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3. 핑구
“꾸우우우!”
【낚시의 요정이 당신에게 배를 보이며 친밀함을 보입니다!】
【낚시의 요정이 매력을 발산하고자 포동포동한 배를 어필합니다!】
펭귄이 관심을 달라는 듯 큰 소리로 울었다.
보들보들한 새끼 펭귄이 제 배를 내미는 모습은 귀엽기 짝이 없었다.
‘부드럽네.’
슬쩍 손으로 배를 조물조물 만져 보니 말랑말랑한 인형 같다.
펭귄은 손이 닿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골골대며 몸이 진동했다.
쿵 쿵 쿵 쿵
손바닥으로 느껴지는 펭귄의 심장 소리.
“꾸르르르르…!”
은근슬쩍 배를 내미는 녀석이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그렇게 웃으면서 그는 생각에 잠겼다.
‘음. 요정왕이라고 의심받지 않으려면 대책을 생각해야 해.’
지금까지 소환사라고 둘러대고 있었고, 요정왕이라는 사실을 시청자들에게 들켜서는 안 되었다.
전 세계에서 50명 남짓한 레전더리 직업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날파리가 꼬이겠지. 콩고물을 얻어먹으려는 작자도 있을 테고. 뺏어 먹으려고 하는 날파리도 생길지도.’
가족 일이 아닌 이상, 남이 나보다 잘 나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남의 것을 뺏으려는 자.
은연중에 남이 자기보다 못나기를 바라고 못난 것을 비웃으려는 자.
그런 자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레전더리 직업이라는 사실을 알리면 날파리가 꼬일 확률이 훨씬 높지. 입 다무는 게 속 편하다.’
지금처럼 평화로운 삶을 지키려면 그는 낚시의 요정을 적당히 소환수라고 둘러대야 했다.
‘반응을 살펴보자.’
그는 차분한 표정을 유지하며 채팅창을 살폈다.
수많은 시청자는 펭귄을 목격했다.
그들은 당연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었다.
― 뭐지? 펭귄? 몬스터임?
― 서로 아는 사이 같던데? 저거 봐. 배 내밀면서 애교 부리는 거.
― 와. 다리 완전 짧다. 귀여움…!
― 솜털 좀 봐. 완전 뽀송뽀송 해 보임.
― 쟤도 소환수인가? 스펠 외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 왜 가만히 있음? 답 좀 해주세요!
― 호준 님 얼음 됐다 ㅋㅋㅋㅋ 갑툭튀라 놀라신 듯?
― 뭐지. 말이 없으심.
다들 의문을 표하는 상황.
적절한 해명이 필요했다.
호준은 재빨리 생각에 들어갔다.
‘게임 메시지는 나만 볼 수 있다. 그러니 요정이라는 걸 알 리는 없어.’
미리 게임 메시지를 비공개로 설정했기에 소환수라는 적절한 해명만 하면 되었다.
적절한 해명만이 사람들의 의문을 잠재울 수 있을 테니까.
과연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펭귄을 소환수라고 받아들일 만한 방법이 있을까.
의심받지 않을 만한 방법이.
‘방금 소환했다고 말할까?’
호준은 잠시 그에 대해 생각했으나, 곧 고개를 저었다.
이 방법은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스펠 없이 소환수를 소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였으니까.
‘소환사가 소환수를 소환하려면 입으로 크게 외쳐야만 가능해. 말없이 낚시하는 걸 다 봤을 텐데.’
펭귄은 갑자기 툭 튀어나왔고.
그 전후 상황에서 호준은 조용히 낚싯대를 붙잡고 있었다.
소환사라고 말해놓고 보편적인 소환사와 다르게 행동하면 의심을 사는 것이 당연했다.
‘어설픈 거짓말은 들통나기에 십상이야.’
― 저거 뻥 아니야? 스펠 안 외우고는 소환할 수 없는데?
― 소환사라고 둘러댔지 실제로는 다른 직업인가 봐.
― 역시! 어쩐지 소환수가 많더라? 무슨 직업이에요? 왜 거짓말하심?
― 사실대로 말해요!
― 좋은 직업인가 봐! 그러니까 거짓말하지.
어설픈 거짓말은 이러한 역풍을 맞을 수도 있었다.
그러니 논리적이고, 누구나 이해할 만한 대안이 필요했다.
‘제대로 된 답변이.’
그는 적합한 답변을 찾기 위해 골몰하던 끝에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아이디어가 마치 계시라도 내려진 것처럼 번쩍하고 떠올랐다.
‘이거다.’
호준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이거라면 충분해.’
호준의 눈은 반짝였고 입꼬리는 부드럽게 휘었다.
그는 펭귄을 안아 들고 카메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러분, 이 녀석 때문에 많이들 놀라셨죠?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하하.”
