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5. 치킨을 튀기다
호준이 회사 일을 마치고 게임에 접속했을 때.
보통은 과일을 수확했다는 메시지가 그를 맞이했다.
주로 무슨 과일을 수확했다는 메시지 정도.
오늘도 그럴 거라고 예상했으나 이번에는 평소에 보지 못한 메시지가 있었다.
‘퀘스트 성공이네.’
퀘스트 성공 메시지가 그를 맞이했다.
【퀘스트 성공】
【요정들이 퀘스트 과일을 수확했습니다!】
【된장 열매 수확하기 (10/10)】
【간장 열매 수확하기 (10/10)】
【고추장 열매 수확하기 (10/10)】
【겨자 열매 수확하기 (10/10)】
【퀘스트 보상으로 튀김기를 얻었습니다.】
【퀘스트 보상으로 참깨 씨앗 30개를 얻었습니다.】
요정들이 과일을 수확하는 것이 퀘스트 성공으로 인정되었기 때문이었다.
호준으로서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간편하게 튀김기와 참깨 씨앗을 얻었으니까.
“호준 님, 다녀오셨어요!”
요정들이 그의 귀환을 알아차리고 종종거리며 달려왔다.
“미요옹!”
“뀨우웅!”
다들 일하다 왔기 때문인지 얼굴이 홍시처럼 붉었다.
호준은 별이부터 차례대로 인사했다.
“일하느라 고생 많았다. 별일 없었지?”
“네. 평소처럼 주스를 만들었어요.”
“잘했다.”
“헤헷. 아, 그리고 진우 님이 들렀는데, 오늘 안으로 약초 씨앗을 잔뜩 가져온대요. 씨앗을 다 모으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하더라구요.”
“그래. 음… 고생했으니까 1시간 동안 푹 쉬자. 다들 일하느라 고생 많았다.”
“네엥! 다들 휴식이래!”
호준의 휴식 선언에 별이가 모두에게 크게 소리쳤다.
요정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제각기 흩어졌다.
별이는 잎사귀에 누운 채로 잠을 청했고.
다른 요정들은 일제히 호숫가로 뛰어갔다.
베티와 샤롯은 아직 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뭐 하나 볼까.’
호준은 호숫가 근처에 누워 요정들이 물속에서 뛰노는 모습을 보았다.
“끼유우우!”
미르는 수영을 상당히 잘했다.
돌고래처럼 공중회전 묘기까지 선보일 정도.
공중 2회전을 하는 것에 호준은 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다.
“와… 미르야. 실력 좋은데?”
“끼유우우!”
미르는 헤실헤실 웃으며 손을 흔들고는 물속 깊이 잠수해 들어갔다.
동적인 미르와 달리 아무는 정적이었다.
“하아암!”
아무는 호빵처럼 호수 위에 둥둥 떴다.
물결 따라 바람 따라 그대로 떠내려갔다.
힘없이 떠 있기만 하니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 때도 있었다.
눈을 감고 하품을 하는 것이 나른한 한 때를 즐기는 듯 보였다.
촤아악 촤아악
물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토순이와 송이가 보였다.
토순이가 송이를 싣고 모험에 나섰다.
토순이가 배라면 송이는 토순이 등에 올라탄 승객이었다.
토순이는 송이를 실은 채로 두 귀를 노처럼 움직여 앞으로 나아갔다.
“묘오옹!”
송이는 호준과 눈이 마주치자 손을 흔들었다.
토순이도 마찬가지로 귀를 흔들었다.
호준은 둘에게 손을 흔들어주고는 양탄자를 깔고 메이를 양탄자 위에 눕혀주었다.
메이는 수영을 두려워하는지 물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웅크린 채 한참 자는 중이었다.
“우웅.”
메이가 눈을 끔벅이며 칭얼거리다가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호준은 메이를 살살 쓰다듬으며 그 옆에 누웠다.
그가 유토피아에서 가장 편안하다 꼽는 때는 바로, 그늘에서 낮잠 자는 순간이었다.
낮잠을 자면 머리가 개운해졌다.
자고 일어나면 머리도 잘 돌아가고.
거기다 몸이 편해지니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휘이잉
시원한 바람도 불어왔다.
‘최고네.’
바람으로 인해 몸의 열기가 가라앉았다.
호준은 눈을 시작으로 몸의 긴장을 풀었다.
상체와 하체 모두 힘을 빼자 잠이 밀려왔다.
‘좋다.’
그렇게 몸에 힘을 뺀 채로 그는 수마에 몸을 맡겼다.
하루의 고단함이 눈 녹듯이 사라지는.
나른하고 편안한 순간이었다.
* * *
잠에서 깨어난 호준은 모두에게 일을 배분했다.
요정들은 농사와 주스 만들기, 목축 일을 하러 갔다.
농사와 주스 만들기는 평소와 다름없는 일.
하지만 목축은 일거리가 꽤 많았다.
소고기, 바나나 우유, 우유 수확하기.
