨은 먹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벌써 대기 줄까지 생겼네!’
그래서일까.
어느새 대기 줄까지 생겼다.
그러나 잘 살펴보니 대기 줄이 생긴 것은 먹는 시간 때문만은 아니었다.
다른 이유도 있었다.
“사장님, 방송 보고 왔어요!”
“실물이 나으시네!”
“토순이도 있다!”
“오오! 인어야!”
‘방송 효과가 있기는 있구나.’
방송을 보고 온 손님들이 제법 많았던 것.
호준은 한껏 들뜬 손님들을 보며 새삼 방송 효과를 실감했다.
구독자 수와 실시간 시청자 수가 많다는 걸 알지만 눈으로 잘 와닿지 않았는데.
그런데 지금은 그 생각이 달라졌다.
‘장난 아니네.’
“안녕하세요!”
“샤, 샤롯 님이야!”
“아무다! 뿌리로 쟁반 들고 가고 있어!”
“어라? 송이는 어디 있지?”
직접 눈으로 보고 나니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구름처럼 몰려드는 시청자들인 듯한 손님들.
그들은 얼굴을 알아보고 먼저 인사했고.
각자 좋아하는 이들을 찾느라 분주하게 눈을 굴렸다.
여기까지 와 준 시청자들을 보니 새삼 방송의 위력이 실감이 났다.
그리고 고마웠다.
‘여기까지 와주니 고맙네.’
유토피아는 정말 넓은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20억 이상의 인구가 뛰어놀아도 아직 발견되지 않은 콘텐츠가 무수히 많을 정도.
그런 유토피아에 가장 큰 단점은 교통이 불편하다는 것이다.
‘이동하려면 돈이 많이 들지.’
도시에서 도시로, 마을에서 마을로 텔레포트를 하려면 일정한 돈을 지급해야 했다.
그 액수가 1,000골드, 100만 원에 육박하니.
이동이 자유롭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마차가 텔레포트보다 가격이 싼 편인데 그렇다고 해도 일반인에게 싼 것은 아니었다.
보통 마차 비용을 지급하는 대신 대부분 대부분은 불편을 감수하고 뛰었다.
그렇게 교통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시청자들은 이곳까지 직접 와주었다.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게 인지상정이었다.
호준은 손님들을 더운 햇볕 아래에서 기다리게 한다는 것이 미안해졌다.
‘시원한 주스라도 줘야겠다.’
그는 대기 손님들의 더위를 식히기 위해 주스 병을 땄다.
쫄 쫄 쫄 쫄
유리잔 20개를 주스로 가득 채우고서 별이에게 부탁해 주스를 차갑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바깥의 손님들에게 시원한 주스를 한 잔씩 돌렸다.
“여기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잠시 기다리시면 순서대로 드실 수 있습니다!”
“뭘 이런 걸 다.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인심이 좋으시네. 잘 먹을게요!”
“와. 감사합니다!”
“아, 시원해!”
손님들은 시원한 주스를 받아들고 방긋 미소지었다.
기분 좋게 주스를 마시는 손님들을 보니 호준도 내심 마음이 편해졌다.
손님들의 밝은 얼굴을 확인하고서 다시 가게로 들어가려는데.
누군가 손을 들며 질문했다.
질문자는 밀짚모자를 쓴 젊은 남자였다.
“사장님, 저는 가게에서 먹고 가지 않아도 괜찮은데 따로 주스만 살 수 있을까요? 급하게 가야 할 데가 있어서 가게에 머무르지는 못할 것 같아요.”
“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30분 뒤에 던전 레이드를 뛰어야 해서 기다리다가는 늦을 것 같은데. 어떻게 포장만이라도 안 될까요? 바로 사 갈 수 있는 메뉴를 사고 싶습니다.”
밀짚모자 사내가 말하자 기다렸다는 듯 다른 손님들도 제 사정을 이야기했다.
음식을 포장해가겠다는 사람이 제법 많았다.
호준은 손님들이 말을 다 끝내고 나자 천천히 입을 열었다.
“포장도 물론 가능합니다만. 음.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아, 네!”
“기다리겠습니다.”
호준은 대답하다가 문득 뭔가가 번뜩 떠올라 말을 멈추고 가게로 들어와 곰곰이 생각했다.
