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8. 페어리 컴퍼니
콘테스트 우승 보상은 훌륭했다.
우승 상품, 자동화 오븐은 말할 것 없고.
인기와 명예, 거기다가 특권까지 얻었다.
‘씨앗을 싸게 살 수 있겠네.’
특권이란 마을 주민으로부터 더 싸게 물건을 살 수 있는 권리를 말했다.
농부인 호준에게 씨앗 값이 줄어드는는 것은, 훌륭한 특혜였다.
누구나 쉽게 가지는 특혜가 아니었으니까.
호준은 흐뭇하게 웃으며 무대를 내려왔다.
샤롯과 요정들이 그의 주위를 둘러싸고 축하 인사를 건넸다.
샤롯은 엄지손가락을 올렸다.
“역시 보통 실력이 아닌 것 같더라. 이거, 직원으로서 조금 뿌듯한데?”
“고맙다. 샤롯.”
“뭘. 내가 생각해봤는데 말이야. 팥빙수를 메뉴판에 올릴 때 그 옆에다 콘테스트 우승작! 이라고 쓰면 어떨까?”
“음, 괜찮은데?”
“그렇지? 왠지 우승작이라고 하면 더 인기 있을 것 같아! 가격도 조금 세게 올려도 괜찮을 거 같고. 콘테스트 우승 상패도 받았으니까 적당한데 걸어두자.”
“저도 샤롯 님하고 같은 생각이에요!”
별이도 대화에 동참했다.
별이는 손을 휘휘 저으며 말을 이었다.
“이 금쟁반 같은 상패는 그냥 두면 아쉬우니까. 주위에 꽃으로 장식해서 두면 괜찮을 것 같아요.”
“오오, 꽃 괜찮네! 그러면 저택 정원에 꽃이 많으니까 내가 가져올게.”
별이와 샤롯 둘이서 데코레이션 이야기를 하는 사이.
호준의 팔다리에는 다른 요정들이 달라붙었다.
“뀨우우우!”
“끼루룰룰!”
“잘 있었어?”
“묘오옹!”
미르와 토순이가 팔에 착 달라붙고.
아무, 송이, 메이가 허벅지에 고목의 매미처럼 붙었다.
미소도 요정들에게 지지 않고자 허리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 호준이 최고로 멋있었다무우우! 금패도 밭고 대단하다무우우!
“고맙다.”
호준은 한 명씩 꼭 끌어안았다.
대화를 마친 그는 요정들과 함께 미소의 등에 올라탔다.
농장으로 돌아가려던 찰나 누군가 뒤에서 외쳤다.
“형, 잠시만요!”
뒤를 돌아보니 채빈이가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 *
“그럼 소환수로 농사랑 요리를 하시는 거네요.”
“그렇지. 농산물을 바로 요리를 만들어 팔고 있어.”
“오, 그러면 재룟값이 굳겠네요.”
채빈이는 질문을 쏟아냈다.
처음 보는 손님이 이렇다면 불쾌했겠지만.
채빈이가 하는 행동은 순전한 호기심에서라는 게 느껴졌다.
오랜 영업을 해오던 호준의 눈으로 보였다.
호기심과 동경에 가득 찬 채빈이의 눈이.
“대단하시네요, 농사와 요리 둘 다 하신다니! 쉽지 않으셨을 텐데. 남들이 안 가는 길을 개척하는 게 멋져요!”
“뭐….”
“저도 언젠가 농사도 짓고 싶은데 아직 여력이 안 되네요. 소환사가 되기에는 지금까지 요리스킬을 올린 게 아깝기도 하구요. 저도 언젠가 형처럼 우승할 수 있을까요?”
채빈이는 두 손을 모은 채 물었다.
그 눈빛은 동경하는 가수를 바라보는 듯했다
호준은 어깨를 으쓱하며 물론이라고 답했다.
채빈이는 싱긋 웃었다.
농장으로 가는 길.
채빈이가 그 곁에 동참해 재잘재잘 이야기했다.
호준은 어릴 적 시골에서 이웃 동생들과 자주 놀았기에 불편함 없이 그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의 예민한 기질 덕분에 빠르게 채빈이의 성격을 파악했다.
