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5. 무대에 오르다
진화(進化)는 현재 상태에서 한 단계 나아간다는 의미가 있다.
빛무리가 사라지자 호준은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새롭게 진화한 미소의 모습을.
누가 봐도 알만큼
미소는 달라져 있었다.
― 몸이 가볍다무우우!
― 힘이 불끈불끈 솟는다무우!
미소가 엉덩이를 높이 치켜들었다.
엉덩이는 닭가슴살만 먹고 스쿼트를 한 것처럼 아주 실했다.
【미소의 전신에 근육이 200퍼센트나 증가했습니다!】
거의 근육으로 무장한 수준이었다.
보들보들하던 가죽 너머로 무쇠처럼 단단한 근육이 느껴졌다.
호준은 굵직한 허벅지. 우람한 어깨를 쓸고.
등도 만져보았다.
“오… 딱딱하네.”
등에는 조각 같은 근육이 자리 잡혔다.
그야말로 장인이 한 땀 한 땀 조각한 것처럼
아름다운 근육이었다.
감탄할 수밖에 없는 퀄리티.
미소는 변화된 몸에 100퍼센트 만족했다.
― 이 매력 넘치는 엉덩이를 봐랏무우! 복숭아를 붙인 것 같다무우!
미소는 양 엉덩이에 힘을 빡 주었다.
그러자 엉덩이가 빵빵해서 투둑하고 터질 것만 같았다.
살짝 보기 민망하던 찰나
“아무우우!!”
아무가 물개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 크하하하무우! 역시 알아주는구나무우!
미소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한껏 보디빌더처럼 미소가 몸을 뽐내는 사이, 요정들이 속속 도착했다.
자초지종을 설명한 호준은, 잠시 미소를 지켜보았다.
미소는 근육만 바뀐 것이 아니었다.
‘품종도 바뀌었네.’
【미소가 강화된 젖소로 진화했습니다!】
무려 강화된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과일 우유 모드가 추가되었습니다】
【젖에 과일을 가져다 대면, 해당 과일 우유가 생산됩니다】
‘과일 우유라고?’
본능적으로 산딸기 우유, 바나나 우유가 떠올랐다.
호준은 메시지가 시키는 대로 바나나 하나를 소젖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
하얀 젖이 노랗게 물들었다.
【과일 우유 모드가 자동 실행됩니다!】
【바나나를 등록했습니다!】
【젖을 짜면 바나나 우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오호! 맞네 바나나 우유.’
제조과정 없이 바나나 우유를 수확할 수 있다니.
간편한 점이 마음에 쏙 들었다.
‘간단해서 좋네.’
【우유를 수확할 수 있습니다!】
때마침 우유를 수확할 시기가 되었다.
호준은 미소의 젖에 착유기를 장착했다.
버튼을 누르자
쭈와아압―
― 흐아아앙!
연노랑색 우유가 유리통을 가득 채웠다.
한동안 신음을 듣고 나자, 우유 수확이 끝났다.
【우유 수확을 마쳤습니다】
【버튼을 눌러 유축기를 떼주세요】
―흐아아앗무우! 흐아앙무우!
유축기를 떼자 미소가 가녀린 신음을 흘리며 바닥에 엎어졌다.
신음과는 달리 몸이 너무 건강해 보였다.
호준은 수고했다는 의미로 궁둥이를 팡팡 두드려주고는 우유를 챙겼다.
【바나나 우유(4급) 5개를 획득했습니다!】
【미소와 친밀도가 높아 우유 등급이 대폭 상승했습니다!】
【요정왕 특전으로 바나나 우유 등급이 대폭 상승했습니다!】
【요정왕 특전으로 목축 경험치가 2배 증가했습니다!】
【목축 스킬을 레벨업했습니다!】
【목축 스킬이 일정 레벨 이상이 되면 새로운 종류의 가축을 키울 수 있습니다】
‘우유 등급도 높아졌네.’
좋은 일은 한꺼번에 찾아오는 것일까.
바나나 맛인 것도 좋은데.
등급까지 5등급에서 4등급으로 올랐다.