그는 번뜩 떠오른 생각에 살짝 놀라고 있었다.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진작에 그럴걸’
지금까지는 포장 주문의 경우.
일일이 직접 주문을 받고 별이가 직접 음식을 배분해 주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다.
‘가판대에 물건을 올리면 시간을 절약하겠는데.’
이미 가판대라는 편리한 도구가 있지 않은가.
가판대에 물건을 올려놓으면 손님들은 알아서 원하는 물건을 바로 사갈 수 있었다.
‘굳이 손을 들고 목청 높여 주문하지 않아도 되는 거지. 반대로 요정들도 일이 줄어들고.’
즉, 요리를 사가는 경우에는 판매자, 소비자 모두 가판대를 이용하면 편리했다.
호준은 그 즉시 가판대 준비에 들어갔다.
먼저 가판대를 널찍한 가게 내부에 설치하고 주스와 팥빙수를 잔뜩 올려 두었다.
마지막으로 별이, 샤롯, 베티에게 이 사항을 전달했다.
앞으로 손님들이 주스와 팥빙수를 포장을 원하면 가판대를 이용하도록 안내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가판대를 도입한 지 30분이 흘렀다.
가판대 효과가 확연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대기 줄이 거의 없네.’
가게 회전율이 배로 좋아졌다.
포장 주문을 하는 시간이 줄어들어서 테이블이 금방 비었다.
더군다나 빨리 가야 할 일이 있는 급한 손님들은 포장 주문을 했기 때문에 대기 줄도 많이 줄어들었다.
더운 날씨에 밖에 대기하는 손님들이 적어지니 호준은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이제 요정들도 여유 시간이 생겼네.’
게다가 요정들과 직원들도 쉴 시간이 많아졌다.
포장 주문이 업무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이었다.
쩔그럭!
쩔그럭!
가판대 앞에 줄은 금방 사라졌다.
사람들은 가판대 위에 돈을 지급하고 물건을 재깍재깍 사 갔다.
가판대 위에 놓인 골드는 투명하게 변해 가판대에 흡수되었다.
호준이 카운터에 기대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는데.
별이가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호준 님 덕분에 일이 한결 간편해졌어요. 감사합니다.”
“뭘. 다들 열심히 일해주니 고맙기만 할걸. 별이 네가 중심을 잘 잡아줬어.”
“헤헷. 별말씀을요.”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별이의 날개가 기분 좋은 듯 파드득거렸다
다른 요정들도 꾸물꾸물 가까이 다가왔다.
아무, 미르, 토순이, 핑구가 각각 허벅지와 종아리에 매미처럼 달라붙었다.
무슨 원숭이들처럼 다리를 간지럽히며 타고 올라오는데 호준은 간지러워서 혼났다.
“얘들아. 허벅지는 간지러우니까 어깨로 올라와.”
“뀨우우!”
“끼루루!”
“뀨뀨!”
“아무!”
위로 올라오는 허락을 받자마자 녀석들은 경쟁이라도 하듯 후다닥 올라왔다.
맨 먼저 머리 위를 차지한 것은 토순이였다.
토순이는 귀를 쭉 늘려서 올라왔기 때문에 제일 먼저 차지한 것이었다.
나머지 녀석들이 각각 어깨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요정들과 한 덩어리가 되자 바로 앞 테이블에 앉은 손님들이 말을 걸었다.
“사장님. 소환수랑 진짜 친하시네요.”
“그러게. 별로 안 친한 소환사들도 곧잘 있던데. 여기는 분위기가 왠지 따뜻해요.”
“맞아. 눈빛부터가 다른 것 같달까. 서로 신뢰하는 게 느껴져요.”
“그런가요.”
호준은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좋은 아이들을 만난 것 같습니다. 제가 말하는 대로 잘 따라와 주네요”
“사장님이 잘 해주셔서 더 애들이 밝은 것 같아요.”
“겸손하시네요.”
호준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꼼지락거리는 요정들을 살펴보았다.
골 골 골―
오른쪽 어깨에는 핑구와 아무가 서로를 부둥켜안고 단잠을 잤다.
반대쪽에서는 미르가 데굴데굴 구르며 놀고 있었다.
호준은 다들 군말 없이 도와준 것이 고맙고 한편으로 대견했다.