거기다 닭고기, 달걀을 수확하기까지 추가되었다.
다행히 새끼 양 메이가 추가되었기에 일할 인원은 넉넉했다.
베티와 샤롯은 설거지와 숲속에 길을 내는 일을 도맡았다.
둘은 군말 없이 알았다는 대답을 하고 일에 매진했다.
일 배분을 마치고서 호준은 닭장으로 갔다.
새로 얻은 뽀얀 달걀을 부화기에 넣기 위해서였다.
착
【부화기에 달걀을 넣었습니다】
【24시간이 지난 뒤, 달걀이 부화합니다!】
알 부화에 걸리는 시간은 24시간.
하루에 한 마리씩 부화한다는 것이었다.
내일이 되면 병아리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호준은 피식 웃었다.
― 반갑다끼오!
― 호준, 밀알이 먹고싶다끼오!
― 나는 바깥 구경을 하고싶다끼오!
닭이 그의 발치에 몰려들어 제각기 희망 사항을 노래했다.
대개는 먹을 것, 밀알에 관한 것.
그밖에는 바깥 구경에 관한 내용이었다.
호준은 인벤토리에서 밀을 꺼내 바닥에 골고루 놓고 원할 때는 얼마든지 나가도 괜찮다고 닭들을 진정시켰다.
“대신 위험하지 않게 너무 멀리까지 가면 안 된다.”
꾸꾸꾸꾸!
― 고맙다끼오! 외출 기대된다끼오!
― 오 이건 밀알이 꽉 차서 맛있다끼오!
― 맛있는 먹이를 주는 호준은 착한 주인이다끼오!
닭의 일부는 먹이를 먹느라 바쁘고 나머지는 호준을 둘러싸고 재잘재잘 말을 걸었다.
호준은 그들의 얘기를 잘 들어주고 필요한 조치를 취한 뒤 닭장을 나섰다.
몇몇 닭들이 그 뒤를 쫄래쫄래 따르다가 거대하게 펼쳐진 밀밭을 보고는 헐레벌떡 달려갔다.
― 밀이 말도 안 되게 많다끼오!
닭들은 밀밭에서 뒹굴뒹굴 몸을 굴리며 놀았다.
다들 제법 행복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열리는 나무를 발견한 기분이려나.’
호준은 다들 밀밭을 즐기게 놔두고서 가게로 향했다.
가게에 튀김기를 설치할 생각이었다.
튀김기를 카운터 옆에 내려놓은 그는 한번 손으로 윗면을 쓸어보았다.
검은색 암석표면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튀김기는 가운데가 움푹 파인 형태.
움푹 파인 골에는 사각형 철사 망이 들어있었다.
철사 망을 호준이 빤히 보자 메시지가 떴다.
【튀김기】
【설명】
*튀김기는 다양한 재료를 완벽하게 튀겨주는 기기입니다!
*튀김기는 기름이 꼭 필요합니다.
*튀김기는 기름의 온도를 고온으로 유지합니다.
*튀김기를 이용하면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튀김 요리를 완성할 수 있습니다.
【사용법】
*재료를 넣은 튀김 바구니를 기름통에 집어넣으면 조리가 시작됩니다.
*요리가 완성되면 알아서 튀김 바구니가 위로 튀어 오릅니다.
【조리 가능 품목】
― 치킨, 감자튀김, 야채튀김, 도넛, 새우튀김 등
호준은 치킨을 보고 군침을 삼켰다.
닭고기가 이미 있으니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그는 부리나케 요리 카탈로그에서 치킨 레시피를 찾아 살펴보았다.
【치킨】
【필수 재료】: 생닭 혹은 닭고기 1개, 곡물가루 1개, 각종 기름류 1개(올리브유, 식용유 등), 소금 1개, 후추 1개.
【추가 재료】: 알코올류, 우유, 감칠맛 가루
【요리에 추가 재료를 넣으면 맛이 더 좋아집니다】
【레시피】
【1】 닭고기에 칼집을 내고 정량의 소금과 후추를 뿌립니다.
* 1번 단계에서 추가 재료를 넣으십시오
【2】 닭고기에 곡물가루를 골고루 바릅니다.
* 곡물가루란 밀과 쌀 등의 곡물을 건조시켜 만든 가루를 말합니다.
【3】 마지막으로 끓는 기름에, 혹은 튀김기에 닭고기를 넣고 10분 동안 튀기십시오!
*같은 기름으로 최대 닭 10마리를 튀길 수 있습니다. 그 이후로는 기름이 변질되기 때문에 요리 등급이 낮아질 수 있습니다.
“만드는 건 어렵지 않은데. 재료가 더 필요하네.”
말 그대로 재료가 일부 부족했다.
부족한 재료는 곡물가루랑 기름.
‘곡물가루는 밀가루로 하면 되겠다.’
곡물가루는 설명대로라면 곡물을 건조시킨 가루였다.
