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 익명의 후원자
“하트와 구독 감사합니다. 여러분,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든 요리가 완성되고 나자, 호준은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며 종료를 고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도 있지만, 너무 길게 방송하면 루즈해지는 감도 있었다.
방송이 길었던 것도 같고, 다른 방송들은 어떤지 한번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채팅창을 살펴보니 더 방송해달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 아아. 더 해주심 안되나여어어!
└ 호준형님, 오늘 많이 배우고 갑니다! 어릴때 농사짓던 아버지가 생각나서 보는 내내 흐뭇했어요. 마음을 담아 하트 100개 보냅니다! 매일 방송한다고 하셨는데 다음에는 목축 기본 강좌도 부탁드립니다!
└ 히잉. 가시는군요.! 막간에 별이 한번만… 날개도 좋아염!
“그럼 내일 방송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인사를 마친 호준은 검지로 구름을 두 번 두드렸다.
하얀 구름이 검게 변하며 종료 메시지가 떴다.
【방송이 종료되었습니다!】
【누적 하트 1,342개를 얻었습니다】
【구독자 숫자가 0명에서 21,342명으로 증가했습니다!】
【1,342개의 하트는 1,342 골드 또는 호준 님이 거주 중인 대한민국의 화폐, 134만 2천 원으로 전환 가능합니다!】
첫 방송으로 구독자가 무려 2만 명이나 늘었고 하트도 1,342개나 되었다.
하트를 따지자면 130만 원이나 되니.
단시간에 벌은 액수치고는 놀라운 수준이었다.
‘방송 내용이 별거 없었는데. 이런 방송을 아무도 안 하나?’
방송 내용으로는 요정과 직원을 소개하고 농장을 한 바퀴 돌고.
닭이랑 소 소개하고, 키우는 방법 대강 설명하고.
농사와 목축에 기본 설명과 요리를 한 것까지 추가되었다.
아무래도 다른 방송을 살펴봐야, 후원금이 많은지 적은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1시간 남짓한 시간에 돈을 많이 벌인 것이니 결과는 나쁘지 않아 보였다.
‘후원금도 꽤 들어오는구나.’
후원금 하트가 많이 들어온 건 의외였다.
후한 기부가 쏟아지니, 다들 회사 그만두는 이유가 납득이 갔다.
‘첫 방으로 시급 130만 원이니. 말 다 했지.’
노동의 가치가 퇴색되고.
게임의 가치가 높아지는 시대가 시작되고 있었다.
노동의 시대가 가고 게임의 시대가 펼쳐지고 있었다.
잠시 의자에 앉아 생각해보니 유토피아 게임방송은 돈 벌 구석이 많아 보였다.
‘자동 번역 때문에 시청자가 많지.’
유토피아 게임방송은 기본적으로 자동 번역을 제공했다.
자동 번역 시스템은 타국어를 실시간으로 자동 번역 해주는 시스템이었다.
이 덕분에 전 세계 플레이어가 자국어가 아닌 영상을 언어의 제한 없이 얼마든지 볼 수 있었다.
‘아까 중국과 미국 유저들도 많이 들어왔지.’
군데군데 영어와 중국어도 본 기억이 났다.
이처럼 전 세계 20억 유토피아 플레이어들이 언어의 굴레에서 벗어나 영상을 자유롭게 소비하는 것이다.
즉, 영상 운영자들이 시청자들을 사로잡기 위해 매력 어필을 하면 큰 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방송에도 빛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둠도 존재했다.
