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7. 방송 업데이트
“역시 재료 추가가 답이구나.”
호준은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포크를 테이블 위에 놓았다.
테이블에서 톡 쏘는 매콤한 향이 올라왔다.
매콤함은 입안에도 남아있었다.
호준은 입맛을 살짝 다시며 치킨을 바라보았다.
고추장 양념치킨(특10급).
기존에 일반 등급 1급이었던 치킨이 고추장 소스를 추가함으로써 특급으로 업그레이드했다.
단지 등급만 올라간 것이 아니었다.
맛도 훨씬 훌륭해져서 머리에 깊이 각인되었다.
‘계속 먹고 싶네.’
고추장 양념치킨은 매력적인 맛이었다.
씹으면 씹을수록 매콤한 맛이 입에 감돌았으니까.
매콤한 맛이 입맛에 딱 맞았다.
더군다나 매콤한 맛 외에도 장점이 많았다.
바삭함이 끝내줬다.
양념치킨이라 하면 꾸덕꾸덕한 양념이 겉에 묻을 텐데 이 양념치킨은 달랐다.
매운맛 프라이드 치킨 같달까.
고기 자체에서 매운맛이 날 뿐, 바삭함은 그대로 살아있었다.
‘양념이 깊게 배어있어. 거기다 육질도 아주 부드럽고.’
바삭함이 살아있는 이유는 요리 과정에서 양념을 고기에 완전히 흡수시켰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양념을 바르지 않아도 양념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호준은 궁금증이 생겼다.
‘다른 소스로 치킨을 만들면 무슨 맛일까.’
남은 소스는 간장, 된장, 겨자 소스였다.
퀘스트를 깨려면 각각 10개씩 만들어야 했다.
‘다른 맛도 기대되네.’
호준은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믹서기를 향해 다가갔다.
믹서기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간장 열매를 통 안에 집어넣었다.
투둥 퉁퉁퉁
【간장 열매 10개를 투입했습니다!】
“원액 추출 모드로 고정한다!”
【모드 설정을 완료했습니다!】
【작동을 시작합니다!】
믹서기가 작동을 시작하자 열매가 산산 조각나기 시작했다.
그그그그극 츄와아압
호준은 믹서기 옆에 앉고 다음 열매를 꺼냈다.
열매 별로 10개씩 모으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그를 끌어안았다.
허리를 살살 간지럽히는 갈색 귀를 보고 호준은 피식 웃었다.
“어어? 누구지?”
“뀨우우우!”
【토순이가 목소리를 듣고 모른다며 서운해합니다!】
호준은 토순이의 반응이 궁금해서 일부러 모른척했다.
“아, 누구지. 모르겠는데.”
“뀨우우우!”
“음. 생각 나려고 하는데. 으음.”
“뀨우우우!”
“아, 맞다. 토순이구나?”
호준은 뒤로 돌아 환하게 웃으며 토순이를 반겼다.
“뀨우우!”
【토순이가 당신에게 애정을 느낍니다!】
토순이는 허리춤을 한층 더 꽉 안으며 몸을 비비적댔다.
녀석이 몸을 비비적댈 때마다 허리춤이 따뜻해졌다.
“어디서 이렇게 이쁜 짓 하라고 배웠어?”
“뀨우우우!”
호준은 토순이의 귀 사이를 쓰다듬어주었다.
토순이가 헤벌쭉 웃으며 귀를 프로펠러처럼 돌렸다.
귀를 바람개비처럼 돌리는 것은 기분 좋을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토순이는 몸을 기어올라 어깨 위에 안착했다.
“뀨우우!”
【토순이가 수확할 과일이 없어서 심심함을 느낍니다】
【토순이가 더 시킬 일은 없냐고 묻습니다】
“음. 일이야 많지!”
일이야 만들면 됐다.
호준은 토순이를 데리고 일어나 믹서기로 다가갔다.
“토순아 잘 봐! 소스 만드는 법 가르쳐 줄게.”
호준은 토순이에게 소스 만드는 법을 전수해 주었다.
토순이는 스펀지처럼 교육내용을 흡수하더니 완벽히 소스를 만들어냈다.
“그럼, 토순아 부탁한다! 너만 믿을게.”
“뀨우우우!”
【토순이가 자기만 믿으라며 귀를 팡팡 내리칩니다】
【토순이가 신뢰받는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호준은 그렇게 소스 만들기를 토순이에게 넘기고 마을로 향했다.
새 씨앗을 살 생각에 그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 * *
딸랑
“어서 오세요! 어머, 호준 님, 오랜만이에요!”
책장을 정리하던 제나가 해맑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호준도 부드럽게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제나 님.”
“왠지 표정에서 여유가 넘치네요. 처음보다 얼굴이 더 환해진 것 같아요.”
“그런가요?”
“뭐 좋은 게 좋은 거죠 하하. 오늘은 어떤 씨앗을 보여드리면 될까요?”
“씨앗을 전부 다 보여주십시오.”
“그럼 종류별로 다 가져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그녀가 씨앗을 준비하는 동안 호준은 손님용 의자에 앉아서 기다렸다.
앉아서 잠시 생각해보니 제나의 말대로 마음이 여유로워진 것 같았다.
유토피아에서 쉬고 놀고먹는 것에 점점 익숙해졌기 때문인 듯싶었다.
부스럭 부스럭 쾅 쾅
옥탑방에 올라간 제나가 뭔가를 뒤적이는 소리가 났다.
호준은 그녀가 준비하는 동안 앞으로 할 요리를 생각해보았다.
