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를 너무 잘함-53화 (53/200)

053. 약초

진수, 그는 오늘도 부지런히 달렸다.

그는 현실에서는 의대생이자 게임에서는 약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의대생이라고 하면 남들은 오 하는 감탄사를 내뱉고는 했지만, 그에게는 고민이 많았다.

먼저 그는 다리가 없이 휠체어 생활을 해서 평소에 불편한 점이 많았다.

‘6살 때 교통사고로 다리를 절단했으니까.’

진수는 언덕을 넘어 달리며, 어릴 적부터 귀에 못 박히게 들었던 사고 이야기를 떠올렸다.

피식 웃음이 났다.

웃음이 날 만큼 이제는 사고 당시를 기억하는 일이 익숙해졌다.

‘과자를 사러 가다가 신호 위반한 차에 들이 받혀 날아갔고. 다른 차에 다시 들이 받혀서 그 차와 가로등 사이에 꼈지.’

그렇게 어린아이의 다리가 부서졌다.

그도 청소년 시절에는 자신의 휠체어 신세를 원망했지만 지금은 잘 알고 있었다.

살아남은 게 행운이었음을.

그 몸으로 살아남기 위해 그는 처절히 노력했다.

‘공부라도 잘하자고 최선을 다해서 공부했지. 돈을 벌고 싶었으니까.’

돈.

세탁소에서 고생하는 부모님의 손과 몸이 날이 갈수록 망가졌다.

그는 도와드리고 싶어도 매장에서 방해가 되는 몸.

평범하게 공부해서는 답이 없었다.

그래서 죽도록 공부해 남들이 부러워하는 의대에 합격했다.

‘합격하고서도 등록금이 너무 비쌌지.’

의대에 합격하니 어마어마한 학비가 필요했다.

학자금 대출로 막을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수도권 대학인데 기숙사에 붙지 못해서 보증금과 월세까지 필요했다.

그가 휠체어를 끌고 살아갈 만한 집은, 숫자도 적고 무척 비쌌다.

‘대학 들어갈 때쯤 부모님 사정도 안 좋아졌고.’

시골에서 부모님은 세탁소 수입으로 사셨는데, 대형 프랜차이즈 세탁소가 맞은편 골목에 들어섰다.

시골에는 고객이 적고 한정되어 있었다.

결국 프랜차이즈의 등장으로 부모님 세탁소의 매출은 급감했다.

이런 힘든 상황에서 진수는 등록금을 벌겠다고 나섰다.

가상현실 게임, 유토피아라면 그는 휠체어 때문에 하지 못하는 알바도 할 수 있고.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돈을 벌 수 있으니까.

그에게 유토피아는 꿈과 희망의 땅이었다.

그가 선택한 직업은 약사.

약사는 약초로 약을 만드는 직업이었다.

농부들과 직접 약초 공급계약을 맺고 약 제작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꽤 벌었다.

한 달 만에 등록금을 벌었으니까.

수익을 얻은 이유는 철저히 게임을 분석하고 움직였고, 낭비하는 시간을 줄였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돈이 잘 벌려서 그도 게임으로 돈 버는 것이 쉬운 것 같았다.

이러다 돈벼락을 맞을 거라는 장밋빛 상상도 했다.

그러나 달콤한 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농부들이 다 그만두는 바람에, 약초를 구하지 못했으니까. 약 만드는 것도 접어야 했고.’

농부들이 하나둘 농사일이 너무 어렵다며 일을 접었다.

농부 숫자가 줄어들자 농산물 가격이 급등했다.

약초가격도 급등했고, 진수로서는 약초가 비싸서 약값에 비해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결국 진수는 약장사를 포기하고 지금처럼 자잘한 퀘스트를 했다.

이대로라면 레벨 10이 되어 캐릭터를 리셋하는 것 말고 방법이 없었다.

전투직이 돈이 잘 벌린다고 했으니 그게 뽑히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약 제조 스킬을 버리기 아까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약초를 얻을 길만 있으면 먹고 살 텐데.’

약을 만들 수 있다면 무조건 수익을 낼 수 있었다.

약초를 키워줄 고레벨의 농사 스킬을 가진 농부만 있다면.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럴 가능성은 낮았다.

이미 실력파 농부들은 상인길드와 독점계약을 하고 큰 이익을 챙기고 있었다.

실력파 농부와 아마추어 농부로 양극단에만 농부가 존재하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개인에 상인길드보다 조건이 불리한 그가, 실력파 농부와 계약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쉬운 마음에 그는 한숨을 내뱉었다.

