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를 너무 잘함-46화 (46/200)

046. 요리는 자신감이다.

모든 참가자가 무대에 오르자 사회자가 마이크를 들었다.

“아, 아, 마이크 테스트. 아.”

사회자는 노란색 나비넥타이를 한 정장 차림의 남자였다.

마이크를 통해 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요나스 마을 요리 콘테스트를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웅성거리던 것이 사그라들자 사회자는 느끼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지금부터 룰을 설명하겠습니다. 무대 위로 올라온 스물 다섯 명의 참가자들. 잘 들으세요! 지금부터 30분 동안 요리를 완성해야 합니다. 완성한 요리는 여기!”

그는 동그란 원형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짚었다.

“이 테이블에 요리를 올려주시면 됩니다! 30분입니다. 늦어서는 안 된다는 걸 명심하세요! 1초라도 늦으면 실격 처리됨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30분.’

호준은 시간을 되새기며 사회자를 주시했다.

이어진 설명은 그가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관객 중에서 심사위원을 랜덤으로 뽑아 맛을 평가한다는.

호준은 설명을 흘려들으며 주위를 살폈다.

그의 왼편에 선 남자는 하얀 요리사 복장을 전신에 갖춘 채로 손을 달달 떨고 있었다.

“안 떨린다. 안 떨린다. 괜찮다.”

많이 떨리는 모양이었다.

자기최면을 걸고 있는 남자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호준은 반대편을 바라보았다.

오른편에는 버섯 같은 머리를 한 남자가 차분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얼핏 보아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외모.

호준과 눈이 마주치자 그는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먼저 말을 건넸다.

“작은 마을인데도 의외로 사람이 많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오늘따라 유독 참가자가 많네요. 이 대회 참가하는 게 3번째인데 이번이 제일 참가자가 많아요.”

“3번째라구요?”

“그렇죠. 이 대회는 달마다 하는 거라, 저는 매달 참가했습니다. 우승은 한 번도 못했지만, 도전하는데 의미를 두려구요. 하하.”

그의 이름은 채빈.

갓 스무 살이 된 청년으로 유토피아에서 유명한 요리사가 되는 게 꿈이라 했다.

채빈은 꿈을 가지게 된 이유를 묻지 않아도 술술 답했다.

“호준 님도 알다시피. 흙수저가 자기 돈으로 음식점 차리려면 한참 걸리잖아요. 게임 속에서는 꾸준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을 거란 생각으로 뛰어들었어요. 물론 쉽지는 않은 길이지만. 저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그런 말을 하며 싱긋 웃는 채빈의 눈빛이 빛났다.

희망이 가득 담긴 눈빛은 보기 좋았다.

“하하, 제가 너무 제 얘기만 했죠? 호준 님은 이번에 뭐 만드실 거에요?”

“팥빙수를 만들려고 합니다.”

“오오! 역시 여름엔 팥빙수죠. 저도 여름 별미인 냉면을 만들까 했는데. 재료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 못 하겠더라구요. 이번에는 화채를 만들어 보려구요. 열심히 벌어서 사이다도 구했습니다!”

채빈이는 해맑게 웃으며 사이다병을 흔들었다.

그의 눈빛과 행동에서 때 묻지 않은 스무 살의 풋풋함이 묻어났다.

채빈은 신이 난 듯 말을 이어갔다.

“아, 그리고 이건 제가 이번에 특별히 구한 건데 한번 보실래요?”

그는 헤벌쭉 웃으며 품 안에서 검붉은 체리를 꺼냈다.

보물 다루듯이 체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요거는 4급 과일이에요! 동굴에서 굴러다니던 걸 주웠다니까요. 후후후! 요즘 운이 트이는 것 같네요!”

“음, 싱싱해 보입니다.”

“그렇죠? 요걸로 만들면 요리 등급도 꽤 올라갈 거예요. 그런데 호준 형은… 아, 형이라고 불러도 되나요?”

“편한 대로 해요.”