나중에 다른 과일 우유도 만들어보자며 홀로 다짐했다.
호준은 요정들이 모인 김에 직원들도 불러 바나나 우유를 나눠 먹었다.
“으음…! 맛있다!”
“딱 내 입맛인데?”
“뀨우우!”
“끼루루루!”
다들 바나나 우유를 마음에 들어 했다.
요정들은 방긋방긋 웃으며 우유를 홀짝홀짝 마시고.
베티와 샤롯은 한 입 먹고 음미하고
또 한 입 먹고 음미하기를 반복했다.
호준도 기분 좋게 우유를 들이켰다.
적당히 달고 바나나 향이 풍부한 맛.
우유의 텁텁함이 바나나 맛에 묻혀서 흠잡을 데 없었다.
술술 넘어갔다.
‘이건 팔아도 괜찮겠다.’
우유 먹는 무리에는 목축의 요정도 함께 있었다.
옆에서 바나나 우유를 들이켜며 헤벌쭉 웃는 것에 호준도 마주 웃어주었다.
“메에에에!”
호준은 바나나 우유 1등 공신인 목축의 요정.
직립보행하는 새끼양을 모두에게 소개했다.
“다들 주목! 오늘부터 합류하게 된, 목축의 요정이다! 이 바나나 우유도 모두 이 요정 덕분에 만든 거야.”
“반가워. 넌 어쩜 솜사탕같다 얘!”
“그러게! 덕분에 바나나 우유 잘 먹었다. 고마워!”
별이, 베티, 샤롯, 그리고 요정들.
모두가 목축의 요정에게 친절하게 인사했다.
“메에에에!”
목축의 요정이 방실방실 웃으며 배꼽 인사를 했다.
기분이 좋은지 짧은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그렇게 목축의 요정이 곁으로 왔다.
* * *
우유를 포식하고 휴식 시간을 가졌다.
모두들 목축의 요정에게 관심을 가지며 빙 둘러앉았다.
“신기하네. 두 발로 잘 걸어 다니네요!”
“그러게. 균형을 잘 잡아. 걷기 조기교육이라도 시킨 건가.”
“그런데 이목구비가 인형 같다! 눈이 시츄처럼 커.”
시선이 집중되자 부담스러운 것일까.
목축의 요정은 눈을 데굴데굴 굴리다 호준에게 달려왔다.
그의 정강이 사이로 머리를 끼우고 눈앞을 발굽으로 가렸다.
그래봤자 눈밖에 못 가리는데.
본인은 그걸로 마음이 편한 모양이었다.
“크큭… 꼬리가 다리 사이로 말렸다. 많이 놀랐나 봐.”
“귀엽다 진짜.”
엉덩이가 높이 솟은 자세가 더 관심을 끌고 있다는 걸.
목축의 요정 본인만 몰랐다.
“메에엥.”
목축의 요정이 작게 울자 메시지가 떴다.
【목축의 요정이 당신에게 애정을 느낍니다!】
【목축의 요정에게 이름을 주세요!】
아, 이름을 안 지었구나.
호준은 재빨리 머리를 굴려 이름을 결정했다.
“메이로 하자. 메이.”
메에하는 울음소리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이름을 부여받자 메이가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쳤다.
흑수정 같은 눈이 부드럽게 휘었다.
【메이가 당신을 다정하다고 생각합니다!】
【목축의 요정이 당신을 소중한 존재로 인식합니다!】
“메에에에!”
꾀꼬리같이 울며 메이가 정강이를 꼭 안았다.
호준도 메이를 살포시 안아주었다.
털 뭉치 같은 메이는 참 포근했다.
* * *
콘테스트 시간이 다가왔다.
이제 마을로 떠나야 할 시간.
호준은 요정들과 함께 미소의 등에 올라탔다.
베티는 가게를 지키겠다고 남았고, 샤롯이 강남소에 올라타 동행했다.
“와… 인어다.”
“새끼용도 있어!”
“뭐야. 동물 농장이야? 혼자 키우는 동물이 왜 이렇게 많대?”
