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 낚시의 요정
요나스 마을 최남단, 호수 근처는 평소 인적이 드물었다.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할 만한 여유를 가진 플레이어가 많지 않았던 탓이다.
실제로 돈을 벌려는 사람이 많은 유토피아에서 여유가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땡볕을 맞으며 교통비를 벌겠다고 달리는 플레이어에게 주위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있을 리 없었다.
그런 사정 때문에 오늘도 호숫가에는 사람 한 명 없었다.
몹시 고요했다.
호수 위를 맴도는 것은 노란색 어미 오리와 새끼 오리들뿐.
어미 오리는 유유히 호수 면을 헤엄쳤고.
새끼 오리들이 금붕어 똥처럼 그 뒤를 따라갔다.
‘일렬로 헤엄치는 게 조금 귀엽네.’
호준은 오리 가족이 헤엄치는 모습이 제법 귀여워 보였다.
조금 있으니 새끼 오리들이 물을 튀기며 장난을 쳐댔다.
꾸르륵 꾸르륵 우는 오리들을 보니 미소가 절로 나왔다.
그렇게 오리들을 보며 작게 웃은 호준은 호숫가를 빙 둘러 걸었다.
라이브 방송 중이었기에 시청자들도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 우왕 눈 호강 지린다. 여기 어디에요? 평화로운 분위기 정말 좋음.
└ 사람 한 명 없네. 진짜 시골인가.
└ 오리들 귀엽. 왠지 힐링 된다.
└ 이전에 뉴질랜드 놀러 간 적 있는데 거기서 이런 호수 본 기억이 남. 이름은 기억 안 나는데 분위기가 비슷하네. 아, 여행 가고 싶다.
└ 나중에 돈 모아서 꼭 해보고 싶네. 화질 지린다.!
└ 이래서 유토피아 유토피아 하는구나. 돈 아깝다고 생각했는데 관광이라고 생각하면 괜찮은 투자인 듯.
└ 동감. 여기가 웬만한 관광지보다 풍경이 더 멋진데?
호준과 마찬가지로 시청자들도 나름대로 힐링하고 있었다.
어떤 이는 여행 경험담을 늘어놓으며 추억에 잠기기도 했다.
호준은 호수를 간단히 소개했다.
“여기가 요나스 마을 남단에 있는 호숫가입니다. 나중에 시간 나면 한번 놀러들 오세요. 제 농장이랑도 가까우니 한번 들르시면 좋고요. 이제 낚시 장비를 사러 가겠습니다.”
그렇게 말을 마친 호준은 갈 길을 계속해서 걸었다.
지금 그는 낚시 스킬을 가르쳐 준 노인을 만나러 가고 있었다.
별이에 의하면 노인이 낚싯대와 미끼 등 낚시 장비를 판매한다고 했다.
걷다 보니 어느새 저 멀리 졸고 있는 노인이 보였다.
그는 허리를 구부린 채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쿠우우… 쿠우우…….”
그를 깨울까 말까 고민하던 찰나, 노인이 케케켁 하고 숨을 내뱉더니 갑자기 눈을 떴다.
그는 눈을 몇 번 깜박이더니 호준을 바라보며 인자하게 웃었다.
“어. 그러니까 자네 이름이 호준이라고 했던가. 얼마 전에 스킬을 배우고 갔지?”
“예. 맞습니다. 어르신.”
“크흠. 내 이래 봬도 기억력이 아주 좋다네. 자네가 요리 대회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은 들었네. 요리실력이 아주 출중하다고 소문이 자자하더군.”
“아직 미천한 솜씨일 뿐입니다.”
“허허. 겸손한 것도 마음에 쏙 들어. 그래. 오늘은 무슨 일 때문에 왔나?”
“낚시를 제대로 시작해 볼까 합니다. 장비를 사고 싶은데요.”
“장비라. 자네는 초보자이니 내 괜찮은 장비로 추려옴세. 잠시 기다려주겠나?”
“물론입니다.”
“그럼 잠시 다녀오겠네. 크흠!”
노인은 지팡이를 짚고는 허름한 움막으로 향했다.
원뿔 모양의 움막에서 부스럭 소리가 났다.
곧 노인이 낚싯대와 통 하나를 들고 나왔다.
“이건 초보자용 낚싯대일세. 여기 낚싯줄 끝에 미끼를 달고 던지는 거는 알고 있지?”