‘휴… 다음 학기 등록금까지 1달 남았는데.’

정수리를 달구는 뜨거운 태양이 왠지 원망스러웠다.

애꿎은 태양을 바라보다가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깨를 짓누르는 등록금, 비싼 월세. 답답한 상황.

속상한 마음에 주위를 둘러보다가 그는 토끼바위를 발견했다.

요나스 마을 근처를 상징하는 토끼바위는 퀘스트 목적지에 도달했다는 신호였다.

‘그래. 살다 보면 길이 있겠지. 힘내자.’

그렇게 힘을 내던 진수는 바위 옆에 꽂힌 표지판을 발견했다.

【요정의 쉼터】

*직접 재배한 농산물로 만들어서 아주 싱싱한, 과일 주스를 판매합니다!

*시원한 팥빙수를 한정 판매하니 얼른 오세요!

*팥빙수는 조기에 매진될 수 있습니다!

‘농작물을 직접 재배했다고? 그럼 농사일을 한다는 거네.’

진수는 농부가 있을 가능성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그에게 약초를 키워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미 상인길드랑 계약했을지도 모르지만.

혹시 단 1퍼센트라도.

같이 일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미래 일은 아무도 모르니까. 가 보자.’

그는 희망을 품고 표지판을 따라갔다.

숲속을 가로지르니 주스 가게가 보였다.

가게에서 들려오는 왁자지껄하는 소리.

‘왠지 느낌이 좋은데?’

진수가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차가운 바람을 얼굴로 맞자 그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하아, 시원하다…!”

냉방시설이 있는 것처럼, 가게 내부는 시원했다.

에어컨이라도 설치한 것일까.

‘아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에어컨과 비슷한 마법냉풍기는 엄청 비싸다고 했는데.’

갑부가 내려오지 않는 한 이런 시골 마을에 있을 리가.

그는 벽에 설치되었을 냉풍기를 찾았으나, 벽에는 그런 건 걸려있지 않았다.

‘벽에는 상패 말고 아무것도 없는데? 이상한 일이네.’

벽에는 콘테스트 우승 상패 하나만 달랑 걸려있을 뿐.

그로서는 별이가 얼음 열매의 냉기를 모아 내부에 흩뿌리는 걸 알 길이 없었다.

진수가 갸우뚱하는 사이 절세미인인 인어가 그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요정의 쉼터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저는 종업원인 샤롯이라고 합니다. 이쪽으로 자리 안내해도 될까요?”

“아, 네.”

진수는 그녀의 미모에 한번 놀라고, 상냥한 미소에 마음이 진정되었다.

홀린 듯이 따라가 자리에 앉고서 메뉴판까지 받았다.

【MENU】

【특제 주스(3급)】 . . . . 60 골드

【바나나 우유(3급)】 . . . 60 골드

【팥빙수(특10급)】 . . . . 300 골드

그는 메뉴판을 보고 한 번 더 놀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긴 너무 놀랄 게 많은 가게였다.

‘도시에 있는 가게도 아니고, 특급 요리가 있어?’

특급 요리는 온갖 요리가 다 선을 보이는 수도에서도 잘 팔리는 희귀한 요리.

시장에 나오면 불티나게 팔리는 등급이었다.

‘특급 요리만큼이나 그 요리를 만드는 요리사도 흔치 않지. 그 정도 실력이면 황제가 초빙하려고 달려들 테니까.’

특급을 만드는 요리사는 프로 중의 프로.

사람들에게도 당연히 인정받고 존경받았다.

그런 실력자가 시골 벽지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한다니.

돈에 욕심이 없는 도인이나 할법한 일이었다.

‘대체 요리사의 정체가 뭐지?’

진수는 시범 삼아 특제 주스 1개를 시키고 가게를 둘러보았다.

요리사로 보이는 남자는 닭고기를 만지느라 한창 바빠 보였다.

그를 살펴볼 새도 없이 샤롯이 바로 주스를 서빙해 주었다.

‘어?’

그런데 그녀가 서빙한 것은 주스 만이 아니었다.

손바닥 두 개만 한 접시에 닭다리 한 개가 떡하니 있는 것.

냅킨과 포크, 나이프도 세팅되었다.

“이게 무슨 요리죠? 이건 시킨 적이 없습니다만.”

그의 물음에 샤롯이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오븐에 구운 닭고기랍니다. 요리사님이 직접 만드신 건데, 오시는 분마다 조금씩 드리고 있어요. 방문하신 기념으로 그냥 드리는 거랍니다. 편히 드세요!”