그렇게 여유를 부리는 사이 가게 문 닫을 때가 다가왔다.
가판대에 물건도 거의 떨어져 갔다.
이제 문 닫을 준비를 할 시간이었다.
“별아. 슬슬 문 닫을 준비를 하자.”
“네! 그럼 길 표지판을 회수하러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다녀오렴!”
별이가 표지판을 가지러 바깥으로 쌩하니 날아갔고.
호준은 홀로 남은 요리를 마무리했다.
골드가 얼마나 쌓였을지 궁금하기는 했으나 어차피 가판대에 금액과 합해야 했기 때문에 나중에 한 번에 확인하기로 마음먹었다.
‘많이 쌓이긴 했겠지.’
주스도 팥빙수도 고기 요리들도 동이 났다.
과연 골드가 얼마나 쌓였을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밖에도 다른 희소식이 있었다.
‘퀘스트 달성률도 꽤 올랐잖아.’
호준은 요리를 접시에 담고는 방긋 미소지으며 메시지를 살폈다.
메인 퀘스트 달성률은 벌써 많이 올라 있었다.
【퀘스트 달성률】: 15퍼센트 NEW
【메인 퀘스트 달성률은 100퍼센트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난도가 더 높아집니다.】
【앞으로 더욱 분발해주세요!】
무려 15퍼센트나 올랐다는 소식이었다.
15퍼센트는 절대로 적지 않은 수확이었다.
그러나 아직 안심하기에는 일렀다.
‘앞으로 더 어려워진다는 건가.’
퀘스트 달성률이 갈수록 난도가 높아진다고 하니 계속 분발해야 했다.
‘뭐 어떻게든 하면 되겠지.’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미소짓는 그때.
삐걱.
문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파란 머리에 홍시처럼 달아오른 얼굴이 보였다.
“형, 다녀 왔습니다!”
진수가 생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녀석은 문가에 있던 베티와 샤롯에게 인사하고는 호준에게로 다가왔다.
진수는 오자마자 주머니를 뒤적이며 뭔가를 찾았다.
“어디 있더라. 아…!”
그는 곧 뭔가를 안 주머니에서 꺼내 호준에게 내밀었다.
“형. 이거 심천 99번 약초동굴에서 득템한 씨앗인데요. 왠지 형한테 딱 맞은 것 같아서 가져왔어요!”
그가 건넨 것은 샛노란 황금빛 주머니였다.
“씨앗이라고? 씨앗이면 가격이 꽤 나갈 텐데. 그냥 줘도 괜찮겠어?”
“물론이죠. 형 덕분에 다시 일도 시작했고 등록금 걱정도 덜었는걸요. 이것저것 신세 진 게 많아서 감사해서 드리는 거예요. 아, 그리고 만년삼 씨앗을 가져왔는데 그것도 키워주시면 안 될까요?”
“그래. 그건 원래 있던 약초밭 옆에다 심도록 하자.”
“넵!”
“아, 그리고 진수야. 네가 쓸 약초들은 외양간 안에다가 쌓아두었으니까 가져다 써. 혹시 약 만들 데 없으면 거기서 만들어도 괜찮고. 외양간이 깨끗하기도 하고 소들도 잠자는 중이라 조용할 거야.”
“저 정말요? 그래도 되나요?”
“그럼. 이 더운 날에 어디 가서 만들겠어. 바깥보다는 외양간이 지푸라기도 깔아놔서 시원하고 괜찮을 거야.”
“감사합니다. 형, 저 얼른 약 만들러 갈게요!”
외양간에서 일해도 된다는 말에 진수는 가게 밖으로 달려나갔다.
‘녀석, 기운이 넘치네. 그나저나 이건 뭐지?’
호준은 진수가 덩그러니 남기고 간 주머니를 흘깃 보았다.
누가 봐도 고급스러운 황금빛 주머니.
손에 닿는 감촉은 보드라운 천의 느낌이었다.
‘이건 도대체 뭐지?’
궁금한 마음에 주머니를 펼쳤다.
주머니 속에서 눈부신 황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안에 담겨있는 것은.
황금 씨앗이었다.
씨앗을 본 순간 호준은 당황했다.
눈부시게 빛나는 황금빛 씨앗은.
‘특급 씨앗이라고?’
처음으로 얻은 특급 씨앗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