“네. 그런데 그 통은 뭡니까?”
“하하. 한번 보겠나?”
노인은 능글맞게 웃더니 통의 뚜껑을 열었다.
호준은 통 안을 확인하자마자 신음했다.
“으아! 지렁이가 왜 이렇게 큽니까.”
통 안에는 거대한 지렁이 수백 마리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손가락 세 개를 합한 크기의 지렁이.
바로 앞에서 보니 상상 이상으로 징그러웠다.
고개를 홱 돌리자 채팅창이 보였는데 시청자들도 아주 난리였다.
└ 아 벌레 극히 혐오함. 우욱. 할배 갑자기 훅 들어오네. 미리 경고라도 조금 하지.
└ 아, 눈 버림. 지렁이 안 본 눈 사요.
다행히 그 뒤로 들려오는 노인의 말은 희망적이었다.
“허허, 자네도 많이 놀랐구먼. 다들 반응이 비슷하네. 허허. 이 오동통한 녀석은 대왕 지렁이일세. 대왕 지렁이를 미끼로 쓰면 더 크고 훌륭한 물고기를 잡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자네가 직접 만질 필요는 없으니 걱정하지 말게.”
“네? 제가 미끼를 만질 필요가 없다는 말인가요?”
“물론이지. 자 이걸 보게.”
노인은 직접 시범을 보여주었다.
그가 가르쳐 주는 것을 보고 나니, 왜 미끼를 만지지 않아도 되는지 이해가 됐다.
“그러니까 미끼통을 호환하도록 설정하면 되는 거네요.”
“맞네. 허허. 간단하지.”
“그러면 미끼통은 왜 보여주셨습니까. 굳이…….”
“허허. 놀라는 모습 보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그만. 노인네의 짓궂은 장난이니 잊어주게. 하하.”
노인이 알려준 미끼통을 사용하는 법은 간단했다.
인벤토리를 켜 대왕 지렁이 미끼통을 클릭하고 낚싯대에 호환하도록 설정한다.
그러면 그 호환된 낚싯대로 낚시할 때마다 미끼가 알아서 줄 끝에 달리는 것이다.
그러니 미끼를 만질 일은 전혀 없었다.
노인은 소박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자네 말고도 많은 이들이 미끼 만지는 걸 걱정하더군.”
“이 대왕 지렁이 미끼가 제일 좋은 겁니까?”
“자네 낚시 스킬 정도면 대왕 지렁이가 적절한 수준일세. 나중에 더 좋은 미끼도 쓸 수 있으니 열심히 낚시기술을 단련해 보게.”
“그렇군요.”
“그리고 이 통에는 100개의 미끼가 있으니까 여러 개 사면 당분간 넉넉하게 쓸 수 있을 걸세.”
노인으로부터 모든 설명을 듣고서 호준은 뭘 구매할지 결정했다.
그는 낚싯대와 대왕 지렁이 통 10개를 주문했다.
노인이 어깨를 덩실거리며 가격을 말했다.
“다 합하면 3,000골드일세. 한 번에 많이 사주었으니 특별히 500골드 할인해줌세.”
“감사합니다. 어르신. 여기 3,000골드하고. 이건 이전 대회에서 우승한 그 팥빙수입니다. 한번 드셔보세요. 오늘 친절하게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허허, 뭘 이런 걸다. 잘 먹겠네. 호준 군.”
【노인이 당신에게 느끼는 호감도가 대폭 상승했습니다!】
호준은 할아버지에게 깍듯이 인사하고 홀랑홀랑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낚시하러 가면서 다 같이 물놀이를 하자고 말할 생각이었다.
부지런히 걸어가는데 딸기밭 덤불 바깥으로 초록색 꼬리가 튀어나온 것이 보였다.
“어. 저기 미르 같은데. 뭐 하는 거지?”
호준은 갸웃하며 그쪽으로 걸어갔다.
└ 꼬리만 보임. 덤불에 들어가서 자나?
└ 잠 자는 듯. 어려 보이던데 잠이 많은 거 아닐까?
└ 그런데 용이 잠자면서 꼬리가 움직이나? 엉덩이도 살짝살짝 움직이는데?
시청자들 말처럼 호준이 보기에도 미르는 뭔가를 덤불 속에서 하는 중이었다.
바깥으로 튀어나온 통통한 엉덩이와 꼬리가 푸들푸들 떨렸다.
설마 울기라도 하는 걸까.