“저 인어도 키우는 거 아냐?”
“에이, 소환수겠지. 설마 인어를 키우겠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하는 말은 가볍게 무시했다.
그들 입장에서 볼 때 놀라는 게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새끼용 미르와 송이.
걸어 다니는 무 아무.
토끼빵 같이 생긴 토끼, 가 아니라 토순이.
몸집은 작지만 미모는 작지 않은 팅커벨 별이.
솜뭉치 두 개 이어 붙인 아기양, 메이까지.
모두 시선을 사로잡을 만했다.
더군다나 인어족 샤롯도 우아하게 강남소에 올라탔다.
조가비로 가슴만 가려서 등짝은 훤히 다 보이는 노출 패션.
그 미모에 그 몸매다 보니, 남녀 상관없이 넋을 놓고 보았다.
“오늘따라 사람이 많네.”
정작 샤롯은 그들에게 별 관심이 없었지만 말이다.
쉬익 쉬익―
미소가 콧김을 뿜어내며 어깨 근육을 불끈댔다.
― 힘이 넘친다무우우! 질주하고 싶다무우!
호준은 허벅지에 닿는 단단해진 등 근육을 생생하게 느꼈다.
미소가 질주하고 싶은 욕망은 이해하지만.
사람들이 많아서 달리는 건 곤란했다.
“미소야. 달리는 거 참으면 맛있는 거 사 줄게. 어때. 콜?”
― 콜콜이다무우우!
먹을 거에 넘어간 미소가 그르렁대며 울었다.
호준은 미소의 뿔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메이의 힘에 관한 것이었다.
― 메이 말로는, 동물을 진화시키는 힘은 연달아 쓸 수 없대요. 가끔 한 번씩 쓸 수 있는데 정확한 시간은 잘 모르겠대요.
이 정보는, 별이가 메이의 말을 통역해서 알려준 것이었다.
메이의 능력에 쿨타임이 있다는 말에 호준은 실망하지 않았다.
실망 대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앞으로 계속 진화할 수 있겠네.’
어차피 메이가 곁에 있으니, 언젠가 진화할 기회를 얻는 것 아닌가.
그저 메이를 잘 돌보다가.
기회가 오면 누구를 진화시킬지 결정하면 되었다.
그는 느긋하게 기다릴 마음이 있었다.
메이에게 징조가 보이면 말하라고 했으니 문제없었다.
‘일이 잘 풀리네.’
다음 미소의 진화형을 상상하며 기분 좋게 웃는데.
뿡!
이상한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리니 메이가 허공을 향해 방귀를 쏘고 있었다.
【방귀1이 발생했습니다!】
신기하게도 방귀는 천천히 터져나가 그 과정이 세세하게 보였다.
슬로우 비디오로 물풍선이 터지는 걸 촬영한 것처럼.
방귀 입자가 천천히 사방으로 터져나가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보이는 것.
‘살다 살다 방귀가 터지는 걸 보네.’
호준은 어이없어서 그걸 빤히 바라보았다.
‘냄새도 좋잖아. 로즈마리?’
더 신기한 점은 메이의 방귀 냄새는 로즈마리 냄새라는 것.
불쾌하기보다 청량감이 느껴졌다.
곁에 요정들은 방귀 생방송을 보며 박장대소했다.
“뀨우욱! 꾹꾹! 꾹꾹!”
“끼루루루!”
요정들이 포복절도하자
메이는 의기양양해져서 뿡뿡대기 시작했다.
이름을 뿡뿡이로 지을 걸 그랬나 보다.
뿡 뿡 뿡뿡 뿡뿡뿡
메이는 박자를 맞춰 방귀를 뀌었다.
신들린 뿡뿡이 메이를 보며 요정들이 자지러졌다.
꺄략 까륵 끄르륵거리며 땅을 짚고 웃었다.
“묘옹 묭 묭 묘오오옹!”
“끄윽 끄르륵!”
다들 정신을 못 차리고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웃었다.
‘방귀를 보고 저렇게 웃을 수 있구나.’