【야해야해 채널이 전연령으로 연령대를 설정하고서, 청소년이 관람하기에 부적절한 행위를 한 바, 운영진의 결정으로 채널을 강제 종료합니다】
【야해야해 채널을 운영하는 yaheyo1323님은 30일간 게임 접속이 불가능합니다】
【야해야해 채널 적발 사진 – (모자이크 처리됨)】
【방송 채널 운영자에게 알립니다. 유토피아 방송은 연령대를 반드시 적절하게 설정해야 합니다. 성인을 위한 채널 / 전연령을 위한 채널. 정확히 구분하여 운영하시기 바랍니다! 운영 규칙을 어길 경우의 불이익은 모두 운영자 본인이 감수해야 함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야해야해 채널을 운영하는 yaheyo1323님의 사례는 적발 사례로 30일간 홈페이지에 공개됨을 알립니다!】
【부적절 행위가 2번 연속 적발되면 게임 접속이 6개월간 정지됩니다】
【부적절 행위가 총 5번 적발될 경우, 1년간 게임 접속이 정지됨을 알립니다】
‘역시. 하지 말라는 걸 하는 사람이 있을 줄 알았어.’
전체 알림의 내용은 수위가 지나친 방송 운영자들이 제거되었다는 것이었다.
저렇게 어딜 가나 하지 말라고 해도 하는 사람이 존재했다.
수위를 어긴 방송 운영자들이 규정을 어긴 대가는 컸다.
아이디가 만천하에 공개되고 게임 정지를 당하고.
전체 공지를 내보내는 것은 다른 운영자들에게 수위를 지키라고 확실히 인식시키기 위함이었다.
‘게임 정지 안 당하려면 다들 조심하는 분위기겠군.’
게임으로 먹고사는 사람에게 게임 정지는, 굶으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유토피아 운영진이 게임 정지 카드를 꺼내 든 것은 얼마나 강력하게 방송을 관리하려는지 그 의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대로 유토피아 방송이 잘 관리되어 문제가 없다면.
‘시장이 훨씬 커지겠지. 커지기 전에 선점하면 대박이다.’
호준은 한번 다른 방송은 어떤지 조사해보기로 마음먹고 영상뷰어 어플을 켰다.
먼저 농사와 요리 키워드를 클릭.
해당 분야 영상을 인기순으로 나열하자 최상위에 요정의 쉼터 채널이 존재했다.
【요정의 쉼터 /농사/요리/제작/목축/소환수 다수 등장! (오늘의 주목받는 채널!)】
그의 채널은 농사 분야 구독자 숫자와 하트에서 탑이었다.
‘농사 분야에서 반응이 괜찮다는 거구나.’
자만하는 것은 아니지만 입꼬리가 슬금슬금 올라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채널을 클릭하니 오늘 찍은 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방송을 끝냈음에도 1,323명이 여전히 영상을 시청하고 있었다.
뿌듯한 마음에 채널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엑스표를 눌러 닫았다.
그리고서 아래 순위로 뜨는 채널을 살펴보았다.
【찡찡이의 농사 체험기. 농사 어렵지 않아요 농사/왕초보/시작/비기너/메틸마을】
【구독자】: 1,239명
【누적 하트】: 190개
【현재 방송 중】
찡찡이 채널에서는 검은 머리의 건장한 남자가 밭에 씨를 뿌리고 있었다.
그는 혼자서 이리저리 뛰며 과일을 수확하고 힘들게 일하고 있었다.
“하아 하아. 여러분 힘들어서 숨을 이렇게 쉬는 게 아닙니다. 하하. 농부 하려면 이 정도 뛰는 건 기본이죠! 하하하!”
호준은 우렁차게 웃으면서도 지친 기색을 보이는 남자를 보며 왠지 마음이 짠했다.
채팅창도 그와 마찬가지로 안타깝다는 반응이었다.
└ 지못미… 힘내세여
└ 찡찡님. 물이라도 드세요. 댄스추시면 10하트 더 드림.
(묭 님이 1하트를 후원했습니다.)
“우와아아! 하트 감사합니다! 묭 님을 위해서라면 당연히 댄스 추고 말고요. 찡찡이 댄스 갑니돠아!”
잠시 뒤 하트에 행복해하는 근육질 남자의 격렬한 막춤이 이어졌다.
자칭 180에 근육남 찡찡이는 팔다리를 마구 흔들다가 실수인지 의도인지 모르게 넘어지면서 몸개그를 보이는 데 성공.