너무 일을 시켜서?
‘설마…? 힘들어서 그런가?’
호준은 조심조심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엉덩이를 톡톡 두드리며 미르를 불렀다.
“미르야!”
“끼룩 억 윽!”
미르가 숨을 캑 들이켜며 놀란 얼굴로 고개를 돌리다가 고개가 꺾여버렸다.
몸을 가누지 못한 미르가 데구루루 굴러 호준의 정강이에 부딪혔다.
“끼륵 륵”
호준은 미르를 보자마자 단숨에 알 수 있었다.
미르가 덤불에서 뭘 하고 있었는지를.
새콤한 산딸기 향이 코끝을 찔렀다.
입 주변이 붉은 산딸기 물로 범벅이 됐다.
아무래도 미르가 배고파서 산딸기를 먹은 모양이었다.
└ 웬일이야. 배고팠나 봄. 얼마나 배고팠으면 숨어서 먹냐.
└ 밥 좀 많이 주세염. 숨어서 먹다닝. 애잔.
└ 딸기 서리냐 ㅋㅋㅋㅋㅋ
미르가 입가를 발로 닦다가 수습 불가라는 걸 인지했는지 강아지 눈으로 정강이를 부둥켜 안았다.
그리고는 가녀리게 울었다.
“끼루루! 끼루끼루루….”
【미르가 산딸기 100개를 수확하니 너무 배가 고파져서 한 개를 먹었다고 고백합니다!】
【미르가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산딸기를 먹어 미안하다고 울부짖습니다!】
【미르가 당신에게 미안함을 느낍니다!】
호준은 메시지를 보고 도리어 미르에게 미안해졌다.
요정왕이랍시고 요정들을 부리는데 배고픈 것도 모르고 일을 시켰다니.
불과 얼마 전에 치킨을 먹였기에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그걸로는 많이 부족했던 모양이었다.
‘100개 수확하고서 1개 먹었다는데 뭐라고 할 리가.’
호준은 미르의 발을 풀게 하고 드래곤 푸르트 5개를 주었다.
그리고 부드럽게 타일렀다.
“미르야. 배고프면 일하다가 과일 따 먹어도 돼. 먹고 싶은 대로 먹어. 당당하게 먹어. 알았지?”
“끼루루?”
【미르가 정말 먹어도 되냐고 묻습니다】
“물론이지. 성장기니까 많이 먹어야지.”
“끼루루!!!”
【미르가 꼬리를 살랑거리며 기쁨을 표합니다!】
【미르가 당신에게 느끼는 애정이 급상승합니다!】
“미르야. 얼른 가서 다른 친구들 불러올래? 다 같이 호숫가에서 쉬자고 전해주면 돼.”
“끼루루!”
미르는 힘차게 울부짖으며 네 발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 미르 강아지 표정 캡처성공. 후후후.
└ 미르 잘 좀 먹여주세요. 서리 안 하게. 크크
└ 미르 같은 용 한 마리 키우고 싶다.
└ 용 키우면 나중에 성장하나요? 드래곤 라이더 되는 거?
└ 미르 왠지 착해 보임. 혼나는 어린아이 같음.
미르도 잘 알아들은 듯해 호준은 기분이 나아졌다.
이어지는 미르에 관한 질문에 답하며 호준은 호숫가 바위로 다가갔다.
넓적한 바위에다 낚싯대를 설치하는 그의 가슴이 쿵쿵 뛰었다.
* * *
‘이렇게 하면 된단 말이지.’
호준은 노인이 가르쳐 준 대로 낚싯대를 드리운 채 잠시 기다렸다.
그러자 곧이어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낚싯대 위로 느낌표 표시가 떴다.
그리고 손끝으로 물고기가 저항하는 느낌이 왔다.
지금이 줄을 당겨야 하는 때임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시청자도 빨리 줄을 감으라고 아우성치었다.
└ 벌써 잡은 것임? 개 빠르다!
└ 입질이 온 거 같아요! 어서 감으세요!
└ 고! 지금 감아요!
호준은 릴을 휭휭 소리가 나도록 빠르게 감았다.
물론 미끼를 문 물고기도 만만치 않게 저항했다.
낚싯대가 휘어지면서 줄이 팽팽해졌다.
그러나 호준도 물고기 만만찮게 집요했기에 릴을 더욱 빨리 감았다.
한 차례 밀고 당기기가 오가며 수면이 출렁거렸다.