“그냥 준다고요? 이건 주스보다 더 비싼 거 아닙니까?”

“저희 요리사님은 돈에 얽매이는 분이 아니라서요. 더 많은 분들이 요리를 즐기시길 원하십니다. 그럼 맛있는 식사 되시고, 필요한 거 있으면 불러주세요!”

“아, 네. 잘 먹겠습니다.”

‘무료 시식이란 말이지? 공짜라는 소리네.’

공짜라는데 기분이 좋지 않을 리가 없었다.

진수는 포크로 닭고기를 집어 입에 넣으려다 문득 생각했다.

‘그동안 정말 안 먹고 살았구나….’

그는 오로지 돈. 등록금.

그 생각만 하면서 플레이를 해왔고 먹는 것을 도외시했다.

게임에서는 굶는다고 죽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만큼 심적 여유가 없이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돈이 없어서 못 먹은 것도 있지만. 이번 기회에 배부르게 먹어보자.’

착 착 차작

진수는 닭다리에 붙은 살을 해체했다.

포크로 닭다리 살을 찍자 진한 육즙이 흘러내렸다.

꿀꺽.

식욕이 느껴졌다.

그는 구릿빛으로 구워진 먹음직스러운 닭다리 살을 입에 넣었다.

‘와… 맛있다…!’

적당히 간이 되어 입맛에 딱 맞았다.

거기다 육수 맛은 시골에서 직접 키운 오골계를 고아서 나온 국물맛처럼 느껴졌다.

진한 육수에 닭죽을 끓여 먹으면 행복해지는.

그 육수 맛이 떠올랐다.

‘여기는 진국이다.’

그는 감동하면서도 빠른 두뇌 회전으로 판단했다.

이 훌륭한 요리를 만들려면 요리사뿐 아니라 농부도 훌륭해야 했다.

즉, 농부의 실력도 뛰어나다는 판단이 섰다.

‘탐난다. 그나저나 이걸 먹으니까. 집밥 생각나네.’

진수는 닭고기를 그릇에 담긴 닭 육수에 푹 적셔 먹었다.

그 순간만큼은.

어깨를 누르는 짐을 잊고 음식을 마음껏 즐겼다.

그는 정말 그 순간 행복했다.

* * *

매장에 가득 찼던 손님들이 하나둘 떠나갔다.

마지막 일행들이 가게를 나서자 호준과 그 일동들은 손님을 배웅할 겸 문가에 나왔다.

호준의 선창을 시작으로 다 같이 인사했다.

“그럼, 다들 안녕히 가십시오!”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끼유우우!”

“묘오옹!”

손님들도 환하게 웃는 얼굴로 인사에 답했다.

“잘 먹고 갑니다! 다음에 들릴 일 있으면 꼭 올게요!”

“안녕히 계십시오. 그리고 꼬마들도 잘 있어!”

“이번에 먹은 닭요리 또 먹고 싶습니다! 계속 장사해 주셔야 해요! 네?”

“하하, 네. 내일도 장사합니다!”

그렇게 손님들을 배웅하고서 호준은 깨달았다.

예상보다 빨리 장사가 끝났다는 것을.

‘아직 20분 정도 여유시간이 있네.’

오늘 정말 많은 것을 했기에 그는 조금 피곤하면서도 뿌듯함이 동시에 들었다.

주스 재고가 많았지만 판매량은 그보다 더 많았다.

손님들은 대부분 10병 이상씩 사가서 완판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무료로 건네준 닭고기도 반응이 좋았다.

‘내일부터는 본격적으로 닭요리도 팔아보자.’

닭고기를 시식하게 한 것은 그의 아이디어였다.

돈 받고 팔아도 됐지만, 어차피 개수도 별로 없어서 내일부터 팔기로 했다.

손님에게 요리를 공짜로 준다 해도 호준에게는 이득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요리를 먹을수록, 메인 퀘스트를 빨리 깰 테니까.’

실제로 퀘스트 달성률이 올라갔다는 메시지도 떴다.

【맛좋은 요리를 제공하여 메인퀘스트 달성률이 업데이트됩니다!】

【메인퀘스트 달성률이 대폭 올랐습니다!】

바빠서 그 결과를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가게 치우고서 확인해보자.’

그리 생각하며 가게로 들어가려는데.

누군가 그를 붙잡았다.

“저기. 잠깐 시간 있으신가요?”

호준은 그 목소리를 내는 남자를 알아보았다.

아까 가게를 나섰던 파란색 머리를 한 손님.

그가 눈을 반짝이며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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