‘튀김기가 있으니까. 그걸로 양파 튀김? 감자튀김. 아, 야채튀김을 만들어도 괜찮겠다. 고구마튀김도 맛있겠는데. 유제품 제조기로는 치즈나 버터도 만들고. 오븐도 있었지? 오븐으로 치즈 바게트를 만들어보는 것도.’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메뉴가 너무나 다양해서 제나가 제시하는 씨앗을 본 다음, 요리 메뉴를 결정하기로 했다.
곧 제나가 쟁반 가득 씨앗을 들고 돌아왔다.
“많이 기다리셨죠? 종류별로 하나씩 가져왔어요! 편하게 보세요!”
“네, 그럼….”
호준은 제나가 바닥에 펼친 씨앗들을 관찰했다.
그중에서 몇 가지를 선택했다.
“감자, 양파, 고구마, 물렁물렁 복숭아, 양배추, 옥수수. 이것들을 각각 30개씩 사겠습니다.”
고른 데는 제각기 이유가 있었다.
감자, 양파, 고구마로는 튀김을 만들고.
양배추로 나중에 마요네즈를 곁들여 양배추 샐러드를 해 먹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옥수수는 그대로 구워 먹어도 훌륭하고.
나중에 만들 치즈를 그 위에 곁들이면 콘치즈 완성.
‘맛있겠네.’
콘치즈 맛을 상상하니 입에 침이 고였다.
마지막으로 물렁물렁 복숭아를 추가한 이유는, 좋아하는 과일이기 때문이었다.
마트에서 물렁물렁한 황도는 구하기 힘들고 비쌌다.
냉장고에서 갓 꺼낸 시원한 황도를 입에 넣으면.
‘입에서 살살 녹지.’
황도 맛도 무척이나 기대됐다.
호준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제나의 답을 기다렸다.
제나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되물었다.
“저, 물렁물렁 복숭아는 1급 과일이라. 가격이 꽤 비쌉니다.”
“개당 얼마죠?”
“500골드입니다. 1급 과일이면 그 자체만으로 훌륭하지만. 가격이 너무 비싼 게 흠이죠. 음. 별로이시면 물렁물렁 복숭아는 뺄까요?”
호준은 눈치를 살피는 그녀에게 고개를 저었다.
비싸다는 이유로 망설일 필요가 없었으니까.
장사로 벌어들인 골드는 차고 넘쳤다.
“아뇨. 사겠습니다. 그리고 돈은 충분하니 나머지 씨앗도 최상급으로만 주십시오. 최고로 좋은 씨앗만 엄선해 주시면 됩니다.”
“오오오! 그러시군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그녀는 별처럼 눈을 반짝이며 준비에 들어갔다.
다시 옥탑방에 올라가 부스럭거리더니, 씨앗 주머니를 잔뜩 들고 내려왔다.
최상급으로만 골라왔다는 그녀의 설명이 이어졌다.
“다 해서 얼마입니까?”
“아, 네. 잠시만요!”
제나는 계산기를 부지런히 두드린 뒤, 계산기 위의 숫자를 보여주었다.
계산기에는 2만 골드가 적혀있었다.
“원래는 2만 골드이지만, 호준 님은 저희 단골이시니 특별할인을 해드립니다! 할인 적용하면, 18,000골드인데. 괜찮으신가요?”
“돈은 여기 있습니다.”
딸랑!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많이 이용 부탁드립니다!”
거래는 순조로웠다.
제나는 돈을 많이 벌어 행복했고.
호준은 넉넉한 씨앗 주머니를 받아 즐거웠다.
【감자 씨앗】 × 30
【고구마 씨앗】 × 30
【양파 씨앗】 × 30
【옥수수 씨앗】 × 30
【양배추 씨앗】 × 30
【물렁물렁 복숭아 씨앗】 × 30
씨앗을 가득 안고 호준은 보금자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헥헥!”
“저기가 요나스 마을이구나! 다 왔다아!”
요나스 마을 남쪽 입구.
타 마을에서 뛰어온 사람들이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있었다.
호준은 그들을 지나쳐 숲으로 발을 놀렸다.
숲으로 들어간 지 1분도 안 되어 삽질하는 소리가 들렸다.
수욱 퍽 수욱 퍽
“후우. 이 정도면 많이 했다. 그렇지?”
“그래. 베티. 20미터만 더 길을 만들면 끝이야! 자갈만 깔면 된다고.”
호준은 베티와 샤롯이 삽질하다 잠시 쉬며 대화를 나누는 걸 발견했다.
그쪽으로 천천히 다가서 이야기를 하려 하는데.
몸에서 기이하게도 힘이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몸이 천근만근이 되는 기분이 들더니 눈앞도 점점 하얗게 바뀌어 갔다.
“어, 호준이다!”
“이상하게 몸이 안 좋아 보이는데?”
베티와 샤롯이 다가오는 기척이 들렸으나 그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어지러움은 더 심해졌고 힘을 잃은 몸이 기우뚱하며 쓰러졌다.
“괜찮아? 얘 감기 걸렸나 봐.”
샤롯의 가슴에 안긴 것이 느껴졌으나 호준은 입도 뻥긋 못하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화이트룸에 입장합니다!】
의식이 끊기기 직전 본, 화이트룸이라는 단어만이 그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백색의 공간에 홀로 서 있었다.
【모든 유토피아 유저에게 알립니다!】
【지금부터 깜짝 업데이트가 진행됩니다!】
【모든 접속 유저들은 업데이트가 완료될 때까지 화이트룸으로 이동합니다!】
【업데이트가 시작됩니다!】
소문으로만 듣던 방송 업데이트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