호준이 입을 열자 시청자들이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 아아. 그것보다 걘 누구예요?
― 호준 님 소환수? 스펠 외는 소리 안 들렸는데.
― 소환수는 아니겠지. 스펠을 말하지 않으면 소환수가 나오지 않는다. 이건 상식이잖아요.
― 하긴…….
호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능숙하게 답했다.
“맞습니다. 스펠을 외워야만 소환수가 나타난다. 이건 소환사의 상식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이 녀석은 소환수가 맞습니다.”
― 네? 설마 스펠을 외지 않고도 부르는 게 가능?
― 그런 사례가 있었나?
― 저 소환사만 3번째인데 그런 적 한 번도 없었는데.
― 흠?? 설마 희귀직업인 거 아님?
이전보다 의문이 더 늘어났다.
호준은 씩 웃으며 이전보다 더 자세히 답했다.
“이 녀석은 방송 전에 소환했던 녀석입니다. 그러니 제 소환수가 맞죠.”
― 아아!
― 소환수가 그럼 몇 명이야. 와. 능력자네.
― 소환수 완전 많다…!
감탄 섞인 반응에 고개를 끄덕이며 호준은 덧붙여 말했다.
“요 녀석은 제가 다른 마을로 심부름 보냈었는데. 저 몰래 호수에서 놀고 있었네요.”
― 아아. 그래서 호수에서 나온 거구나.
― 뭐야. 희귀 직업인 줄!
― 희귀직업 아니래도 소환사 높은 레벨인 건 사실임.
― 응. 인정. 소환수랑 궁합도 좋고.
다행히 호준의 답변에 다들 이해하는 분위기였다.
희귀직업이라거나, 소환사가 아니라거나 하는 의심도 사라졌다.
호준은 그것만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이제 질문의 화살표는 펭귄에게로 향했다.
― 아아. 그래서 호수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거구나.
― 그런데 걔는 이름이 뭐예요?
― 펭귄이니까 팽팽이? 그런거 아님?
― 팽팽이는 너무 이상하다. 팽이도 아니고 ㅋㅋㅋㅋㅋ
― 핑구. 핑구 귀엽다!
바르작거리며 꼬물대는 펭귄은 외관만으로도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호준이 고개를 내리자 펭귄은 물기 어린 눈망울로 그를 올려보았다.
호준은 그 눈동자를 보며 물처럼 맑은 눈동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낚시의 요정 신뢰를 얻습니다】
【낚시의 요정이 당신을 올곧이 바라봅니다】
【낚시의 요정의 이름을 지을 수 있습니다!】
‘이름이라.’
호준은 펭귄의 턱 밑을 손가락으로 간지럽히며 이름에 대해 잠시 고민했다.
단순하고 쉽게 기억할 수 있는 그런 이름이 있을까.
생각을 거듭한 끝에 그는 마음에 드는 이름을 택했다.
“이 녀석 이름은 핑구입니다!”
“꾸꾸우우!”
【핑구가 새 이름에 만족합니다!】
【핑구가 당신에게 낚시의 축복을 선사합니다!】
【낚시의 축복 효과로 당신은 앞으로 더 많은 종류의 물고기를 낚을 수 있습니다】
【낚시의 축복 효과로 당신은 앞으로 더 높은 등급의 물고기를 낚을 수 있습니다】
【낚시의 축복 효과로 당신은 앞으로 더 큰 물고기를 낚을 수 있습니다】
【낚시의 축복 효과로 당신은 앞으로 더 빨리 물고기를 낚을 수 있습니다】
【낚시의 축복 효과로 당신은 앞으로 낚시 실패율이 현저히 감소합니다】
【낚시의 축복 효과로 당신은 앞으로 낚시할 때 피로도가 오르지 않습니다】
【낚시의 축복 효과로 당신은 앞으로 낚시할 때 해당 지역의 물고기 현황을 볼 수 있습니다】
낚시의 달인이 될법한 축복을 받았다.
* * *
‘대박이네.’
핑구는 이름을 받자마자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었다.
핑구가 내린 낚시의 축복에는 낚시에 관련한 모든 버프가 집약되어 있었다.
낚시의 축복 효과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1. 잡는 물고기 종류 다양화
2. 물고기 크기 커짐.
3. 물고기 등급 상승
4. 낚시 실패율 감소
5. 낚시할 때 피로도 오르지 않음 → 오래 낚시 가능
이 축복만으로 호준은 오랫동안 훌륭한 품질의 물고기를 낚을 수 있었다.
‘최고네.’
더군다나 축복의 효과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6. 물고기 현황을 미리 볼 수 있음.
그가 호수를 바라보면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물고기 현황판이 오른쪽에 떴다.