츄악!
마침내 패자가 결정되었다.
거대한 물고기가 물살을 가르고 튀어나왔다.
대롱대롱 올라온 물고기는 누가 봐도 월척이었다.
└ 와아. 크기 대박. 장난 아니네.
└ 처음 잡는 거라고 하지 않으심? 왜냥 커?
└ 저거 버둥대는 것 봐. 힘 장난 아니네.
【가물치 60cm (6급) 낚시에 성공했습니다!】
【요정왕 특전 효과로 낚시 경험치가 2배 증가했습니다】
【낚시 스킬을 레벨업했습니다!】
“와! 월척이네요!”
“이야. 크기가 아주 실하네. 요거 회 뜨면 양이 장난 아니겠는데? 우리 다 같이 먹어도 배부를 듯”
“그러게. 회덮밥 해도 괜찮을 거 같아. 호준! 안 그래?”
식욕이 넘치는 별이, 베티, 샤롯은 입맛을 다시며 가물치 주위로 달려들었다.
“그러네. 회덮밥 좋지.”
호준은 샤롯의 말을 받으며 가물치 곁에서 그 상태를 살폈다.
가물치는 숨을 쉬기 위해 뻐금거리다가 동작을 멈추고는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가물치에 손을 갖다 대자 인벤토리에 쏙 들어가 버렸다.
낚시에 대한 감이 잡히자 호준은 낚시 삼매경에 푹 빠졌다.
└ 낚시 완전 쉽다. 그래서 더 개꿀인 듯. 던지는 족족 잡히잖아?
└ 그러게. 호준 님 입꼬리 올라감 ㅋㅋㅋ 나도 낚시 한번 해볼까?
└ 호준 님 매운탕 어때요? 고추장도 있겠다. 매운탕 ㄱㄱ
└ 매운탕 좋다아!
“매운탕. 나중에 한번 꼭 해봐야겠네요.”
시청자들의 반응에 적당히 호응하며 호준은 낚시를 즐겼다.
【쏘가리 40cm (5급) 낚시에 성공했습니다!】
【산천어 30cm (7급) 낚시에 성공했습니다!】
【미꾸라지 70cm (6급) 낚시에 성공했습니다!】
【낚시 스킬을 레벨업했습니다!】
갈수록 인벤토리에 물고기가 쌓여갔다.
호준이 낚시에 푹 빠졌을 때, 요정들은 물놀이에 푹 빠져있었다.
“간다아아!”
촤아아악!
샤롯은 빠른 속도로 물 위를 수영하다가 물속 깊이 잠수했다.
그리고 수면 위로 높이 점프하더니 공중에서 회전했다.
인어 한 마리가 공중 5회전하는 건 마치 서커스 묘기를 보는 것 같았다.
“꾸루루루!”
“꺄아아!”
샤롯은 혼자가 아니었다.
샤롯의 등에는 요정들이 새까맣게 매달려 까르르 웃고 있었다.
그들은 샤롯의 지느러미를 꼭 부여잡은 상태였다.
신나게 노는 요정들을 보니 호준은 왠지 대리만족이 되었다.
└ 캬아. 놀이공원이냐. 워터파크가 따로 없네.
└ 그러게. 놀고 싶다. 나도.
└ 나도 소환수처럼 샤롯 등에 타고 싶은데. 내가 타면 무거워서 헤엄 못 치려나.
사람들도 전반적으로 만족하는 분위기였다.
촤아아악!
샤롯이 다시 물속 깊이 잠수하자 호숫가는 다시 조용해졌다.
그의 옆에서 베티와 메이가 서로를 껴안고 잠자느라 쌕쌕거리는 숨소리만 들렸다.
‘뭐 안 잡히려나. 슬슬 잡힐 때가 됐는데.’
호준은 다시 낚싯대에 느낌표를 확인하며 가만히 앉아있는데.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났다.
푸르륵!
물속에서 거품이 일어났다.
그러더니 거품 속에서 새하얀 뭔가가 튀어나왔다.
그 하얀 것은 정확히 그를 향해 돌진했다.
【낚시의 요정이 나타났습니다!】
일명 낚시의 요정은 비호같이 날아와 호준의 가슴에 안겼다.
“꾸꾸!!!”
‘이건…!’
새하얀 솜털.
보들보들하고 작은 그 녀석은 남극의 재롱둥이, 펭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