결국 10 하트를 벌고 힘차게 소리쳤다.
“감사합니다! 추가 댄스 갈게요오옹!”
호준은 울라울라 춤을 추는 찡찡이를 더 이상 보지 않고 채널을 빠져나왔다.
아무래도 하트가 나오면 계속 춤을 출 분위기였기 때문에 농사 채널이라는 말이 무색했다.
그다음 살펴본 영상은 요리 키워드로 검색해서 발견한, 요리왕 비뇨옹이라는 채널이었다.
【요리왕 비뇨오옹! ― 요리/수도요리사/요리사견습생/성장/먼치킨이 되고싶은 비글】
【구독자】: 4,890명
【누적 하트】: 790개
【현재 방송 중】
‘비뇽이라. 그 만화 패러디인가?’
들어가 보니 운영자는 채팅창은 아예 켜놓지 않고 일만 한다고 배너를 띄워두었다.
운영자 비뇽은 20대 초반 마른 몸매의 남자였다.
‘저런. 혼나는 건가.’
호준이 들어가자마자 본 장면은 비뇽이 구박받는 장면이었다.
분위기는 상당히 심각했는데 우락부락한 노란 머리 상사가 눈을 부라리며 비뇽에게 삿대질했다.
“이게 요리야 뭐야. 어? 이딴 걸 요리랍시고 만들어? 누구 욕먹게 할 일 있어? 이거 봐. 니가 처먹어보란 말야. 이 새까만 자국. 탄 자국 어쩔 거야. 어엉?”
상사가 볶음밥 같은 게 들어있는 프라이팬을 들이밀며 어깨를 툭툭 쳤다.
비뇽은 어깨를 더욱 움츠리며 그렇게 요리를 한 이유를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요리가 처음이라서요. 정말 죄송합니다.”
“더 이상 변명 필요 없고. 오늘부로 그만둬. 아무리 처음 요리하는 거라고 해도 요리를 태우는 사람하고는 난 일을 못 한다. 요리장님도 그렇지. 이딴 수준 떨어지는 녀석을 가게에 들이면 어쩌자는 거야.”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시정은 무슨. 너 오늘 프라이팬 잡지 말고 양파나 깎아. 저기 있는 양파 다 다듬을 때까지 쉬지 말라고오! 알았어엉!”
호준은 상사가 손으로 가리키는 양파 더미를 보고 깜짝 놀랐다.
‘말도 안 돼. 저걸 어떻게 다 다듬어? 손에 모터 달지 않는 한 하루종일 해야 할 텐데?’
양파가 족히 수백 개는 쌓여있었다.
양파를 깎으려면 눈은 또 얼마나 매울 것인가.
비뇽의 고생길이 안 봐도 훤했다.
장면을 보는 내내 케이블 채널에서 했던 고졸 신입이 대기업 들어가서 구박받는 드라마가 생각났다.
시청자들도 그와 마찬가지로 안타깝다는 반응 일색이었다.
└ 아아. 불쌍해. 처음 요리한 건데 실수했다고 저러냐. 진짜 나쁜놈이다.
└ 비뇽 힘내애 ㅠㅠ
(송송님이 10하트를 후원했습니다!)
└ 나쁜 자식. 양파 어떻게 우리가 도와주러 가면 안ㅤ됨?
└ 안돼, 그러면 괜히 도와줬다고 불똥 튈 듯.
비뇽의 채널에서는 마치 드라마를 단체로 관람하는 기분이 들었다.
비뇽은 멱살이 잡힌 채로 양파 더미 앞으로 끌려가면서 상사에게 항의했다.
“저, 저걸 어떻게 다아… 제 접속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아요.”
“시간 핑계는. 왜 못하겠어? 못 하겠으면 네 발로 나가던가. 주방장님이 너를 들여보내라고 했지만, 너 말고도 일할 사람 많아! 우리 레스토랑에 너 없어도 아무 상관없다고!”