‘이런 성격이 있지. 솔직한 타입. 괜찮은 성격이야.’
채빈이는 솔직했다.
궁금한 건 바로 물어보고.
가식이 없다.
그렇다고 선을 넘거나 하지는 않았다.
살다 보면 정말 드물지만 이런 편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 존재하는데, 채빈이가 그런 과였다.
농장으로 돌아가는 동안, 호준은 채빈에 관해 많은 것을 알게 됐다.
먼저 채빈이는 밝은 성격과 달리 집안 환경은 좋지 못했다.
‘스무 살인데 벌써 집안의 가장이구나.’
채빈이의 어머니는 둘째 여동생을 낳다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채빈이가 어릴 적, 치매를 앓다 행방불명되었다고 한다.
그 뒤로 할머니가 채빈이와 두 살 터울 쌍둥이 여동생을 키웠는데.
할머니의 명도 그리 길지 못하셨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채빈이가 15살 되던 해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단다.
그 뒤로 채빈이는 가장이 되어 국가지원금으로 살며, 자신이 요리를 도맡아 했다고 한다.
그런 환경 속에서 채빈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
암울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채빈이가 긍정적으로 말하는 모습을 보니 호준은 그가 기특했다.
“동생들이 제 요리를 먹고 맛있다고 말하는 게 그렇게 기분이 좋더라구요. 그 뒤로 식당 주방일을 도와서 돈도 벌고, 여기서 요리일도 배우기 시작했어요. 일은 힘들지만 할 맛이 납니다!”
채빈이의 미소짓는 얼굴을 보니 호준은 밝은 태양이 떠올랐다.
어둠을 가르고 밝게 떠오르는 새벽녘의 붉은 태양이.
채빈은 표정과 몸짓, 눈빛에서 긍정적인 기운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형도 알다시피, 유명 요리사나 요식업계에서도 유토피아에 진출하는 시대니까. 저도 열심히 도전해보려구요!”
“그래. 맞는 말이지. 여기에는 돈이 모이고 있으니까.”
채빈이 말하는 바를 호준도 잘 알고 있었다.
돈이 모이면 사람이 모인다고.
돈이 모이는 유토피아에 돈 가진 사업가가 모여들었다.
사업가 대부분은 유토피아를 선점하고, 대대적인 제품 홍보 효과를 누리려 했다.
― 탑 20위 랭커들, 세계 광고계 섭렵하다!
― 유토피아 랭커되면 인생 역전!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랭커에게는 명예와 부가 당연히 딸려오는 시대.
그런 시대니까.
광고계 러브콜은 기본이요, 특정 회사명을 언급하기만 해도 인센티브를 준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그런 소문이 헛소문이라 생각할 만큼 호준이 순진한 것은 아니었다.
‘전반적으로 돈벌이에 혈안이 된 분위기이기는 하지.’
물론 호준은 그런 대세를 따르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대세를 따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추구하는 건 돈이 아니라 소소한 행복.
호준의 주관은 뚜렷했다.
그 누구도 부술 수 없을 만큼.
“저, 형. 궁금한 게 있는데요.”
“그래. 물어봐.”
채빈이는 조금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형은 요리를 왜 하세요? 전 돌아다니면 요리같은 거 때려치라는 소리를 맨날 들어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인데도 왠지 기죽고 씁쓸하더라구요.”
질문의 의미는 간단했다.
남들이 싫어하는 일을 왜 하냐는 질문.
채빈이도 자기가 말해놓고 속상했는지 입술을 돌돌 말고 있었다.
“요리사가 별로다 그런 게 아니라. 저는 진짜 하고 싶어서 하는 건데. 주위에서는 별로라고 계속 얘기하니까요. 요리사가 타 직업보다 돈을 적게 벌고, 랭커에 올라가기 힘든 건 사실이니까. 반박할 수도 없구요.”
호준은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비인기직을 하는 고충이야 이해가 갔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호준은 망설임 없이 입을 열었다.
“내가 하고 싶으니까. 그뿐이야.”
