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4. 계약 완료
호준은 잠시 그늘에 앉아 진수와 대화를 나눴다.
10분 동안 많은 정보를 들었다.
그 자신이 약사이며 상인길드에서 약초를 독점하는 바람에 약을 전혀 만들지 못했다는 이야기였다.
사정을 설명한 진수는 사뭇 진지한 얼굴을 하고 제안했다.
“저는 호준 님께서 약초를 키워주실 적임자라고 생각합니다. 계약을 하면 총 판매액의 70퍼센트를 호준 님께 드릴 생각입니다.”
호준이 듣기에도 그 제안은 파격적이었다.
수익 70퍼센트라면 거의 다 넘기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호준이 아무리 생각해도 수익의 70퍼센트는 상당한 액수였다.
‘70퍼센트는 조금 과한 것 같은데.’
너무 좋은 조건이라 의심부터 들었다.
호준은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궁금한 점을 짚어나갔다.
“수익의 70퍼센트나 넘겨도, 진수 씨가 이익이 남습니까?”
“물론입니다. 지금 상인길드가 독점하는 바람에 약 가격이 매우 비쌉니다.”
“독점의 폐해군요.”
“네. 비싼 만큼 상인길드는 떼돈을 벌지만 약을 사용하는 유저들은 난감하죠. 어쩔 수 없이 사야 하니까요.”
“그 약의 대체품은 없는 겁니까?”
굳이 그렇게 비싼 돈을 주면서까지 사야 하는가.
그 질문에 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대체품이 없습니다. 전투를 하려면 체력이나 마력을 보충하는 약이 꼭 필요하니까요. NPC들이 파는 약은 저품질이라 쓰나 마나입니다. 그러니 비싸더라도 상인길드 약을 사야 하는 거죠.”
“울며 겨자 먹기로군요.”
호준도 상황을 들을수록 감이 왔다.
결국 시장을 독점한 자본가는 배부르고.
그 아래 사람들은 싫어도 비싼 약값을 지불한다는 소리였다.
빈부격차가 커져 가는 상황은 익숙한 광경이었다.
‘현실이나 여기나 마찬가지군.’
현실에서는 빈부격차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개입했다.
그러나 현실과 달리 유토피아에는 빈부격차를 도울 정부는 존재하지 않았다.
진수도 그 부분을 지적했다.
“이대로면 약값은 계속 올라갈 겁니다. 그들이 칼자루를 쥐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제게 따로 생각이 있습니다.”
진우는 팔을 휘적이다가 흘러내린 옷깃을 걷어 올리고는 열정적으로 판매 전략을 이야기했다.
그가 말하는 핵심은 일반 플레이어들에게 약을 판매하는, 중저가 시장을 노리자는 전략이었다.
호준은 진우의 상세한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지금 사람들은 NPC가 파는 저가 약보다는 성능이 좋고, 상인길드 약보다는 가격이 싼, 중저가 약을 찾고 있습니다. 저희는 바로 이 중저가 시장을 노리는 겁니다.”
“만약 중저가 약을 판매한다면 어느 정도 판매될 거라고 생각합니까?”
호준이 궁금한 점은 과연 얼마나 판매될까 궁금했다.
물약에 관해서 문외한이어서 당최 예상되질 않기도 했고.
그의 질문에 진우는 잠시 침묵하더니 눈을 반짝이며 답했다.
“적어도 하루에 홍삼 엑기스 100개는 충분히 팔릴 겁니다. 최소 그 정도라는 것이고 더 팔릴 가능성이 아주 높아요. 만약 충분한 재료만 갖춘다면 최대 300개 정도 만들어 팔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루 만에요.”
“300개라면 많이 팔리는 건가요.”
“물론이죠. 물약은 전투계 직업들이 많이 머무르는 숙소나 던전 근처에서 아주 잘 팔립니다. 전투와 물약은 떼어놓을 수 없는 만큼 가격만 괜찮으면 날개 돋친 듯 팔릴 겁니다. 호준 님이 농사만 지어주신다면 정말 열심히 할 자신이 있습니다. 부디 좋은 쪽으로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결국 그의 설명대로라면 약초가 제공되기만 하면 약으로 만들어 팔아 큰 수익을 벌어들일 수 있다는 말이었다.
갑작스러운 제안이지만 생각해볼 만한 제안이었다.
호준은 잠시 시간을 가지기로 하고 양해를 구했다.
“음… 잠시 거기 앉아 계시겠어요? 중요한 건이니 잠시 생각하고 답하겠습니다.”
“아, 네. 얼마든지 기다리겠습니다.”
진우가 의자에 앉도록 하고서 호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쁜 제안은 아니야.’
진우의 말대로라면 계약과 동시에 골드를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차피 널린 게 밭이라서 다른 것을 키우면서 약초를 키우는 건 별다른 힘든 일도 아니었다.
호준은 특히 진수의 진지하고 절박한 눈빛이 마음에 들었다.
그의 눈빛과 행동에는 절박함이 가득해서 왠지 호감이 갔다.
‘그래도 돈거래는 조심해야지.’
그러나 호감이 가는 것과 별개로 돈거래는 신중하게 다가가야 했다.
가족끼리도 친구끼리도 돈 때문에 틀어지는 것이 현실 아니던가.
하물며 오늘 처음 만난 진수와 돈거래를 트는 것이 조금 고민이 됐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신뢰의 문제였다.
‘만약 저자가 약을 100골드에 팔고서 내게는 60골드에 팔았다고 뻥 칠 수도 있지. 그렇게 해서 수익을 따로 빼돌릴지도 모르고. 확실히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돈거래는 조심하는 게 옳아. 일단 이 부분에 대해서도 확인해 보자.’