“아닙니다. 하겠습니다. 제가 다 할 테니까 두고 봐 주세요!”
비뇽이 뒤에서 잔소리하는 상사를 무시하고 칼을 들고 양파 더미 앞에 철퍼덕 앉았다.
마치 그는 양파를 죽이기로 할 듯한 표정으로 양파를 다듬기 시작했다.
상사가 그런 비뇽의 뒤통수에서 이를 갈며 이죽거렸다.
“흥, 이 레스토랑에서 일한 경력으로 궁중 요리사가 될 생각인가 본데. 꿈 깨라고. 너 같은 녀석이 궁중 요리사 되려면 하늘에 별이 떨어지는 걸 붙잡는 운이 있어야 가능할 테니까. 이딴 건 또 뭐야. 에잇!”
뎅그랑!
상사가 바닥의 냄비를 걷어차며 주방을 빠져나갔다.
주방에 혼자 남은 비뇽이 해맑게 웃으며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여러분, 저 새끼가 조금 진상이어도 저는 괜찮습니다. 여기서 퀘스트에 성공하면, 나중에 궁중 요리사 루트를 탈 수 있거든요! 지금은 구박받지만, 나중에 이무기가 용이 되듯 꼭 더 좋은 곳으로 갈 거예요! 하하. 괜찮다니까요? 아, 눈에 먼지가 들어갔네요. 하하하. 이건 먼지가 들어가서 우는 거지 제가 울고 싶어서 우는 게 아니에여.”
그 뒤로는 비뇽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바닥에 쭈그려 앉아 양파를 다듬는 장면이 이어졌다.
뭔가 마음이 짠해져서 호준은 10하트를 보내고 채널을 빠져나왔다.
【요리왕 비뇽 채널을 구독했습니다!】
물론 비뇽 채널을 구독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중에 비뇽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보는 재미가 있을 것 같았다.
그밖에도 다른 영상을 살펴보았다.
다른 채널들은 요리왕 비뇽만큼의 임팩트가 없었다.
“하트 주시면 어떻게 폭렙하는지 비법 알려드립니다! 개인 메시지로 꼭 보내드릴 거에요! 제 아이디 까고 하는 거니까 절대 거짓말 아닙니다! 여러분! 믿으셔야 돼요!”
“10하트 쏴주신 소옹 님을 위해 노래 부릅니다아아! 송송송송송 아 최고 아예에에! 제 마음을 받아주세요오오!”
보다시피 대부분의 영상은 하트를 구걸하는 영상이었다.
비법 알려준다면서 하트를 대놓고 요구하는 사기 같은 것도 종종 보였다.
첫날이다 보니 운영자들이 방송 진행이 미숙한 점도 보였다.
적당히 영상 감상을 마친 호준은 결정했다.
앞으로 농사, 목축, 요리의 경험담을 나누는 방송으로 방향을 정한 것이다.
‘내가 경험한 정보를 알려주고, 나머지는 놀고먹는 방송으로 하자.’
해당 분야에 경험이 많으니 그 경험을 살리자고 생각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수천의 작물을 키우고 요리 장사를 하는 경험은 나눌 가치가 있었다.
방송을 보느라 들뜬 마음을 가라앉힌 그는 치킨을 만들고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부터는 간장 치킨, 머스터드 치킨, 고추장 양념치킨도 메뉴에 올릴 셈이었으니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카운터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가는 그의 눈앞에 예기치 못한 메시지가 떴다.
【익명의 후원자로부터 하트 2,004개를 받았습니다!】
【누적 하트는 3,346개입니다】
【후원자가 보내온 메시지입니다】
【방송 잘 보고 있습니다. 농사랑 요리 하시던데, 낚시도 하시나염? 다음에는 낚시도 보고 싶어여!】
‘아, 낚시의 요정이 있었지.’
후원자 덕분에 돈도 벌고 방송 거리도 발견했다.
호준은 그 즉시 낚시를 하러 호숫가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