“네, 형도 말 놓으세요!”

“그럴까?”

채빈이는 그 뒤로도 화채 재료를 구하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사방을 뛰어다니면서 돈을 버느라 고생이었는지.

운동으로 인해 얻은 근육통의 고단함까지 토로했다.

“살면서 이렇게 뛴 적이 없는데. 돌아다니면서 돈 벌려면 뛸 수밖에 없더라구요. 가끔 뛰다 보면 배에서 구렁이가 꿈틀거리는 것 같기도 해요!”

채빈이에게서는 투머치 토커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래도 동작과 표정이 풍부하고 솔직한 면이 보여서일까.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게 불편하지 않았다.

한참 이야기를 듣는데 사회자의 외침이 대화를 가로막았다.

“자, 모두 준비되셨죠!”

“네에에!”

“어서 시작하쇼!”

몇몇 참가자가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하자 사회자가 싱긋 웃고는 손을 높이 들었다.

사회자 뒤편에는 어느새 큰 디지털 시계가 놓였다.

“이제 시합을 시작하겠습니다. 이 시계가 30분을 표시하면, 끝입니다. 그럼 스타트!”

사회자의 팔이 내려가자 타이머가 작동했다.

투머치토커 채빈은 비장하게 내뱉었다.

“호준형, 파이팅입니다! 저도 최선을 다할게요!”

“그래! 잘하자!”

다각 다각 다각 다각!

사각 사각

모든 참가자가 손을 분주히 움직였다.

* * *

콰지지직

호준은 방망이로 얼음 열매를 뭉갰다.

쾅 쾅 쾅

완전히 얼음 열매를 뭉갠 다음, 칼을 들었다.

그는 양손에 칼을 쥐고 칼질을 난타했다.

닥 닥 닥 닥―

날카로운 칼날에 잘려나간 얼음 가루가 휘날렸다.

고운 얼음 가루가 수북이 쌓였다.

【얼음 열매를 성공적으로 분해했습니다!】

호준은 흐뭇하게 웃으며 도마를 기울였다.

얼음 가루를 그릇 위에 옮겨 담은 뒤.

그는 아이스크림용 국자로 아이스크림을 퍼 올렸다.

착 착 착 착

얼음 가루 위에 아이스크림이 수북이 쌓였다.

‘이제 단팥이다.’

단팥 맛을 내는 팥소를 아이스크림 위에 골고루 뿌렸다.

이제 조금 팥빙수의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팥소를 추가했습니다!】

“와. 팥빙수 만드나 보다! 빙수는 저 사람뿐인데?”

“그러게. 얼음 열매는 급이 높지 않으면 맛이 별로라던데. 맛에 자신이 있는 건가?”

관객들의 말소리가 들렸으나 가볍게 흘려들으며 호준은 비장의 무기, 과일을 꺼냈다.

산딸기, 사과, 키위, 망고, 파인애플, 바나나.

드래곤 푸르트까지 꺼내자 무대 밑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저거 열 명이 먹어도 거뜬하겠는데?”

“과일 진짜 장난 아니네. 그런데 저 정도 양이면 비싼 걸로 준비하지는 못했을 텐데. 과연 맛도 좋을까?”

“뭐,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지만. 양으로 승부하는 거 아닌가 몰라.”

관객들뿐 아니라 다른 참가자들도 호준의 팥빙수에 관심을 가졌다.

화려한 과일들을 보며 놀란 몇몇은 은근히 신경 쓰는 티를 냈다.

시선이 한층 더 쏠렸지만, 호준은 심호흡하고 칼을 들었다.

지금은 다른데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15분 23초】

【15분 22초】

시간은 멈추지 않으니 전진해야만 한다.

곱게 깎은 과일을 그릇에 올릴 때마다 메시지가 떴다.

【망고를 추가했습니다!】

【추가 재료로 인해 등급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바나나를 추가했습니다!】

【추가 재료로 인해 등급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잘하고 있어.’

희망을 주는 메시지였다.