“하고 싶으니까요?”
“그래. 내 인생인데 남을 신경 쓸 필요 있나? 남이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건 아니잖아?”
“그렇… 네요. 남이 내 인생을 사는 건 아니니까. 내 인생은 내가 선택하라 이거네요. 조금 멋진데요?”
“뭐, 당연한 거라면 당연한 거지.”
채빈이는 입을 크게 벌리고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뭔가 깨달은 듯 주먹을 쥐었다.
“더 열심히 해야겠어요. 감사합니다. 형. 힘이 나요.”
“말하는 거 말고, 딱히 해준 것도 없는걸.”
“아니에요. 형. 주위에서 망캐라는 둥 그런 말 들으면 속상하고 힘도 안 나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형 말을 들으니까 힘이 나요. 제 선택이니까 스스로 자부심 갖고 살면 되니까요.”
90도로 인사를 한 채빈이는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조금 두꺼운 재질의 종이였다.
“이게 뭐야?”
“이건… 얼마 전에 길에서 주운 건데, 제게는 아직 먼 이야기 같아요. 이건 형이 쓰시면 좋을 것 같아요.”
“잠깐… 이건.”
호준은 종이 위에 뜬 메시지를 보고 당황했다.
메시지에는 분명히 회사 창업증서라고 적혀있었다.
【회사 창업증서】
【설명】: 회사를 창업할 수 있는 증서입니다
*창업주는 직원을 고용할 수 있습니다.
*창업주는 자신의 영향력 하에 있는 소환수, 정령 등 모든 존재를 고용할 수 있습니다.
*회사 규모에 따라 직원의 능력이 향상됩니다.
【사용법】: 증서를 찢으면 회사를 창업할 수 있습니다
【사용조건】: 보유 자산이 20,000골드 이상일 것.
*증서를 사용해도 돈이 들지 않습니다.
사용조건은 그 정도 경제적 능력이 있는 자만이 회사를 창업할 자격이 있음을 말합니다.
“이건 네가 가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네가 필요할지도 모르고.”
“저는 20,000골드 모으려면 몇 년 걸릴지 몰라요. 그리고 사실 형 말을 듣다가, 유토피아를 돌아다니며 포장마차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회사를 창업할 생각이 없으니 형에게 더 적합한 것 같아요.”
“아니, 그래도 흠….”
“저는 여행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이건 형이 쓰세요. 네? 제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받아주세요.”
결국 채빈에게 떠밀려 호준은 창업증서를 손에 쥐었다.
토끼바위에 다다르자 채빈은 마지막으로 인사했다.
“형, 나중에 제 포장마차를 가지고 이 토끼바위로 돌아올게요. 더 훌륭한 요리사가 되어서요! 진짜 감사합니다!”
“그래. 다음에 또 보자. 이건, 고맙다!”
“별말씀을요. 다음에 봬요!”
그렇게 채빈이는 창업증서를 주고 길을 떠났다.
채빈이의 뒤꽁무니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앞서간 요정들을 뒤따라 농장으로 돌아가려는데, 호준의 눈앞으로 메시지가 떴다.
【회사 창업증서를 획득했습니다】
【회사 창업증서를 사용해 새로운 회사를 설립할 수 있습니다!】
【창업증서를 찢을 시 회사를 창업할 수 있습니다!】
‘이왕 얻은 거 한번 만들어보자.’
치지지직―
호준은 가차 없이 증서를 찢었다.
【회사를 창업합니다!】
【회사 이름을 설정하십시오】
“페어리 컴퍼니!”
【페어리 컴퍼니를 설립했습니다!】
【당신은 페어리 컴퍼니의 창업주입니다】
【왕의 기운을 가진 창업주 칭호를 얻었습니다!】
【칭호 효과로 전 직원의 능력이 상승합니다】
【전 직원의 최대 체력이 +30퍼센트 상승합니다】
【전 직원의 이동속도가 +10퍼센트 상승합니다】
【직원을 추가하시겠습니까?】
‘이거 점점… 스케일이 커지네.’
어쩌다 보니 회사 창업주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