생각을 마친 호준은 의자에 앉은 진수에게 다가가 본론을 이야기했다.
“판매 수익을 그쪽이 속인다면 저는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는 입장입니다. 진수 씨가 말한 거래라는 것이 어떻게 진행되는 것인지. 그리고 진수 씨가 판매한 약이 얼마어치인지 제가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없다면 거래를 하지 않겠습니다. 사업에서 신뢰는 필수인데, 신뢰가 보장되지 않으면 언젠가는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니까요.”
그 물음에 진수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진수 또한 돈거래인 만큼 신뢰를 중요시 생각했다.
그렇기에 적절한 수단을 마련해둔 것이기도 했다.
진수는 기다렸다는 듯 답했다.
“저도 그 부분에 관해 충분히 호준 님의 입장을 이해합니다. 신뢰 부분은 계약서를 작성하면 해결됩니다.”
“계약서라고요?”
진수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설명을 이어갔다.
“계약서에 서로 합의한 내용을 기입하고 양쪽 당사자가 동의하면, 계약이 성립합니다. 지금 말씀하신 부분을 계약서에 기입해 놓으면 그대로 실행됩니다. 실제로 '약이 판매되면 실시간으로 메시지로 전송된다'라고 조항을 넣고 계약을 합의하면 시스템이 알아서 메시지를 보냅니다. 제가 따로 호준 님에게 얼마 팔았다고 입 아프게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여기를 보시면 그 부분도 적혀있습니다.”
실제로 진수가 내미는 계약서에는 상호 간에 약 판매액을 실시간으로 공유한다는 내용이 정확히 적혀있었다.
호준은 잠시 계약서를 꼼꼼히 살펴보며 이상한 조항은 없는지 살폈다.
계약서에는 방금 전 말했던 판매액 공유 부분을 빼고는 별다른 특이사항이 없었다.
그의 옆에서 진수가 맴돌며 조금이라도 어필하고자 노력했다.
“홍삼 엑기스는 불티나게 팔릴 겁니다. 전 원래 끈기가 많은 성격인지라 스킬 레벨도 많이 올렸거든요. 약 제조 스킬이 벌써 LV30을 넘어섰습니다. 기회만 주시면 열심히 만들어보겠습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씨앗은 무료로 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시구요.”
‘씨앗도 무료이고. 괜찮은 기회다.’
호준은 다가온 기회를 걷어찰 바보도 아니었다.
그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올린 호준은 초조한 얼굴을 한 진수에게 답을 주었다.
“계약을 하겠습니다. 그 대신.”
“…?”
“저는 수익의 60퍼센트만 가져가는 것으로 하죠.”
“60퍼센트요?”
“네. 돈은 충분히 있으니 그 정도면 적당합니다. 진수 씨도 남기는 게 있어야죠. 수익을 더 드릴 테니까 개인 능력을 더 키우는 데 집중하세요.”
“아… 그, 그렇죠. 감사합니다.”
진수는 눈을 반짝이며 몇 번이나 고맙다고 중얼거렸다.
감격한 얼굴을 한 그에게서 앳된 얼굴이 보였다.
호준은 사회의 때가 물들지 않은 듯한 그 모습에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약초 씨앗은 틈틈이 가져오면 됩니다. 씨앗은 가져오는 대로 저기 구덩이에 넣어두세요. 저는 구덩이 옆을 지날 때마다 씨앗을 확인해 심겠습니다.”
“네네 물론입니다. 저야 열심히 갖다 드려야죠.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사실 약사 생활을 접을까도 했는데. 어떻게 기적처럼 기회가 오기도 하네요.”
진수는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환하게 웃었다.
호준도 마찬가지로 옅게 웃으며 계약서 옆의 펜을 들었다.
“그럼 계약을 마무리할까요?”
드디어 계약이 시작되었다.
* * *
【업무 계약서】
【계약자 1】: 호준
【계약자 2】: 진수
【계약 기간】: 1개월
(양 측이 계약연장을 합의하면 계약 기간이 1개월 연장됩니다.)
【계약 사항】
【1.】약품 판매 수익을 실시간 메시지로 공유한다.
【2.】약품 판매 수익의 60퍼센트를 계약자 1 호준에게 양도한다. 나머지 수익은 판매자가 취한다.
【계약하시겠습니까?】
“하겠습니다.”
“계약하겠습니다.”
둘 다 계약에 동의하자 최종 확정 메시지가 떴다.
【계약이 완료되었습니다】
“호준 님,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호준은 진수와 악수를 나누고 요정들을 소개했다.
직원에게까지 모두 인사를 마치고 나서 진수는 얼른 씨앗들을 구하러 가겠다며 마을로 뛰어갔다.
‘이제 나갈 시간이네.’
길다면 긴 하루였고.
짧다면 짧은 하루였다.
한 일이 정말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아쉬운 건 요정들과 더 놀다 가지 못하는 것이었다.
“얼른 오세요!”
“기다릴게!”
“고생 많았어!”
별이, 베티, 샤롯의 인사에 답하자 이번에는 요정 차례였다.
요정들은 다리에 매미처럼 달라붙어 애교를 부렸다.
“뀨뀨!”
“끼유우!”
【미르가 아쉬움에 볼을 부풀립니다】
【토순이는 섭섭한 마음에 귀를 졸립니다 】
― 다녀와라무우우! 보고싶을 거다무우!
미소가 옆구리에 파고들자 호준은 머리를 쓰다듬고는 허리를 폈다.
그리고 모두에게 손을 흔들었다.
“다들 잘 있고. 금방 갔다 올게!”
바빴지만 알차고, 소소하지만 행복한 하루였다.
그에게 유토피아는 이제 떼려야 뗄 수 없는 소중한 일과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