과일이 많다 보니 깎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마지막으로 드래곤 푸르트를 깎기 전, 호준은 시간을 확인하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25분 5초】

【25분 6초】

“시간 넘기면 모두 탈락입니다!”

사회자는 테이블 사이를 걸어 다니며 경고하듯 소리쳤다.

재빨리 요리를 제출한 사람도 있었지만.

전체 참가자의 3분의 1 정도는 아직 요리 중이었다.

호준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심장박동이 느려지고 손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사삭 사삭 사삭

드래곤 푸르트의 보랏빛 껍질을 벗겨내자 무지개색 과육이 드러났다.

정말 그냥.

‘장난 아니다.’

눈이 부셨다.

고작 과일 주제에 보석보다 화려한 건 대체 뭐란 말인가.

1급 과일답게 드래곤 푸르트는 그 장엄한 자태를 드러냈다.

관객들의 눈도 다르지 않았다.

탄성이 이어졌다.

“와아아아! 무지개색 과일도 있었어?”

“까만 씨알 박혀 있는 게 용과랑 비슷한데.”

“용과는 속이 하얗지 않나?”

“참 별거 다 보네. 무슨 맛인지 개궁금하다.”

모두의 주목을 한몸에 받는 드래곤 푸르트를 가지런히 잘라 팥빙수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이전 과일들과는 다른 메시지가 떴다.

【드래곤 푸르트(1급)을 추가했습니다!】

【추가 재료로 인해 등급이 한 단계 상승했습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29분 43초】

호준은 연유 병 뚜껑을 따고 대각선으로 휘둘렀다.

촤아악!

하얀 연유가 그림같이 날아갔다.

오색 과일이 흰 두루마기에 덮인 듯 하얗게 물들었다.

【연유를 추가했습니다!】

【모든 팥빙수 기본 재료를 충족했습니다!】

【재료를 추가하거나 이대로 요리를 완료할 수 있습니다!】

【재료 더 추가】【요리 완료】

메시지를 보는 즉시, 호준은 크게 외쳤다.

“요리 완료!”

그의 말과 동시에 메시지가 비오듯 쏟아졌다.

쏟아지는 메시지를 보는 순간, 호준은 저도 모르게 입이 크게 벌어졌다.

【팥빙수(특10급)을 완성했습니다!】

【망고, 바나나, 키위, 꿀사과, 산딸기, 파인애플, 드래곤 푸르트가 추가되어 요리 등급이 대폭 향상되었습니다!】

【요정왕 특전 효과로 팥빙수 등급이 대폭 상승했습니다!】

【요정왕 특전 효과로 요리 경험치가 2배 증가했습니다!】

【요리 스킬을 레벨업했습니다!】

【특급 요리를 만드는데 성공하여, 특급 요리사 칭호를 얻었습니다!】

【칭호 효과로 음식 조리시 피로도가 감소하지 않습니다!】

【칭호 효과로 음식 조리 속도가 30퍼센트 빨라집니다!】

‘대박… 일단 제출부터 하자.’

지금은 여유롭게 메시지를 보고 기뻐할 시간이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제출해야 하는 상황.

호준은 양손으로 접시를 들고 경보하듯 걸어갔다.

팥빙수가 가득 담긴 접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서 그는 타이머를 확인했다.

【29분 50초】

‘됐다.’

호준은 부드럽게 웃으며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가 탁자를 짚으며 긴 숨을 내쉬자 기다렸다는 듯 알람이 울렸다.

삐이이이이익!

“자, 다들 동작을 멈추세요. 어이 거기. 실격입니다! 다들 멈추세요.”

“아아…!”

“아, 조금만 더 하면 됐는데.”

참가자들 사이에는 희비가 교차했다.

요리 제출에 실패한 쪽에서는 탄식의 한숨이.

요리 제출에 성공한 쪽에서는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럼 심사위원분들 앞으로 나와주세요!”

모두의 주목을 받으며 심사위원들이 테이블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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