호준이 생각하기에 밀을 가루분쇄 모드로 바싹 건조시키면 밀가루가 될 것 같았다.
이 방법이 확실한지는 모르지만.
‘일단 그렇게 해보자. 그리고 기름은… 올리브가 있었지.’
그는 이전에 심어둔 올리브를 떠올렸다.
올리브는 딱히 쓸 일이 없어서 모아둔 것이 많았다.
왠지 원액추출로 올리브를 짜면 올리브유가 될 것 같은 감이 들었다.
즉시 호준은 자동 믹서기로 향했다.
먼저 밀가루를 만들고자 밀을 통 안에 집어넣었다.
밀 10개를 투입하고 【가루 분쇄모드】로 설정 완료.
【작동을 시작합니다】
그그그그극
칼날이 회전하며 밀을 갈아버렸다.
스스스슥
가루가 휘날리자 통 속이 뿌옇게 변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곧 결과물이 나왔다.
【밀가루(2급) 10개를 제작했습니다】
【기기 업그레이드 효과로 동일한 아이템 10개를 추가로 얻었습니다!】
【기기 소유자의 특전이 자동으로 적용됩니다】
【요정왕 특전으로 밀가루 등급이 대폭 상승했습니다】
【요정왕 특전으로 요리 경험치가 2배 증가했습니다】
“밀가루는 됐고. 이제는 올리브유다.”
다음 타자는 올리브유였다.
호준은 올리브 10개를 통에 집어넣었다.
통이 가득 차고서 【원액 추출모드】로 설정했다.
【작동을 시작합니다】
그그그극 추와아아압
올리브가 압축되면서 홍시를 밟아 터지는 소리가 났다.
연초록 액체가 통 하단부 유리병 안에 차올랐다.
그것을 손으로 살짝 찍어 먹었는데.
‘음…!’
진한 풀 향이 입 안에서 맴돌았다.
은은하고 부드러운 맛.
느끼하거나 씁쓸하거나 톡 쏘지 않았다.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부담 없는 맛이었다.
【올리브유(3급) 1개를 제작했습니다】
【기기 업그레이드 효과로 동일한 아이템 1개를 추가로 얻었습니다!】
【기기 소유자의 특전이 자동으로 적용됩니다】
【요정왕 특전으로 올리브유 등급이 대폭 상승했습니다!】
【요정왕 특전으로 요리 경험치가 2배 증가했습니다!】
【요리 스킬을 레벨업했습니다!】
올리브유와 밀가루 모두 준비 완료.
호준은 준비한 재료를 바리바리 들고 다시 가게로 들어섰다.
그는 닭고기를 도마에 내려놓고 칼집을 냈다.
서걱 서걱
칼집을 낸 뒤에는, 고기를 소금과 후추를 섞은 우유에 담갔다.
추아아압
고기가 스펀지처럼 우유와 양념을 흡수했다.
양념이 고기에 완전히 흡수되자 호준은 그 위에 밀가루를 골고루 뿌렸다.
닭고기가 눈송이처럼 보일 정도로 꼼꼼하게 밀가루를 바르자 메시지가 떴다.
【닭고기에 곡물가루를 충분히 발랐습니다】
‘이제 고기를 튀기면 끝이다.’
호준은 먼저 기름을 예열하기 위해, 튀김기 안에 올리브유를 부었다.
취이이이이익
올리브유가 담기자 튀김기에서 피부가 따끔거릴 만큼 뜨거운 열기가 올라왔다.
【올리브유가 150도로 가열되었습니다!】
올리브유가 150도로 가열되기까지는 불과 5초 정도 걸렸다.
올리브유로 튀기는 건 건강에 안 좋다는 이야기도 언뜻 생각났으나, 이곳에서 먹는 건 신체에 아무런 영향이 없기에 상관없었다.
호준은 차분히 튀김 바구니에 닭을 넣고, 바구니를 기기에 투입했다.
차자자자작!
닭고기 투입과 동시에 기름이 요란하게 춤추었다.
거품이 사정없이 팡팡 터졌다.
【치킨을 완성하기까지 10분 남았습니다】
이제 느긋하게 10분만 기다리면 된다는 의미였다.
호준은 한숨 돌린 김에 주위 의자에 앉아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눈을 감자 고소한 닭고기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아… 냄새 진짜 좋네.’
원래 그는 성인이 되어 도시로 온 이후, 비염이 심해졌다.
그래서 요리 냄새를 잘 인식하지 못했다.
커피 향이 아무리 강해도 가까이에서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야 느껴질 정도.
그런데 이곳에서는 달랐다.
그는 모든 요리의 향을 먼 거리에서도 생생히 맡을 수 있었다.
지금처럼 점점 진해지는 치킨 향도 충분히 맡을 수 있는 것이다.
꼴깍
침을 삼키며 치킨이 완성되기를 기다리는 그때.
삐그덕
누군가 문을 열었다.
호준이 고개를 돌렸을 때,
문가에는 굶주린 누군가가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