호준도 처음에는 신기한 듯 보다가 웃음이 전염되어 같이 웃었다.
어린아이들은 방귀 똥 이런 단어만 말해도 자지러지듯 웃던데.
요정들도 그런 면이 있는 모양이었다.
허브 중에 로즈마리 향을 좋아해서 방귀가 불쾌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끼르르르!”
“꾸우욱 꾹구구국!”
다들 웃느라 기운이 쪽 빠졌다.
토순이가 끄륵거리고 웃다 등에서 굴러떨어지자 강남소가 꼬리로 감아 올려주었다.
메이의 방귀쇼는 광장에 도착하기 직전 막을 내렸다.
“메에에에….”
방귀 뀌는 데에도 한계가 있던 모양인지
방귀를 멈춘 메이도 조금 지친 모양새였다.
그 주위로 요정들이 모여들어 말을 걸었다.
“메이, 너 대체 뭘 먹었길래 그렇게 오래 뀌냐! 변비야?”
“그런데 이상하게 냄새 좋다.”
“끼루루루!”
“뀨우우우!”
“메에에에!”
그렇게 메이는 인싸로 거듭났다.
* * *
【콘테스트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무대 위로 올라가 주세요!】
광장에는 사람이 많았다.
평소에는 광장이 텅텅 비어서 걸어다니는 데 문제가 없었는데.
지금은 길을 걷기가 불편할 정도였다.
콘테스트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
그들을 타겟으로 한 상인이 한 데 섞여 아수라장이었다.
“자, 오늘 콘테스트를 위한 부적 팝니다! 개당 100골드짜린데 이게 아주 효험이 좋아요! 이거 하나만 있으면 1등은 떼놓은 당상이라니까!”
“찰지고 맛있는 빵 사가세요! 맛좋은 빵으로 집 나간 아내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답니다!”
호준은 질척하게 달라붙는 상인을 여럿 거절하고 무대 앞에 다다랐다.
무대에는 벌써 스무 명 정도의 사람들이 긴장한 채 서 있었다.
몇몇은 자신만만한 해 보였고 얼굴이 굳은 사람들도 여럿 보였다.
‘막상 하려니까 떨리네.’
호준도 심장이 쿵쿵 뛰었다.
지금까지는 농장에서 유유자적했지만 여기는 사람이 꽤 많았다.
살면서 무대 위에 올라간 적이 있던가.
초등학교 때 이름 모를 상장을 탄 이후로, 무대에 선 적은 없었다.
졸업장을 받을 때 빼고.
수백 명의 시선이 얼굴에 꽂힌다 생각하니 살짝 긴장이 됐다.
‘일단 소에서 내리자.’
호준은 미소의 등에서 내려와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자신을 내려다보는 샤롯과 눈이 마주쳤다.
샤롯이 먼저 팔을 뻗어 주먹을 내밀었다.
“호준. 긴장하는 건 안 어울려. 잘 놀다 와라.”
그 말을 끝으로 샤롯은 씩 웃었다.
그녀의 주먹에 자신의 주먹을 가져다 대며.
호준은 왠지 존중받는다는 기분이 들었다.
긴장했던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샤롯의 말대로 그냥 이 순간을 즐기자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요정들도 응원대열에 합류했다.
“호준 님 파이팅입니다! 시작!”
“끼루루루!”
“뀨우우!”
“아무우!”
“묘오옹!”
“메에엥!”
미리 준비한 것인지 돌아가면서 크게 울었다.
“자, 하트!”
마지막에는 다 같이 팔을 맞대어서 하트 비스무리한 것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팔을 흐느적대며 흔들리는 하트를 만들었다.
흐느적대는 건 이유를 모르겠지만 어쨌든 응원하는 것 같았다.
찌그러진 하트를 향해 호준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다들 이렇게 응원해주는데 긴장은 무슨.
긴장감이 눈 녹듯이 사라지고 자신감이 마음을 채웠다.
“다녀올게.”
“응원할게요!!”
“뀨뀨!”
호준은 일행들에게 손을 흔들고 무대 위로 올라갔다.
그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