【요나스 마을 남쪽 호수】
【가물치】 × 21
【민물장어】 × 13
【송어】 × 32
【민물새우】 × 54
【각시붕어】 × 149
【왕 붕어】 × 9
【보석어】 × 1
【미꾸라지】 × 123
【쏘가리】 × 98
. . .
이처럼 호준은 현황판을 보고 호수에 어떤 물고기가 있는지 한눈에 볼 수 있었다.
‘편리한 능력이네.’
호준은 고마움을 담아 핑구를 꼭 안아주었다.
“뀨뀨!!”
“여러분, 우리 핑구 귀엽죠?”
― 나도 핑구 한 마리만 있으면 좋겠다.
― 펭귄 최고 커엽.
― 핑구 왠지 애교가 많은 듯.
― 저도 한 마리만 분양해주시면 안 됨?
― 부러우면 지는 거다.
‘핑구가 매력 만점이기는 하지.’
호준은 부러움이 가득한 댓글을 향해 미소지었다.
츄릅―
핑구가 목을 핥자 간지러움이 느껴졌다.
호준이 보기에 핑구는 어디 흠잡을 데 없이 사랑스러워 보였다.
아무래도 핑구 덕분에 팔불출 아빠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호준은 핑구를 구름 카메라 가까이 대며 모두에게 인사시켰다.
“핑구야, 카메라 향해 인사!”
“뀨우우!”
핑구가 짧은 날개로 경례 자세를 취하며 힘차게 울었다.
― 핑구야 반가워!
― 여긴 동물 채널인가요?
― 아무래도 동물 육아 채널로 바꾸셔야 할 듯
― 눈 호강이다…! 새끼 펭귄 정말 귀여워!!
― 핑구 최고!
카메라에 핑구가 더 자세히 보여서일까.
멀리서 찍을 때보다 반응이 더 좋았다.
아니, 좋은 정도가 아니라 하트가 쏟아지고 있었다.
【DK유토 님으로부터 하트 24개를 받았습니다!】
【DK유토 님으로부터 메시지 : 핑구 소환하는 법 알려주시면 하트 1,000개 드릴게요! 꼭 말입니다!】
【농사초보자님으로부터 하트 200개를 받았습니다!】
【농사초보자님으로부터 메시지 : 오늘 많이 배워갑니다! 핑구도 안뇨옹!】
【익명의 후원자님으로부터 하트 100개를 받았습니다!】
【익명의 후원자님으로부터 메시지 : 요즘 일하다 우울해서 방송 보기 시작했는데. 호준 님 소환수 보면서 큰 힘 얻어가요. 내일 또 오겠습니다!】
【별이바라기 님으로부터 하트 30개를 받았습니다!】
…….
【누적 하트가 5,000개를 넘어섰습니다!】
【누적 하트가 6,000개를 넘어섰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하트 폭격이었다.
‘방송이 원래 이런 건가?’
방송에 문외한인 호준으로서는 이 상황이 당황스러우면서도.
‘어쨌든 다들 좋아하니까 기분 좋네.’
기분이 좋았다.
누군가는 방송을 보고 위로받았다고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핑구를 보며 즐거워했다.
그 반응을 보는 호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 핑구 좋아요옹!
― 핑구 수영 잘하나요?
― 펭귄은 육식이라던데 과일도 먹나요? 먹이는 뭐로 주심?
하트 폭격이 마무리되자 핑구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음. 핑구는 수영을 잘합니다. 보다시피 물속에서 잘 놀죠!”
“한번 핑구한테 과일을 먹여볼까요?”
호준은 질문을 차근차근 답하고 실제로 시연도 해 보았다.
핑구는 실제로 과일도 야무지게 잘 먹었다.
지금 답하기 어려운 질문은 패스했다.
그렇게 시청자들과 대화를 주고받다 보니 핑구는 무릎에 내려놓게 되었다.
잠시 대화를 마무리하고 고개를 내리니.
쿨 쿨―
녹다운된 핑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지친 모양이네.’
호준은 핑구의 하얀 배를 손바닥으로 어루만져주었다.
잠 잘 자는 핑구를 보니 호준도 수마가 몰려왔다.
‘잠깐만 자도 괜찮겠지 뭐.’
그는 늘 그러했듯, 낮잠을 거부하지 않았다.
호준은 핑구를 눕히고 그 옆에 나란히 누웠다.
양탄자 위에 몸을 눕히자마자 눈꺼풀이 스르륵 내려왔다.
그렇게 옆구리에는 핑구를 붙인 채로 그는 잠에 빠져들었다.
시원한 그늘 밑.
둘은 아기처럼 몸을 동그랗게 만 채로 달콤한 낮잠에 빠져들었다.
마치 부자지간처럼 똑같은 자세로 잠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